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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예레미야 15:20
이사야,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요약하면 여호와께 돌아오라 입니다. 하나님의 진노, 분노가 쏟아질지라도, 포로의 신세가 되어 생활할 지라도, 그 곳에서 여호와를 생각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예루살렘의 성전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면 하나님의 소산물이 내 터전에 물댄 동산 같게 하시는 축복을 베풀어 주신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시선은 언제나 하나님을 나와 함께 하시도록 하는 것에 고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헛되이 돌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3월 8일자 매일 경제 신문에 이런 기사를 접하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매달려야 하는 것이 있다. 사람에 매달리면 지친다. 물질에 매달리면 피폐해진다. 행복에 매달리면 현재가 불행하다.”
그렇다면 나이가 들수록 매달려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단 하나 ‘철봉’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철봉에 매달리면 악력이 좋아지고 어깨 유연성과 힘을 키울 수 있다. 척추가 이완돼 만성 허리 통증에도 좋다. 코어 근육이 활성화되는 건 덤이다. 하루에 한 번씩 꼭 매달린다면 불필요한 힘을 빼는 능력도 생긴다. 이 기사를 접하면서 철봉에 매달리면 육체가 건강해지는 구나! 그럼 예수님께 매달리면 영·혼·육이 건강해지고, 행복해질 텐데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해 주실 텐데. 하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예수님께 매달리는 사람은 예수님의 옷을 입고 살아가는 사람이다 말할 수 있죠. 이런 사람들은 스스로가 난 예수로 인해 살아가는 사람이다. 자부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왜 입으로 예수를 주라 시인하면서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을 향한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선지자가 활동했던 그 시대에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는 신앙을 살아갈까에 대한 많은 고민해봤습니다.
그러다 한 가지 문제를 에스겔 선지자에게 그 시대(예레미야가 사역하던 시대 하나님의 분노를 쏟으실 때) 그 사람들의 믿음의 현실을 말씀하신 부분에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입으로는 사랑을 고백하나 마음은 이익을 따름이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지금 하나님께서 대조하시면 어떨까? 이 물음에 저는 단호하게 전 입의 고백이나, 이익을 따르는 마음이 하나님 영광밖에 없었습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이런 자신감 있는 믿음이 순종으로 내 삶을 채워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한 가지 하나님의 복이 내 집에 내리게 하는 방법을 말씀드리고 지나가겠습니다. 전 에스겔을 통해 하신 이 말씀이 얼마나 빠르게 우리에게 내려지는지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것의 “첫 열매를 구별하여 매년 드리는 행위”입니다. 여기서 첫 열매는 매년 우리들이 얻는 소득의 첫 것을 구별하여 드리는 것입니다.(내 마음에 분량대로) 어차피 우리들의 마음이 이익을 향해 있다면 하나님께서 친히 복을 내리시는 이것에 마음을 따르게 하는 것도 하나님을 나와 함께 하시도록 하는 행위 중 하나라는 사실을 깨닫길 바랍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망하게 하시고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작업을 에스겔 선지자가 바벨론포로 20년째 해에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다시 성전재건을 위한 크기, 누굴 대제사장 반열에 세울 건지, 그리고 제사장은 모세 때와 동일하게 산업을 주지 않으시고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기업이다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각종 예물을 드리라고 하신 것 중에 특별히 “각종 처음 익은 열매와 각종 처음 예물을 주어 그들에게 네 집에 복이 내리도록하게 하라”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만드신 이유가 그 시대 세장, 오늘날 목회자의 생활에 풍성함을 주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전 그래서 첫 열매를 드리면 그 집을 향해 하나님께 복을 구체적으로 빕니다. 그리고 그것이 돈이든, 수확한 수확물이든 저는 어떻게 사용하면 하나님의 복이 극대화되어 항상 나타날까? 기도하고, 생각하며 사용합니다. 지금까지 성전에 들어온 첫 예물을 저에게 심은 것은 옥수수, 참외 수박 외에는 없습니다. 성전 아니면 선교지에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새롭게 깨달은 것이 내게 사용하는 것이 가장 하나님의 큰 축복이 내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쓰려고 노력하지만 잘 안됩니다. 이번도 부활절 찬양 콘서트예배에 사용했거든요. <첫 열매가 어려운 이유 = 첫 월급을 전부 드리는 것, 한번으로 끝나는 것. 잘못된 것.)
