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에 예정된 계획,
때로는 그런 예정이 있어 살아가는 힘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디론가 길 위를 떠도는 것...그런 재미조차 누릴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얼마나 삭막하겠는가 싶어 마음이 휑하다가도 기어이 녹록치 않은 여건을 무시하고
길을 나서보는 것 또한 나쁘지 않다... 더더욱 여성성을 자극한다는 봄날이니 약간의
이해와 아량과 베품과 용서가 가능하리라는 전제를 달고서 떠나는 것,
봄날의 만행이기도 할 것이다.
어쨋거나 오래된 과거의 인연들과 함께 남녘으로 길을 나서는 이른 아침의 주림을 생각해
조촐한 만찬을 준비하는 센스...장거리 여행의 모임에는 반드시 출석 도장을 찍는다는
세 여자들의 기본매너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그리하여 봄날의 자태를 뽐내는 유채꽃만큼이나 아름다울 글사랑 친구들-시요일-과 어울려 떠나는 길에 필요한
무설재표 유기농 고구마와 삶은 달걀과 한끼 식사용의 현미떡과 혹시 몰라 준비하는 와인 만찬의 안주까지.
더불어 쥔장의 절친 사포님이 넋놓고 준비했다는 바케트 샌드위치와 공님이 제공하신 아메리카노 커피.
이른 아침결,
식전의 성찬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주어진 음식에 식탐을 발휘하는 우리네 길동무 세 남정네...그들의
탄성을 듣고서야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이는 우리는 낼 모레 육십을 바라본다는 철없는 글쟁이들이다.
그러나 어떠랴...철이란 것은 필요한 때만 불쑥불쑥 튀쳐나오면 된다는 것을 모를 리 없는 까닭에
그저 첣없음의 대명사로 불리울지라도 마냥 행복한 우리들-자고로 열다섯명이 모두 모이기는 어려운 법- 인 것을.
늘 일상에 쫓기다 보면 어쩌다 한번씩 맛보는 일탈의 재미가 쏠쏠하고 그중에서도 길 떠남의 묘미중 하나인
미각에의 탐심은 그 누구도 못말릴 만큼인지라 확인사살된 맛집을 찾는 것이 관건.
이미 강진군민이 되어버린 오랜 지기의 추천으로 찾아든 강진 석천한정식-432 5050-
벌써 예약손님으로 바글바글하여 잠시 바깥에서 숨을 고르고 드디어 입성을 하고 보니
발길 많은 이유를 알겠다...허나 밑반찬으로 나온 음식들이 도시인에게는 조금 짠듯하여 강추하기엔 염려스럽지만
그 지방의 농군들이나 땀 흘리고 식사를 하러오는 지역민들에게는 안성맞춤일 듯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약간의 과다 염분을 제외한다면 순수 시골밥상에 격조를 더한 맛이라고 보면 될 정도로
다양한 토속 음식이 매력적이긴 하다.
게다가 에피타이저로 나오는 야채죽과 김에 싸먹는 콩을 넣은 찹쌀밥과 도시인들의 잡채와 달리
별 섞임없이 간단히 만들어진 잡채의 절묘한 조화가 입맛을 미리 돋우기도 하니 먹어봐야 알 일이다.
2주 전에 경상도쪽의 남도를 다녀왔다...개발되지 않았을 시절부터 찾아들기 시작하여 몇번의 발품을 거쳐
막무가내로 난개발돠는 지금의 거제도를 보며 한숨 쉬던 기억을 합쳐 장사도를 찍고 통영까지.
하지만 남도라고 하면 역시 전남이요 대명사 남녘이라 불리울 만큼 자부심을 가져도 될
아랫녘 강진 사람들의 동백에 대한 예우와 개인적 성향의 예술적 감각의 맛은 역시 다르다.
사소한 콘셋트 꽂이에도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며 자개로 장식하는 센스...드센 경남의 정취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장소 불문하고 봄날의 남도는 어느 곳에 눈을 두어도 그저 황홀스럽고
운전하지 않고 편편히 즐기는 여행은 당연히 풍광 삼매경이요
뻔한 노래를 흥얼거릴지라도 일정 부분은 죄다 나의 이야기인지라 7080의 노래를 들으며 달리는 길끝에
다산수련원에 도착을 하게 되나니 이 또한 숙박시설 이용을 권하고 싶다.
