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이지상 씨의 '중년독서' 88페이지에서 옮겨온
글이다.
글을 읽다가 깜짝 놀랐다.
나보다 3년 늦게 연무대 훈련소에 들어갔는데 어쩜
내가 겪었던 똑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였다.
글에서 말하는 상황은 100% 내가 겪었던 일이다.
훈련소 생활 내내 국가에 대한 적개심만 키우는
시간이었다.
그 때 우리끼리 한 이야기가 있다.
전쟁이 터진다면 총구를 남쪽으로 돌릴 거라고,
고성 어느 내무반에 총기 난사 사건이 얼마 전 있었다.
.
.
.
지난 이야기라고?
이 시간 우리 새끼들이 전방 철책선에서 밤새 벌벌 떨며
근무를 서고 지금 내무반에서 잠을 자고 있을 시간이다.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하는데 , 많이 달라졌어야 한다.)
" 이 넘들아, 몸 잘 간수하고 있다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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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9년 육군에 입대해 논산에서 한 달간 훈련을 받았다.
우리는 입대하는 순간 이름을 잊었다.
머리를 빡빡 깎고 똑같은 제복을 입고 번호로만 불렸다.
동시에 인격을 갖고 있다는 것도 잊었다.
군대에서 만들어놓은 규율에 자신을 맞춰야 했다.
훈련보다도 기합과 사역이 더 힘들었다.
밤에 잠을 재우지 않고, 관물대에 발을 얹고 손깍지를 한 채
엎드려뻗쳐를 하거나, 양동이 하나에 20병이 들어가라는
식의 기합을 받았다.
훈련소에서는 훈련병들에게 시간을 충분히 주지 않았다.
샤워할 시간을 이삼 분밖에 안 주어서 몸에 비누를 잔뜩 칠한
훈련병이 비누 거품 범벅인 채로 튀어나왔고, 식당에서
받아온 밥을 내무반에서 먹으려는 순간 벌써 집합 호루라기가
울리기도 했다.
그러면 차가운 물에 밥을 말아 훌훌 마셔야 했다.
각개전투 훈련장에서도 늦게 배급을 받으면 다 먹지 못한 채
잔반통에 버려야 했는데, 빨리 버리라는 병사의 회초리를
맞으면서도 한입이라도 더 먹으려는 추한 모습을 보였다.
누군가 모자를 잃어버리면 서로 도둑질을 해서 모든 사람이
도독이 되었다.
심지어 화장실에서 대변을 보는 훈련병의 모자를 위가 터진
옆 칸에서 손을 뻗어 채가는 훈련병도 있었다.
생존 경쟁의 와중에 인격이나 동료애는 사라졌고 점점 추악하게
변해갔다.
대부분은 그런 상황에 적응했다.
죄를 지어서 끌려온 것도 아니고 국가을 위해 헌신하려 온 것인데도
억울함과 모순에 대해 항거하지 못했다.
그러기는커녕 '여기는 군대니까' 하는 분위기 속에서 적응하려
노력했고, 그러지 못하는 동료들을 오히려 책망했다.
취사장에서 군인이기를 그만두기 위해 자기 손가락을 식칼로
자른 훈련병이 있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그런데도 상사들은 훈련소에서 시간이 남아돌거나 몸이 어설프게
편하면 그런 사고가 나는 거라며 훈련병들을 잠 안 재우고 기합을
주면서 혼가 기력을 다 빼놓았다.
그때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자기만 살려고 하는 생존
의욕만 남았다.
훈련소를 나와 자대에 배치받고 나서야 숨을 좀 돌릴 수 있었다.
구타는 종종 있었지만 그래도 제대로 먹고 일하고, 쉬는 생활이
보장되었다.
---------- 이만 줄임--------------
첫댓글 왜 그렇게 가혹하게 했을까? " 1976년 논산 8월 군번들, 잘있냐?"
거꾸로 매달아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 간다고? 세상에서 가장 느린 시계가 대한민국 국방부 시계,나중 친구들을 보니 대부분 자대 사단에서 신병 교육을 받았다. 자대 사단에 훈련 받은 친구들은 우리처럼 악랄하게 훈련을 받지 않았던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