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8일(목)
* 시작 기도
(딤후 1:10)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주님...
창세전에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생명을 받아 태어나신 아들이 때가 되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시어 사망을 이기신 주님은 복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오늘도 그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일어나게 하셨으니 감사드립니다.
하오나 그 믿음조차 주님이 주신 선물임을 알기에 스스로 선 자처럼 교만하지 않게 하시고 나를 쳐서 십자가에 복종하는 자로 서게 하옵소서.
새 영과 새 마음으로 빚어주시고 주의 영 곧 진리의 영으로 조명하사 말씀의 빛을 비추소서.
이 하루도 거룩한 불구자가 되어 영적 하루살이의 삶을 살아내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성경본문 / 왕상 8:1-11
제목 : 그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 것도 없으니
1 이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 성 곧 시온에서 메어 올리고자 하여 이스라엘 장로와 모든 지파의 우두머리 곧 이스라엘 자손의 족장들을 예루살렘에 있는 자기에게로 소집하니
2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다 에다님 월 곧 일곱째 달 절기에 솔로몬 왕에게 모이고
3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이르매 제사장들이 궤를 메니라.
4 여호와의 궤와 회막과 성막 안의 모든 거룩한 기구들을 메고 올라가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그것들을 메고 올라가매
5 솔로몬 왕과 그 앞에 모인 이스라엘 회중이 그와 함께 그 궤 앞에 있어 양과 소로 제사를 지냈으니 그 수가 많아 기록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었더라.
6 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자기의 처소로 메어 들였으니 곧 성전의 내소인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라.
7 그룹들이 그 궤 처소 위에서 날개를 펴서 궤와 그 채를 덮었는데
8 채가 길므로 채 끝이 내소 앞 성소에서 보이나 밖에서는 보이지 아니하며 그 채는 오늘까지 그 곳에 있으며
9 그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 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저희와 언약을 맺으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
10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
11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
* 나의 묵상
솔로몬은 왕위에 오른 지 4년에 성전을 짓기 시작하였고 성전 완공 후에 또한 자기의 왕궁을 지었다.
성전을 짓는 데는 7년, 왕궁을 짓는 데는 13년이 걸렸다.
성전과 왕궁 안에 들어가는 모든 기물들을 만들어서 제자리에 놓고 나머지 물건들은 성전 곳간에 보관하였다.
한편 솔로몬은 다윗 성이라 불리는 시온 성에서 성전으로 언약궤를 옮기려고 한다.
이는 곧 성전 봉헌식을 의미한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장로들과 모든 지파의 지도자들을 자신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불렀다.
그들은 일곱째 달 곧 초막절이 있는 절기에 모였다.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모였을 때 제사장들은 언약궤를 메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언약궤와 회막 그리고 그 안에 있는 거룩한 물건들을 메어서 옮겼다.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궤 앞에서 양과 소로 제사를 드렸는데 그 수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았다.
그 후에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제자리 곧 성전 안의 지성소에 두었다.
언약궤를 둔 자리는 지성소에 있는 그룹들의 날개 아래였다.
그리고 그룹들의 날개는 언약궤를 둔 곳에 펼쳐져 있어 궤와 메는 채를 다 덮었다.
궤를 메는 채가 길어서 지성소 앞에 있는 성소에서 채의 끝을 볼 수 있었지만 성소 밖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언약궤 안에는 돌판 두 개만 들어 있다.
그 돌판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뒤에 주님께서 시내 산에서 그들과 언약을 맺을 때에 모세가 그 안에 넣은 것이다.
제사장들이 성소에서 나오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였다.
그 구름 때문에 제사장들은 서서 섬길 수가 없었다.
그것은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였기 때문이다.
본문 9절에 의하면 언약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 것도 없다고 기록하였다.
그런데 분명 성경 히브리서 9:4절을 보면 만나를 담은 금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다고 증거하고 있다.
이렇게 증거가 엇갈리는 이유는 원래 언약궤 안에 이 3가지가 들어 있었는데 엘리 제사장 당시 블레셋에게 언약궤를 잠시 탈취당했던 시기에 만나를 담은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를 유실한 것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또한 언약궤의 본래 목적에 맞게 그 안에는 언약의 두 돌판만 들어 있었고 만나 항아리와 싹난 지팡이는 ‘여호와 앞에’ 곧 ‘언약궤 앞에’ 있었을 뿐이라는 견해다.
하지만 어떠한 견해를 취할지라도 언약궤 안에 언약의 상징인 두 돌판이 들어 있다는 사실 만큼은 변함이 없다.
그것이 바로 십계명이며 또한 율법의 총화이기 때문이다.
율법 곧 하나님의 말씀은 구약 시대에는 그것을 지킴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신약 시대에는 그것을 지켜서 구원을 얻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
왜냐하면 이 땅에 존재하는 어느 누구도 율법을 지켜서 구원에 이를 수 있는 자는 없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이 율법을 완전히 지키신 분이시다.