여러분 집에 하나님의 복이 내리길 원하십니까? 그럼 이 말씀과 같이 매년 모든 것의 첫 열매를 구별해 보세요. 어차피 우리들의 마음을 지적하신 것처럼 산다면 하나님의 복이 내 집에 내리게 하는 그 이익을 따르는 곳에 마음을 두면 얼마나 좋을까! 그로인하여 하나님이 함께 해주시는 가정이 되면 더욱 좋은 것 아닌가요? 그래서 에스겔을 통해 “입으로 사랑을 말하나 마음은 이익을 따름이라” 하신 하나님의 이 지적이 저와 여러분에게 통하지 않는 그런 말씀이 되어 하나님의 큰 기쁨이 되었으면 합니다.
3월에 가장 중심으로 보는 것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예수님의 멍에를 즐거움으로 찾아서 메는 것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멍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그 길을 걸어가도록 조정해 주기 때문입니다. 멍에는 주인이 원하는 것으로 날 가게 만드는 기능입니다. 예수님의 멍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걸어가게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멍에를 메는 것이 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하셨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을 통해 하나님이 그토록 원하셨던 것이 내 안에서 평범하게 보실 수 있도록 하려면? 예수님의 멍에는 우리 목에 메어져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내 안에서부터 시작하여 밖으로 들어나는 것이 예수가 되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생활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도 우리는 이런 사실을 깨달을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어떻게 보면 참 불쌍합니다. 그가 외쳐야 하는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하나님의 분노를 쏟으시는 즉 멸망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정말 끔찍해서 자신의 눈에서 눈물이 마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 때문입니다. 듣기 싫은 것이요. 무자비할 정도의 무섭고, 자신들에게 임할 재앙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레미야 선지자는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선지자들 중에 가장 미움을 받은 선지자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망할 것을 계속해서 선포하니 그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잘못을 지적하고, 죄를 드러내고, 너희의 마음에 우상을 제하지 않음으로 망할 것이다. 여호와의 분노가 그치지 않을 것이다. 너희가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너희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건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 네 모든 죄로 네 가지로 벌하리니 곧 죽이는 칼과, 찢는 개와, 삼켜 멸하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으로 할 것이다. 이런 말씀을 계속해서 선포하게 하심으로 예레미야는 유다백성과 예루살렘 백성들에게 미움의 대상이 되었고 예레미야는 슬픔의 눈물이 그칠 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게 재앙이로다. 나의 어머니께서 나를 온 세계에 다투는 자와 싸우는 자를 만날 자로 낳으셨도다. 내가 꾸어 주지도 아니하였고 사람이 내게 꾸이지도 아니하였건마는 다 나를 저주하는 도다” 모든 유다와 이스라엘과 예루살렘 사람들의 저주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한편으론 이런 반응들 때문에 실망과 괴로움이 가득했지만, 자신의 나라와 백성에게 여호와의 분노가 쏟아짐을 알게 되어 슬픔과 괴로움의 눈물이 마를 날이 없었습니다. 또한 백성들의 미움과 원망을 한 몸에 받고, 죽음의 처지에 놓였을 때, 불평의 소리로 가득한 예레미야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너를 다시 이끌어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헛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말한다면 너는 나의 입이 될 것이라” 그리고 하나님의 입의 역할을 선택하면 그 선택의 대하여 약속하신 것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입이 되는 삶은 축복만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결론을 내리고 믿음의 생활을 할 때가 많습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으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생활이 축복만 있는 것이 아닌 고난과 어려움이 많이 뒤따르나 그런 일들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자들이 누릴 복이 바로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께 온전히 매달린 인생은 젖과 꿀이 흐르는 그런 인생의 터전만 가득해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이 가만 두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가만 나두면 예수로 가득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사탄은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가장 아프고, 가장 괴로운 것을 동원하여 예수님께 매달림에서 떨어뜨리려고 합니다. 그 결과가 예레미야처럼 눈에 눈물이 마르지 않는 그런 나날이 될 수 있고, 죽음의 처지에 놓여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고난에 걸려 넘어지지 말고, 실망하여 포기하지도 마세요. 그이유가 “하나님은 바로 그런 믿음의 사람과 언제나 함께하신다” 말씀하셨거든요. 그리고 하나님은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55:11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헛되이 돌아가지 않음이라” 무엇을 말씀하셨나요?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이 말씀을 받은 예레미야는 사람들이 듣기 싫어하는 하나님의 분노의 말씀을 끝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전했습니다. 왕과 많은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 했으나, 그러나 아무도 그를 헤하지 못했습니다.
