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햇살아래 반짝이는 하얀모래와 물결치는 푸른파도 소리가 가득한 원포리 바닷가에 솔비와 할아버지가 그물을 손질 하고 있다.
“할아버지 심심한데 제가 노래 불러드릴까요?”
“그래 솔비의 노래솜씨 한번 들어보자 허허허”
솔비는 진도아리랑 민요를 즐겁게 불렀다. 여섯살 어린아이 답지않게 민요와 판소리를 잘 불러서 동네에서도 솔비는 어른들의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다.
솔비는 할아버지,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다. 부모님은 3년전에 먼 바다에 고기 잡으러 가셨다가 태풍을 만나 배가 좌초되어 안타깝게도 돌아가셨다. 비록 부모님이 안계시지만 언제나 밝고 명랑하게 살아가는 심성이 무척 아름다운 아이다.
솔비가 국악에 대하여 관심을 보이기 시작한 것은 세 살때 부터이다. 아들과 며느리를 잃은
슬픔을 달래고자 할아버지는 늘 민요와 판소리를 들으며 일을 하셨다. 아직 말조차 못하던 솔비는 국악과 민요를 들으면 무척 즐거워 하며 흥얼거렸다.
솔비가 ‘뱃노래’를 흥겹게 부르고 있을 때 갈매기들도 노래소리에 주변을 돌면서 즐거워했다. 바닷가 큰 바위엔 파도가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솔비의 노래에 답가를 불러주고, 솔숲의 소나무도 장단을 맞추고 있다.
저?노을이 질 무렵 할아버지는 솔비의 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왔다. 돌담 너머로 굴뚝에선
하얀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고 혼자서 심심했던 바둑이가 반겨 맞는다. 할머니가 차려오신 풍성한 저녘밥상 위엔 향긋한 봄나물과 맛있는 음식들이 가득했다. 감사의 식사기도를 드리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기쁨이 넘쳤다.
티없이 맑고 건강하게 자라나는 솔비의 모습을 지켜보는 할머니는 항상 안타까운 심정이 가득하다. 등에 업혀 새근새근 잠든 솔비를 눕히는 할머니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졌다. 창밖엔
별똥별 하나가 봄바람을 타고 살포시 떨어졌다.
다음날 새벽이 되자 할아버지는 바다에 나가 잡은 고기를 배에 싣고 옅은 바다안개를 헤치고 마량항으로 향했다. 고요속에서 막 잠이깬 마량항은 인근의 고금도와 약산에서 싣고온
수산물을 운반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분주했다.
위판장에 도착한 할아버지는 곧장 배에서 물고기를 내려 옮겼다. 위판장엔 좋은 수산물을 사기위해 상인들이 일찍나와 경매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매가 시작되어 가격을 흥정하는 상인들의 손동작이 빠르게 움직였다.
경매를 마치고 위판장의 시끌벅적함을 뒤로한 채 할아버지는 가게에 들려 솔비가 좋아하는 과일과 과자를 사서 아침햇살이 반짝이는 바다를 건너 집으로 돌아왔다.
솔비가 잠든 창틈사이로 아침햇살이 얼굴을 내밀며 잠을 깨웠다. 기지게를 쭉펴고
창밖을 바라보니 바다 저 멀리서 할아버지의 통통배가 들어오고 있다. 구름사이로 내리는
햇살을 맞으며 먹이를 찾아 다니는 갈매기의 모습이 파도소리와 함께 솔비의 시야에 들어왔다. 솔비의 집은 바다와 가까이 있어서 항상 파도와 바람, 갈매기가 늘 친구가 되어 외롭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두손에는 솔비가 좋아하는 과일과 과자봉지가 쥐어져 있었다. 흐뭇한 미소를 지으시고 돌아오신 할아버지의 품에 안겨 솔비는 뽀뽀를 했다.
“할아버지 이거 저 주실려고 사오셨어요?”
“그래 그리고 여기 또 너의 신발도 있다.”
“와 할아버지 최고 고맙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할머니는 기뻐하는 모습에 큰 행복을 느꼈다. 솔비는 바닷가에서 주어온 조개을 엮어서 목걸이를 두분의 목에 걸어드렸다. 이세상 그 어느것 보다 더 귀한 선물을 받은 기쁨은 가장 큰 행복을 안겨주었다.
옆집에 사는 월남댁 할머니가 놀러 오셨다.