따라서 주님께서 율법을 완성하셨고 그로 인하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그 은혜로 구원을 얻게 되었다.
주님이 율법을 완성하신 것은 십자가에 죽으심이다.
그 죽으심이 우리의 모든 죄를 대속하셨고 이를 믿는 자가 구원에 이른다.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아들에게 생명을 주셨고 그 생명을 받아 태어나셨다(요 5:26).
그 생명이 바로 말씀이시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다.
하지만 그를 알아보거나 깨닫는 자들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를 알아보는 자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다.
그렇게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이들이 아들을 영접하였고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
이런 권세는 세상의 육정이나 혈통 그리고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자들이다(요 1:12-13).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난 자들이라고 해서 이 땅에서 모두가 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대로 사는 것은 아니다.
다 하나님의 때가 있다.
그 때가 되었을 때 아들을 알지 못하는 이들도 아들을 알고 깨달아 그를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믿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은혜이다.
내가 궁구하고 노력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결코 아니다.
복음을 아무리 전해도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으면 알아듣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한다.
그런 자들이 때로는 세상의 손가락질 받는 추한 일을 할 수도 있고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할 수도 있다.
따라서 이 땅에서 행하는 우리의 행위가 천국과 지옥을 가리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만 창세전에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았는가, 받지 않았는가에 달려 있을 뿐이다.
우리의 구원은 말 그대로 하나님 맘이다.
시쳇말로 표현하자면, 엿장수 맘 대로라는 말이다.
지금 묵상 본문의 주인공인 솔로몬은 왕이 된 후에 갖은 악행을 다 저지른다.
비빈을 천 명씩이나 두고 날마다 호화로운 일상과 쾌락을 즐긴다.
이런 것을 보면 지옥으로 가는 것이 지극히 당연할 터.
하지만 그는 인생 말년에 회개를 통해서 자신의 삶을 부인하고 철저히 세상 만물의 헛됨을 고백한다.
그런 고백은 자신의 깨달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가능한 것이다.
사울이라는 바울도 때가 되어 빛으로 오신 예수를 만나기 전까지는 유대주의에 심취한 자였다.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을 정도로 유대주의자요 바리새인이었다.
그는 율법을 어긴 자들을 죽이는 일에 앞장 섰으며 특히 스데반을 죽이는 일에는 증인으로 서기도 하였다.
그런 그가 하나님의 때가 되어 예수를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게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택하심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편애이다.
야곱이 요셉을 편애했듯이 하나님께서도 이 세상 만물 안에 있는 자들을 다 똑같이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어떤 이는 사랑하고 어떤 이는 미워하신다.
(롬 9:11-13) 그(리브가)의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하지 아니한 때에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리브가에게 이르시되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나니 기록된 바 내가 야곱은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였다 하심과 같으니라.
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전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는 자였다.
그저 지식적으로는 아닌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내 안에는 감춰진 이교적 모습이 다분하였다.
열심히 주의 일을 하고 봉사하며 섬기는 일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여 내가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하는 생각이 내 안에 잠재해 있었음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아니 내가 목사로서 주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을 행할 때 나의 구원이 취소되거나 없어지지는 않을까를 고민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하지만 이런 악행을 저지를 때마다 성령께서는 나의 마음을 두드리신다.
더 이상 고쳐지지 않을 때 하나님께서는 고난이라는 시험을 보내기도 하신다.
그 시험은 나를 죽이기 위한 시험이 아니다.
진짜 나를 살리기 위한 시험이다.
더 최악의 경우는 나의 목숨을 가져가실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불행이 아니라 이 땅에서는 나를 죽일지라도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은혜요 배려가 아닐 수 없다.
나는 이 복음과 은혜를 믿는다.
그렇다고 내 마음대로 살겠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성령께서는 나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데 그것은 내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빌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의 최고는 주님과 말씀으로 교제하는 일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과 그의 아들을 아는 것이요 영생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주님 안에서 말씀(복음)으로 교제하는 이 시간이 나의 즐거움이자 우리 주님의 기쁨이 될 줄 믿는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솔로몬이 성전 봉헌식을 함에 있어서 언약의 상징인 두 돌판이 들어 있는 언약궤를 메고 다윗 성에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옮기는 일을 우선적으로 하였습니다.
그것은 그가 말씀에 집중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한 초석임을 믿습니다.
오늘 나 역시 주님의 뜻을 알지 못할 때는 말씀을 그저 신앙생활의 하나의 도구 정도로 여겼지만, 말씀은 결코 도구가 아니라 존재 그 자체임을 이제는 알고 믿습니다.
하여 그 말씀이 나를 살리고 죽이기도 하는 것을 압니다.
그 말씀이 나를 이 땅에서 완전히 죽이고 온전히 살게 할 수 있는 것임을 믿습니다.
그 말씀 앞에서 납작 엎드리게 하소서.
나는 죽기에만 합당한 죄인입니다.
나는 죽고 예수로 사는 주의 자녀가 되게 하옵소서.
복음인 주의 말씀이 나의 생명입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