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4. 26 새벽에 로그르뇨 시내를 통과하는데 도시가 크다 보니 무려 30분이 걸렸다. 어두운 도시에 혹시나 외모상으로 험상궂은 사람이 옆에 있다면 약간 거리를 두고 걸었다. 도심 한가운데 젊은 순례자들의 동상이 있는데 한눈에도 배낭이 작은 것을 보고 고증이 잘 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로그르뇨에서 다음 마을인 나바레테까지는 무려 12km가 넘었다. 어제 숙소 인근에서 빵과 쥬스를 구입해 놓았기에 도심을 벗어나기전 공원의 차디 찬 벤치에서 아침을 먹으니 새들이 옆에 와서 같이 먹고 싶다는 눈치를 보여 빵을 떼어 주었더니 몇 마리가 서로 빵을 조각내며 나누어 먹고 있다. 공원 잔디밭에는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동네주민과 아침 출근하는 듯 정장의 아가씨가 공원을 가로 지르며 바쁜 걸음으로 걷고 있다. 도심 끝 길 모퉁이에 반가운 기아대리점 마크를 보았다. 그걸 보면서 왠지 씁쓰레한 기분이 들었다. 왜 이렇게 변두리에 대리점을 열었는지 조금 아쉬웠으나 내가 모르는 전략이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되었다. 작은 공원의 벽에 순례자를 의미하는 일러스트 그림이 있어 이 길에 순례자가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이해가 된다. 여기 나헤라 지방의 순례자 이정표 가리비는 다른 지역과 조금 다른 모양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복주머니같은 모양이 더 친근감이 든다. 다시 벌판으로 나왔다. 새들은 도심보다 더 지저귀고 길가에 큰 다람쥐가 쪼르르 달려와 멈추기에 사진기를 들이댔더니 얼른 나무 위로 숨어 버렸다. 포플러나무가 열을 지어 있는 기문 좋은 길을 지난다. 이 아침 시간에 걷는 이는 나 밖에 없다. 오로지 나를 위한 길이고 나 하나 만을 위한 나무들의 열병같아 기분이 좋다. 아침에 일찍 걷는 기분을 늘 늦게 떠나는 순례자들은 알까? 누군가 그런 기분을 아는지 길바닥에 큰 핑크 하트를 그려 놓았다. 나는 까미노를 사랑한다. 공원의 작은 언덕에 성모마리아 상을 유리상자안에 넣고 혹시라도 누가 건드릴까봐 철망까지 해 놓았다. 답답하실텐데.. 사람들은 지속적으로 그 앞에 화분을 가져다 놓는 것 같다. 조금 올라가니 오리들이 놀고 있는 큰 저수지를 만났다. 건너편 낮은 산의 모습이 투영되어 멋진 데깔꼬마니 그림이 만들어졌다. 여기 로그르뇨 주민들은 행복할 것 같다. 공원도 넓고 넓은 저수지와 산책로도 정비가 잘 되어 있고 군데 군데 앉아서 쉴 자리도 충분하다. 어디에서 쓰레기가 버려진 곳은 없으며 쓰레기통 주변도 깨끗하고 잔디가 뭉그러진 곳도 없다. 공원 끝에 쯤에 이상한 광경을 보았다. 차에 순례자 그림을 그려 놓고 공원의 휴식공간인 작은 나무의자 쉼터에 각종 까미노 기념품을 놓고 팔고 있는데 이 사람의 모습이 참 재미있다. 얼굴이 온통 긴 흰 머리고 흰 수염도 길게 길러 완전히 산속 도인 모습이다. 그리고 자신의 스탬프를 만들어 찍어 주고 방명록에 한 줄 써 달라기에 내 스탬프를 찍어 주었다. 언덕을 오르며 점점 도시가 멀어지고 거친 숲들이 나타난다. 조금씩 더워지기에 패딩을 벗고 편하게 입고 걷기 시작하는데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고속도로변 철망에 누군가 길가 나무를 꺽어 끼워 놓아 만든 십자가의 모형이 끝없이 계속되었다. 이제껏 이렇게 많은 십자가를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순례자들은 그 지루한 길을 오로지 자신의 마음을 십자가로 표현했다. '나도 십자가같이 힘든 짐을 지고 가는 어린 양입니다.' 물론 나도 그 중의 한 명이었다. 마른 나무가지를 꺾어 내 마음의 십자가를 만들어 놓았다. 그 길은 연이어 목재소로 연결되는데 순례자들은 목재소 주변의 얇은 합판조각들을 주워 더 크고 뚜렷한 십자가를 만들었다. 목재소 뒷산에 커다란 소 한마리 모형이 올려져 있어 단연코 시선을 끈다. 