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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오는 날엔 死刑 집행을 안했다
<인명은 재천이니 인간이 개입해선 안된다>
예로부터 동양인들은 형 집행을 피하는 날을 정해 두었다. 이것을 금형일(禁刑日)이라고 하는데, 당나라는 法으로 지정했고 高麗에서도 당나라의 법에 준하여 금형일을 지정해 놓고 있었다.
이날은 사형집행 뿐만 아니라 다른 형벌의 집행도 막았고 고문이나 심문도 하지 않았다.
<하늘의 권위를 위해 남겨둔 금형일>
고려를 보면, 우선 사형집행을 금하는 날이 있다. 중국에서 유래한 것으로 매월 1 8 14 15 18 23 24 28 29 30 일이다
이날들은 道家의 명진재일로 하늘에 사는 태일신선이 지상을 들러보러 내려와 선악을 살핀다는 날이다. 한 달에 10 일은 사형 집행을 할 수 없는 날이다.
속절일(俗節日) 즉 세속에서 지내는 명절날도 피했다.
왕이나 왕족이 죽은 國忌日에도 집행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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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금형일은 조선시대에도 이어지는데 며칠이 더 늘어났다. 왕과 왕비의 탄생과 그 전후 각 하루씩 3일간, 큰 제사가 있거나 나라에서 제를 지내는 날, 그믐날,등에 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여기에 입춘ㆍ우수ㆍ경칩등 24절기에도 형을 금했다.
즐거운 날,혹은 국가의 대사가 있는 날에 하늘의 뜻을 거스를 수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
특히 성종은 금형일에 관심을 가져 각 도의 관찰사들에게 금형일을 준수 하라고 명을 내리기도 했다.
여기에 날짜를 못박지 않은 금형일이 있었으니
바로 비오는 날이다. 금형일을 피해 날을 받아 놓았더라도 그날 비가 오면 형을 중지했다.
왜일까___?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비오는 날의 사형집행은 당하는 자나 집행하는 자나 모두 모양이 좋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아니면 형을 당하는 자에 대한 마지막 배려, 하늘조차 울고 있는 우울한 날에는 사형을 시키지 않겠다는 생각에서였을 수도 있다.
조선시대에는 이런 금형일과 더불어 관습적으로 춘분이 지나서 추분까지의 기간에는 가급적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그래서 죄인에게 형을 언도할 때 아예 기간에 상관없이 죽일지,
아니면 춘분에서 추분 사이에는 죽이지 말아야 할 지를 같이 언도했다.
추분을 넘길 때까지 형을 미루는 것을 대시참(待時斬,때를 기다리는 참형).
기다리지 않고 형을 집행하는 것(부대시참,不待時斬)이라 하여 구분했던 것이다.
이것보다 더 무시무시한
능지처참의 사진이 있는데
끔찍해서 도저히 못 올리겠슴,
(대역부도 김옥균ㆍ효수刑 )
禁刑日은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이므로 꺼리는 마음에서 생긴 것이다.
오늘날보다 훨씬 엄하게 죄인을 다륐던 옛날에도 이처럼 사람을 죽이는 일만은 조심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