“우리 솔비 뭐하고 놀았니? 아이고 귀여운 것”
월남댁 할머니는 먼 옛날 성전면에 있는 월남마을에서 마량의 원포리로 시집와서 동네사람들은 월남댁 이라고 불렀다.
“솔비가 여섯 살 인데 어린이집에 안 보내세요?”
“보내긴 보내야 하는데 원비가 솔찬이 비싸서 엄두가 나질 않아요.”
할머니는 함숨섞인 말로 대답했다.
“면사무소에 가서 보육료 보조신청을 하면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량중앙교회 어린이집에 보내면 되지요. 애가 집에서 혼자 노는 것 보다 더 낫지요.”
“솔비야 너 노래한곡 해봐라”
솔비는 춘향전의 사랑가 대목을 달빛아래 도랑물 흘러가듯 부드럽게 열창을 했다.
“여봐라 춘향아! 저리 가거라! 가는 태도를 보자. 이리 오너라! 오는 태도를 보자. 빵긋빵긋웃어라! 웃는태도를 보자. 아장아장 걸어라! 걷는 태도를 보자서라.
동정 칠백 원무산 같이 높은 사랑, 여천 창해 같이 깊은 사랑, 너와 나와 만난 사랑, 허물 없는 부부 사랑,너는 죽어 무엇 되며 나는 죽어 무엇 되리. 생전 사랑 이러하면 사후 기약 없을소냐. 너 죽어 될 것 있다. 은하수 폭포수 만경창해수 일대장강 다 버리고 칠년대한에 일생진진 처저있는 음양수란 물이 되고 나는 죽어 청학 백학 청조 용조 그런 새는 되려말고 쌍비쌍래 떠날 줄 모르는 원앙새 되어 녹수 원앙격으로 어화 등등 떠놀거든 나인 줄 알려므나. 사랑 사랑 내 간간."
버스는 솔비를 태우고 굽이굽이 이어진 바닷가 도로를 달려갔다. 어린이집에 도착하자 이웃마을 친구들이 선생님을 따라 노래와 율동을 배우고 있었다. 진효정 선생은 솔비를 친구들에게 소개했다.
“우리 친구들 여기를 보세요. 오늘 우리 어린이집에 새로온 친구를 소개하겠어요. 이름은 정솔비 이고 원포리마을에서 살아요. 앞으로 친하게 지내야 해요”
“네 네 선생님” 친구들은 너무 기뻐서 힘차게 대답을 했다.
솔비의 짝꿍은 다빈이다. “솔비야 반가워 나 윤다빈 이야 우리 사이좋게 지내자”
“그래 반가워 우린 좋은 친구야”
우리의 민요를 배우는 시간이 되었다. 선생님이 장구를 치면서 진도아리랑을 가르쳐 주셨다. 아이들은 처음 배우는 민요 이지만 낮설지 않고 친숙하게 잘 따라했다.
“앞에 나와서 한번 불러볼 사람 손들어요”
솔비는 손을 크게 들었다. “저요 선생님 제가 해볼께요”
“그래 솔비가 나와서 한번 불러봐라”
솔비가 부르는 진도아리랑은 아이들도 박수를 치며 즐겁게 들었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문경 새제는 웬 고갠가
구부야 구부구부가 눈물이로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약산 동대 진달래꽃은
한 송이만 피어도 모두 따라 피네
아리 아리랑 스리 스리랑 아라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
솔비의 유창한 노래솜씨에 친구들과 선생님도 감탄 했다.
“솔비야 너 이노래를 누구한테 배웠니? ”
“아니요 그냥 집에서 할아버지가 들으시는 노래를 따라 불렀어요”
선생님은 솔비가 음악적 재능을 가지고 태어난 아이라는 생각을 했다. 또래의 다른 아이들보다 음악을 이해하는 능력과 가창력이 뛰어나 특별히 지도하고 싶었다. 진효정 선생님은 대학에서 피아노음악을 전공했다. 그래서 음악을 잘 하는 아이들은 특별히 지도했다.
솔비가 어린이집을 다닌지도 어느덧 삼개월이 흘러갔다. 사월의 따뜻한 봄날이다. 오늘은 마량토요음악회가 시작되는 날이다. 마량항에서 매주 토요일날 음악회를 개최하여 많은 사름들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어린이집에서 선생님을 따라 솔비와 친구들은 마량음악회 구경을 갔다. 마량항 공원에는 흥겨운 음악이 가득했고, 수 많은 어르신들이 앉아서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다.
