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장'은 일본이 만들어낸 허위 역사다!
신문을 보니 영국에서 현대판 고려장 사건 발생이라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영국에서 딸과 부인이 치매걸린 늙은 남편을 600킬로 떨어진 곳에 버리고 달아났다는 내용이지만 기자가 잘못 배워서 그런것이니 어쩔수 없다곤 쳐도 이제는 고려장이라는 말을 바로 알고 앞으로는 쓰지 말아야겠습니다.
아래의 글을 읽고 앞으로는 신문에서도, 교과서에서도 우리나라를 스스로 비하하는 이런 단어를 쓰지 않도록 합시다. 그리고 글을 다른 곳에도 올려서 널리 알립시다.
"고려장"은 원래 없었다.
일본에 의한 역사 왜곡의 한 부분이다 !
고려 시대에는 '고려장'이란 풍습이 있어서 부모가 늙고 병들면 자식들이 지게에 엎고 갖다 버리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처럼 부모에 대한 효를 강조하는 나라에서 실제로 있었던 풍습인가?
과연 고려 시대에 이 '고려장'이 있었던가?
고려장이란 말은 일제시대부터 쓰이기 시작했는데 그 이유조차도 사악하기 그지없다.
고려장이란 용어를 만든 이유란 즉 우리나라 문화재를 도굴하고자 만들어낸 용어라는 것이다.
전국을 뒤져 문화적 가치가 있어 보이는 물건은
닥치는 대로 일본으로 반출하더니 급기야는 무덤의 부장품까지 노리게 되었다.
일본인이 조선인 조상의 무덤을 파헤치기가 힘들었다.
조선인 인부들은 남의 무덤을 파헤치는 일을 꺼려했는데
이는 한민족의 정서상 당연한 것이었다.
어찌 남의 무덤을 파헤친단 말인가?
예전부터 죽은 사람의 무덤에는 영혼이 있다고 믿었고 '오페르트 도굴 사건' 등에서도 보듯이 남의 무덤을 도굴하는 것은 가장 죄질이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자 일본인은 조선인의 경로효친 정신을 이용해
고려장이란 말을 만들어 냈는데
"조선에는 고려시대부터 고려장이란 게 있었다.
부모를 산 채로 내다 버리는 못된 풍습이니 여기 묻힌 사람은 자기 부모를 생으로 고려장시킨 놈이므로 이 무덤은 파헤쳐도 괜찮다." 라는 논거로 조선인 인부를 회유하여 무덤을 파헤치게 되는 것이다.
예로부터 한민족은 충효를 으뜸으로 삼고 충효의 실천을 평생의 덕목으로 삼아 실천했다.
충, 효를 실천하는 것은 대우주 자연의 뜻이 인류문화속에 펼쳐진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친부모를 산채로 버리는 행위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정신이 일제의 얄팍한 상술에 이용되어 고려장이란 용어를 만들어 내게되고 이런 용어가 버젓이 교과서에 실리는 우를 우리는 범하게 된 것이다.
하루 빨리 고쳐야할 대목이다.
고려시기 전공자라면 한번쯤 '고려장'에 관한 질문을 받는다.
'고려'라는 말이 들어 있어서
당연히 고려의 풍습일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고려장'은 '늙은 부모를 산 채로 내다버리던 악습'이다.
또한 고려장을 했던 곳이라고 알려진 무덤들도 여러군데 있어,
의심의 여지없이 고려시기에 일반적으로 행해졌던 풍속으로 알고 있는 것이다.
과연 고려의 장례풍속으로 사람들에게 널리 인식되어 있는 고려장의 실체는 무엇일까? 고려장이 없어지게 된 내력을 알려주는 이야기는 두 가지로 구전되고 있다.
하나는 중국에서 낸 문제를 숨겨놓은 늙은 아버지의 힘을 빌어 해결하고 고려장을 폐지하게 되었다는 내용이고, 다른 하나는 늙은 아비를 산 채로 져다 버린 아버지가, 내버린 지게를 아들이 후일 다시 쓰기 위해 가져옴으로써 그의 아버지로 하여금 불효를 깨우치게 했다는 이야기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이러한 이야기는 사실은 다른 나라에서 전래된 이야기이다.