우린 이 약속을 믿고 예수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그 생활이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그 안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이루어지고, 그 안에서 성경이 전하고 있는 하나님의 축복의 약속이 내 삶에 물댄 동산 같이 흘러넘치게 될 것이기에 그 어떤 고난과 시련에 걸려 넘어질 질지라도 예수님을 잡은 손을 놔서는 안 됩니다. 그럴수록 더 확실히 매달려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이 본문의 말씀은 예레미야에게 그랬던 것처럼 저와 여러분에게도 이 일은 일회성이 아닌 우리들 삶의 시간이 지속되는 한, 연속적으로 반복해서 일어나게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이니까요.
이 축복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답습니까?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현재 어떤 위치에 있고, 이 세상에서 어떤 자리에 올라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가 예수님께 매달려 있느냐<예수님 안에 있느냐> 이 한 문제가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창조자이시며, 온 인류의 역사의 주관자이시고, 현재도 그 역사를 홀로 설계하시고, 이끌어 가시는 분이 나와 함께 하실 수밖에 없도록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이 주일에만 꺼내드는 믿음이 아닌, 숨 쉬는 모든 시간에 생수의 강처럼 예수님께 매달려 있는 믿음으로 흘러나와 나의 모든 시간을 잠기게 하는 그런 믿음이 순종으로 빛나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 그 사람의 시간 속에 들어나게 해주십니다.
오늘 예레미야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내게 이루실 수 있도록 어떤 고난 속에서도 예수님께 매달려 있는 손과 마음과 시선과 귀를 떨어뜨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연약하기 끝이 없는 저 조차도 여러분이 그렇게 될 수 있도록 여러분에게 뻗힌 기도의 손을 그 어떤 순간에도 놓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가 하나님의 때가 되어 천군 천사가 나팔을 불며 예수님이 이 땅에 다시 재림하실 때 주향기교회야 수고했다. 그 교회 사역을 위해 수고한 주향기교회 성도 ◯◯◯야 나의 영광에 참여하라 하시는 그 음성이 들리길 간절히 바라고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린 왜 예수님께 매달리려고 애씁니까? 편하게 살 수도 있고, 내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는데 말이죠. 무엇하러 꼴통 같은 김성호목사를 따르면서 힘들게 살아가십니까? 그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내가 너로 이 백성 앞에 견고한 놋 성벽이 되게 하리니 그들이 너를 칠지라도 이기지 못할 것은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너를 구하여 건짐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축복을 내게 이루게 하려는 것과 예수님께서 천사들이 나팔 불고 다시 재림하실 때 저와 여러분의 이름이 불려 지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우린 성공 한 것입니다.
오늘 전한 말씀을 다 잊으셔도 이것 하나만 마음에 새겨 놓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헛되이 돌아가지 않는다.” 이것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경험하길 바랍니다.
예수께 매달림으로 하나님을 나와 함께 하시도록 만드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어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우리 모두의 이름이 불려지고, 우리 주님과 함께 왕 노릇하며 사는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