마량음악회 진행을 맡은 사회자가 나와서 힘차게 인사를 했다.
“ 여러분 안녕 하십니까? 마량토요음악회 진행을 맡은 진현주 인사 드립니다. 날씨가 참 따뜻하고 좋은날입니다. 오늘 음악회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고 어른신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무대에는 가수들이 나와서 노래를 불렀고 관객들은 박수를 치며 즐거워 했다. 우리 전통민요를 부르는 가수의 노래에 덩실덩실 춤을 추는 어르신들도 있었다. 마지막 시간이 되자 사회자는 관객들중에 무대에 나와서 노래할 사람을 찾았다. 선생님은 솔비에게 한번 나가보라고 했다. 사실 선생님이 사회자에게 부탁을 하여 무대에서 기량을 펼치도록 했다.
“마량면 원포리에 사는 정솔비 어린이가 나왔습니다. 힘찬 박수로 맞이해 주시기 바랍니다.
솔비 어린이 무슨노래 부르겠어요? “
“새타령 이요” 솔비는 새가 하늘을 훨훨 나는것처럼 노래를 불렀다.
“새가 날아든다 온갖 잡새가 날아든다
새중에는 봉황새 만수문전에 풍년새
산고곡심 무인처 수렵비조 뭇새들이
농촌화답에 짝을 지어 생긋생긋이 날아든다
저 쑥꾹새가 울음운다 울어~ 울어 울어 울음운다
이 산으로 가면 쑥꾹쑥꾹
저 산으로 가면 쑥쑥꾹쑥꾹
어허~어이~어허~어허~~
좌우로 다니며 울음운다“
관객들은 솔비의 노랫소리에 환호성을 질렀다. 여섯 살의 어린아이가 유창하게 민요를 부른는 것이 정말 기특했다. 노래를 삼창까지 부르라는 열화와 같은 요청으로 솔비의 노래는 마량항 저 멀리까지 울려퍼졌다.
솔비의 노래를 자세히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다. 마량음악회에 출여하여 판소리와 창을 부르는 백미정 선생 이었다. 강진읍에 살면서 각급학교 특별활동 시간에 우리 국악을 가르치는 일을 하고있는 선생님 이다. 저 아이의 창법과 목소리를 잘 다듬어 주면 뛰어난 소리꾼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소리꾼이라는 명칭는 아무에게나 붙여주는 명칭이 아니다. 어느 일정의 경지에 다다른 사람에게 붙여주고 최고의 경지에 도달한 사람은 명창이라고 한다.
솔비의 곁으로 다가간 백미정 선생님은 고사리같은 솔비의 손을 잡으며 본격적으로 국악을
배워보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진효정 선생님은 솔비의 어려운 가정형편에 대해서 말해줬다.
“솔비는 뛰어난 음감과 가창력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아직 어린아이 이지만 잘만 지도하면 뛰어난 음악가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안계신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살아기기 때문에 형편상 전문적인 교육을 받을수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백미정 선생은 솔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열심히 하라고 격려해 주고 다음에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하고 마량을 떠나 강진읍으로 향했다. 돌아오는 도중에 솔비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지난날 자신도 어려운 가정형편과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악을 배웠기에 더욱 마음이 끌렸다.
집에 돌아온 솔비는 오늘 마량음악회에 나가서 노래부른 이야기를 말씀 드렸다. 솔비의 이야기를 들은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대견 스러워 했다.
마량음악회에 출연한 이후 ‘마량의 소녀명창 솔비’가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졌다. 신문에 솔비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노래를 듣기위해 일부러 마량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던 시간들이 지나고 어느덧 학교에 입학할 때가 되었다. 진효정 선생은 솔비의 손을 잡고 마량초등학교 입학식에 갔다.
“솔비야 이제 어엿한 초등학생이 되었구나! 이제 새로운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서 열심히 공부하고 즐겁게 학교생활 해야한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한지 알지?”
솔비를 가슴에 안고 어루만지자 주루루 눈물을 흘렸다.
“선생님이제 헤어져야 하나요?”
“아니야 학교 끝나고 언제든지 선생님 보고싶으면 찾아와 알았지?”