앞의 이야기는 불교경전인 『잡보장경(雜寶藏經)』의 기로국연(棄老國緣)조의 설화와 유사하고,
뒤의 이야기는 중국 『효자전(孝子傳)』의 원곡(原穀)이야기와 유사하다.
원곡이야기를 보도록 하자.
원곡이란 사람에게는 늙은 할아버지가 있었다.
원곡의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싫어하여 갖다 버리려고 생각하였다.
15살 된 원곡은 울면서 말렸으나 아버지는 듣지 않았다.
드디어 수레를 만들어 갖다버렸다.
원곡이 따라가 수레를 다시 가져오니,
아버지가 "이처럼 흉한 것을 무엇에 쓰려고 하느냐?" 하였다.
원곡이 말하기를 "다음에 아버지가 늙으면 다시 만들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이에 아버지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깨달아, 자신의 아버지를 다시 모시고 왔다. 이후 잘 봉양하여 마침내 효자가 되었다.
이 설화같은 이야기가
일제강점기에
고려시대에 실제 있었던 일이라고 날조되는
말도 안되는 일이 생긴것이다 .
방송에서도 고려장이라는 말이
가끔 쓰이던데
되도록이면 쓰지 말자
원본 글쓴이분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제가 글을 쓰는동안
길다고 싶은 부분은 사람들이 안보실것 같아서
되도록이면 이해할정도로
줄여썼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첫댓글 (욕하기 전에) 새로운 글이라 퍼왔습니다. 사실인가요? 궁금합니다.
ㅇㅇ 한국같이 효성 효자같은 말과 (정말 드물죠) 뜻이 뿌리깊이 있는 나라에서 저런게 있었다는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네요.
우리나라같은 농업중심국가에서 고려장은 정말 말도 안되는 이야기죠. 일본이 일제시대에 우리 국민들의 국민성을 저하시키기 위해 만든 허구로 알고 있습니다.
첨듣는 얘기네요 ㄷㄷ
근데 객관적인 증거가 없어서 좀 아쉽습니다.
'효심이 지극한 민족이니 그럴리 없다'가 골자이고 저도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만 설득력이 부족하네요 ㅡㅡ
저 글을 보면 고려장이란 풍습 자체가 고려 시대에 없었다 라는 것이 주제입니다. 고려 역사 어디에도 고려장이란 것이 나오지 않는다고 쓰여 있는데요. 고려장이라는 것은 한국이 아닌 불교경전과 중국 효자전에 나오는 설화라고 위에 적혀 있네요. 증거가 없다는 말씀은 무슨 뜻인지요? 그럼 고려장이 원래 고려에 있었던 풍습이라는 것인가요?
제 글을 다시 읽어 보니 글을 좀 오해할만하게 적었네요 ㅡㅡ 죄송합니다.
근데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단지 고려장의 존재여부뿐 아니라
"일본이 꾸며낸 얘기다"라는 주장에도 객관적인 증거가 없다는 것입니다.
고려장이 있었단 기록도 없지만 일본이 꾸며낸 이야기란 기록은 어디서 나온건가 싶어서요
있었단 것도 추측, 없었단 것도 추측, 일본이 꾸며냈단 것도 추측이 아닐가 싶네요
고려장도 증거가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고려장에 대해 생각해보려면 당시 민중들의 종교와 사상 등을 파악해 봐야 하는데 고려시대는 불교가 널리 퍼진 상황에서 유교적 인식도 확산되어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노인을 병들고 늙었다고 산 속에 버리는 풍습이 있었는지가 의심스럽습니다 오히려 그런 풍습이 있다면 더 고대에 있어야 정상이라고 봅니다 삼국시대를 비롯해 그 이전에도 그런 일이 없다가 갑자기 고려시대에?! 고려 시대만 해도 본관제가 생기고 호구에 따른 기록관리, 세입의 감소 등으로 그것이 가능해 보이지 않습니다
단순하게 윗글만 보면 일본이 도굴을 하기 위해 무덤을 파헤치는 근거를 대기 위해 고려장이라는 것을 만들었다고 쓰여 있는데 그것이 사실인가를 물으신 것인가요? 그것에 대한 증거는 필요하긴 하겠네요.
