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자(1)-수정판
퍽!
둔탁한 소리가 어두운 주차장 한복판에서 울려 퍼진다. 두 사람이 서있다. 양복을 입은 한 중년의 남자는 온몸을 떨고 있는 데에 비해, 반대편의 가죽 재킷의 사내는 차가운 미소를 짓고 있을 뿐이었다. 중년의 남자 발 옆에는 그의 것으로 보이는 큼직한 서류가방이 쓰러져있었다. 그리고 가죽 재킷 사내 주위에는 방금 쓰러진 듯한 험악한 인상의 사내가 피를 뿜어내고 있었다. 뿐 아니라 주위에는 온통 피와 그것을 흘린 남자들이 즐비했다.
"으...... 으으!! 너, 너는 괴물이냐?!"
"괴물? 글쎄, 나름대로 괜찮은 이름이군."
"크윽......혼자서 30명이 넘는 인원을 쓰러뜨리다니...... 도대체 뭣하는 놈이냐?!"
"그건 알 거 없고......"
재킷의 사내가 말을 하고 있는 사이, 쓰러져있는 남자들 가운데 한 명이 이마에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몸을 일으켰다. 그 사내의 표정은 매우 일그러져 있어서, 그의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알 수 있었다. 그의 왼쪽 팔은 부러져있었다.
"으......"
사내는 자신의 품안에 손을 넣었다. 차가운 금속이 느껴졌다. 이, 이 총으로 녀석의 머리를 날려...... 그 순간, 뭔가가 번쩍했다.
"아아아아악!!!!"
사내는 두 눈에서 피를 쏟아내며 뒤로 넘어졌다.
"쓸데없는 짓을 하다니...... 손만 더러워졌군."
검지와 중지에 피를 잔뜩 묻힌 가죽 재킷의 사내는 미소를 지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중년의 남자가 여전히 벌벌 떨고 있었다. 조금 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땅바닥에 쓰러져있던 가방을 두 손으로 꼭 부둥켜안고 있다는 점이었다.
"자, 가방을 넘기시지."
"아, 안 돼! 이, 이 물건은 '그 놈'에게 넘어가면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게 될 거야!"
"흥, 그건 나랑 상관없는 일. 좌우지간 난 물건을 그 녀석에게 넘기면 그만이야. 난 내가 할 일을 해야겠다."
가죽 재킷의 남자는 씨익하고 웃으며 중년의 남자에게 다가섰다. 중년의 남자는 그가 다가옴에 따라 점점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남자는 전혀 그럴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중년이 간절하게 말했다.
"제발 그만두게! 이 X2는 폭탄일세! 핵폭탄이야! 기존의 핵폭탄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강력한 것이란 말일세!! 반경 1000km를 날려버릴 수가 있어!!"
"글쎄, 내가 알 바 아니라니까. 말귀가 어둡구만. 그러니 늙었으면 죽어야지 뭐하러 살아서 이 지랄을 떠는 거야?"
"으으으......!! 제발!"
"꺼져!!"
"어억!"
퍽.
가죽 재킷의 사내는 빠르게 움직여서 중년의 목덜미를 정확하게 가격했다. 중년의 남자는 즉각 정신을 잃고 쓰러졌고, 재킷의 사내는 아랑곳 않고 그에게서 가방을 빼앗았다. 사내는 재킷 안 주머니에서 사진을 꺼내 가방 안의 내용물과 비교해보고는 다시 가방을 닫았다. 그리고는 지하 주차장을 유유히 빠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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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두 명의 여자가 있다. 주위가 어두워서 보이는 것은 자료 화면에서 나오는 빛과 그로 인해 보이는 두 여자의 머리색 뿐. 보라색과 검은색.
"이 것이 유일하게 보관되어 있는 'K'의 동영상 자료입니다. 그나마 이것도 극비리에 입수한 자료죠."
