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안동 도산서원 매화
봄의 전령 매화가 안동 도산서원 일대에 활짝 폈다. 퇴계 이황(李滉 : 1501~1570)은 매화를 자신의 정신세계를 표상하는 존재이자 인격체로 여기며 ‘매형梅兄’이라 부를 정도로 매화 사랑이 지극했다. 사별한 부인 허씨를 생각하며 '매화' 라는 시를 쓰기도 했다. 이곳에 매화와 관련된 이황의 한시 5편을 소개한다.
이황(李滉: 1501~1570)은 조선 전기 성균관 대사성, 대제학 등을 역임한 문신이며 학자로 호는 퇴계(退溪)이다. 관직에서 물러난 후 1560년 도산서당(陶山書堂)을 짓고 아호를 도옹(陶壅)이라 정하고 이로부터 7년간 서당에 기거하며 독서와 수양, 저술에 전념하는 한편 많은 제자를 길러 냈다.
퇴계가 매화를 앞에 두고 좋아한 이유는 매화가 음양과 오행의 천심(天心)을 알고 있는 꽃이라 여겼기 때문이라 한다. 매화는 우주의 가득 찬 음기(陰氣)가 끝나고 양기(陽氣)가 모이기 시작할 때 처음으로 피는 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2월 말에 핀다. 분재매를 방 안에 들이면 동지가 지나고 소한 무렵에 꽃이 핀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동지가 지나고 양기가 돌기 시작하는 소한부터 곡우까지 120일간 5일 간격으로 봄바람이 24번 불어온다고 믿었다. 한 번 볼 때마다 다른 꽃이 피어나는데, 처음 부는 바람에 피는 꽃이 매화이고 마지막 부는 바람에 피는 꽃이 모란인 것이다. 그래서 매화가 봄의 전령으로 불리며 매화를 우주의 비밀을 알고 있는 꽃이라고 생각했다.
퇴계가 단양 군수를 그만두고 떠날 때 친분을 맺은 기생 두향(杜香)으로부터 매분을 선물로 받았다. 두향은 퇴계 재임 시절 한 번 만나고 그 후 다시 못 만났지만 퇴계의 인품을 소중히 생각하고 평생 수절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퇴계가 매화에 더욱 애착을 갖게 된 것이 아닌가라고 말하기도 한다. 퇴계가 임종할 때 마지막 말이 “저 매화에 물을 주라” 였다고 한다.
현행 천원권 지폐 앞면에는 퇴계의 초상화와 명륜당 그리고 선생이 좋아한 매화가 그려져 있다. 짧은 봄이 아쉽다면 도산서원에서 퇴계의 학문적 사상과 매화에 얽힌 이야기를 즐기며 매화 사진도 담아 보면 좋을 것 같다.
<陶山月夜詠梅 (도산월야영매)>도산 달밤에 매화를 노래하다
2首
山夜寥寥萬境空(산야요요만경공) 산속 밤은 적막하여 온 세상이 텅 빈 듯
白梅凉月伴仙翁(백매량월반선옹) 흰 매화 차가운 달이 신선과 짝 이뤘네
箇中唯有前灘響(개중유유전탄향) 오직 들리는 건 앞 여울 물 흐르는 소리
揚似爲商抑似宮(양사위상억사궁) 높을 때는 商음이고 낮을 때는 宮음일세
3首
步躡中庭月趁人(보섭중정월진인) 뜰을 거니니 달이 사람 따라오고
梅邊行趫幾回巡(매변행교기회순) 매화꽃 언저리를 몇 번이나 배회했네
夜深坐久渾忘起(야심좌구혼망기) 밤 깊도록 오래 앉아 일어남을 잊었더니
香滿衣巾影滿身(향만의건영만신) 매화향 옷에 가득 달그림자는 몸에 가득
4首
晩發梅兄更識眞(만발매형갱식진) 늦게 핀 매화의 참뜻을 새삼 알겠네
故應知我怯寒辰(고응지아겁한진) 내가 추위를 겁내는 줄 알아서이지
可憐此夜宜蘇病(가련차야의소병) 가련하다 이 밤 병이 낫는다면
能作終宵對月人(능작종소애월인) 밤새도록 능히 달을 대하련만
5首
往歲行歸喜裛香(왕세행귀희읍향) 몇 해 전엔 돌아와 즐거이 향기에 푹 빠졌고
去年病起又尋芳(거년병기우심방) 지난해엔 병에서 일어나 또 꽃을 찾았지
如今忽把西湖勝(여금홀파서호승) 지금 와서 문득 서호의 절경을 가지고
博取東華軟土忙(박취동화연토망) 우리네 부드러운 땅의 바쁜 일과 바꿀 손가
<玉堂憶梅(옥당억매)> 옥당(성균관)에서 고향에 두고 온 매화를 생각하다
一樹庭梅雪滿枝(일수정매설만지) 뜰 앞 매화나무 가지 가득 눈꽃 피니
風塵湖梅夢差池(풍진호매몽차야) 풍진의 세상살이 꿈마저 어지럽네.
玉堂坐對春宵月(옥당좌대춘소월) 옥당에 홀로 앉아 봄밤에 달을 대하니
鴻雁聲中有所思(홍안성중유소사) 기러기 슬피 울제 그대 생각 애절하다.
심 산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