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생각해보니
김 상 립
인생여정에서는 누구에게나 크고 작은 목표가 있을 것이다. 마치 낯선 이국 땅에서 완행열차를 타고 먼 길을 떠나면 만나게 되는 여러 개의 역(驛)과도 같을 터이다. 가던 도중 만나는 역이 마음에 들어 갑자기 내리기라도 하면, 자칫 타이밍을 놓쳐 다시 열차를 탈 수 없게 될 것이다. 인생열차란 그 누구라고 특별히 기다려주지 않는다. 승객이 아무리 머물고 싶어도 시간되면 다음 역을 향해 떠난다. 그래서 떠남은 붙잡지 못하는 시간의 흐름이요, 목표란 빠르게 달리는 삶에서 한 차례씩 찾아오는 매듭과 같은 것이다.
부모는 아이들이 좋은 학교로 진학해야 바라는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며, 어릴 적부터 사교육장을 찾아서 날마다 뺑뺑이 돌리기 바쁘다. 과연 그런다고 계획 잡았던 목표에 안착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그래서 대학을 가고 졸업이 가까워지면 젊은 이들은 정치에 뜻을 두는 사람도 생기고, 판, 검사나 의사를 꿈꾸는 사람도 생긴다. 국영기업이나 대 기업 앞에 줄을 길게 서기도하고, 자영업을 하거나 직접 큰 돈을 벌기 위한 목표를 설정하고 인생 전부를 거는 쪽으로 달리는 청년도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무진 애를 써도 목표달성에 실패하는 비율이 더 많기 마련이다. 요행이 성공한 사람도 뜻대로 미래가 열리라는 보장은 없다. 왜냐하면 돈이나 권력을 잡고 나면 그것을 유지하거나 확장하기 위해서 무리수를 두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또 아직은 갈 길이 한 참이나 남은 인생길에서, 제가 설정해둔 최고의 목표에 닿았다고 착각하고, 마치 여행을 끝낸 사람처럼 행동하다 예상외의 복병을 만나기도 한다.
반대로 이렇다할 내세울 목표도 없이 평생을 음지에서 열심히 살다가 나중에 와서야 큰 깨달음을 얻고,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훌륭한 교훈을 남기고 떠난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은 세월이 가도 후진들의 마음 속에 생생하게 살아있게 된다. 때문에 자기가 설정한 세속적인 목표 하나 때문에 죽기를 각오하고 내달리는 일이 꼭 능사는 아닐 터이다. 자칫 실패를 연속하다 보면 그 길 위에서 좌절할 수도 있고, 설령 성공했다 해도 반드시 행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본래 인간에게는 제 뜻대로 성공했다 해도 종국에는 자신에게로 돌아가려 하는 귀소성이 있다. 그래서 목표가 아무리 탐이 나더라도 제 본성과 맞지 않을 때는 처음부터 선택하지 말아야 한다. 그 대단한 알렉산더 대왕도 ‘아! 성공하고 나니 그 일이 실패였다는 것을 비로소 알겠다’고 깊이 탄식했다 하지 않던가?
지금 우리사회의 제일 큰 약점은 상대방에 대하여 본래의 모습을 보려 하지 않고, 흔히 말하는 출세라는 어떤 정형화된 틀에 맞는 자리를 차지했을 때만 성공한 사람으로 인정하는 폐습이다. 이렇게 잘못 설정된 기준 때문에 많은 젊은 이들이 자기가 살고 싶은 삶을 살지 못한다는 현실 앞에서 좌절하기 쉽다. 누가 뭐래도 삶에서 확실한 미래란 없다. 내가 좀 오래 살아보니 사람은 한가지 목표를 위해 산다기보다는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갈 때 마다 복잡하고 어려운 과정을 열심히 헤쳐가며 산다는 데에 의미가 있었다.
내가 어떤 목표를 달성하고 또 다른 목표를 향해 가고 있으면 어느새 지난 목표는 슬그머니 사라지고 그 과정을 거치며 체험했던 기억만 남는다. 오죽하면 ‘사람이 사는 참 목적은 인생이라는 체험을 쌓기 위해서’라는 말이 있겠는가? 삶은 어떤 특정 목표만을 찾아 떠나는 것이 아니고, 죽음으로 가는 과정을 밟으며 여러 개의 삶의 결과를 경험하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될 것이다. 다만, 길고 짧은 그 과정을 어떻게 하나 하나 엮으며 잘 살았는지가 훗날 가치 있는 삶으로 남을 게다.
