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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인간에게 절대성이란 게 존재할까?
에 대한 잡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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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 인간은 은근히 밸런스를 추구합니다.
이를테면, 마치 저울의 한 쪽 그릇 위에 올라 탄 것과도 같죠.
맞은 편에 누가. 무엇이. 올라가 있느냐에 따라, 우리의 가치와 무게가 "마치" 변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인간의 균형잡기 본능을 알아 채려면, 연애 장면만큼 적합한 것이 또 없을 테죠.
남자 100명을 불러다 놓고, 100장의 여자 사진을 보여 준다고 칩시다.
그 중에서, 이쁜 순으로 10명만 추려 보라고 하는 거에요.
아마도. 결과는 100명 각각이 크게 차이는 없겠죠.
물론 각자 가진 심미안의 차이 정돈 있겠으나,
남자들의 이쁜 여자 보는 눈이란, 어느 정돈 유형화되어 있다고 보니까요.
근데, 막상 그 100명이 실제론, 모두 다 이쁜 여자들과 사귀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기엔, 너무나도 많은 현실적인 제한사항들이 존재하죠.
그렇담. 이제 우린 이렇게 질문할 수가 있을 겁니다.
100장의 여자 사진 중에, 이를테면, 내가 "아 이 여자는 좀 아닌데" 라고 생각했던 그 여자.
다시 말해서, 100명의 남자 대다수가 "아 이 여자는 좀 아닌데" 라고 생각했던 그 여자.
그 여자에게 만약 남자친구가 있다면, 그 남자는 자신의 여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요?
남자라면 누구나가 이쁜 여자를 좋아합니다.
그렇다고, 남자라면 누구나가 이쁜 여자와 사귀는 건 아니죠.
이 간극을 설명하는 건 간단합니다.
경제학적으로는. 제로섬 게임과, 시장 경제 논리로 설명될 수 있겠고,
심리학적으로는, 저울 게임(균형잡기)의 결과라고 볼 수 있을 거에요.
그러니까. 본인 스스로 계량한 "자신의 무게"에 매칭되는 상대를 선택한단 거죠.
즉, 내가 미리부터 가늠한단 거에요. 내 가치와, 그에 걸맞는 상대방의 "레벨"이란 걸.
그리고나면, 자연스레 인간의 합리화 기제란 게 고개를 들게 됩니다. "내겐 너무나도 이쁜 당신"이 탄생한다고나 할까요?
예전에도 한 번 소개시켜 드린 실험인데.
-+-+- 남자들에게 십수 장의 여자 사진을 뿌린 다음, 데이트하고 싶은 상대를 지목하게끔 했죠.
(남자들에게는 사진 속의 여자들이, 다른 방에서 그들의 사진을 가지고 똑같이 사랑의 작대기 짓을 하고 있다고 뻥칩니다.)
조금 있다가, 남자들에게 거짓 피드백을 줘요.
'야, 저 쪽 방 여자들이 너 무지하게 픽했어~~오~~ 대단한데~~'
그리고나서, 다시 한 번 남자들에게 픽할 기회를 주는데요.
'너 아직도 그 여자야??? 혹시 아니라면, 다시 선택할 기회를 줄께' -+-+-
결과. 예상하시겠죠?
대다수의 남자들이 자신의 픽을 상향 조정하였습니다.
거짓 피드백의 결과, 참가자들은 자신들의 "매력 체급"을 상향 조정하였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로맨틱파트너의 체급 역시 올라간 거죠.
젊은이들에게 노인들도 사랑을 할까? 그들의 사랑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라고 묻는다면.
젊은이들의 가치는 젊음과 그에 따른 매력에 있으므로, 막상 장년의 연애에 대해서 묻는다면 시큰둥할 지도 모르죠.
나이 먹고 연애하는 게 좋을까? 그게 의미가 있을까?? 그 땐 다른 곳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하는 거 아냐???
근데. 장년층, 노년층에서도 당연히 연애란 걸 하십니다.
그 분들의 연애 역시 똑같아요. 저울 게임, 즉 밸런싱의 산물이죠.
흥미로운 건. 휴 헤프너를 보세요. 그 할아방구의 연애 양상은 보통과는 많이 다르죠.
어떻게 보면. 나이는 부차적인 것일 지도 모르겠군요.
진짜는. 자신과 남들이 지각하는 본인의 "무게"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든단 말예요.
즉, 내가 느끼는 연애감과 사랑도 내가 날 어떻게 재단하느냐에 따라 그때그때 다를 수 있단 얘깁니다.
