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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 청소기, 세탁기, 전기 밥솥, 전자 레인지 ---, 웬만한 가정이면 모두 갖고 있는 기계들이다. 이것들을 어느 날 우리 살림에서 모두 못 쓰게 한다면? 그런데 사실 바로 백 년 전의 사람들만 해도 그렇게 살았다. 인류를 청소, 빨래, 밥짓기 등의 엄청난 노역(勞役)에서 벗어나게 해 준 은인(恩人)들은 20세기 엔지니어들이다. 100 여 년 전과 비교했을 때 오늘 날의 우리는 한 가정당 어쩌면 불평 없고 성실한 노예를 다섯 명 정도는 데리고 사는 그런 편안한 생활이다. CD를 통해 듣는 교향악단의 연주는 옛날 같으면, 한나라의 국왕도 일년에 몇 번 못들을 그런 소리다. 세끼 뜨거운 밥 먹는 일만해도 한 사람이 하루 종일 매달려야 할 일인데, 요즈음은 스위치 동작 한 번으로 해결하고 있다. 마이크로 프로세서가 달린 보온 전기 밥솥 덕에, 외출해 있으면서도 전화 한 통화로 밥을 지을 수 있는 세상이다. 밥솥은 한 치의 착오도 없는 성실한 일꾼이다. 최근 한 두 번 터져서 문제를 일으킨 바 있지만 옛날 노예들이 일으키던 반란(反亂)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아침 식사를 했으면 당연히 집안 청소도 해야 하는데, 빗자루, 쓰레받기, 그리고 걸레질까지 이것도 보통 일 아니다. 먼지를 빨아들이는 진공 청소기를 고안 한 사람은 영국의 부스(Hubert Cecil Booth). 당시에는 이미 모터를 이용한 청소기가 있었는데, 이는 공기를 불어내어 먼지를 날려버리는 방식이었다. 상상만해도 얼마나 비효율적이었을지 짐작이 가는 일이다. 그런데 어느 날 부스는 의자 위에 먼지를 뿌린 후 손수건을 올려 놓고손수건을 입으로 빨아 들여 보았다. 그리고 먼지로 더럽혀진 손수건을 보곤 아이디어가 반짝했다. 바로 이 아이디어로 흡입식 청소기를 개발했는데 그 때는 1901년이었다.
그가 개발한 청소기는 마차에 펌프를 장치한 거대한 기계였으며 그 작동에4명 내지 6명이 필요했다. 최첨단 청소기에 대한 소문은 금세 런던에 퍼졌고 귀족 부인들은 응접실에 친구들을 불러모아, 청소하는 광경을 자랑스럽게 보여 주기도 했다. 이를 "Vacuum Cleaner Party"라고 불렀는데, 이는 최상류층만이 누릴 수 있는 잔치였다. 아마 요즈음 집에서 쓰는 작고 아름다운 청소기 하나만 있었으면, 그 당시에는 잠깐 시범을 보이는 일만으로도 한 가족은 잘 살수있었을 것이다. 1903년 미국에도 비슷한 서비스 사업이 시작되었는데, 한 번 방문해 청소해 주는 가격은 4$이었다. 당시 근로자 한 달 평균 월급의 10%에 해당하는 큰 돈이었다.
그림 15.1. Booth가 처음 개발한진공 청소기.
한 사람이 들고 다닐 수 있는 간편한 청소기는 1907년 스팽글러(James Murray Spangler)가 개발했다. 그는 백화점의 관리인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카펫 청소만 하고 나면 먼지 때문에 기침을 하게 되어 괴로워했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했듯이, 스팽글러에게는 청소기가 절실하게 필요했고, 그는 결국 필터와 먼지 수집통이 달린 청소기를 개발했다. 이 청소기의 특허권을 산 것은 그의 사촌 처남이었던 후버(W. H. Hoover)였는데, 그는 소비자들이 열흘간 씩 무료로 청소기를 시험 사용할 수 있는 판매 전략을 쓰면서 청소기 사업을 매우 빠르게 키워 나갔다. Hoover 는 지금도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청소기 전문 브랜드다.
그림 15.2. 1920년 대 미국 백화점 진열창 속의 진공 청소기.
