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세습논쟁➂>
담임목사직을 매매한 목사들의 명단
1. 영성의 문제와 자질의 문제
세습을 반대하는 두 번째 이유는 ‘세습담임자의 경우는 영성부재와 목회적 자질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문제제기에 깊이 동감하면서도, 여전히 반문할 수밖에 없다. 과연, '목회자의 자질문제'가 교회세습 목회자들에게만 해당되는 문제인가?
사실 목회자의 자질과 영성의 문제는 나 자신을 포함한 한국교회 목회자 전체의 반성이 요구되는 대목이다. 종교사회학자들은 미국교회가 쇠퇴하고 지도력을 상실한 원인 가운데, 목회자의 자질문제를 첫 번째로 꼽는다. 오늘날 한국교회 목회자의 자질은 미국의 그것보다 더 심각한 지경이다.
비근한 예로 2000년대 들어 필자의 모교인 감신대의 학력수준은 ‘한성대 야간학부 수준’이라는 어떤 교수님의 진언을 들었다. 감리교계통의 다른 신학교 학생들의 학력수준은 더 말할 필요를 못 느낀다.
물론 목회자의 자질은 ‘학력이 아니라 영력’이고, ‘지성이 아니라 영성’이라고 주장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그렇다면, 이처럼 학력과 지성이 저하된 감리교목회자들은 영성의 기초라고 할 수 있는 ‘말씀과 기도’에는 과연 능통할까?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오늘날 감리교 목회자들의 영성은 ‘능통’ 보다 ‘깡통’에 가깝다.
이와 달리, 광나루 근처에서 청년목회를 감당하던 시절 경험했던 장신대학원생들의 경우 놀라울 만큼 성경에 탁월했다. 이러한 현상은 목회현장에도 그대로 이어저서 장로교 목회자들은 성경말씀에 중심을 두는 강해설교를 하는 반면 감리교 목회자들은 주제 중심의 예화설교에 치중하고 있다. 대부분의 신학생들과 목회자들은 신앙의 본질과 영성보다는 오직 교회성장을 위한 방법론에 열중하는 모양새다.
2.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
일반적으로 고난과 영성은 비례하고, 풍요는 거룩함에 반비례한다고 한다. 하지만 모든 법칙에 예외가 있듯이 여기에도 예외는 존재한다. 나는 부요한 가운데 물처럼 겸손한 이들도 보았고, 가난과 고난 속에서도 태산보다 거만한 이들도 보았다. 과연, 대형교회는 ‘모두’ 불건전하고, 작은교회는 ‘모두’ 건전하다는 일반화가 가능할까?
나는 현실에서 정반대의 경우를 종종 목도한다. 실제로 대형교회와 소위 교회세습을 한 목회자 가운데서도 겸손과 신실을 겸비한 충실한 목회자를 경험한다. 이와 반대로 작은교회 목회자들 가운데 목양에는 전혀 무관심한 한량(?) 같은 인사들도 자주 보게 된다. 한마디로 성장주의와 부실한 영성의 문제는 대형교회와 교회세습목회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작은 교회와 일반목회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점이다. 해서 이러한 주장 역시 세습목회자들을 향한 ‘일반화의 오류’일 따름이다.
3. 목회자수습불균형과 신학대학교의 양산
목회자 자질문제의 핵심은 ‘신학교육’과 ‘목회자 수급문제’와 연결된다. 양질의 목회자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현재의 방만한 신학교의 정원감축을 통해서 ‘어퓨굿맨(소수정예)’으로의 구조조정은 필수과제다. 일례로, 감신대는 80년대 이후 정원을 대폭 늘렸고, 일반대학출신의 M.div 과정을 대폭 확대시켰다.
엎친대 덮친격으로 80년대 이후 목원대의 정원확대에 이은 협성대의 출현은 외적으로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가속화시키며, 내적으로는 목회자의 자질 하락으로 이어졌다. 한마디로, 신학교가 양질의 목회자양성이라는 본연의 취지를 포기하고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았다.
이로 인해, 신학교 교수들은 호사를 누리게 되었는지 모르지만, 신학생의 수준은 급격히 저하되었다. 짧은 지면에 신학대학의 총체적인 문제를 다 언급할 수 없기에 비근한 예를 들자면, 금번에 시행된
감신대 총장선거에서 ‘블랙메일’로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비열한 방식으로 신학대학의 총장이 선출되는 참람한 현실은 타락한 신학대학교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단면이다.
영성은 커녕 최소한의 상식도 없다. 신학교의 정원의 늘어난 크기만큼 수급불균형과 목회자의 자질은 함께 곤두박질쳤다. 이것이 목회자 수준하락의 진짜 원인이다.