휴 헤프너, 60세 연하 여자친구와 결혼에.. 네티즌 "기운도 좋다"
뭐. 부럽기도 하네요. 저 양반은 기운 뿐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자부심도 상당할 겁니다.
이른바 "자기애"라는 거겠죠.
휴 헤프너의 이런 연애 행각에 대해서, 사람들은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휴 헤프너니까 저러는 거지. 휴 헤프너기에 가능한 거지. 정도의 평가들과 함께요.
근데 갑자기. 약 10여년 전의 한 사건이 떠오르는군요.
1999년 S사의 연기대상 시상식에서 배도환 씨가 이영애 씨에게 공개 프로포즈를 했었던 일 말입니다.
그 때 제가 고3이었는데, 이게 엄청난 세간의 화제이기도 했고, 또, 다른 일로도 엄청난 이슈몰이를 했었던 걸로 기억이 나네요.
그게 뭐냐고요?
까놓고 말해서, "감히 배도환 주제에 누구를 언감생심" 따위의 세간의 입방아질들이 그것이었습니다.
외모로 보나, 재력으로 보나, 인기로 보나. 뭘로 봐도 게임이 안 되는데,
속된 말로 뭐 믿고 까부냐는 그런 식이었죠.
그러니까. 속칭 "밸런싱 파괴자"를 향해 곱지 않은 시선들이 마구마구 쏟아졌던 거에요.
웃긴 거죠. 남 연애에 왜 지들이 감놔라 대추놔라 훈수를 두냔 겁니다.
지들이 막상 감이나 대추를 사 주지도 않을 거면서.
근데, 더 웃긴 건. 그런 웃지 못 할 비판들이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간다는 말입니다.
솔직히, 배도환 씨가 좀 무리수를 둔 것 같다고 생각한단 말이죠.
'이영애는 좀 너무한 것 아닌가...'
바로, 휴 헤프너와 배도환 씨를 둘러 싼 현실(reality)의 차이겠지요.
공개 프로포즈는 연출이었다구 - (2007년 모 인터뷰에서 밝히셨군요.)
항상 100%를 만족시키는 게 좋은 걸까요?
때에 따라서. 경우에 따라서. 사람에 따라서. 각기 다 다를 수 있습니다.
자신의 연애에 100% 만족하는 사람과 80% 만족하는 사람.
어느 쪽이 더 행복할까요? 어느 쪽이 더 설레일 것 같으십니까?
이 여자는 이제 100% 내 꺼다, 모든 게 다 내 뜻대로 이루어진다.
인간이란 요상해서, 어느 정도의 긴장이랄 게 없으면, 아무래도 흥미를 잃는 것 같단 말입니다!?
다시 말해, 뭐든지 100%까지 꽉 채웠다면, 알 수 없는 "뭔가"가 그 "뭔가"가 자꾸만 떨어지는 것 같단 겁니다.
그 "뭔가"가 모티베이션일 수도 있고, 몰입도일 수도 있고, 정복욕이라거나, 혹은, 상대방의 매력일 수도 있고.
하지만, 여전히 20이 부족하다면. 그러니까. 80의 만족과 20의 불만족이 공존하고 있다면.
오히려, 80의 만족이 더 크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겁니다.
이건 마치, 1년내내 노는 것과, 5일 일하고 "이틀" 놀 때. 그 휴식이 지니는 의미 내지는 가치와도 비슷할 거에요.
또는, 불행이 존재함으로써 오히려, 행복의 가치가 크게 지각될 수 있는 것과도 그 궤를 같이 하죠.
굳이 끌여다 붙이자면, 여백의 미(美)라고도 부를 수 있을까요?
어떻게 보면, 내 연애에 아직도 20이나 더 전진해야 할 길이 남아 있기 때문에,
연애를 더 즐길 수도, 내 열정을 더 불태울 수도 있는 거겠죠.
적당한 긴장감은 그녀를 향한 설레임의 유지에, 좋은 원동력이 되기도 하구요.
또는, 그녀의 "아직까지도 잡히지 않는 20%"가 날 더 미치게 만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남자들의 정복욕이라는 게 원래 다 그렇고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만.. 헛헛허 -
그래서 전 가끔. 주위 여자애들한테, 항상 7-8만 주고, 2-3은 튕기라고 조언해 줍니다.
실제로는 이렇게 말을 하죠.
'야, 니가 10을 다 준다고, 그게 잘 해 주는 게 아닐 수가 있어.
