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환(특용작물학과 11기, 경상북도 예천군) 졸업생 산등성이가 에워싼 듯한 산의 중턱에 큰 한옥이 서 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한옥이지만 약간은 특이하고 세련된 모습을 하고 있다. 마치 탑처럼 솟은 부분이 있어 눈길이 간다. 한옥 앞에는 잔디밭이 펼쳐져 있는데 가든 파티를 충분히 할 수 있는 듯 보인다. '노래하는 나뭇가지' 농장의 모습은 여느 농장과는 달라 보였다. 곳곳에 밭과 비닐하우스, 창고들이 있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넓은 잔디밭, 근사한 한옥 등 운치 있는 공간들이 방문객을 반겼다.그 가운데 있는 한 사람, 바로 이승환(34세) 대표다. 농장 이름인 '노래하는 나뭇가지'는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것이라 한다. '아라 비안나이트'에는 나뭇가지를 심었더니 하루 만에 무럭무럭 자라난, 노래하는 나무가 나오는데 여기에서 착안하여 이름을 지었다. 서울에서 나고 자란 이 대표는 어린 시절에는 농업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이 대표는 전형적인 서울 사람이었다고 보는 것이 맞다. 고등학교 시절 이 대표는 만화를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그리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서 대학에서도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하지만 전공공부를 통해서는 본인이 좋아하는 애니메이션 실무에 대해 배울 수 없었다. 이에 이 대표는 학교를 관두고 애니메이션 업계에 뛰어들어 일을 시작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게 되자 한동안은 즐거웠다. 하지만 이내 고민거리가 생겨났고 시간이 지날수록 고민이 점점 커져갔다. 애니메이션 업계가 고된 일에 비해 수입은 너무 적었고 성공의 가능성이 희박한 것도 열정을 좀먹는 요소였다. 더군다나 업계에서 성공한 이들의 삶을 지켜봐도 항상 현실 속의 무언가에 쫓기는 모습이라 고민을 더욱 깊어지게 했다.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 사회 현실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 너무도 답답하게 느껴진 때였다. 그러다가 머리를 식히기 위해 차밭에 가게 되었는데 그때 본 풍경들이 그렇게 좋아 보일 수 없었다. 그런데 당시 이 대표의 부친은 수산양식업에 종사하다가 이를 정리하면서 귀농을 준비하고 있었다.부친은 이 대표가 커다란 벽 앞에서 힘들어할 때 이 대표에게도 같이 귀농할 것을 권유했다. 이에 이 대표는 고민을 거듭한 끝에 녹차 농사를 꿈꾸며 농업으로 진로를 바꾸었고 한국농수산대학(이하 한농대) 특용작물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한농대는 자신에게 새로운 세상으로 가는 문을 열어준 곳이다. 농업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던 자신을 농업 전문가로 탈바꿈시켰기 때문이다. 대학에서는 토양학에 관심을 두고 공부했다. 그리고 농약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할 수 있었는데 농약의 무분별한 사용을 어떻게 극복하고 효과적이면서도 사람들에게 유익한 방식으로 농약을 사용할 수 있을지 자신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처음에 농사를 시작하려던 당시에는 이 대표가 좋아하는 녹차가 1순위였지만 농장을 마련한 곳은 녹차 농사가 적당하지 않은 곳이라 생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다음으로 생각한 것은 허브차를 즐길 수 있는 카페 겸 온실 정원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생각에도 문제점은 있었다. 카페 겸 온실 정원이라면 사람들이 찾아오기 쉬운 곳이어야 하는데 농장은 입지상 그렇지 못했다. 이런 우여곡절을 거쳐서 시작한 농사가 표고버섯 농사였다. 농장의 터를 잡은 곳에 표고버섯의 배지로 사용할 수 있는 참나무가 많아 하게 된 농사였다. 그리고 이후에 감 농사와 와송 농사를 차례로 짓게 되었다. 현재 노래하는 나뭇가지의 주 생산 품목은 와송과 곶감이다. 와송은 약 4만8천 포기를 키우고 있고 감나무는 1만2천 그루 가지고 있다. 이 중 매출액에서는 와송이 4분의 3 이상을 차지한다. 노래하는 나뭇가지 농장에서 와송을 키우는 방식은 독특한데 기와 위에서 와송을 키우고 있다. 와송 생산량의 반 정도는 이런 방식으로 키운다. 기와를 뒤집어서 그 위에 흙을 담고 거기에 파종해서 키운다.요즘에는 전통 토기와를 가마에서 구워 생산하는 곳이 없어서 직접 발품을 팔아 100년 이상 된 옛 기와집을 찾아가서 기와를 구해 오고 있다. 