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시편 63:1
뒤에 하나님의 시선에서의 우상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하신 말씀을 전할 텐데요. 이건 오로지 저의 생각입니다. 제가 틀린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저 저의 걱정스런 시선의 마음입니다. 요즘 좌, 우 대립을 보면서 엄청 겁이 납니다. 이겨야 산다고요. 이기면 다 망하는 거예요. 연합하는 길을 찾아야 하는데 눈앞에 보이는 자신들의 안위만 생각하는 지도자들로 인하여 전쟁보다 더 무서운 대립을 하고 있는 이 현실에서 제가 본 것은 이것도 우상이 되지 않을까?그 중에서 이 대립 속에 목사, 성도들이 밖으로 나와 집회를 해야 한다면 현 시국이 서로 연합할 수 있는 지도자가 세워지기 위해, 서로 마음이 하나 될 수 있도록 하나님께 요청하는 기도회가 돼야죠. 어느 한쪽을 지지하는 집회는 틀렸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목사, 성도들이 이 이념적 집회에 본격적으로 동참하는 것을 보면서 “좌, 우 이념도 우상일 수 있다.” 이 논리에 사탄이 틈타지 않았을까? 선교에 일등 국가를 무너뜨리기 위해서 이 시국을 이용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제 마음에 넘쳐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여기에 목사들까지 이념 논쟁에 매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즘 전 모든 모임이 참석하고 싶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이념에 빠져 그것을 추구하다보면 하나님이 없어지는 것을 종종 목격하게 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진보, 보수, 중도 어디를 지지하는 것은 좋으나 이념이 아닌 하나님 안에서 지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건 이 세태를 바라보면서 여러분에게 호소하는 김성호목사의 마음입니다. 여러분이 이념 때문에 하나님 없이 이념에 매몰되는 그런 위기에 처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도 여러분만큼 유혹이 많이 있습니다. 진보, 보수 양측에서 여러 사람 앞에(광장)에서 연설 요청, 초대를 받았는데 이들의 논리와 조건이 비슷해요. 생활비 지원, 성도도 보내준다 하더라고요. 성전 수리도 도와주겠다. 전 숙고의 가치를 느끼지 못해서 일언지에 거절을 했습니다. 전 이념 때문에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싶지 않거든요. 다시 한 번 여러분에게 요청합니다. 지지는 좋으나 이념에 매몰되어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요청합니다.
오늘 본문을 히브리어 원문 성경은 이렇게 번역하여있습니다.
“하나님이시여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주님을 애타게 찾습니다. 물이 없어 메마르고 지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님을 목말라 하고 내 몸이 주님을 애타게 그리워합니다.”
사람을 믿으면 외로워지고, 예수님을 믿으면 의로워진다는 깨달음은 예수님의 옷을 입으면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나를 점령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스스로 예수님의 멍에를 메어달라고 하나님께 요청하잖아요. 세상의 시선에서 이런 사람들이 재수 없는 꼴통이지만 하나님의 시선에선 너무나 소중한 자녀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의 소유자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마음의 소유자로 남아 있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내 마음에 자리 잡게 하려면 하나님께서 사람이 우상을 섬긴다는 기준의 시선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상을 섬기는 것을 가장 싫어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다”라고 인정하시는 것은? 오락을 금하지 않고 예배하는 것을, 오락을 금하지 않고 하나님을 찾는 행위를 우상을 섬기는 것이다! 라고 보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은 (우상을 기뻐하는 모든 것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배제시켜 놓은 상태의 기쁨을 지칭함). 즉 하나님께서 “우상을 섬긴다!”는 판단의 기준이 “하나님 없이” 기쁨, 행복을 느끼는 것도 포함한 다는 사실은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는 생활의 모든 영역이 우상을 섬기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백성들이 이렇게 살아가고 있음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지적하셨는데 우리 안에 이것이 있는지 잘 살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안에서 살아서 역사하시는 주의 말씀이 하나님을 갈망하게 나를 이끌고, 예수 그리스도의 생수의 강이 내 안에서 흘러나오도록 도우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만군의 여호와가 함께 하심으로 날마다 강성하여지게 될 것이고, 그러나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매 말라 가는 자는, “육체의 쾌락을 즐기기 위한 오락이” 나의 발을 점점 점령하여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향하게 되겠죠.