솔비와 친구들은 담임선생님을 따라서 1학년 교실로 들어갔다. 칠판에 ‘한보람’이라는 선생님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너희들을 만나게되어 무척 반갑다. 올 일년동안 열심히 공부하자”
“예 선생님”
아이들은 힘차게 대답했다. 한보람 선생은 올해 처음으로 마량초등학교에 발령을 받았다. 고향은 섬진강이 내려다 보이는 구례이다. 어릴적 꿈이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과 함께 뛰놀며 공부하는 것 이었는데 그 꿈을 이루었다.
교실 창밖에서 솔비의 공부하는 모습을 뒤로한채 진효정 선생은 어린이집으로 돌아왔다. 유난이 정을 많이 주었던 아이라서 그런지 솔비가 앞으로 씩씩한 어린이로 잘 성장하기를 기도했다.
“솔비가 비록 부모님이 안계시고 할아버지 할머니와 생활하지만, 항상 용기와 미소를 잃지 않고 살아가게 해주세요. 살아가면서 수많은 슬픔과 어려움을 만나더라도 이겨낼 힘과 용기를 주시고, 언제나 감사하며 사랑을 베풀며, 큰꿈을 이루는 아이가 되게 해주소서.”
창밖엔 봄바람에 하얀 매화꽃이 날리고 햇살아래 살포시 새싹이 돋아나고 아지랑이가 사르르 오르고 있었다.
학교를 마치고 솔비는 초롱이,아름이,슬비,다빈이와 함께 초륵빛으로 물들은 들판길을 따라 집으로 향했다. 하얀클로버 향기에 나비들이 훨훨 춤추고 봄바람에 물결치는 초록의 보리밭
옆에는 나물을 캐는 사람들이 보였다.
초롱이가 보리를 꺽어 피리를 불었다. 친구들은 신기한 듯 보리피리를 만들어 ‘빌릴리 빌리리’ 피리소리를 내며 꿈길같은 들판을 지나 집으로 돌아갔다.
“할머니 학교에 다녀 왔습니다.”
마당에서 미역을 말리시던 할머니는 책가방을 메고 들어오는 솔비의 모습이 기특해 보였다.
“예쁜 내손주 학교에서 공부 잘 하고 왔구나” 솔비를 가슴에 앉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해질 무렵 원포리 바닷가에 석양의 노을지는 모습은 무척 아름답다. 하루종일 지친 햇살이 바다 수평선 저 너머로 얼굴을 숨기면서 어둠이 서서이 물들기 시작했다.
다음날 학교에서 특별활동시간이 되었다. 우리의 전통민요를 가르치는 ‘백미정 선생’이 교실에 들어와서 장구를 치며 즐거운 진도아리랑을 가르쳤다. 솔비는 민요를 마음껏 부를수 있어서 마냥 즐거웠다. 음악적 감성이 다른 아이들보다 뛰어난 아이 이기에 솔비를 유심히 관찰했다.
수업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소리공부를 하자고 솔비에게 말을했다.
“일주일에 한번 특별활동이 있는날 선생님과 만나서 소리공부를 하자
넌 음악적 재능이 풍부해서 정말 잘 할수 있을거야.“
학교뒷산 소나무숲에 돗자리를 깔고 백미정 선생은 발성 연습부터 가르쳤다.
“왜 우리의 전통민요와 판소리를 소리라고 하는지 아느냐? 저기 숲속의 바람소리 바닷가 파도소리,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처럼 노래도 아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우러 배에서 부터 목청을 울려야 소리가 되는 것이다.”
노래와 소리의 원리는 음의 높이와 장단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설명과 함께
북소리에 맞춰서 발성연습은 계속 되었다. 처음 배우는 발성연습을 잘 따라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속으로 가능성이 있는 이이라고 생각 했다. 그러나 일부러 내색을 하지 않고 해가 지도록 연습을 시켰다.
해가 저물어 걱정이된 할아버지는 마을어귀 에서 솔비를 기다렸다. 멀리서 어둠속을 헤치고 자동차가 마을로 들어왔다. 솔비와 함께 차에서 내린 백미정 선생은 할아버지께 인사를 드렸다.
“안녕 하세요. 솔비 할아버지 저는 솔비가 다니는 학교에 반과후 지도교사입니다. 솔비에게
제가 판소리를 가르치느라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 그러셨군요. 걱정이 되어서 이렇게 마중을 나왔습니다”
“수업이 끝나면 제가 집까지 데려다 주겠습니다”
“우리 솔비에게 이렇게 많은 가르침을 주셔서 뭐라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인사를 마치고 백미정 선생은 푸른파도소리 가득한 해안도로를 따라서 집으로 돌아갔다.