이 지역이 소와 큰 관련이 있는 것일까? 조림이 일직선으로 잘되어 있는 유난히 큰 나무 숲을 지나 긴 길을 걸어간다. 계속 나무 수종이 바뀌어 길이 심심하지 않다. 누군가 길에 SUNSHINE 이라고 돌로 글을 써 놓아 내 입에서는 존덴버의 Sunshine이 저절로 흘러 나왔다. 매일 얼굴을 같이 보는 순례자들은 이제 나를 보면 노래하는 사람이라고 기억을 한다. 카페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는데 늘 보던 외국인 순례자가 까미노를 걸으며 내가 흥얼거리는 노래를 들어 좋았다며 내게 친근감을 표시한다. 긴 거리를 걸어 나바레테 마을의 입구로 가는데 건물을 짓다만 것인지 무너진것인지 모르지만 흔적이 남아 있는 건물터가 그다지 보기 흉하지 않게 정비해 놓았다. 길거리에 와이너리인 듯 자신의 레이블이 부착된 커다란 와인병 모양을 길거리에 내 놓았다. 물론 철망 안이라 만져보지는 못했지만 갑자기 입맛이 돋았다. 여기 까미노를 걸으며 거의 매일 와인을 마시게 된다. 내가 사서 마시는 경우도 있고 까미노 친구들과 식사를 할 때면 여지없이 와인이 놓여 있어 즐겁다. 문득 그 와이너리에 산티아고가 576km 남았다는 표시가 있어 이해가 안갔다. 우리가 7일째 걷고 있으니 적어도 600km 이상이 남았을텐데 많이 모자른 것으로 보아 아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성당을 가기전에 산타아고 도시까지 가는 거리를 계산한 것 같다. 어쨋거나 기분은 좋다. 800km 거리가 갑자기 500km대로 줄었으니 힘이 난다. 그 앞을 바이크 순례자가 장갑 한 쪽을 들고 걷는 순례자 옆을 지나며 이 장갑이 누구 것이냐며 묻고 지나간다. 고마운 사람들. 이 날은 날씨 차가 오락 가락했다. 춥고 더웁고 바람불고.. 옷을 벗었다가 입었다가 다시 벗곤 했다. 그래도 비가 오지 않으니 다행이다. 나바레 마을을 지나면서부터는 밋밋한 황무지 길이 지속되었다. 대부분 포도나무 고목이 심어져 있는 정감없는 길에 바람이 불고 옆에 나무들도 야생으로 자란 나무들 뿐이었다. 개 두마리를 데리고 다니는 젊은 부부가 개 때문에 무척 고생하고 있었다. 끈없이 다니니 개가 밭 가운데로 도망가 버려 한없이 불러도 오지 않고 두 사람은 서로를 바라보며 안타까워 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개때문에 노숙을 하는지 텐트를 가지고 다녔고 그런 장비들을 카트에 끌고 다녔다. 사람들의 지친 얼굴이 보인다. 절뚝거리는 사람들, 모두 얼굴의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걷고 있다. 쉴 자리도 없었는데 마침 구부러진 길에 돌무더기가 있어 한참을 쉬웠다. 다행하게도 물은 늘 충분히 가지고 다니니 갈증을 느끼지는 않았다. 나바레테에서 나헤라까지 무려 17km 중간에 벤토사라는 마을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반가운지 점심을 또띠야 햄버거를 시켰는데 사이즈가 너무 커서 남은 것은 싸 달라해서 배낭에 챙겼다. 길을 가다가 며칠 전 가이드의 리드로 걷는 나이 든 부부를 다시 만났는데 키 작은 부인이 아바의 맘마미아 노래를 부르며 걷는다. 그 들은 도저히 얼마 못가서 그만 둘 줄 알았는데 걷기만 느릴 뿐 일정은 나와 같이 다니고 있어 놀라웠다. 다시 황량한 숲속길로 들어간다. 어느 곳에 포도나무 뿌리를 모두 캐내어 쌓아 놓은 것을 보니 포도나무도 수명이 있는 듯 했다. 길을 가다 또 다른 산티아고 이정표에는 아까 와이너리 앞에서 본 거리보다 더 많아져 어느 것이 맞는지 혼돈이 생겼다. 주위가 모두 포도밭이다. 그러나 이제까지 그 포도밭에서 일하는 농부는 전혀 보이지 않았었는데 이 곳에서 한 명의 농부가 포도밭의 철사줄을 수리를 하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그런데 걸으며 계속 느끼는 것은 왜 포도는 이렇게 척박한 땅에서 키우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거의 모든 포도밭이 자갈이 많고 도무지 옥토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모든 밭이 거칠었다. 