"음...... 루인(漏印)의 판단으로는 그가 어떤 사람 같아? 우리 함선에 어울릴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그리 미덥지 못한 인물이에요. 과거에 몇 번이나 계약을 깨가면서 자신의 이익만을 철저히 챙겼던 전적도 있고요. 게다가 워낙에 제멋대로인 성격이라 가드(Guard) 중에서는 솜씨만 최강인 블랙리스트 1위의 인물이죠. 가능하다면 상관도 안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실력이 굉장하잖아? 힘도 파워도......"
"아무리 강해도 제대로 된 인간이 아니라면 그보다 약하니만 못해요. 그리고 힘과 파워는 같은 뜻."
"에헤헤, 헷갈려버렸네......"
"......그런데 정말로 저 사람을 스카웃할 작정이세요?"
"응."
"......."
"왜 그렇게 어두운 표정하고 있어?"
"......아니요. 별로......"
"좋아, 그럼 저 사람이 잘 나타나는 곳을 알아봐줘."
"......네? 하지만 연락을 취해서 만나는 편이......"
"그냥 알아보기만 해줘."
"......그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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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온사인이 사방에서 번쩍거린다. 퇴폐적인 복장의 남녀들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문란한 짓거리를 하고 있고, 여기저기서 깨지고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상한 옷과 기괴한 문신을 한 패거리들은 이상한 소리를 질러대며 히죽거리고 있었고, 한 쪽에서는 마약을 먹고 멍해져있는 몇몇이 보인다.
"언제와도 기분 나쁜 곳이야."
가죽 재킷의 남자는 인상을 찡그리며 담배를 꺼내 입에 물고 불을 붙였다. 슬럼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마약이 함유된 담배가 아니라 순수한 보통 담배였다. 담배 연기를 피워올리며, 남자는 여느 슬럼가 사람들처럼 삐딱한 얼굴과 동작으로 어딘가를 향했다. 그의 이름은 K. 세계 최강의 실력을 가진 가드였다.
그는 슬럼가의 지리를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걸음을 걷는 동안에 결코 멈춘다거나 두리번거리는 일이 없었으며, 오히려 때로는 달리기도 했고 때로는 천천히 걷기도 하며 뭔가 리듬을 맞추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그가 멈춘 것은 허름한 주택가가 늘어선 어두운 골목의 어느 허름한 술집 앞에서였다.
삐걱......
문이 열리고 K가 안으로 들어서자, 안에 있던 자들의 이목이 그에게로 집중되었다. 안에 있는 자들의 모습은 참으로 험악했다. 몸에 칼자국이 여러 개 있는 것은 별 것 아닌 축에 속했다. 마약의 부작용으로 보이는 검푸른 반점들도 수도 없이 보였으며, 한쪽 눈이 아예 없거나 팔다리가 제구실을 못하는 자도 많았다. 손가락이 두 개 밖에 없는 자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모두 하나같이 소름끼치는 살기가 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K와 눈을 마주치자 약속이나 한 듯이 모두 눈을 밑으로 내리깔았다. 그런 K를 부르는 목소리가 있었다.
"여어! K! 지난 의뢰 이후로는 처음이군. 잘 지냈나?"
털이 잔뜩 나있는 가슴이 훤히 드러나는 옷을 입고서 출렁이는 뱃살을 감추기 위해 복대까지 한, 험상궂기 그지없는 얼굴을 한 대머리 남자가 K에게 아는 척을 하며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의 이름은 엑스. K같이 실력은 있지만 의뢰가 잘 들어오지 않는 자들을 위해 일거리를 만들어주는 고마운 인물이었다. 성격이 호탕하고 마음이 넓어서 슬럼가의 사람들조차도 그를 진정으로 신용하고 좋아할 정도였다. K는 그의 두툼하고 까칠까칠한 손에 자신의 손을 갖다대며 희미한 미소를 띄웠다.
"그럭저럭. 새로운 일거리는 있어?"
"음, 물론 있긴 했지. 그런데 몇 시간 전에 '브라운' 녀석이 일을 채갔어. 하하하! 조금 빨리 오지 그랬나?"
"브라운이...... 그 얼간이가 어떻게 일을 처리할지 안 봐도 뻔하군. 그럼, 오늘은 일거리가 없는 건가?"