하나님을 향한 갈망은 엄청 좋고, 환희를 느끼게 하는 육체의 오락을 멈추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에게 예배하러 나올 때 육체의 오락을 제하고 나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매일 하루를 마무리하는 저녁, 즉 잠들기 전에는 이 오락을 멈추고, 하나님과 잠간이라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하나님을 향한 갈망은 그 오락이 하나님을 즐겁게 하는 변화의 힘이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들은 나도 좋고, 하나님도 좋은 것이 되는 예수의 옷을 입어 하나님을 향한 갈망 속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을 위해 “나의 오락을 멈추기 위해”예수님의 멍에를 메어 그 멍에 안에서 벗어나지 않고, 자유를 누리기 위해 말씀에 나 자신을 넣는 생활을 쉬지 않는 것, 그래서 예수님의 옷을 입음으로 여호와를 기뻐하는 이런 생활을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라 보았고, 이 갈망을 가장 잘 고백하고 표현한 말씀이 오늘 본문이라 생각합니다. “내 몸이 주님을 애타가 찾습니다.” 얼마나 멋진 고백인가요?
전 다윗이 이 고백을 할 때와 같이 우리들의 처지가 어렵고 힘들지라도 우리들의 모든 세포가 주님을 애타가 그리워하고, 찾고, 느끼고, 함께하여 우리들의 숨 자체가 예수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이 되길 소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주향기교회 모든 성도들이 이런 길을 걸어가다 이 세상에서의 시간이 종료되었으면 하기에 하나님께 구하고, 찾고, 두드리고, 가르쳐 지키게 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이것이 저의 고정되어 있는 시선입니다.
왜 우리들은 이 땅에서 이런 갈망을 가지고 살아야할까요?
그것은 요한계시록3:11절에 말씀하신 것을 이루기 위함입니다.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즉 나의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고 누리며 살다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 명령의 말씀을 지켜 승리로 장식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바랍니다.
하나님을 향한 갈망은 예수님께 매달릴 때 빛나고, 향기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 가운데 인간의 욕심의 갈망이 끊이지 않고 날마다 새롭게 탄생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우리들 마음에 예수님의 생명의 생수의 강이 흘러넘치게 하는 하나님의 영에 감동되어 있는 그런 믿음이 되길 바랍니다.
예수님이 보이셨던 삶의 마지막 순간에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선택을 하신 것은 예수님 마음 안에 언제나 하나님을 향한 갈망함이 생수가 강물처럼 흘러 나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예수님의 이런 갈망의 마음을 우리와 같은 성정을 가진 사람 다윗에게서 찾을 수 있었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 마음 안에서 하나님께서 평범할 정도로 찾아보실 수 있는 믿음의 생활이 되길 바랍니다.
다윗이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 이십니다.라고 고백한 것이 무엇이 특별하다는 것인가 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러나 다윗의 처지를 알면 이 고백이 얼마나 엄청난 믿음의 고백이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시편 63편은 다윗이 그의 아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서 스스로 왕이 되었을 때 자신의 궁을 급히 떠나 유다 사막 한 가운데서 생활하게 되었을 때 고백한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마음이 다윗을 떠나 압살롬에게 있었다고 성경은 증거 합니다. 다윗의 편이 되어줄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 신뢰를 여호와께 둔 다윗의 믿음이 얼마나 완벽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소년 다윗을 사무엘이 만났을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친히 내 마음에 합한 자라 하신 것입니다. 아들의 반역으로, 백성들의 마음이 떠나 편이 되어줄 이들이 없어 자신의 왕궁을 떠나 사막 한 가운데로 도망쳐있는 자신을 보았을 때 자신의 처한 사항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간절히 주를 찾았지만, 물이 없어 목말라 하고 있지만, 여전히 하나님은 자신의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을 갈망하고, 앙모하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이 고백 참 부러웠습니다. 이 고백의 믿음이 저와 여러분의 현실을 움직이는 믿음이 되었으면 합니다.
