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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감사] 북한 1984년 2월 디폴트(국가파산)를 선언, 북한경제파탄의 원인
서해갑문 건설에 약 40억 불,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약 47억 불, 그리고 비날론 공장 증설로 약 100억 불, 총합 187억 불
수십억 불의 국방비 투자 + 우상화 시설 건립 + 류경호텔 건설
남·북한 통일시, 북한의 부채를 남한이 인수해야 할 가능성.
서해갑문
서해갑문은 북한 남포시(대한민국 이북5도 기준 진남포시)의 서쪽 15km에 위치한 7.8km 길이의 방조제로서 위에는 도로가 건설되어 남포와 황해남도를 연결하는 역할도 한다.
문제는 서해갑문이 부실 공사, 날림 공사, 무리한 공사 등의 여러 악조건이 겹쳐지며 득보다 실이 더 많았다는 점이다.
대동강종합개발계획의 일환으로 1981년 착공하여 3년 내에 완공한다는 목표 아래
조선인민군 육군 군단 4~5개에 달하는 군 병력(20만 명)과 수만 명의 노동자를[2] 투입하였다.
이 공사는 워낙 난공사였고 북한의 토목공사 기술 수준이 낮아 완공 시기를 두 차례나 연기한 끝에 1986년에 겨우 완공하였다.
세계청년학생축전
세계청년학생축전 유치 비용은 당연히 외국인들을 초청해
이것저것 가판대에 행사 같은 걸 벌여야 했던만큼 얄짤없이 외화 현금[15]이었다.
즉, 50억 불에 가까운 막대한 현금을 날려버린 셈이다.
당시 북한의 1년 예산은 넉넉하게 잡아도 40억 불인걸 감안하면 국가 1년 예산 이상을 축제하느라 날려버린 것이다.
비날론 공장 증설
순천비날론련합기업소는 1983년 김일성의 지시로 평안남도 순천에 연간 10만 t 규모로 건설된 비날론 공장이었다.
북한 정부는 이 공장이 완공되면 400여 가지 화학제품 생산이 가능해
경공업 발전의 토대가 되어 이밥에 고깃국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다.
100억 불은 현 기준으로도 매우 큰 돈이지만 당시 북한 입장에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규모였는데,
공장이 완공된 해이자 김정은 이전 북한 총생산이 가장 높았던(157억 불) 1989년 기준으로도 총생산의 64%에 육박하고,
건설을 시작한 1983년 기준으로는 총생산(약 128.6억 불)의 77.8%(!!!)[2]에 육박하는 천문학적 수치다.
그나마 돌아가던 기존 비날론 생산도 90년대 연이은 대홍수로 탄광이 물에 잠기자 석탄생산을 감당하지 못해 김일성 사후인 1994년에 이르러 모두 중지되었을 정도.
여기에 고난의 행군이 닥치자 노동자들이 설비 대부분을 몰래 고철로 바꿔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비날론 생산공정이 '전기 먹는 하마'라고 불릴 정도로 비효율적이었는데 전기까지 없어지니 가동이 될 리가 없었다.
수십억 불의 국방비 투자
김일성은 큰 위기감을 가지고 막대한 국방비를 투자해버렸다.
중국으로부터는 J-7 전투기 30대, J-6 전투기 100대, Q-5 공격기 40대, 실크웜 대함미사일과 다수의 고속정들을 사들였고
소련으로부터도 S-200 지대공미사일 4개 포대, S-125 지대공미사일 8개 포대, MiG-29 전투기 14대, MiG-23 전투기 60대, Su-25 공격기 36대 등의 막대한 군수물자들을 도입해버렸다.
여기에다가 병력을 100만[12]으로 늘려버리고 천마호 전차들을 1,000대 이상 생산해버렸다.
그러나 군대는 결국 평시에는 마땅한 재화를 생산할 수 없는 조직이다.
안그래도 북한은 남한보다 경제규모가 한참 열세인 상황에서 자국의 경제사정과는 맞지 않는 대규모 군사력 증강 프로젝트를 개시해버렸고
거기다가 노동인구들까지 북한군에 흡수되면서 북한의 잠재력이 완전히 깎여나갔다.
여기에 1990년대가 도래하자 북한에게 막대한 원조를 해주던 동구권과 소련이 붕괴되면서
막대한 군사력은 그대로 돈만 퍼먹는 하마가 되었고 북한 경제가 파탄나는데에 일조하게 되었다.
우상화 시설 건립
김일성이 1967년에 마르크스 책까지 검열 대상이 된 도서정리사업을 시작한 이후 1인 독재체제를 구축하고
1974년에 김정일이 공식적인 후계자로 추대되면서 북한 사회는 1970년대부터 경직된 개인숭배 사회로 퇴행해버렸다.
특히 김정일은 아버지 김일성과 자신의 신격화를 위해 국가의 막대한 돈을 끌어모아
전국에 수십 개의 김일성 동상을 건설하고 혁명사적지들을 구성했다.
뿐만 아니라 우상화 시설 건설에 다수의 북한 주민들이 동원되면서 인민경제는 파탄이 나버렸다.
1990년 기준으로 북한은 국가예산의 19%를 우상화에 지출해버렸다.
당연히 우상화는 아무런 경제적 파급효과도 발생시키지 못했고 이는 결국 북한 국가 재정의 파탄으로 이어졌다.
그 정점은 김일성 사후 금수산태양궁전 리모델링 과정에서였다.
강철환의 주장에 의하면 리모델링 비용에만 9억 불의 비용이 소모되었을 정도이다.
류경호텔 건설
류경호텔은 무려 35년 동안 호텔 대신 애물단지 역할만 하고 있는 평양의 마천루이다.
1987년 공사가 시작되었으나 1989년 콘크리트 골조만 완성된 채 20년 가까이 방치되었다가
2008~2011년 공사를 거쳐 2011년 외장 공사가 24년 만에 완공되었다.
그럼에도 류경호텔의 내부 공사는 시작하기는 커녕 첫 삽도 들지 못했고,
오히려 겉면에 LED를 붙여 야경을 과시하는 외관 과시용으로만 쓸 계획이라 영원히 미완성 건물로 남게 되었다.
북한/경제/역사/1980년대의 대규모 정책 실패
https://namu.wiki/w/%EB%B6%81%ED%95%9C/%EA%B2%BD%EC%A0%9C/%EC%97%AD%EC%82%AC/1980%EB%85%84%EB%8C%80%EC%9D%98%20%EB%8C%80%EA%B7%9C%EB%AA%A8%20%EC%A0%95%EC%B1%85%20%EC%8B%A4%ED%8C%A8
어이가 없네, 북한 채권이 거래되는 이유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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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감사] 북한 1984년 2월 디폴트(국가파산)를 선언, 북한경제파탄의 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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