K가 나가려는 기색을 보이자, 엑스는 고개를 저었다.
"일거리는 아니지만, 자네가 해주어야하는 일이 있어."
"그게 뭐지? 부탁인가?"
엑스가 부탁하는 일은 드물다. K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엑스는 특유의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손을 내저었다.
"하하하하, 아니야, 아니야. 부탁이 아니지. 그저 자네를 찾아온 손님이 있어서 말이야."
"손님?"
"그래, 손님이지. 게다가 아주 미인이던데? 하하, 옆에 웬 여자같이 생긴 자식만 없었어도 내가 어떻게 해보는 건데? 하하하!"
"엑스...... 나하고 관련된 사람은......"
K가 약간 불쾌한 빛을 띄자, 엑스가 다시 크게 웃었다. K는 눈을 살짝 찌푸렸지만 결코 싫어서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하하하!! 이거이거, 미인이라니까 천하의 K도 별 수 없는 모양이지? 하하하하하!! 얼굴 펴라고! 펴! 내 말투 다 알면서 뭘 그러나? 손님들은 자네가 쓰던 방에 고이 모셔뒀네."
"후, 그거 고맙군."
K는 희미하게 웃으며 그에게 손을 한 번 흔들어주고 건물 안을 쭉 가로질렀다. 어느 정도 걷자, 두어 사람 정도가 지날 수 있을만한 길이 나왔다. 그 길 안으로 쭉 들어가자 어디서부턴가 길 양옆으로 조그만 문이 하나씩 있었다. 워낙에 똑같이 생겼고 그 수가 많아 어디가 어딘지 구분조차 힘들어 보였지만, K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전혀 망설임 없이 계속해서 걷다가, 어딘가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몸을 오른쪽으로 돌려 문을 찾고, 열쇠 구멍을 찾아 열쇠를 맞추었다. 열쇠 구멍은 붉은 녹이 슬어있었다. 여기서 잠깐. 왜 K가 열쇠를 가지고 방에 가야 하는가? 문이 잠겼으니까? 그럼 손님들은? 해답은 슬럼가 특유의 안전보장을 위해서이다.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기 때문에, 힘이 없거나 초심자들은 자칫하면 가진 것을 모두 뺏기고 심지어 목숨마저 빼앗길 수가 있다. 그러므로 항상 문을 잠그고 있어야 하는데, 본인이 없을 경우에 손님이 찾았을 경우에는 여분의 열쇠를 주어 들어가게 한다. 그리고 안에서 문을 잠근 뒤에, 본인이 와서 다시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다. 열쇠 관리는 마스터가 철저히 관리하므로, 무슨 일이 생겼다면 모든 책임은 마스터에게 있다.
끼이익......
열쇠를 돌리자 녹슨 열쇠 구멍에서 기분 나쁜 소리가 들리며 문이 열렸다. 그 때였다.
"누구냐?"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날아오는 무언가. K는 소리만으로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보통 사람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속도로 찔러오는 검(劍), 아니 도(刀)였다. K는 본능적으로 몸을 틀어 그것을 피한 뒤에 쏜살같이 달려들어 정체불명의 누군가에게 주먹을 뻗었다. 어차피 느껴지는 생명체는 단 하나. 협공 당할 위험을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큭!!"
누군가는 오른쪽 어깨에 타격을 받으며 뒤로 몸을 피했다. 미처 충격이 다 전해지기 전에 몸을 피해서 큰 부상은 입지 않은 듯 싶었다. K는 뻗은 주먹을 거둬들이며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상당히 예의가 없는 녀석이군. 날 찾아왔다면서? 설마 나하고 한 판 겨루고 싶어서 온 것은 아니겠지? 물론 그렇다면 얼마든지 상대해주지."
"틀려요. 당신과 대화를 하기 위해 왔어요."
"?!"