"예로부터 한민족은 충효를 으뜸으로 삼고 충효의 실천을 평생의 덕목으로 삼아 실천했다. 충, 효를 실천하는 것은 대우주 자연의 뜻이 인류문화속에 펼쳐진 것이다."라는 논거로 "그러므로 자신의 친부모를 산채로 버리는 행위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라는 결론이 나온다는게 이해가 안되네요
민족성에 호소하는 바가 큰 글 같습니다.
무도거성님께서 예로드신 부분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일본이 도굴을 하기 위해 무덤을 파헤치는 근거를 대기 위해 고려장이라는 것을 만들었다라고 하는데 무슨 근거로 그런말이 나오느냐는 겁니다.
전체적인 글의 흐름은 효심이 지극한 우리 한민족은 그런 반인륜적 행위를할리가 없기 때문에 고려장은 없는 것이고 일본이 만들어낸 우리민족 비하의 수단이다 라고 읽혀지는데 어느것 하나도 제대로된 증거 자료가 없어요
충효를 실천하는 민족이니 고려장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라는 것은 주장의 근거로 삼을 수는 있지요. 왜냐하면 고려장이라는 풍습이 있었다는 기록이 없다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당연히 고려시대에 고려장이 없었던 이유로 한민족의 충효사상을 든 것이겠지요.
님은 지금 전제의 오류를 범하고 있습니다. 충효 사상이 증거가 될 수 없는게 아니라 고려시대에는 고려장이라는 풍습이 없었다는 것의 근거로 바로 한민족의 충효 사상이 나오는 겁니다. 즉 고려장이라는 풍습 자체가 고려 시대에 있었다는 기록이 없다는 것이 본문글의 주제이고 그 근거로 충효 사상을 든겁니다.
무도거성님의 말이 도저히 이해가 안되네요;;
충효를 실천하는 민족이니 고려장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라는 것은 주장의 근거로 삼을 수는 있지요. <-- 백번양보해도 논리적인 근거가 될수 없다고 생각되네요;;
충효 사상이 증거가 될 수 없는게 아니라 고려시대에는 고려장이라는 풍습이 없었다는 것의 근거로 바로 한민족의 충효 사상이 나오는 겁니다.
<-- 이 역시 그저 민족성에 호소하는게 큰거 같네요.
분명 좋은 글이지만, 저역시 객관적인 증거가 아쉽긴하네요.
무도거성님
전제를 내세운적 없는 제가 어떻게 전제의 오류를 범하죠?
차라리 다른 글에서 지적하신것 처럼 "독해를 잘 못하셨네요"라고 하셨으면 몰라도...
전제를 내세워서 주장을 편 사람은 글 쓴이 이고 저는 글쓴이의 주장을 뒷받침 하는 근거가 부족하고 글쓴이가 제시한 전제가 타당한가에 대해 의문을 제시 했는데 제 의문을 주장으로 변형하고 전제와 결론을 거꾸로 제시하여 제가 전제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하시네요
제가 그렇게 이해력이 떨어지는건지 제 정말 의견이 독해력이 떨어지고 전제의 오류를 범해서 나온 의견인지...
저는 지금 몹시 혼란스럽습니다.
미스유/님 본문 글을 잘 보세요. 고려장이라는 것이 고려 시대에 행해졌다는 기록이 한국 문헌 기록에는 없다고 쓰여 있습니다. 없었다는 사실에 대한 이유로 한국의 충효 사상이 거론된 거구요. 대체 무엇이 이해가 안간다는 말입니까? 민족성에 호소해서 없다는 게 아니라 한국 문헌 기록에 고려장이라는게 없다는 소립니다. 그 이유로 충효 사상이 거론 된 것일 뿐입니다. 그런데 민족성에 호소하기는 누가 호소합니까? 아니 그럼 고려장이 없었던 이유로 무엇을 댈까요? 그럼 님께 묻겠습니다. 없던 풍습에 대해 왜 없냐라고 물으면 님은 님은 머라고 말할 건가요?