문득 이제까지 보이지 않던 밭이 보였다. 나무 하나를 심어 놓고 나무 주위를 흰 천으로 보호막을 쳐 주었기에 지나는 외국인에게 물어 보니 올리브나무란다. 그러고보니 이제까지 자주 보아오던 낮은 키의 나무가 모두 올리브나무였다. 미국인과 호주인이 함께 걷는 동행에 내가 끼어 들어 같이 걸었다. 길을 걷다가 돌로 만든 저장창고는 그다지 신기할 것이 없었는데 그들은 무엇을 확인하고싶은지 그 안에 들어 갔다 나오며 창고임을 확인했다. 거의 4시간 동안 걸어야 하는 긴 거리를 지나 겨우 도착한 나헤라. 당연히 공립알베르게를 찾았지만 자리가 없다한다. 그럼 어디로 가야 한다. 지도책도 없는데.. 이 골목 저 골목 다니며 동네 사람들에게 알베르게를 물었더니 스페인어로 얘기하는데 대충 알아 듣겠기에 찾아가니 공립알베르게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이 모두 거기 있었다. 짐을 풀고 있는데 호스피탈레로가 나를 부른다. 한국인 부부가 왔는데 영어를 전혀 몰라 나보고 통역을 좀 해달란다. 이 알베르게는 큰 방 하나에 모두 묵어야 하는데 대충 침대수를 계산해 보니 한 방에 무려 100명 정도 자는 것 같다. 날씨가 너무 좋아 편하게 옷을 입고 알베르게 앞에 나와 햇볕을 쪼이는데 나 같은 사람들이 많았다. 오늘 모두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저녁을 무엇을 먹을까 골목 거리를 다니다가 정육점을 발견해 삼겹살을 샀다. 마침 대한항공 기내용 고추장을 챙겨둔 것이 있어 마늘을 사고 삼겹살과 와인을 곁들이니 내겐 최고의 만찬이었다. 그날 내 입에서 냄새 날까봐 얼른 양치질을 오래 했다. 주방에 한국인 젊은 부부가 요리를 했는데 침이 넘어갈만한 한국 라면과 불고기를 해 놓고는 내게 먹으라 권한다. 이 부부는 참 겸손하고 부인이 늘 웃고 이야기해서 참 기분 좋은 커플이었다. 식사를 하는데 옆에서 채식을 하는 이에게 국적을 물었더니 인도인이라기에 내가 놀라며 어떻게 인도인이 이런 종교적인 코스를 걷느냐며 물었더니 자신은 크리스챤이라기에 한 번 더 놀랐다. 인도 첸나이에 살고 있으며 한국의 조용기 목사님을 알고 있었다. 나도 크리스챤이라며 내 스탬프를 주었더니 길을 걷다가 내 스탬프를 봤다며 좋아한다. 그에게 한국 기념 선물을 하나 주었더니 나와 사진을 같이 찍자며 큰 카메라를 들이 대었다. 자다가 누군가 내가 코고는 소리에 일어났는지 나를 툭 건드리는 것을 느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난 한참 잠에 빠져 들었다. 자다가 문득 빨래가 걱정이 되어 나가보니 누군가 내 빨래를 걷어 안에다 널어 놓았다. 행복한 까미노. 길이 좋과 사람이 좋다. 부엔 까미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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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길을 걸으면 내가 보인다 원문보기 글쓴이: 까르미나
첫댓글 매일 매일
비슷하나 똑같지는 않은 새로운 풍경과 사람들과의 만남..좋은 경험이겠지요.
까미노길을 알려주는 표시가 가리비나 조개 표시인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산티아고가 예수님의 제자이 야고보인데 직업이 어부였어요.
나중에 유해가 700년뒤에 발견되었을때 유해 주위에 조개가 많았대요.
아마 누군가 유해를 묻을때 같이 묻었나봐요. 그래서 가리비를 써요
이 가리비는 선이 한곳으로 모아지죠. 그것처럼 유럽의 모든 산티아고 순례길이 한곳으로 모아지는것을 표현하기도 해요
내가 걸은 프랑스길 뿐만이 아니라 유럽전역에서 오는 까미노길이 약 7 코스가 있는데 모두 산티아고를 항하죠.
@까르미나 아하~~♡
@까르미나 오호~~~
오늘도 재미있게 잘 읽고 있습니다. 참으로 외로운 길이네요.
천년전에 순례자는 더 외로웠을겁니다
@까르미나 그러네요, 외롭고, 힘들고, 사람도 못만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