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항상 반대하는 친구
나의 신학 동기 L목사는 나와 너무나 달라 서로 극과 극이다. 성격도 습관도 신앙도 서로 맞지 않는다. 그런데도 함께 여행하며 밥도 먹고 잠도 잔다. 그래서 동기들은 다들 이것을 이상하게 여긴다.
내가 L목사를 사귀는 이유는 그가 내놓는 “반대의견” 때문이다. 아주 격한 논쟁을 벌일 때도 많았다. 그런데도 사귄다. 반대의견은 내가 미쳐보지 못한 “다른 시각”일 뿐이다. 그런데 그런 반대의견을 듣지 못하면 생각이 좁아질 수 있다. 성경을 해석할 때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반대의견에 부딪히면 적개심을 품는다. 조선시대에 일어났던 사화들이 다 그렇게 해서 일어났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었을까? 반대의견과 비난을 구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노키아는 전성기에 전 세계의 휴대폰 40퍼센트를 장악했다. 그런데 지금은 노키아의 휴대폰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른다. 노키아의 몰락은 경영진이 연구원들의 “반대의견”을 깔아뭉개는 데서 시작되었다. 세계 카메라 필름의 황제였던 코닥의 몰락도 그런 과정을 밟았다. 디지털카메라는 코닥이 세계 최초로 개발했던 상품이지만 창고 속에 처박히고 말았다.
세계의 경제를 홍역에 몰아넣었던 “리먼 브라더서” 사태도 똑같은 과정을 밟았다. 실무진들은 반대의견을 냈지만 그럴 때마다 경영진은 그 의견을 무시했다. 결과는 몰락이었다.
춘추전국시대 약 550년간은 중국 歷史에서 가장 빛난 시기였다. 이 시기의 특징은 인류가 경험할 수 있는 모든 경험을 다 해보았다는 것이다. 전쟁, 지도력, 충성, 배반, 믿음, 모략, 식량, 산업, 가족, 사랑, 우정, 미움, 질투 등등...
특히 이런 난세로 인해 많은 사상가가 등장했는데 노자, 공자, 장자, 맹자, 한비자 등등이다. 탁월한 三國志도 이 시대의 산물이다. 춘추전국시대를 한마디로 요약하라면 반대의견을 통한 “치열한 경쟁 시대였다”라고 할 수 있다.
소수민족인 유대인들 속에서 노벨상과 세계적인 기업이 많이 나오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어려서부터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 군대에서, 심지어는 수상 집무실에서도 토론과 반론의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직장에서 반대의견을 내놓지 못하는 사람은 창의력이 없다고 하여 해고를 당한다. 정부나 군대에서도 반대의견이 없는 의견(만장일치)은 위험하다고 하여 절대로 채택하지 않는다.
예수님이 12살 때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머리가 하얀 랍비들과 토론하셨다. 우리 문화에서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놈이 버르장머리 없이!”라며 혼쭐내어 쫓아냈겠지만, 유대인들은 오히려 그것을 기특히 여기며 장려까지 한다.
그러나 유교문화에서는 長幼有序 때문에 토론이 잘 되지 않는다. 윗사람에게 반론을 제기했다가는 건방진 놈으로 낙인이 찍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의 한 획을 그었던 사람들이 있다. 종교에서는 예수님, 자연과학에서는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사회과학에서는 카를 마르크스, 정신과학에서는 지그문트 프로이트다. 이 세 사람은 모두 유대인으로 격한 토론문화가 낳은 결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