할아버지의 등에 엎힌 솔비는 세상에서 가장 따뜻함과 포근함을 느꼈다.
“소리공부는 힘들지 않았니?” “아니요 정말 재미있었어요. 선생님이 잘 가르쳐 주셔서 하나도 어렵지 않았어요.” “그래 그것참 다행 이구나 할아버지는 네가 학교생활과 공부가 힘들면 어쩌나 하고 걱정했단다.”
학교생활이 즐거워지고 솔비의 몸과 마음도 쑥쑥 자라났다. 매주 금요일 소리공부를 하는날이다. 북과 장구치는 방법을 배우고 민요와 판소리에 대해서 공부를 했다. 판소리는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어려웠다. 어려운 부분을 여러번 반복해서 가르치며 창법을 다듬어 갔다.
어린이의 음높이에 맞는 창법을 가르치고 더 어려운 판소리를 가르치려고 생각했지만 고민이 되었다. 자칫 잘못하다간 목소리가 손상될수 있어서 고음과 긴 판소리는 가르치지 않기로 했다.
일년이라는 시간동안 솔비는 창법과 판소리를 배우면서 자기만의 독특한 창법을 익혔다.
북과 장구 가야금을 다르며 악기와 소리를 조화시키며 우리음악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백미정 선생은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전주에서 전국 대사습놀이 판소리 경연대회 참가 안내장 이었다. 안내장을 읽고나서 한참동안 깊은 생각에 잠겼다. 전국적인 대회에 솔비를 출전 시킬 수 있는지를 깊이 생각했다. 이제 일년 배웠는데 전국의 실력있는 아이들이 많이 참가 할 것인데 혹시 참가 했다가 실망하거나 상처를 받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쉽게 마음의 결정을 못했다.
다음날 담임선생께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한보람 선생은 솔비에게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라며 대회에 참가 할 것을 권유했다. 앞으로 한달후에 전주에서 열리는 대사습놀이 초등부 판소리 경연대회에 대해서 교장선생님께 설명 드렸다.
“한보람 선생님 반 솔비가 그런 재능이 있었는지 미처 몰랐습니다.
선생님 말씀대로 솔비가 충분한 실력을 겸비 했다고 하니, 우리 학교의 명예를 높이고 솔비학생의 발전을 위해서 참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 합니다“
학교수업을 마치고 날마다 연습에 들어갔다. 학교 강당에서 연습을 할 수 있도록 학교에서 배려를 했다. 백미정 선생이 북을치고 솔비는 판소리를 부르는 모습을 한보람 선생은 캠코더에 담았다. 연습이 끝나고 캠코더 동영상을 보면서 잘못된점을 고쳐가며 연습을 거듭했다.
집에 돌아온 솔비는 원포리 바닷가 갯바위에 서서 심청가를 부르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눈을 뜨기 위해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간 심청이 임당수에 빠지는 애절한 대목을 부르며 솔비는 눈시울을 적셨다.
뒤에서 말없이 지켜보시는 할머니는 마냥 바다가 원망 스러웠다. 부모없이 자라는 손녀에게 뒷바라지를 제대로 못해줘서 미안한 생각이 가득했다.
솔비가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경연대회에 나간다는 소식이 온동네와 마량면에 두루 퍼졌다.
이소식을 전해들은 마량중앙교회 목사님은 솔비집을 찾아오셔서 좋은 성적을 거두도록 축복의 기도를 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원포리 동네에서는 관광버스를 빌려 응원가기로 했다. 솔비를 사랑하는 마량면 어른들도 버스를 빌려 함께 가기로 했다.
대회참가 이틀을 남겨두고 백미정 선생은 솔비에게 당부를 했다.
“전국대회에 처음 나가지만 넌 평상시 연습하던데로 부르면 된다. 사람들을 의식하지 말고 너 혼자서 즐겁게 노래를 부르면 된다. 알았지? 자 그럼 심청가를 다시 불러봐라 내가 북을칠테니”
솔비는 판소리속 심청이가 되어 눈먼 아버지의 지팡이를 잡고 개울물을 건너며, 불쌍한 아버지에게 효도를 다하는 심청의 모습을 판소리로 표현했다. 북을치는 백미정 선생과 솔비가 하나가 되어 미소와 눈믈을 흘리며 연습을 했다.