오히려, 니가 7,8까지만 주는 게 서로에게 좋을 수가 있는 거라고 ~'
그럼, 주변의 순진한 여자애들은 이렇게 말을 해요.
'좋아 죽겠는데 어떻게 7,8만 줘. 그게 콘트롤이 돼???? 난 못 하겠어~'
그럼, 전 또 이렇게 말을 합니다.
'맞아, 넌 못 해, 그걸 잘 하는 여자애들은 따로 있지, 니들이 "여우"라고 부르는 애들'
얼마 전, 건강심리학 세미나 때, 선생님께서 그러시더군요.
다이어트. 요요현상이 오는 이유도, 어떻게 보면, 100% 목표 달성을 했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고요.
만일, 8-90%에서 체중을 유지한다면, 모티베이션이 계속 유지될 수 있으므로,
오히려 이 쪽이 더 다이어트에 적응적일 수도 있을 거라면서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럴 듯 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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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그때 달라요. -
자유란 건 중요합니다. 우리 모두는 당연히 자유를 원하고 또 추구하죠.
근데, 이것 역시 경우에 따라선 그렇지 않을 수가 있어요.
실제로, 링컨의 노예 해방 때, 처우가 나쁘지만은 않았던 대저택의 노예들은,
오히려, 자기들을 해방시키지 말아 달라고 애원했다고들 하죠.
그 생활에 익숙해졌기 때문일 수도 있고, 또, 두려웠을 수도 있었겠죠, 갑작스런 자유인의 신분이란 것이.
이제는 어떠한 지시 없이 자신이 알아서, 자신의 판단 하에 모든 걸 해 내야 하기 때문에,
그게 자신이 없어서, 원래의 틀 속에서 이전처럼 살고 싶었던 것일 지도 모르겠네요.
물론, 그러한 고통과 시행착오를 견뎌내야지만, 자신의 삶에 영광과 광명을 찾을 수 있는 것이겠지만서도.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들의 삶에 자유란 적합한 길이 아니라고 느껴졌던 것일 테죠.
남자들이 흔히, 여친과 보냈던 깨알같은 밤들을 친구들과의 술자리에서 전공삼아 이야기하는 것.
그 땐, 그저 아무런 생각 없이, 술 마시며 안주거리 삼아 얘기하는 거겠지만.
만일, 그 술집에 내 여친의 친한 친구가 있었다면.
그래서, 그 얘길 듣고, 크게 분개하여, 내 여친에게 전부. 다. 불어 버렸다면.
상황은 이제. 크게 달라지죠.
큰 충격을 받고, 울며 날 매도하는 여친 앞에서,
내 입은 죄로 물든 더러운 아가리가 되고, 난 씻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대역죄인이 됩니다.
단지. 그 얘길 내 여친이 알게 됐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상황이 이렇게도 크게 바뀌어 버리는 거에요.
술자리의 쾌남아가 뒷골목의 비겁자로 전락되는 순간.인 거죠.
어떻게 보면, guilty를 느끼는 것도 상대적일 수가 있단 생각이 드는 군요. 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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쨌든, 상대성의 세계라는 게, 물론 골치 아프기도 하겠지만, 무쟈게 재밌을 것도 같군요.
내가 하는 거에 따라선, 80대에도 20대처럼 연애할 수 있는 모냥이니깐요. 껄껄껄 -
※ 무명자 블로그 http://blog.naver.com/ahsune
첫댓글 항상 잘 읽고 있어요~~감사합니다~~^^
글 잘읽었습니다~ 무명자님 글을 읽을때마다 항상 자존감, 자애감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 무조건 추천입니다~ 무명자님 자주 자주 들러주세요~!!^^ㅎㅎㅎ
감사합니다~
무명자님 감사합이다 뭔가 오늘 필요할것만 같은 내용들이 때 마침 올라와서 기분이 나아졌어요~~
역시 사람사이의 관계는 어려워요~~
자유에 관한 코멘트를 보니 갑자기 쇼생크탈출이 생각나네요. 감옥에 너무 오래있던탓에 감옥에 길들여져서 막상 가석방 된 후 자살하고마는 할아버지..
잘 읽었습니다~ 더불어 전에 댓글로 책 추천해 주신 것도 감사합니다 ^^ 이사하면서 아직 집에 인터넷이 안 들어 와서 늦게 확인했네요 ^^
잘읽었습니다.^^
굿! 잘읽었습니다~~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