63편에서 제가 다윗을 담고 싶은 것은 7절과 같은 마음입니다. 63편 전체에 하나님을 향한 다윗 믿음이 순종으로 나타나는 신앙의 고백 중 저는 7절의 고백이 저의 인생의 마지막 때까지 유지되었으면 하는 것이 저의 소망입니다. 한 주 묵상하신 여러분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생사고락을 같이하며 살아왔던 군대 장군들 즉 자신의 생명을 의탁할 정도로 믿었던 사람들의 배신(저는 이 아픔이 얼마나 큰지 잘 압니다. 제가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힘과 의지를 잃어버리고 숨 쉴 힘이 없어지는 그런 아픔이고 괴로움입니다), 아들의 배신, 백성들의 배신 그래서 자신의 처지가 물이 없어 목마르고, 배고픔으로 죽을 수 있는 사막에 환경에 있으면서 그는 입으로 하나님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음이라” 그 초라한 현실의 결과물을 받아들고서 “하나님은 언제나 나의 도움이 되어주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제가 하나님의 품에서 즐거워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면 이렇게 고백하는 입이 될 수 있을까? 제가 가장 다윗을 부러워하는 관점입니다.
전 이 고백은 아무나 할 수 없는 고백이라 보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향한 갈망”으로 가득한 생활이 된 사람만 가능하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다윗을 보실 때마다 “내 마음과 같은 사람이다!” 라고 인정하신 것이다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같은 생활을 사는 사람도 이런 고난이 있음을 흘려보내지 마세요.” 그러나 이런 고난을 겪는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것 또한 잊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만군의 여호와로 함께하시고 계시기에, 모든 사람의 마음이 떠나 배신을 당했다 할지라도 그를 다시 본 자리로 돌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권능을 기억하고,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가득한 마음이 되길 바랍니다.
이런 사람이 “저는 매일, 모든 시간에 “하나님의 의에 주리고, 목마릅니다.” 그리니 저에게 만군의 여호와로 함께해 주세요. 하나님의 영을 7배나 더해주세요.”라고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봅니다.
우리들은 역경을 만났다고 해서 반드시 슬퍼만 할 것이 아니라 최악의 상황이라도 일시에 역전시키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믿고 하나님을 향한 찬양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다윗의 믿음의 고백입니다.
역경을 만났을 때 저와 여러분의 행동이 만군의 여호와를 목말라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그 마음과 생각이 여러분을 이끌어가는 그 믿음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이 우리를 미워해서 오는 역경이든, 자신의 잘못된 선택으로 오는 역경이든, 하나님 아버지께서 계획하신 역경이든 이 모든 역경이 임해서 힘들 때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을 향한 갈망과, 앙모함이 더 활활 타오르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예레미야 선지자처럼 기도하세요. 저는 여호와를 신뢰합니다. 그 신뢰를 여호와께 둡니다.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여 저를 고쳐주세요. 그러면 제가 낫게 될 것입니다. 저를 구원해 주세요. 그러면 제가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해주셔야 하는 이유가 주님께서는 언제나 저의 찬양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가 역경 가운데 있을 때 더욱더 빛을 발하는 고백이 되길 바랍니다. 또한 평탄한 길을 걸을 때 역시도 하나님이시여 주님은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라는 신뢰의 고백을 하나님께 두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향한 목말라함과 하나님을 애타게 그리워하는 그런 마음을 소유하며 살아가기 위해선 24시간 나의 예수님과 함께 즉 하루 24시간을 예수님의 옷을 입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24시간 영광을 올려드리는, 그래서 세상이 손절하고 싶어도 자신들이 살기위해 여러분을 품을 수밖에 없는, 그런 믿음이 순종으로 보이는 예수님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