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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목사직을 매매한 목사들의 명단공개(?) |
<세습논쟁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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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섭목사의 요청에 의해 칼럼2와 3을 동시에 개재합니다. 독자 여러분들의 많은 양해를 바랍니다.
문제는 ‘부담금이야’, 바보야 세습을 반대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이기적인 탐욕 때문에 부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교회가 사유화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그 결과 중세시대 신분제와 같이 목회자 간에 계급이 생겨나게 됐다. 즉, 귀족화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낙하산식 인사로 인해 세습담임자의 경우 그의 영성과 목회적 자질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특혜에 의한 선임은 결과적으로 다른 목회자의 공정한 기회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공정사회의 정의 관념에 위배된다는 지적이다.
셋째, 물질주의 성공주의에 기반한 세속화로 인해 기독교 타락의 전형이 되고 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으로 개체교회의 분란과 기독교 쇄락의 원인이 된다는 점이다. 교회세습의 문제점은 한마디로 첫째, 교회의 사유화, 둘째, 불공정으로 인한 양극화, 셋째, 교회의 세속화 등으로 정리할 수 있다.
교회세습의 부당성에 대한 타당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위의 문제는 한국교회 대다수의 목회자들에게도 동일하게 해당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까닭이다.
이것이 내가 “세습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며, 큰 문제가 아니라고 여기는 게 기본적인 입장입니다."고 말할 수 있던 이유다. 다시 말해, 본질적인 문제는 따로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교회세습보다 더 큰 문제란 무엇일까?
2. 세습의 현상과 본질, 이기심과 탐욕 교회세습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교회세습은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린 한국교회라는 나무에 매달린 하나의 현상(열매)일 뿐이며, 그 본질(뿌리)은 따로 있다. 이처럼 굳이 열매와 뿌리, 현상과 본질을 구분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세습이라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함이다. 실제로, 교회세습에 대한 정당한 비판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교회세습이 계속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세습의 뿌리는 ‘이기심과 탐욕’이며, 그 나무는 ‘세습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 곧 '인사시스템(제도)'이다. 해서, 세습이라는 현상 자체보다 그와 같은 열매를 맺게 하는 나무(시스템)를 변화시켜야 한다고 확신한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부흥과 성장의 원동력이 되었을지 모르지만, 동시에 교회의 공교회성과 투명성을 상실하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한국감리교회는 감독이나 감리사 등의 유명무실한 직제와 각종 부담금에만 공교회의 흔적이 남아 있을 뿐이다. 감리교회의 은급제도 역시 이와 같은 공교회성에 기반을 둔 제도였지만, 이마저도 '돈 넣고 돈 먹기식‘의 신은급법으로 대체되면서 그 의미가 상실되고 말았다.
3. 개교회주의가 만든 불합리한 구조 하지만, 이와 같이 '개교회주의'가 정착된 상황에서 교회의 사유화는 소위, 혁명에 준하는 개혁이 아니고서는 결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대세가 돼버린 것이 오늘 한국감리교회의 현주소다. 이런 가운데 기득권을 대물림 하는 소위 귀족층(?)목사가 생겨났고, 평민(작은교회)에서 귀족(대형교회)이 되는 것은 하늘의 별을 따는 것보다 어렵게 되었다.
오늘날 한국감리교회의 양극화의 심각성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한마디로 한쪽은 배터져 죽고, 한쪽은 배고파 죽는 비극적인 현상이 되풀이 되고 있다. 한쪽은 너무 부요해서 타락하고 한쪽은 너무 가난해서 치졸하다. 바로 이 지점에서 교회세습 문제는 ‘미자립교회의 문제’와 ‘목회자수급불균형 문제’와 연결된다.
앞에서 언급한대로, 교회세습은 ‘개교회주의’가 만들어 낸 하나의 기형적인 열매요. 이러한 열매가 가능하게 만들고 보장해 주는 나무는 불합리한 감리교회의 인사제도이며, 그 뿌리에는 이기심과 탐욕이 자리 잡고 있다.
오늘날, 개체교회의 대표들은 연급에 의해서 선거권을 제한받고 있으며, 국회의원에 해당하는 ‘감리교회법을 만드는 입법총대’를 연급에 의해서 선출하고 있다. 이와 같은 폐쇄적인 구조에서 개교회주의가 양산하는 폐단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교회세습을 근본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행정을 대표하는 감독을 선출하는 ‘선거구조’와 법을 제정하는 ‘입법구조’를 민주적으로 바꾸는 일에서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UMC(미국연합감리교회)처럼 개체교회별 목회자대표 1인, 평신도대표 1인(장로가 없는 교회 포함)을 총대로 세우는 것이다.
4.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It's the economy, stupid)라는 문구는 1992년 미국 대선에서 넓게 쓰인 어구로, 이 덕분에 빌 클린턴은 당시 현직 대통령인 조지 허버트 워커 부시를 누르고 승리를 따낼 수 있었다.
(간혹 지방별로 차등을 두는 경우도 있지만) 이것은 겉으로 보면, 평등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공정하지 못한 비율이다. 10억의 1%와 1억의 1%는 차원이 다르다. 요즘 유행하는 '경제민주화의 원리'에 따르면, 부담금은 교회의 크기와 규모에 따라 그 비율에 차등을 두는 것이 마땅하고 합리적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개체교회 지도자들은 이와 같은 불공정함에 대해 의사를 표출할 권리와 기회가 아예 없다. 더 기막힌 현실은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정신으로 더 많은 책임을 감당해야 할 유력한 교회들은 부담금조차도 속여서 내는 현실이다.
차후에 자세히 언급할 기회가 있겠지만 간단히 말하자면, ‘부담금의 현실화’를 통해 목회자최저생계비와 미자립 교회에 대한 대책 등을 세워 나가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길은 선거와 투표 이외에는 없다. 하지만, 감리교회는 대다수의 개체교회와 목회자들에게 의무를 강요하면서도 마땅히 부여해야 할 <감독선거권>과 <입법총대 선출권>이라는 권리를 제도적으로 박탈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도 불구하고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외면한 채, ‘교회세습’이라는 지엽적인 문제에만 집착하거나 맹목적인 준법(?)을 설파하는 이들의 모습이 참으로 답답할 뿐이다.
★시원한 청정 계곡★(2012.7.25.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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