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청, 인사동 오피스 건물 신축 현장서 15~16세기 유물 대거 발굴
最古 한글활자등 국보급 유물
동국정운식 활자 실물 첫 확인
1434년 갑인자 추정활자 발견
사실땐 구텐베르크 16년 앞서
재개발 인사동 공사 현장에서
한겹 팔 때마다 수세기 과거로
진흙투성이 항아리 속 보물이
구리 재활용 위해 묻어놓은듯
한글 금속활자(대자). [사진제공=문화재청]
지난 6월 서울 인사동 79번지 오피스 건물 공사 현장 땅 속에서 오래되고 깨진 도기 항아리(잔존 높이 32㎝)가 나왔다. 항아리 구멍에서 진흙덩어리 몇 개가 떨어져나와 세척해보니 놀랍게도 조선 시대 금속활자였다.
문화재법에 따라 지난해 3월부터 재개발을 앞둔 '서울 공평구역 제15·16지구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 내 유적을 조사하던 중에 국보급 유물이 대거 발굴됐다. 이 곳에서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점 뿐만 아니라 세종~중종 때 물시계의 주전(籌箭·시간을 알려주는 연결 장치), 세종 때 천문시계 일성정시의(日星定時儀) 1점, 중종~선조 때 총통류 8점, 동종(銅鐘) 1점 등 금속 유물이 한꺼번에 나왔다.
유적을 발굴조사중인 오경택 수도문물연구원장은 29일 주요 유물 언론 공개회에서 "20세기 건물을 철거하자 땅 아래에서 19세기 집터, 18세기 집터, 17세기 집터, 16세기 집터가 떡시루처럼 한겹 한겹 나왔으며, 지하 3m까지 파고들어가자 국보급 가치가 있는 15~16세기 금속활자와 물시계, 천문시계가 대거 출토됐다"고 밝혔다.
이번에 가장 오래된 한글 금속활자 580여점이 발굴돼 한글 연구에 획기적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기대된다. 훈민정음이 창제된 시기인 15세기에만 사용되던 동국정운식 표기법 'ㅭ, ㆆ, ㅸ' 등이 새긴 금속활자가 실물로 확인된 것은 처음이다. 동국정운은 세종의 명으로 신숙주, 박팽년 등이 조선한자음을 바로잡기 위해 간행한 우리나라 최초 표준음 운서(韻書)다.
이날 언론 공개회에 나온 백두현 경북대 국어국문과 교수는 "조선 세조 8년(1461년)에 출간된 불교경전 '능엄경언해'(능엄경을 한글로 풀이한 책)에 나온 동운정운식 표기법과 같은 한글 금속 활자들과 15세기에 한정해 사용한 한글인 'ㅱ, ㆅ' 등 활자도 확인했다"며 "지금까지 발견된 한글 금속활자 중 가장 오래된게 틀림 없다"고 밝혔다.
한글 금속활자를 이루는 대자(大字), 중자(中字), 주석(註釋) 등에 사용된 소자(小字), 특소자 등 다양한 크기와 서체 활자가 출토된 것도 처음이다.
조선 금속활자인 세조 '을해자'(1455년)(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보다 20년 이른 세종 '갑인자'(1434년)로 추정되는 한자(漢字) 활자가 다량 확인된 것도 눈길을 끈다. 추후 연구를 통해 '갑인자'로 확인되면 서양 최초 금속활자 발명가인 구텐베르크의 인쇄시기(1450년경)보다 16년 빠른 시기 조선 금속 활자를 보유하게 돼 세계 문화 역사를 바꾸게 된다. 세계 최고(最古) 금속활자본으로 판명된 고려 시대 직지심체요절(직지심경·1377년)도 활자 없이 인쇄본만 전해져 온다.
옥영정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헌관리학 교수는 "1449년 조선 세종 때 갑인자로 인쇄된 불교 찬가 '월인천강지곡' 주석에 있는 작은 한자 '火(불화)'와 일치하는 금속 활자가 이번에 발굴됐다"며 "세종 때 갑인자로 인쇄된 '자치통감' '근사록' '대학연의'에 사용된 작은 한자와 동일한 활자들도 눈에 띄어 확인중이다"고 설명했다.
이재정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동국정운식 표기 한글 활자와 함께 발굴됐고, 뒷면이 사각으로 파여진 금속 활자는 지금까지 없었던 것을 감안하면 갑인자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이나' '시니' '하며' '하고' 등 두 글자를 하나의 활자에 표기해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을 한 연주활자(連鑄活字)도 10여점 출토됐다. 지금까지 전해진게 드문 희귀 활자들이다.