K는 순간적으로 심장이 멈추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더 있었단 말인가......? 내가 느끼지 못할 정도로 강한 인간이?! K는 목소리가 들린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렇다할 특별한 점이 없는 연보라색 머리의 여자가 한 명 서있을 뿐이었다. 어두컴컴한 방안에서 오직 램프의 불빛과 창문의 틈에서 비춰오는 조그만 빛만이 그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K는 약간 긴장하며 여자에게 말을 걸었다.
"......날 보자고 한 용건은?"
"그 전에 자기 소개부터 해요. 저는......"
"이 분은 전함 화이트 노바(White Nova)의 함장이신 리안 버스트. 그리고 나는 부함장 키노시타 로우겐이라 하오. 조금 전의 실례는 사과 드리겠소."
어느새 리안의 옆에는 로우겐이 서있었다. 그는 최대한 정중한 태도로 자신과 리안을 소개하고 용서를 구했지만, K는 상관치 않는 듯,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놀고 있군. 그게 칼을 들이댄 녀석이 할 소린가? 사과라고? 그딴 보이지도 않는 가식적인 말 따위는 집어치워. 원하는 게 뭐야? 내 목인가?"
K의 태도에 로우겐은 불쾌한 기색을 조금 드러냈다. 중요한 일에는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 그였지만 K의 태도는 참기 힘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역시 쉽게 손을 쓰지는 않았다. 한 차례의 호흡으로 마음을 침착하게 한 후, 할 말을 시작했다.
"난 분명히 진심으로 사과를 했소이다. 당신에게 어떻게 보였을지는 모르겠지만,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으로만 사람을 평가하지 말아주셨으면 좋겠소. 그리고 당신에게 볼 일이 있는 사람은 내가 아니라 여기 계신 함장 님이시오."
'호오? 이 놈 봐라?'
자신의 마음을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은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혹은 둘 다이든 간에 상당한 실력을 감추고 있을 수도 있다는 말이 된다. 아주 소수의 경우에 실력은 쥐뿔도 없으면서 마인드 컨트롤과 세 치 혀로 먹고사는 자들도 꽤 되긴 하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좀 전의 일검도 그렇고 K가 보기에도 결코 가볍게 보이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래, 좋아. 함장이라고?"
"화이트 노바의 함장이에요."
"어쨌든."
K는 대화할 마음이 생긴 듯, 방에 있는 침대에 가서 걸터앉았다. 그리고 옆에 비는 공간에 리안을 앉으라고 했다. 로우겐이 불쾌한 듯 말했다.
"함장 님은 당신과 노닥거리고자 온 것이 아니오. 어째서 손님을 대접하는데 이런 좁은 공간에서, 그것도 침대 위에서 대화를 나눈단 말이오?"
"흥, 난 손님을 초대한 기억이 없는데? 대화를 하고 싶은 건 여기 있는 당신네 함장이지 내가 아니야. 어이, 함장 씨. 싫으시면 지금이라도 여길 나가쇼. 말리진 않을 테니."
"리안이라고 부르세요. 그리고 로우겐, 잠시 가만히 있어줘요."
"하지만......"
"상관의 말도 듣지 않는 부하라니, 그 전함은 꽤나 별 볼일 없겠군."
"말이 지나치시오!"
K의 계속된 무례한 언동에 격한 로우겐은 어느덧 언성을 높였다. 사실 거기까지만 해도 많이 참은 편이었다. K의 말투에는 보통 사람은 쉽게 화가 날만큼 사람의 화를 돋구는 무언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로우겐은 평소에도 아래 사람들을 다루는데 예의 엄격함을 중시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K는 그를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고, 리안만이 그를 진정시키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로우겐, 그만. K 씨도 제 말을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당신 말대로 별 볼일 없는 전함의 함장이고 볼 일이 있는 것도 나지 당신이 아니니까요."
"좋아. 어디 말해봐."
K가 눈을 살며시 감으며 내뱉은 말. 일단 '들어는 보겠다'는 투의 여전히 예의 같은 건 찾아볼 수 없는 말이었지만 리안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여겼다. 로우겐은 그제서야 다시 태도를 바꾸어 리안의 뒤에 섰다. 조금이라도 허튼 짓을 하면 베어버리겠다는 무언의 압력이 전해져 오는 듯 했다. 리안이 싱긋 웃으며 먼저 말을 꺼냈다.