다음날 학교에서는 대회에 나가 좋은 성적을 거두고 돌아오라는 선생님과 친구들의 격려와
응원이 가득했다. 솔비는 친구들의 따뜻한 성원에 보답하는 길은 대회에 나가서 꼭 우수상을 받은것 이라고 생각했다.
바람처럼 시간도 지나고 흘러갔다. 어느덧 밤이 찾아오고 창가에는 휘영청 밝은 달빛이 잔잔한 미소를 띄우며 곤이잠든 솔비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행여나 잠에서 깰가봐 바람도 숨을 죽이고 바닷가 파도도 조용히 잠이 들었다.
푸른 수평선 너머로 햇살이 가냘프게 고개를 내밀고 날이 서서히 밝기 시작했다. 잠자리에서 일어난 솔비는 두손을 모아 기도를 드렸다. “그동안 연습한 모든 것을 마음껏 펼치며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게 해주세요. 저는 사람들이 저의 노래을 들으며 행복을 느끼면 졸겠습니다.”
마을앞에는 버스가 사람들을 태우고 가기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솔비네 식구들과 동네어른들은 버스에 올랐다. 함께 전주를 가기위해 마량에서 오신분들이 탄 버스가 먼저 달리기 시작했다.
차창밖에는 봄바람에 황금빛으로 물들은 보리가 물결치고 푸른 하늘의 흰구름이 두둥실 떠가고 있었다. 버스안에는 어린이집 진효정 선생과 교회 목사님, 백미정 선생이 솔비의 옆좌석에 앉아 있었다.
백미정 서생은 솔비의 손을 잡고 차분히 말을 건넸다.
“마음을 편하고 차분하게 가라앉히고 평상시 하던 것 처럼 해라.”
버스는 강진땅을 벗어나 우뚝?은 월출산자락을 지나 드넓은 평야를 지나 고속도로를 달려
전주에 도착하여 시가지를 지나 한적한 곳에 다다르니 큰 기와집으로 지어진 도립국악원 앞에서 버스는 멈췄다. 잔디밭 공원에는 전국각지에서 대회에 참석한 많은 학생들이 각자의
기량을 펼치고자 마지막 연습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대회의 시작을 알리는 징소리와 취타대의 장엄한 연주가 시작되었다. 대회장을 가득메운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첫 번째 경연자는 서울강남초등학교 어린이 국악합창단 이었다. 이십명이 황금빛 한복을 입고 지휘자의 손놀림에 따라 ‘몽금포타령’ ‘도라지’ ‘뱃노래’를
부르자 관객석에서는 우렁찬 박수소리가 대회장을 가득 채웠다.
경연자의 절반이 서울에서 온 학생들 이었다. 가야금병창을 하는 학생들, 사물놀이,대금과 퉁소를 부르는 학생들의 경연이 이어졌다. 서울,경기,충청,강원,경상 순으로 진행 되었고,드디어 전라도 순서가 되었다. 진도에서 올라온 김다슬 학생은 가야금을 타며 진도아리랑과 새타령을 구성지게 불렸다. 보성의 한지혜 학생은 판소리 홍보가 박타는 대목을 불렀고, 장흥의 위현서 학생은 춘향가를 불렀다.
사회자는 이번이 마지막 순서라고 솔비를 소개하며,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말을 건넸다.
“마지막 순서로 전남 강진군에서 참가한 정솔비 어린이를 소개 합니다. 솔비 어린이 마지막
순서인데 떨리지 않나요?“
“조금은 떨려요. 하지만 최선을 다 하겠습니다”
솔비는 심청가 중에서 심청이 공양미 삼백석에 팔려가 임당수에 몸을 던지는 대목의 판소리를 불렀다.
“날이 차차 밝아지니 어느새 선인들이 싸립문밖에 쭝긋쭝긋 여보낭자 여보낭자 오늘이 행선날이오니 어서급히 가옵시다 심청이 이말듣고 여보시오 선인님네 오날이 행선날이지 내 이미 알거니와 앞어두신 우리부친 저 몸팔린줄 모르오니 진지망종 지여들이고 떠나는 것이 어떠허오.