저렴한 비용 -2인 1실에 2만원, 한 사람 추가 할 때 마다 6천을 더하면 되는데 큰 방을 제공받는다- 치고는
참으로 격조있다는 말씀.
물론 공기좋고 경관의 어울림 좋고 조용한 것은 당연지사지만 두충나무 산책길을 빼놓고 말할 수는 없는 법.
그 길을 따라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 백련사로 오가던 길까지 섭렵할 수 있음이요
그 길을 걸으며 고단했으나 세월의 부대낌에 벗어난 시대적 인물을 만날 좋은 기회를 무시할 수 없으며
아무 생각없이 설렁설렁 걸어도 좋을 만큼의 길자락이 보너스.
들판이 새롭게 되는 봄날이면 보리밭을 지나며 다산 선생이 탄식을 한다.
"나도 늙었구나...봄이 되었다고 이렇게 적적하고 친구가 그립다니..."
문득 행복한 우리 라는 생각을 한다...늙어가면서 좋은 친구로 함께 세월을 품는다는 것,
남녀 불문하고 감정적 경계 없이 친밀감을 지닐 수 있다 는 사실이 복에 겹다는 생각도 따라오면서
여정의 즐거움에 취한다.
한때 빛나는 청춘이었을 우리나 그녀들 또한 세월 앞에 속절없고
피어나는 동백꽃 앞에서도 하루의 생존과 생활의 곤궁이 우선 일 터...
이런 저런 눈길과 귀를 세우고 걷다보면 만나게 되는 다산초당에서의 유유자적은 각자의 몫이요
나름의 취지와 다산의 생애를 알고자 한다면 열심을 내어 청강할 일이고
절묘하게 순간에 잡힌 그룹들의 면면은 또 한 컷의 묘미.
뿐만 이더냐.
걷다 보면 이렇게 방송사에서 출연 요청울 해오기도 하고 걸으며 느낀 소회를 말할 기회도 주어지는데
쥔장의 지인 맥문동님께서 거침없이 하이킥을 날리며 다산에 관한 이야기를 빌어
자신이 하고픈 말을 망설임없이 마이크에 쏟아놓으시는데
예정에 없는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준비된 출연진 같았다 는 후문이고 보면
아무래도 시인이자 국어선생님은 표가 난다는 말씀이렸다.
다산 초당가는 길에 만난 동백꽃이 많이 시들어 첫 마음이 시쿤둥하였으나
웬일 이라니...백련사 동백숲은 정말 장관일 뿐만 아니라 유홍준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극찬이 진정함으로 여겨졌음이니
걸어오는 내내 동백꽃에 관한 한 올해도 운이 좋지 않은 것이 아닐까 의심했던 마음에게 조금 미안했다 는 스스로 자평.
뚝뚝 떨어져버린 피빛의 동백꽃을 보면서 절절함으로 눈길을 맞추고
내내 동백숲의 매력에 빠져 흥분을 감추지 못하던 눈길에 꽂힌 갑장 친구 망찰님의 저 자세를 보라...동백꽃을
기어이 가슴 안에 들여놓고야 말겠다 라는 건지 묻고 싶다.
그렇게 동백에 취하였던 마음을 홀렸던지 간에 각자에게 걸맞는 동백의 의미 부여...그러나 쥔장은
그 숲길에서 동백꽃의 정령들과 조우하였다 는...
칠량만을 끌어안고 동백꽃을 품은 백련사...오랜만에 찾은 보람이 있다.
용케도 절정의 동백꽃을 내어주었음이니 참으로 고맙다는 생각.
그렇게 황홀지경의 동백꽃을 탐하다 저절로 시간에 밀려 달려온 곳...쥔장의 오랜지기 장동찬이
서울이라는 거대도시를 버리고 귀농을 하게 된 주작산 밑자락 삶터에서 그의 건강한 일상과
귀촌에서의 어울림과 더불어 농사꾼이 되어가는 과정을 들으며 잠시 울컥했다.
4년전에 무설재를 찾아들어 강진으로 내려가기로 했다는 전언을 들은 후에
찾아가겠노라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미안했던 마음이 솟아오르기도 했으려니와
전혀 아는 이 하나 없는 곳에 덜컥 내려와 온전하게 둥지를 틀어낸 모습이 대견해서이기도 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어렵지 않게 헤쳐나가는 그의 애씀이 참으로 보기 좋다.