발굴 당시 도기 항아리 내부에는 금속활자, 물시계 주전 파편이 담겨 있고, 바깥에는 상대적으로 규모가 큰 동종, 천문시계 일성정시의, 소형화기 총통 8점 등의 파편이 쌓여 있었다.
세종~중종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자동 물시계의 주전은 동판과 구슬방출기구로 구분된다. 동판에는 여러 개의 원형 구멍과 '일전(一箭)'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구슬방출기구는 원통형 동제품 양쪽에 각각 걸쇠와 은행잎 형태 갈고리가 결합돼 있다. 이러한 형태는 '세종실록'에서 작은 구슬을 저장했다 방출해 자동물시계의 시보(時報)장치를 작동시키는 장치인 주전의 기록과 일치한다.
문화재청은 "주전은 1438년(세종 20년) 제작된 흠경각 옥루이거나 1536년(중종 31년) 창덕궁에 새로 설치한 보루각의 자격루로 추정된다"며 "기록으로만 전해져오던 조선 시대 자동 물시계의 주전 실체가 처음 확인된 것으로 의미가 크다"고 밝혔다.
일성정시의는 낮에는 해시계로 사용되고 밤에는 해를 이용할 수 없는 단점을 보완해 별자리를 이용해 시간을 가늠한 것으로 추정된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1437년(세종 19년) 세종은 4개의 일성정시의를 만든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번에 출토된 유물은 일성정시의 중 주천도분환(周天度分環), 일구백각환(日晷百刻環), 성구백각환(星晷百刻環) 등의 주요 부품들로, 시계 바퀴 윗면의 세 고리로 보인다.
이용삼 전 충북대 천문우주학과 교수는 "현존하는 자료 없이 기록으로만 전해져오던 세종 시대 과학기술 실체를 확인한 것으로 의미가 크다"며 "특히 세종 시대 과학 기술의 꽃은 시계였다"고 말했다.
승자총통 1점, 소승자총통 7점은 고의적으로 절단한 후 묻은 것으로 보였다. 복원된 크기는 대략 50~60cm다. 총통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계미년 승자총통(1583년)과 만력 무자년 소승자총통(1588년)으로 추정된다. 장인 희손, 말동 등 제작자가 기록돼 있으며 희손은 현재 보물로 지정된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품 '차승자총통' 명문에서도 확인되는 이름이다. 만력 무자년이 새겨진 승자총통들은 명량 해역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동종은 일성정시의 아랫부분에서 여러 점의 작은 파편으로 나눠 출토됐다. 포탄을 엎어놓은 종형 형태로, 두 마리 용 형상을 한 용뉴(용모양 손잡이)도 있다. 귀꽃 무늬와 연꽃봉우리, 잔물결 장식 등 조선 15세기에 제작된 왕실발원 동종의 양식을 계승했다. 종신 상단에 '嘉靖十四年乙未四月日(가정십사년을미사월일)'이라는 예서체 명문이 새겨져 있어 1535년(중종 30년) 4월에 제작된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왕실발원 동종에는 주로 해서체가 사용돼 왕실발원 동종과는 차이점을 보이기도 한다. 1469년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전 유점사 동종'(국립춘천박물관 소장), 1491년 '해인사 동종'(보물) 등의 유물과 비슷한 양식이다.
이번 조사 지역은 종로2가 사거리 북서쪽으로, 조선 시대 한양도성 중심부였다. 조선 전기까지는 한성부 중부 견평방(경제문화중심지)에 속하며, 주변에 관청인 의금부와 전의감을 비롯해 왕실의 궁가인 순화궁, 죽동궁 등이 위치했다. 남쪽으로는 상업시설인 시전행랑이 있었던 운종가가 위치했던 곳이다.
출토된 유물들은 현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보관중이다. 그런데 금속활자를 제외한 유물들은 왜 잘려져 도기 항아리 안과 옆에 묻어둔 것일까. 오경택 수도문물연구원장은 "동(구리)이 귀하던 시절이어서 재활용하거나 재물로 보관중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며 "보존처리 과정에서 복원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고 밝혔다.
이 유물들을 언제 누가 묻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소승자총 제작 연도 1588년 이후에 묻혔다가 다시 활용되지 못하고 오늘날까지 이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번 발굴은 두 달 정도 더 진행되며 이후 오피스 건물 공사가 시작될 예정이다. 신축될 건물 안 지하1층에 유물 복제품을 전시하는 유적 전시관이 만들어질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