선인들이 쾌히 승낙허니 그때여 심청이는 부엌으로 들어가 눈물섞어 밥을지어 부친전에 상올리며 아버지 진지 많이 잡수시오 아가 오늘 아침에는 밥이 매우 이르구나 짓노라 지은 것이 그리되었습니다. 부녀철룬이 어찌 몽조가 없으소냐 아가 내간밤에 묘한 꿈을 꿨지야 무슨 꿈이신데요 나가 큰 수레를 타고 갓도 없이 가보이던구나 그꿈을 깨고 내 손세 해몽을 해봤는디 수레라 허는 것은 귀한 사람이 타는 것이 아니냐 아마도 장승상책 부인이 널 데려갈제 가마태워 데려가실 모양이로구나 아버님 그 꿈 장히 좋습니다. 심청이 저죽을 꿈인 줄을 짐작허고 설움이 복받쳐 눈물이 듯거니 맺거니...“
솔비의 판소리는 너무나 애절하여 판소리 각 대목 대목마다 감정을 실어 눈물을 흘리며 완창을 했다. 객석에서 지켜보며 눈물을 흘리는 어르신들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았다.
임당수가 심청이를 삼킨 것처럼 부모님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에 복받히는 설움의 창을 불렀다.
숙연해졌던 관객석은 솔비의 판소리가 끝나자 기립박수가 대회장을 떠나갈 듯 울렸다. 오늘 경연자중에 가장 많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참가자들의 모든 경연이 끝니자 심사위원들은 한참동안 경연자들의 점수를 평가하느라 진땀을 흘렸다. 심사위원장은 최종 점수를 확정했다.
“저학년부 최우수상은 전남 강진의 정솔비 어린이로 확정 되었습니다” 우수상,장려상 수상자들이 확정되었다.
대회 진행자가 저학년부 최우수상을 발표하자 수많은 관객들은 우뢰와 같은 박수를 치며 솔비의 수상을 축하했다. 할머니는 어린손녀를 끌어앉고 눈물을 흘렸다. 뒷바라지도 제대로
못했는데 이렇게 전국대회에서 최우수상의 영예를 앉은 솔비가 대견 스러웠다. 함께온 마량의 어르신들도 마치 자기의 일처럼 기뻐하며 즐거워 했다.
버스는 다시금 도립국악원과 전주시내를 벗어나 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월출산 기?에 해가걸린 광경을 바라보며 불치재를 넘어 마음이 따뜻한 강진으로 돌아왔다. 마량면 입구에는 솔비의 최우수상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손을 흔들며 환영하였다.
다음날 마량은 온통 축제의 장이 되었고, 마량토요음악회 에서는 솔비의 특별무대가 펼쳐졌다. 토요음악회장을 가득메운 사람들, 방송국과 신문사 취재진들이 인산인해를 이루었고 솔비의 창소리는 바다 저멀리 수평선까지 울려 퍼져갔다.
세월이 빠르게 흘러 어느덧 솔비는 대학을 졸업하고 어릴적 꿈인 초등학교 교사가 되었다.
처음 발령을 받은곳은 곡성군 겸면초등학교 였다. 첩첩산골의 오지에 위치한 학교는 아이들이 순박하고 눈빛이 초롱초롱 하였다.
솔비는 판소리와 우리의 국악을 아이들에게 전수하기 위하여, 교장선생님께 반과후 특별활동 수업을 건의 드렸다.
“정솔비 선생님 참 좋은 생각 이군요. 아이들에게 우리의 음악과 소리를 가르쳐 우리소리의 맥을 계승하고 발전시키는 보람된 일이 되겠군요. 열심히 해보세요.”
“감사합니다. 교장선생님 열심히 하겠습니다.”
솔비는 어릴적엔 꿈을 심어주신 진효정 선생님과 백미정 선생님의 얼굴을 떠올리면서 장구를 치며 진도아리랑을 가르쳤다.
“자 선생님의 장구 장단을 잘 듣고 따라해요. 아리 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리리가 났네. 아리랑 응응응 아라리가 났네”
진도아리랑은 아이들을 우리가락에 심취되어 푹 빠질정도로 사로 잡았고, 솔비는 자신의 꿈을 이룬 기쁨에 마냥 행복을 느겼다.
적막하기만 했던 겸면초등학교 강당에는 진도아리랑을 부르는 아이들의 합창소리가 해질 무렵 개울가 갈대밭을 헤치고 서산마루로 울려 퍼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