그 친구에게 진정한 박수를 보내면서 그와 함께 하는 유기농 공동체 농사가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그의 진솔한 땅 사랑과 진정한 먹을거리 사랑이 전국민에게 화답받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천천히 찬찬히 친구의 집을 둘러보다 보니 눈에 뜨이는 조각품...또 한번 울컥.
십수년 전에 안산에 기거하는 쥔장의 집으로 놀러온 남친에게 무설재 신선이 건네 준 저 여인네가
여전히 그의 삶터에서 존재하고 있었다는 사실-두 작품을 주었으나 작품 하나는 탐내는 사람에게
선물로 주었다 는 후문에 욕심없기는 역시 유유상종이라는-이 감격스럽기 까지 했으며
그의 2층 다락방에 모셔진 기도하는 손을 보는 순간의 전율은 탐심을 그득하게 오르게 했지만
그냥 꾸욱 눌러담을 수밖에...주기는 하지만 가져오지는 말자 가 원칙이므로.
친구의 집에서 어머님이 챙겨주신 다과로 망중한을 즐기는 것도 잠시
바쁘게 일어서 다산회집으로 향하여 금방 잡은 횟감으로 하루의 피로를 덜어내는 순간에 차오르는 목울대의 울림.
2년 전에 서울을 버리고 귀농을 하였다는 박쌤의 상주, 함창 사설가를 비롯한 한풀이,
경기잡가를 비롯한 흥에 겨운 한마당이 펼쳐지고 그에 걸맞는 망찰님의 답가가 오가노니
아, 세상 살 맛이 나누나.
취중은 무르익고 인연의 소중함에 겨운 우리...세월을 붙잡아야 할지.
그렇게 그 밤이 깊어가노니 하루 해가 저물고 언제 어느 곳, 때와 장소를 불문하고
여행길에 동참을 자행하는 망찰님의 와인 세레머니는 강진이라고 다르지 않다....세팅되어진 와인잔과
어울린 와인들이 줄줄이 대기중이다가 어느새 종류 불문하고 소멸되어지니 우리의 취함은 흥이 돋음인가
한풀이 사설에 걸맞는 자연발생적 행태인가.
결국엔 죄다 빈 병으로 남은 와인병을 바라보며 첨잔을 거부하던 손길을 만류하고
소맥이 등장하니 참으로 갈수록 태산이요 모자라는 것은 과유불급의 넘치는 정서교감이라.
그쯤에서 끝날 일이 아니니 발길은 저절로 숙소로 향하고 이어진 자리에서의 깊고 깊은 슈퍼표 담론.
그 담론이 끝나고 나서야 숙면을 청하자니 가는 밤이 안타깝고 오랜 지기와의 헤어짐이 아쉽다.
그러나 모든 만남은 이별을 전제로 하나니 쿨하게 제 자리로 돌려보내고
짧은 여정의 소회를 끝으로 그 하루가 끝이 난다...내일의 해가 또 우리를 인도할 곳을 기대하며 머리를 뉜다.
첫댓글 아 이럴수가~? 오랫만에 함께 하지 못한 것이 아쉽게 느껴지는 여행이네~!
물론 모르는 분들임에도 불구하고... 재밌었을듯 함이 물씬 뭍어나기에 그리 느껴지는 것이겠징~? ㅋㅋ
동백꽃 좋고~! 그래서 더 보고잡고, 게다가 십자가 조각과 여인상이 더욱 눈에 들어오네요~! ㅎㅎ
ㅎㅎㅎㅎ 그 여인상을 보며 많은 감회에 젖었답니다.
기도하는 손의 십자가상 뒷면을 보면 길게 기도하는 손이 돋을 새김으로 되어이ㅛ어
탐심을 자극했다는.
남녁의 산길에 떨어진 붉은 춘백을 보면...(반드시 홑꽃)
별들의 빨간 눈물같아요
똑똑 떨어져 길위에 누워있는 춘백의 낙화는
봄에 흘리는 가슴아픈 눈물입니다.
맞아요...홑겹의 동백꽃이 순수 유리 꽃이니 만큼 더욱 절절해 보이더라구요.
겹 동백꽃에는 사실 시선이 가질 않았어요....덩치만 크다는 생각.
참 사진과 글 잘쓰시네요,, 한참 머물다 갑니다..
고맙습니다...건강하신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