요즈음 우리가 사용하는 청소기는 이렇게 지난 100년간 많은 엔지니어들이, 먼지를 없애고 깨끗한 환경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 덕이다. 1955년에는 청소기의 먼지 수집 함으로 종이 봉투(Paper Bag)가 처음 개발 되었고 1983년에는 아예 먼지 수집함이 없는 청소기도 나왔다. 아주 최근에는 사람이 끌고 다닐 필요 없는 로봇-청소기도 시판되고 있는데, 결국은 청소기 스스로가 방바닥의 상태를 감지해서 주인의 명령이 없이도 혼자서 돌아다니며 청소하는 그런 시대가 올 것이다. 가능하면 주인이 없을 때 청소하는 그런 기능을 가져야 할 텐데, 혹시 잘못 되어 주인이 잠든 사이에 혼자서 움직이면 그것도 참 곤란할 것 같다. 오래 전인 1910년도 영국에서 조사된 결과에 의하면 먼지 1g 속에는 약 3억6천만에 이르는 숫자의 진드기나 온갖 세균이 있는데, 그나마 이 먼지는 항상 주변을 깨끗이 하는 왕궁(王宮)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실제로 청소는 건강과 직접 관련 있는 아주 중요한 일이다.
그림 15.3. 여러 가지 유형의 청소기들(위)과 최근 나오고 있는 로봇-청소기(아래).
세탁은 또 얼마나 힘든 일이었나? 옛날의 주부들은 일주일 중 적어도 하루는 따로 빼내어 가족들의 의복을 세탁하는데 전념해야 했다. 요즈음은 세탁이란 것이 옷을 세탁기에 집어 넣기만 하면 저절로 되는 일이지만, 사실 여러 가지 가사(家事) 노동 중에서 세탁은 가장 진땀 빼는 작업이었다. 아마 세탁 기계로 인류 역사에 처음 등록 되어야 할 것은 우리의 조상들이 쓰던 빨래판과 빨래 방망이일 것이다. 본격적으로, 힘들이지 않고 세탁을 해 보겠다는 생각은 엔진이 나오기 시작한 18세기 후반부터 갖기 시작했지만 그것이 구체화 된 것은 19세기 후반이다.
1874년 미국의 블랙스턴(William Blackstone)은 그의 아내 생일 선물로 스스로 무언가를 만들었는데, 바로 그것이 공식적으로 알려진 최초의 세탁기다. 둥그런 나무 통 속에 평평한 나무 판을 넣고 이를 밖에서 앞 뒤로 움직일 수 있게 만든 것인데, 성능이 그런대로 괜찮았던지 그의 아내는 대단히 만족했다. 세계 최초의 세탁기를 선물 받은 셈이니 당연한 일이다. 블랙스턴은 아내의 칭찬에 힘 입어 이를 제품화 했는데 그 때 그가 받은 기계 하나의 값은 2.50$이었다. 그는 5년 후 회사를 세워 소비자를 찾아 뉴-욕으로 옮겨갔고, 아직도 그 회사는 그 자리에서 잘 운영되고 있다. 나무 통이 금속으로 바뀐 것은1900년 경이며, 전기 모터를 이용한 본격적인 드럼 세탁기에 대한 특허는 1910년에 주어졌다.
그림 15.4. 피셔(Alva J. Fisher)가 1910년에 받은 드럼 세탁기의 특허.
그러나 세탁기의 본격적인 보급은 메이택(Fred L. Maytag)에 의해서다. 그가 1907년에 만든 세탁기는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했는데, 이 기계의 상품명은 "Pastime" - 기분 전환 혹은 오락을 의미하는 단어다. 중노동이었던 세탁을 오락(?)으로까지 바꾸었다니, 요즘 같으면 과장 광고로 처벌 받았을 일이다. 1911년 이 회사에서는 전기 모터를 이용한 세탁기를 시장에 내 놓았으며, 그 후 일취월장(日就月將)해서 현재는 20,000명이 근무하는 약 50억불 재산 규모의 엄청난 회사로 성장해 있다. 앞서 이야기한 청소기 회사 Hoover도 1989년 Maytag으로 흡수되었는데, 결과적으로 세탁기 비지네스가 청소기보다 훨씬 좋았던 모양이다.