인생에서 가장 확실한 게 있다면 죽음이라는 종점뿐이다. ‘모든 생명은 다 죽기마련이다’라는 명제 앞에서 아무도 피할 수가 없다. 이승의 삶은 일단 죽음이라는 종착역에서 결산하고 쉬어가야 한다. 그러나 죽음으로 인하여 형태를 바꾼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선 내 의식의 씨앗을 품고 간 영혼은 곧장 다음 여정을 시작할 터이고, 흙으로 돌아간 육신은 인연에 따른 여러 방향의 순환을 맞을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영적인 세계라든지 오묘한 인과의 순환은 당사자가 알 수 없는 영역으로 점지되어 있다는 게 참 아픈 부분이긴 하나 하늘의 뜻이니 어쩌겠는가?
나는 오늘도 인생이라는 배낭을 매고 언제 도착할지 모르는 죽음이란 종점을 향해 쉬지 않고 걷고 있다. 설령 내 예상보다 종점에 더 빨리 도착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요행히 종점이 좀 더 늦게 다가 온다면 감사하게 받아들일 터이다. 그러나 그 종점도 하나의 과정이지 영원한 끝이 아니라는데 큰 의미가 있다. 인생에서 확실한 종점은 없다. 생명은 에너지에서 출발하고 에너지는 불멸의 법칙을 따르니, 결국 죽음도 인과에 따른 끊임없는 순환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부질없는 생각일랑 걷어치우고 무엇을 하든 열심히 하루 하루를 사는 것을 목표로 삼는 게 최선일 터이다. 인도의 유명한 철학자며 명상가인 오쇼 나즈리쉬는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게 가장 위대한 일이다. 온유하고 고요하게 아무런 파장도 일으키지 않고 물 흐르듯 그리 살아가라.’는 충고를 남겼다 한다.
다시 생각해보니 삶에서 진짜 목숨을 걸만한 목표를 찾는다는 보장도 없고, 영영 끝나 암흑천지가 되는 종점도 증명할 길이 없다. 다만, 인생이란 연기(緣起)에 따른 끊임없이 계속되는 변화만 있을 뿐이라 믿고,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는 게 산 사람에게는 여러모로 도움될성싶다. 끝으로 익산의 미륵 산에 있는 사자 암 주지 향봉스님의‘내 죽거든’이란 시 한 수를 소개한다.
내 죽거든
이웃들에게 친구들에게 알리지 말길
관이니 상여니 만들지 말길
그저 입는 옷 그대로 둘둘 말아서
타오르는 불 더미 속에 던져 버릴 것
내 죽거든
49재다 100재다 제발 없기를
쓰잘데 없는 일로 힘겨워 말길
제삿날이니 생일이니 잊어버릴 것
죽은 자를 위한 그 무엇도 챙기지 말 것
죽은 자의 사진 한 장도 걸어두지 말 것
내 죽어
따뜻한 봄 바람으로 돌아오리니
피고 지는 들길 무리 속에 돌아오리니
아침에는 햇살처럼 저녁에는 달빛처럼
더러는 눈송이 되어 돌아오리니
첫댓글 마음에 닿는 글,
깊이 새기겠습니다.
남평 선생님,
늘 건강하십시오.
가슴에 와 닿는 글 읽게
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죽거든 화장해서 보현산 허리춤에
뿌려달라던 제 친정엄마의 당부를 져버리고 매장을 했습니다 아버지 옆에.
전 셋째라 결정권이 없었습니다.
그 당부 못지킨 게 죄스럽네요.
[다시 생각해보니]
좋은 글 올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 떠남은 붙잡지 못하는 시간의 흐름이요, 목표란 빠르게 달리는 삶에서 한 차례씩 찾아오는 매듭과 같은 것이다."
깊이 공감합니다. 작은 목표를 많이 만들면서 살면 삶의 보람을 더 자주 더 크게 느끼게 되더군요. 저도 이제는 한달에 한편이라도 후학들에게 의미있는 수필 한편 써내기 목표 같은 것을 세워 볼 작정입니다. 붙잡지 못하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간이역 처럼 남겨 놓을 수 있는 게 문학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초인적인 의지에 경의를 표합니다. 오래 전에 본 영화 "May Way"를 떠올리며 힘내시길 응원 합니다.
남평 선생님 글 잘 읽고 갑니다.
저도 한때 나즈리쉬에 취했던 적 있습니다.
‘가장 인간답게 사는 게 가장 위대한 일'이라고 했지요,
이 아침,
선생님의 글에 젖습니다.
아무쪼록 건강 잘 챙기세요.
저도 선생님의 글 잘 읽고 갑니다. 건강하시길 빕니다.
남평선생님 글 읽으며 제 삶을 뒤돌아봅니다.
선생님,
건강 잘 지겨서 좋은글 또 보여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