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적봉과 유달산>
한번 발 들여놓으면 절대 못 빠져나올 것만 같은 미로, 이리저리 멋대로 휘어진 골목길, 쉼 없이 나타나는 계단, 빨갛고 파랗고 다양한 색깔을 드러낸 지붕…. 목포의 랜드마크인 유달산 남쪽 산비탈에 들어선 온금동과 서산동에 가면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풍경들이다. 총천연색 동영상보다는 빛바랜 흑백사진으로 담아두어야 제 맛이 날 것만 같다.
목포문화원의 조상현 사무국장에게 ‘아직도 1960~70년대의 풍경이 남아있는 동네가 어디인가’ 물어봤을 때 그는 온금동과 서산동을 찾아가보라고 했다. 목포여객선터미널에서 국제여객선터미널과 수협직판매장 앞을 거쳐 국립목포해양대학교 방면으로 달리다가 도로변에서 유달산 방면으로 올려다봤을 때 먼저 눈에 들어오는 동네가 바로 서산동이고 그 다음이 온금동이다.
일단 유달동사무소 2청사를 온금동 일대 추억여행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온금동의 행정동 명칭은 바로 옆 동네인 서산동을 합해 유달동이라 한다. 현재 유달동에는 1천9백여 세대, 4천2백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사무소 옆 허름한 비디오가게 뒤편으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골목길 탐사가 시작된다.
<삶의 고단함과 온기가 동시에 전해지는 온금동>
<서산동의 야경>
디카를 손에 든 당신은 온금동의 이방인. ‘21세기에도 아직 이런 동네가 남아있을까’ 하며 내심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골목길은 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면 꽉 찰 정도로 좁다. 걸음걸이가 조심스럽다. 집안이 들여다보일 정도로 틈이 벌어진 대문과 겨울의 잿빛 하늘을 조금씩 담아가는 창문을 기웃거리다 보면 말린 갈치 같은 반찬거리를 사들고 가는 아낙네들과 마주치기도 한다. 먼저 ‘안녕하세요’ 하고 씩씩하게 인사를 건네면 ‘뭐 이런 동네에 사진 찍을 것이 있을까잉’하는 잔소리를 듣기도 한다.
사람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강아지 한 마리가 짖기 시작하자 이집 저집 개도 덩달아 짖어댄다. 조용하기만한 온금동이 개 짖는 소리로 한바탕 시끄러워진다.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 구실을 했을 우물터, 생뚱맞은 종려나무, 대문 위에 장식된 용머리, 빨랫줄에 걸린 생선, 부부의 이름이 나란히 새겨진 문패 등등 사진 촬영 거리가 제법 눈에 띈다.
<온금동 담벼락의 생선>
집들은 비록 낡았어도 지붕의 빛깔은 컬러풀하고 담벼락들도 때로 분홍색, 연노랑색 옷을 입었다. 손바닥만한 옥상에서는 바람을 타는 빨랫감 아래로 파릇파릇 무가 자란다. 난삽하게 얽힌 전깃줄은 때로 혼란스럽고 때로 묘한 구도감을 보여준다. 어느새 다다른 곳은 온금동과 노적봉을 이어주는 아리랑고개. 지금 도로 개설 공사가 한창이라 굴착기의 소음이 시끄럽다. 몸을 뒤로 돌리자 목포 앞바다와 옛 조선내화 공장과 우뚝 솟은 3개의 높다란 굴뚝, 그리고 고하도가 발 아래로 보인다.
연두색 페인트로 단장한 4층짜리 동신빌라 뒤편의 골목길로 들어서면 온금동 뒷산 산책로가 시작된다. 남근석과 장사바위의 능선에 서면 조감이 한결 좋다. 장사바위에는 ‘경상도우회기념회장’이라는 글씨가 음각돼있다. 1921년, 목포에서 활동하던 경상도 사람들이 남긴 글씨이다. 하루를 환하게 밝힌 해가 고하도 뒤로 넘어가려 한다. 햇살은 이 가난한 동네에도 골고루 따스하게 내려앉는다. 등산로라기보다는 산책로에 가까운 길을 계속 걸으면 여근석이 나타나고 별장횟집 옆의 도로로 내려서면 온금동 순례가 끝난다. 온금동에서는 단순하게 바라보는 게 좋은 사진을 만드는 요령이다. 기록이 목적이 아니라면 전체를 보여주기보다는 한 단면만을 떼어내 디자인적으로 구성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하겠다.
온금동의 본디 이름은 ‘다순구미’였다. ‘다순’은 ‘따뜻한’, ‘구미’는 ‘만의 후미’라는 뜻이다. 1897년 목포가 개항되고 나서부터 다순구미는 한자어인 온금동으로 표기된 것으로 보인다. 온금동과 길 하나를 사이에 둔 서산동 풍경은 노적봉 주차장에서 야경으로 감상한다. 골목을 밝히는 가로등이 하나둘 불을 밝히자 허름했던 한낮의 풍경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림엽서 같은 모습으로 변신한다. 그 불빛 아래 자그마한 방 안에서는 온 가족이 된장찌개에 생선구이를 상에 올려놓고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울 것이다.
<낙지연포탕>
목포의 별미로 낙지를 이용한 연포탕이 있다. ‘연포탕’이라는 명칭은 애초 ‘부드러운 거품을 내는 두부 요리’라고 하나 남도 사람들은 낙지를 끓일 때 부드러운 거품이 일어나므로 낙지탕이라 하지 않고 ‘낙지연포탕’이라 칭했다고 하며 또 다른 해석에 따르면 ‘낙지를 끓이면 마치 연꽃처럼 다리가 펼쳐진다.’고 해서 그렇다고 설명한다.
<여행정보>
◎ 목포시청 관광기획과 : 061-270-8182
◎ 유달동 주민센터 : 061-270-3665
◎ 호산회관(낙지요리) : 용당2동, 061-278-0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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