Jason Jason Rajon / 님 본문 글 잘 보세요. 고려장이라는 것이 고려 시대에 행해졌다는 증거는 없다. 그 이유는 그 어떠한 한국 문헌 기록에 나와있지 않기 때문이다라는 사실 명제가 적혀 있습니다. 이에 대한 근거로 고려 시대는 불효죄를 가장 큰 죄목으로 여겼기 때문이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그런데 님은 이 글을 보고 충효 사상은 고려장이 없었다는 증거가 되지 못한다고 계속 말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서 님이 전제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소립니다. 즉 님은 지금 계속 사실 명제 - 고려 시대에 고려장이 행해졌다는 문헌 증거가 희박하다 라는 전제를 잊고 충효 사상이 증거가 되냐 이 소리를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Jason Jason Rajon/ 즉 지금 고려장이 사실이냐 아니냐에서 충효사상은 논점이 아니란 소립니다. 충효 사상이 나온 것은 고려장이 있었다는 문헌 기록이 없다. 라는 사실 명제를 뒷받침하는 근거로 당시 시대 덕목 + 법치로 내세운 것일 뿐이란 그소립니다.
무도거성님 무슨 말인지 모르겠네요
고려장이 사실이냐 아니냐에서 충효사상이 논점이라고 제가 그랬나요?
예로부터 한민족은 충효를 으뜸으로 삼고 충효의 실천을 평생의 덕목으로 삼아 실천했다.
충, 효를 실천하는 것은 대우주 자연의 뜻이 인류문화속에 펼쳐진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친부모를 산채로 버리는 행위는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위의 내용은 본문에 있는 그대로이고 충효사상을 근거로 삼아 고려장의 존재 여부로 연결시킨 것은 글쓴이 입니다.
자꾸 "고려장이라는 것이 고려 시대에 행해졌다는 증거는 없다"를 글의 주제인냥 말씀하시는데 그것 또한 글쓴이가 고려장이 없었다는 주장을 위한 전제중 하나일 뿐입니다.
제시한 것들중 가장 납득이 가는 이유입니다만 그것을 제외한 나머지는 뚜렷한 증거가 없는것들 입니다.
이글에는 글쓴이가 주장하는 것처럼 일본이 날조했다는 그 어떤 증거도 없습니다.
3.1절에 아무런 객관적인 증거 없이 일본이 우리의 역사를 날조했다라고 주장하는 글이 올라왔는데 민족성에 호소하는 글이라고 보여지지 않을리가 없죠
저는 이글이 사실이 아니라고 생각하는것이 아니라 본문 내용만으론 글쓴이의 주장의 사실여부를 알수 없다는 입장입니다.
그리고 제가 객관적인 증거가 부족하다고 하니 계속해서 본문중 그나마 객관적인 내용을 주제로 지목해서 말씀하시는데 몇번을 들어도 이해가 안됩니다.
이 글은 어떻게 봐도 "고려장은 일본이 날조한 역사다."가 주제이고 그 이유는 납득이 힘든 것들입니다.
무도거성님께서 저에게 계속 같은 내용으로 지적하신다고 해도 저는 이해가 안될것입니다.
글의 주제를 파악하는 관점과 객관적 증거에 대한 기준이 다르다고 생각 하고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이글쓰신 분은 어떤분인가요?저희 아버지(명지대 교수)께 말씀 드렸더니 자기 학교 고려역사과 교수가 고려장은 존재하던 것이다 라고 하셨다던데 익ㄹ쓰신 분은 어떤 분인지 알고싶네요. 까려는게 아니라 어느정도 신빙성이 있는지 알고싶어서...
이분도 퍼온 글이라 원작자가 누군지는 모르겠지요. 그런데 그 고려역사과 교수 누군가요? 저도 이 글 보고 궁금해서 검색 좀 해봤더니 이덕일<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이란 분이 쓴 글과 이글이 비슷하더군요. 그 분 말씀이 고려장이란 것은 실제 증거는 없고 모두 전설로 내려오는 것이라네요. 그리고 학계는 고려장이존재했다는 문헌 기록은 없다라는 것이 다수설이라는데요?
... http://orumi.egloos.com/2523096 한번 참조해 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보니 그 글은 고려 시대 고려장이 있었다는 게 주제가 아니라 일본이 지어낸 말은 아니다라는게 주제군요. 읽어보니 그것은 맞는 말 같군요. 그리고 그리피스에 나온다는 '노인을 산 채로 묻어버리는 풍습'은 윗 본문대로 전염병 환자를 뜻하는 것일 듯 하네요. 노인을 산 채로 묻는 풍습이 늙은 부모를 버리는 풍습은 아니니까요.
엥 저 이이야기 예전에 어렸을때..초,중딩때 들었던거라 진짜가 아닌걸로 알고 살아왔는데..아직 긴가민가 한거였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