이와 같은 현실에도 불구하고 ‘교회세습’이라는 현상에만 모든 관심을 매몰시키는 것은 실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4. 담임목사직을 매매한 목회자들의 명단을 공개할 수 없는 이유
교회세습의 문제제기를 하는 이들은 ‘다른 목회자들의 공정한 기회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공정사회의 정의 관념에 위배되는 점’을 지적한다. 교회세습은 인사의 불공정성으로 인해, 대다수의 선량한 목회자들의 기회를 박탈하고 상대적인 절망감을 안겨준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 없는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불공정한 인사 관행은 과연, ‘교회세습만이 문제일까?’, 그렇다면 ‘세습만 막으면 공정한 인사가 실현될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21세기 한국감리교회에는 ‘공정하고 객관적인 인사시스템’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불공정한 인사 관행에 대표적인 예로 ‘교회세습’을 들고 있지만 이것은 실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왜냐하면, 오늘날 담임목사청빙과정을 ‘열’이라고 가정할 때 그중 ‘하나’가 ‘세습’이라면, 나머지 ‘아홉’은 담임목사직을 돈으로 매매하는 ‘성직매매’인 까닭이다. 물론, 모든 법칙에는 예외가 있듯 예외도 있겠지만, 현실에서 그런 예외는 거의 없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심하다.
공정한 기회를 빼앗는 인사비리의 주범은 ‘세습’보다는 ‘성직매매’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세습’에만 주목하는 이유는 ‘세습’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이와 달리, ‘매매’는 당사자들 간에 은밀한 암거래로 이루어지는 까닭에 그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돈으로 담임목사직을 사고 판 이들은 ‘유능한 목회자’라는 허울을 쓴 채 장래가 촉망되는 건강한 목회자(?) 행세를 하며 호사를 누린다. 더러운 돈으로 거룩한 성직을 매매하는 관행은 ‘침묵의 카르텔’을 통해 암암리에 자신들만의 영역을 확장하는데, 우리는 ‘교회세습’에만 열을 내며 ‘공정한 기회’를 맥없이 유린당하고도 그 실체에 무지하다.
5. ‘신은급법’은 본질이 아니다.
‘담임자 매매’를 감히 폭로할 수 있는 까닭은, 나 자신이 세 번에 걸친 ‘담임자 매매’ 요청을 직접 경험한 당사자이기 때문이다. 은퇴를 앞둔 목회자는 브로커를 통해 후임자에게 은퇴비, 또는 전별금 형식의 돈을 우회적으로 요구한다. 교회의 규모에 따라서 적게는 1억에서 많게는 3억에 달했다.
좋은 목회자를 소개한다는 명목으로 수익을 챙기는 브로커들은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전, 현직의 유력한 목회자들이다. ‘담임자 매매’의 또 다른 예는 개교회 청빙위원회의 유력한 장로들에게 뒷돈을 직접 건네는 경우도 있다.
최근 들어, 대형교회 부교역자들의 진출이 눈에 부쩍 띄는 그 이유는 1, 2억으로 ‘무모한 생개척’을 시도하기보다 같은 값이면 안정된 목회자리를 손쉽게 확보하는 매매를 선택하는 까닭이다. 놀랍게도 이러한 관행에 뒷돈을 대며 앞장서는 목회자 가운데는 소위 한국감리교회의 얼굴이라 일컬어지는 명망가들도 있다.
만일, 필자의 문제제기가 여기서 끝난다면, 누군가의 주장대로 ‘교회세습이나 담임목사직매매나 똑같다’는 ‘피장파장의 오류’를 범하게 된다. 나는 세습에 대한 지엽적인 비판과 적개심을 넘어 공정한 청빙을 위한 객관적인 인사시스템을 마련할 것을 주장한다.
교회세습의 사유는 그저 ‘남 주기 아깝다’는 은퇴자들의 개인적인 탐욕와 이기심으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평생 목회에만 전념하다가 은퇴를 앞두고 막막한 노후의 실존을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목회자들의 안정적인 노후 보장을 위한 객관적인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처럼 은밀하게 진행되는 추악한 관행은 계속될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소위 메이저급에 있는 목회자들은 이와 같은 노후문제로 부터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은퇴하는 교회와 후임자로부터 이중으로 수익을 누릴 수 있는 기회가 보장되어있다.
현실이 이 지경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세습반대법 개정이나 신은급법 대책 따위만을 논하고 있는 꼴은 참으로 언 발에 오줌 누는 격일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