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별곡 Ⅱ-78]수맥파水脈波 차단과 영화 <파묘破墓> 이야기
달포 전 한동네 출신으로 전주에 사는 2년 후배를 50여년만에 임실읍내에서 우연히 만났다. 화들짝 반기던 이 친구가 대뜸 “형님, 제가 오늘 시간이 있는데, 형님네 가족묘지와 집터가 좋은지 봐 드릴게요”했다. “그래? 동생이 풍수風水나 지관地觀인가?” “비슷한데, 저희는 지관止觀이라고 합니다. 수맥탐사봉인 ‘엘로드(L-lowed)’로 수맥과 엑스 파장 그리고 귀신파장을 알아내는 겁니다” “그래? 공짜로 봐준다는데 고맙지. 가보세” 엘로드라는 수맥탐사봉을 본 적은 있으나, 솔직히 믿지 않는 편인데, 친절을 베풀어준다는데 굳이 싫다할 것은 없다는 생각으로, 가족묘지로 안내했다.
그런데, 믿기 어려운 일이 일어났다. 사진 속 가족묘지 왼편이 어머니 묘이고 오른편이 숙부-숙모의 묘인데, 어머니 묘 앞에서 엘로드를 대니까 바로 X자가 되어버리고, 숙부묘는 180도로 벌어지는 게 아닌가. X자는 흉하고 180도로 벌어지는 것은 길하다고 한다. 그러니까 어머니 묘 밑에는 ‘수맥파水脈波’가 흐르고 있다는 것. 지맥地脈은 막을 수 있어도 수맥은 막지 못한다고 하던데, 그 친구는 수맥의 형태와 파의 방향을 잘 찾으면 막을 수 있다며, 가족묘지 맨 위로 올라가더니 손가락 굵기의 구리말뚝을 어느 지점에 박고, 아래로 내려와 어머니 봉분앞에서 엘로드를 대자 종전의 X자가 되지 않고 180도로 벌어지는 것이 아닌가. 눈으로 보고 있어도 어떤 원리로 이런 현상이 생기는지 믿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구리말뚝을 아까 자리에서 30cm정도 옮겨 박고, 다시 아래로 내려와 엘로드를 대자 X자로 돌아가버리는 게 아닌가. 그런데, 그 구리말뚝은 수맥파를 영구적으로 차단하는 게 아니고, 잘 해야 15-20년 가정의 흉사凶事(후손이 아프거나 병드는 일 등)의 발생을 막는 효과가 있다는 것. 아무튼, 너무 신기해 어안이 벙벙했다. 곧이어 묘지 아래의 넓은 터를 뺑뺑 돌아다니는데, 엘로드가 모두 180도로 벌어지는 길지吉地이므로, 십수년 후 그 지점으로 묘들을 모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후 집터도 봐주겠다해 집으로 안내하니, 주방과 옆방과 사랑채는 모두 180도로 벌어지므로 괜찮은데, 거실과 아버지방이 X자가 되어 좋지 않은 곳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뒷마당의 어느 지점에 묘지에서처럼 구리말뚝을 박으니 거실과 아버지방도 180도로 벌어지는 게 아닌가. 그 친구 말은 말뚝 박는 지점이 “딱 그 곳”이어야 한다는 것. 그 근처에서 30cm만 떨어진 곳에 말뚝을 옮겨박자 다시 X자로 되돌아오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는 일이 아닌가. 자동차 등 물건이나 입고 있는 옷에도 엘로드를 들이대면 수맥파 탐지가 가능하다는 것.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을 목격했다. 계속 의문을 표시하며 원리를 묻자, 전문분야여서 설명을 해도 모를 거라며 20년 전에 독학자습으로 이 ‘기술’을 익혔다고 하는 것이다. 아파트 경비로 일하고 있는데, 전국 여기저기에서 강연도 하고, 묘터와 집터를 봐달라는 요청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가느라 바쁘다는 것. 남들에게 이렇게 '좋은 일'을 해주니(적선積善) 자기 후손들이 복을 받을 것이라며 큰소리도 쳤다. 구리말뚝은 풍수 용어로 비보책裨補策의 하나인 듯 싶다. 비보는 액땜(뗌빵)이라는 뜻. 아무튼, 흉지凶地를 길지로 바꾸어줬다니 나쁠 거야 없을 듯싶어 고마움을 표했으나, 고개는 내내 갸우뚱했다. 밥은 제대로 대접할 생각이지만.
그런 일이 있은 후, 3주 전쯤 모처럼 가족끼리 화제작이라는 영화 <파묘破墓>를 보았다. 할아버지의 묘를 최고의 흉지에 쓴 바람에 미국에 사는 증손자가 사경을 헤맨대는 것을 알고, 남몰래 이장移葬하는 중에 동티가 난다는 줄거리. 일제강점기 친일파의 묘를 풍수의 장난으로 흉당凶堂에 쓰면서, 민족정기를 끊는다는 쇠말뚝 대신 일본 쇼군(장군)의 정령을 함께 묻었는데, 그 귀신이 관에서 빠져나와 해꼬지를 한다는 무시무시한 ‘오컬트영화’(컬트영화와 다르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를 보면서, 달포전 고향 후배의 수맥파를 차단한다는 ‘엘로드 현상’를 목격한 것이 오버랩됐다. 정말 그런 초현실적인 일이 있는 것일까? 온몸이 오싹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풍수는 ‘좌청룡 우백호 배산임수’ 이런 정도이지 않은가. 그런데 실제로 일제는 민족의 영상 꼭대기마다 쇠말뚝을 박았을까? 해묵은 논란일 터이지만, 영화를 보면 타당성이 있게 보였다. 그래서 감독은 일부러 출연진들의 이름을 윤봉길 의사를 연상하는 ‘봉길’ 등 독립유공자의 이름들과 3.1절이나 8.15 광복절을 연상시키는 자동차 번호판 숫자를 차용한 것같다. 허나, 영화는 주제가 일관적이지도 못하고 미신 비슷했으며, 산만하여 마음에 들지 않았다. 관객 1천만명을 돌파할 정도의 화제작은 아닌 것같은데, 요즘 MZ세대들의 어떤 취향을 저격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여간, 신기한 것은 신기한 것이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가 어디 이것 뿐이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