"앞에 말한 것처럼 저는 전함 화이트 노바의 함장이에요. 그리고 당신을 스카웃하러 왔어요."
"스카웃?"
"네. 간단히 말해 저희 함선에서 일해주셨으면 해요. 물론, 대우는 섭섭지 않게 하겠어요."
"함선에서 일하라? 후후, 재미있는 말을 하는군."
K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잠시 주위를 서성였다. 서성였다고 해도 얼마 되지 않는 거리지만, 그는 약 5분간을 그렇게 서성이고 있었다. 이윽고, K가 입을 다시 열었다.
"그래...... 기억났어, 화이트 노바. 그 한국이라는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는 비밀 조직을 도운다는 그 함선? 크크, 아가씨가 함장이라고? 정말 재미있는 일이군. 흥미로워. 이런 아리따운 아가씨가 함장이라니 이렇게 재미있는 이야기는 정말 오랜만에 듣는군."
사실, 화이트 노바가 한일 공동연합군을 도운다는 사실은 극비에 속하는 것이었다. 그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궁금하고 두렵기도 하련만, 리안의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제 제의를 수락하시겠나요?"
K의 계속되는 도발에도 리안은 전혀 미동도 보이지 않은 채, 그저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만을 재촉했다. 그녀를 잠시 바라보던 K는 이내 피식 웃었다.
"아니, 거절하겠어. 다른 건 어떨지 몰라도 현재 세계 최강국인 중국과 맞서 싸운다는 조직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없어. 난 중국과 아무런 원한이 없거든."
K는 딱 잘라 거부의 의사를 밝혔다. 로우겐은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고, 리안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래요......? 이상하군요, 당신은 한국인이 아닌가요?"
흠칫.
K의 표정이 순간적으로 딱딱하게 굳어졌다. 로우겐은 물론, 리안도 그의 그런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리안의 말이 이어졌다.
"나도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알아요. 비록 미국 시민권을 따고 그곳에 집을 두고 있지만 같은 나라 사람은 확실히 알아볼 수 있으니까. 당신은 아무리 봐도 중국인이나 일본인 같지는 않아요."
"그게 이 일과 무슨 상관이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일하는 것은 국민의 도리가 아닌가요?"
"국민의 도리? 크큭...... 큭큭큭큭......."
K는 뭐가 그리 우스운지 계속해서 웃었다. 리안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고 로우겐도 그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문득, K의 웃음이 멈췄다.
"국민의 도리? 글쎄, 난 한국인도 아니고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별로 그럴 생각 없어. 어차피 망할 나라였으니 아쉬움 따위도 없고. 애국을 하고 싶다면 아가씨나 실컷 하시지? 난 지금 내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걸로 만족해. 괜히 쓸데없는 일로 적을 만들기도 싫고. 자, 대화는 여기서 끝이다, 아가씨. 이만 돌아가. 난 그만 쉬어야 되겠어."
"하지만......"
K의 속사포 같은 말이 끝나자, 리안이 곧바로 뭔가 말을 하려했다. 하지만. 하지만 K는 그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돌아가라고 했다."
K의 눈에서는 알 수 없는 강렬한 기운이 뿜어졌고, 리안과 로우겐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K 씨. 이 것 받아두세요. 제 명함이에요."
"거기 두고 가."
K는 돌아보지도 않았다. 로우겐이 먼저 나가고, 리안은 나가려다 제자리에 멈추어 섰다. 그리고 K의 등 뒤를 향해 한 마디 했다.
"생각이 바뀌면 연락해 주세요. 그럼, 또 뵈요."
"......."
리안마저 나가자, 방안에는 K만이 홀로 남게 되었다. 그제서야 그는 침대에 몸을 눕히면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닮았어......"
이제야 겨우겨우 수정해서 올리는군요=_;;;
소설기고란의 법을 제대로 읽지 않은 저의 잘못;;;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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