그렇다면 기와 위에서 와송을 키우면 흙에서 키우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이 대표는 기와 위에서 키운 와송이 좀 더 튼튼하게 자라며 수확을 했을 때도 싱싱함이 오래도록 유지된다고 한다. 기와 위는 흙보다 척박한 환경이므로 와송이 자라면서 강한 생명력을 지니게 된다. 와송 생산에 있어 와송에 비를 맞히지 않는 것도 특이한 점이다. 비는 하늘에서 떨어지면서 공기 중의 좋지 않은 성분을 흡수할 수 있기에 이를 차단하기 위해 비 가림 시설을 해두었다. 비 가림 시설로 산성비와 미세먼지 등을 차단하고 있다. 평소에는 비가림 시설을 개방해 두어 통풍이 잘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비가 올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 비닐하우스의 비 가림 시설을 펼쳐서 와송이 비를 맞지 않도록 하고 있다. 와송에게는 비를 맞히지 않는 대신 지하 190m의 천연 암반수를 공급한다. 사람들이 식수로 사용하는 깨끗한 물로 와송을 키우고 있다. 제초작업에도 남다르다. 농약을 쓰지 않고 100% 수작업으로 제초하고 있다. 또한 화학비료는 쓰지 않고 미생물이 분해한 자연퇴비만 사용한다. 농장에서 와송 다음으로 많이 하는 것이 곶감인데 이는 '은풍준시'라는 예천의 독특한 곶감 제조 기술을 계승한 것이다. '은풍준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맛에 있어서 탁월한 평가를 받고 있는 먹거리이다. 예천으로 귀농을 해서 처음 은풍준시를 맛보고는 이 맛에 반해 감 농사를 지어 곶감을 만들게 되었다. 은풍준시는 수종시라는 품종의 감을 사용해 전통 제조방식으로 만든 곶감이다. 은풍준시는 색깔이 검고 이 위에 흰 가루들이 피어난 모습을 하고 있어 시중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다홍색 곶감과는 차이가 있다. 그리고 부드럽고 당도가 높아 질긴 느낌의 일반 곶감과는 식감에서 분명히 차이가 있다. 수종시는 수분이 많아서 다른 품종처럼 말리면 곶감이 되기가 어렵다고 한다. 보통의 곶감은 감을 꿰매서 햇볕과 바람이 잘 드는 곳에서 말리면 된다. 수종시로 곶감을 만들 때도 여기까지는 같다. 하지만 수종시로 만드는 곶감은 꿰매서 말린 후에 봉지에 넣고 이불을 덮어 두는 과정을 거친다. 이는 곶감의 수분이 곶감의 바깥쪽으로 이동할 수 있도록 하는 과정이다. 이후에 다시 봉지에서 꺼내 철망에 올려놓고 말린다. 봉지에 넣어두는 과정과 봉지에서 꺼내 말리는 과정은 잘 마를 때까지 반복된다. 그리고 이 과정 중 곶감을 봉지에서 꺼내어 말리기 전에 손으로 만져 주는데 이는 모양을 잡아주고 더욱 부드러워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일반적인 곶감이 한 달 만에 출하될 수 있다면 수종시로 만든 곶감은 위와 같은 과정을 거치기에 두세 배의 시간이 더 걸리게 된다. 노래하는 나뭇가지 농장에서 만드는 곶감은 은풍준시 제조 방식을 따른 것인데 여기에 이 대표만의 정성이 더해져서 사람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부드러운 감촉에 당도가 60브릭스 이상이기에 먹어본 사람은 곶감 맛에 경탄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이 대표는 아직도 대부분의 사람이 다홍색 곶감에 길들여져서 수종시로 만든 곶감을 잘 몰라 아쉬운 마음이 크다. 흔히 보는 곶감과는 외관이 달라 잘못 말린 곶감으로 보는 경우도 있고 사람들의 이런 인식 때문에 곶감 유통상들도 전통 방식으로 만든 수종시 곶감을 잘 받아가지 않을 정도이다. 따라서 노래하는 나뭇가지 농장의 곶감은 대부분 직판으로 팔리고 있는데 입소문을 타고 매진을 기록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금도 감 농사를 잘 짓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비결을 배우고 있고 더 좋은 곶감을 만들기 위해 곶감의 발효 과정에 대해서도 연구하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곶감'이라고 하면 '노래하는 나뭇가지'를 떠올릴 날이 조만간 찾아올지도 모를 일이다. 이 대표에게 개인적인 꿈을 묻자 이 대표는 외적·내적 편안함이라고 답했다. 이 대표가 녹차를 좋아하고 허브 찻집을 열려고 했던 것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었다. 그런데 이 대표가 꿈꾸는 온실정원을 겸하는 허브찻집은 어쩌면 몇 년 내에 현실화될 수 있을 것 같다. 곧 예천에 경북도청이 들어서기에 좀 더 많은 사람이 찾을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와송과 곶감으로 유명한 '노래하는 나뭇가지'가 허브 찻집과 온실정원으로 내방객을 맞이할 날이 머지않아 보인다. |
출처: 한국농수산대학 원문보기 글쓴이: 한국농수산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