내 어린 시절 고향의 삶을 떠올려 보면 '유월 저승 절기가 지나면 팔월 신선이 온다.'는 속담을 듣고 자랐다. 그 고난의 시대를 보내고서 객지로 나와 공부하고 소비가 미덕이라는 풍조속에 ‘농자는 천하지 대본’이란 말 대신, 천하지 대본은 사업인 사회에 살고있다.
모든 농사를 기계에 의존하니 기계는 인간을 소외시키고 인간의 본성을 잃게 했다. 우리네 최고의 가치는 깨끗한 인성인데 이제 모든 것이 서구 자본화되어 논과 밭이 ‘땅’으로 변하여 금값이거나 헐값이 되었다. 그렇게 고향을 떠나 살다보니 부모도 잃고 고향도 잃고 이제는 아련한 추억의 향수뿐이다.
가을이 되고 추석이 되면 하얀 모시옷 풀 먹여 날이 서게 다려 입고 마을 정자나무 아래서 바둑을 두던 어르신들을 보면 책 읽는 사람은 군자 같았고, 바둑을 두시던 동네 어르신들은 신선 같았다.
유년 내고향 시골 하교길 가을 어느날 삐걱이는 달구지를 타고서 졸면서 신작로 길을가면 지나가는 버스에서 내뿜던 매연이 고된 삶의 일상이 빠져나오는듯 뽀얀 연기에 코스모스가 춤사위로 화답하던 추억의 그 청로길이 그립다.
때로는 신발짝 벗어들고 맨들맨들한 황토길 걸으면 발바닥에 전해지는 가을비에 씻긴 쫀득한 흙의 감촉에 흑냄새가 좋았다. 어깨에 책 보따리 둘러 매고 파란 하늘 뭉개 구름 동무삼아 걷던 그 청로 신작로길이 맑은 하늘이 내 가슴이었다.
신작로옆 자리 잡은 질경이 잎이며 줄기들을 당기고 훑으면 갈바람에 풀향기 싱그럽고 보라색이 매달린 나팔꽃 과수원 울타리 옆구리 새로 이름 모를 풀꽃들의 미소가 좋았다.
해그림자 길게 석양을 드리우면 굴뚝 연기가 하늘을 오르고 밤이면 별들이 쏟아졌다. 또 하루 밤을 지새면 새벽 맑은 이슬에 반사되는 눈부신 햇살이 구르고 여명의 적막을 깨우는 횃닭 소리에 상쾌한 아침을 열 때 예배당 종소리 정겹던 청로리의 어느 가을 하루 아침밥 짓으시던 눈가에 미소가 곱던 울 어머니 모습이 떠올라 가을이 오고 한가위 때가 되면 괜스레 꼬끝이 찡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