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루치아 동정 순교자
성녀 루치아는 전후 3백년에 걸친 장구한 로마 제국의 교회 박해 말기에 시칠이아 섬의 사라쿠사에서 태어나 디오클레시아노 황제 때 장렬한 순교를 했다.
양친은 모두 열심한 신자로, 딸을 손에 쥔 구슬같이 귀엽게 길렀다.
아버지가 일찍이 사망하자, 어머니 에우티키아는 딸의 신변을 안정시키고자 어느 귀족과의 혼담(婚談)을 승낙했다. 그러나 루치아는 이미 하느님께 몸을 바치기로 하고 종신 서원까지 발했던 터라, 그 말을 듣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으나, 그 사실을 어머니에게 알리면 오히려 그의 마음을 몹시 괴롭게 할뿐임을 생각하고, 작은 가슴을 부둥켜안고 오직 하느님의 안배하심만을 열심히 청햇다.
그러던 얼마 후 어머니가 병에 걸려 도무지 낫질 않았다.
그러자 친절한 이웃 사람들은 50년전에 순교한 성녀 아가카의 무덤에서는 가끔 기적이 일어나 병이 잘 낫는다며 그곳에 참배하여 성녀의 전구를 청하라고 권유했다.
이 말에 어머니는 루치아의 부축을 받아 그 무덤에 참배하고 열심히 성녀의 전구를 청하자 과연 난치의 병이 봄볕에 얼음 녹듯 말끔히 완쾌되었다.
전설에 의하면 그때 성녀 아가타가 루치아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햇다고 한다.
"당신은 당신 스스로 하느님께 구하여 어머니의 병을 고칠수 있는데 어찌하여 저에게 전구를 청하십니까?"
루치아와 어머니는 이런 기적에 매우 기뻐하며 진심으로 하느님과 성녀 아가타에게 감사를 올렸다.
그녀는 지금이야말로 자기의 비밀을 털어놓을 절호의 기회라 생가하고 어머니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어머니! 이러한 큰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무슨 좋은 일을 해야겠는데, 실제로 저는 오래 전부터 죽을 때까지 동정을 지킬 서원을 했습니다. 그러니 그렇게 일생을 보내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이말에 어머니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으나 원래 신앙의 뿌리가 굳은 그녀였는지라 기꺼히 승낙했다.
다만 결혼 준비를 위한 재산을 당장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자는 데는 반대하고 자기가 죽은 후 소원대로 하라고 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루치아는 "선업은 죽어서 하는 것보다 살아서 하는 것이 더욱 하느님의 뜻에 맞는 것이며, 또한 그 공로도 더 크지 않습니까?"하며 결국 어머니를 납득시켜 결혼 준비로 장만한 재물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나 루치아를 취할 생각이었던 귀족은 이 소식에 매우 분개하여, 그녀가 가톨릭 신자임을 파스카시오 지사에게 밀고하자 루치아는 즉시 재판정에 끌려가 배교를 강요당했다.
물론 그것에 굴복할 루치아가 아니었다. 오히려 정정당당하게 도리를 설명하며 이를 단호히 거절했다.
그러자 지사는 "이 잔괴부리는 요망스러운 계집아! 정 그렇다면 고문 도구를 사용할 것이다.
그러면 아마도 겁이 좀 나겟지!하고 위협했다.
그러나 루치아는 "주님께서는 우리가 재판정에 끌려갈 적에 ’무슨 말을 어떻게 할까?"하고 미리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며 말할 것은 그때마다 마음에 임하시는 성령께서 가르쳐 주시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에게는 어려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하자,
지사는 조롱하는 어조로 "야, 네 마음속에도 그 성령이라는 것이 산단 말이냐?"고 다시 물으니, 그녀는 "네, 성스러운 신앙을 지닌 순결한 마음속은 곧 성령의 궁전입니다" 고 대답했다.
지사는 "그렇다면 네 정조를 빼앗고 그 궁전을 파괴해 주마!"하고 비웃으며, 루치아를 굴복시키기 위해 부하를 시켜 그녀를 요부의 소굴로 끌고 하게 하였다. 바로 그때 그녀가 하늘을 우러러 하느님의 보호하심을 청하자,
기이하게도 그녀의 육체는 갑자기 반석과 같이 무거워져서 힘센 장정 5,6명이 밀고 끌어도 꼼짝달싹 안 할 뿐만 아니라 나중에는 몇 마리의 소를 매달아 끌어 보았으나 조금도 움직이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파스카시오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래서 그는 그 주위에다 장작을 쌓고 사정없이 불을 질렀다.
불은 거세게 타올랐으나 루치아는 불속에서도 타는 기색이 조금도 없었다.
마침내 극도로 당황해진 지사는 형리를 시켜 목을 베도록 했다.
그녀는 목이 베어진 후에도 오랜 시간 생명이 존속하여 그 사이 하느님을 품에 모시는 성체를 영하고 희색이 만연한 가운데 영원한 배필을 찾아서 하늘로 향했다.
(대구대교구홈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