그림 15.5. 메이택 사의 세탁기 "Pastime" (1907년)
가정용 기구로는 이 밖에도 냉장고, 전기 믹서, 토스터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마지막으로 주방 기구 중에서 가장 최근에 등장한 그러나 가장 폭 넓게 쓰이고 있는 전자 레인지를 한 번 이야기 해 보자. 이는 20세기 후반의 여러 엔지니어 중에서 가장 천재 같은 사람인 스펜서 박사 (Dr. Percy Spencer)의 발명품이다. 그의 이름에는 꼭 박사가 붙어 다니는데 이는 스펜서가 초등학교도 제대로 마칠 수 없었던 불우한 고아였으며, 박사 학위는 나중에 성공한 후 여기저기서 명예로 준 것이어서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혼자서 해 낸 사람이 스펜서이기에, 그래서 그의 업적은 더 대단하다.
그림 15.6. Dr. Percy Spencer와 그가 제출한 마이크로 웨이브 전자레인지에 관한 특허.
스펜서는 1894년에 태어났다. 생후 18개월 만에 그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면서, 삼촌의 집에 입양되었는데, 그러나 그 삼촌 마저 스펜서가 일곱 살 때 세상을 떠났고 그 후로는 험난한 세상을 혼자 헤쳐나갔다. 아무도 돌보아 주는 사람이 없었으니 학교도 제대로 다닐 수 없었던 그는 12살 되던 해에 벌써 종이 제조 공장에 취직을 한다. 그런데 몇 년 후 그 종이 공장에 전기가 들어오는데, 스펜서는 전기란 것에 대해 그야말로 지대한 관심을 보여, 드디어는 공장의 전기 가설을 책임 맡는 사람 중의 한 명으로 발탁된다. 물론 온갖 실수가 있었지만, 그는 전기를 혼자 마스터 했고 이렇게 해서 위대한 엔지니어는 스스로 태어나기 시작했다. 1912년 타이타닉호가 침몰하고 그 과정에서 무선통신이 각광을 받자 그는 해군에 자원 입대해서 통신사 과정을 이수 받는다. 학력을 속이고 과정에 들어 간 그가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우며 공부했을지는 쉽게 짐작이 간다. 그의 능력은 곧 인정 받아 해군의 정예 기술 인력으로 이름이 나기 시작했는데, 그 때 그의 나이는 겨우 20세였다.
해군에서 제대한 후 그는 레이션(Raytheon Corp.)이란 회사의 엔지니어로 일하게 된다. 스펜서는 항상 아침 7시 이전에 출근해 그 때에 야간 근무를 마치고 귀가하는 작업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이는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야간에 근무하는 것이 얼마나 고달프고 외로운 일임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었다. 여하튼 이런 열성과 그의 몇 가지 중요한 발명에 힘입어, 직원 15명으로 시작한 그의 부서는 1945년에는 무려 5,000명에 이르게 된다. 스펜서의 능력을 인정한 미국 정부는 이차 대전 중에 Radar 장비의 설계를 그에게 맡기는데, 이는 원자 폭탄 개발을 위한 Manhattan Project 바로 다음 가는 대단한 규모의 과제였다. 사실 독일이 이차 대전에서 연합군에게 패배한 주요 이유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레이다 때문이다. 여하튼 그 때 스펜서와 함께 일했던 MIT 교수가 나중에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처럼 교육을 잘 받은 엔지니어들은 안 되는 일들을 너무 많이 알고 있다. 그런데 스펜서는 일이 될 때까지 무조건 노력하는 사람이다".
전자레인지는 Radar에 대한 연구 과정에서 얻어진 부산물이다. 어느 날 그는 자기의 실험기기 앞에 서 있는데 바지에 넣어 둔 쵸코-렛이 녹아 버린 것을 알았다. 이를 이상히 여긴 스펜서는 다음 날 옥수수를 사다가 실험기기 근처에 놓았고, 이것이 팝-콘(Pop-Corn)으로 되는 것을 보고는 이 희한한 일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1946년 그가 52세 때의 일이다. 1947년에 처음 만들어 낸 전자 레인지는 무게가 350 kg, 그리고 높이가 170cm에 달하는 거대 장비였으며, 그 가격도 무려 $5,000에 달했다. 그로부터 20년 후 그 가격은 $500으로 떨어졌고 무게도 1/10로 줄었다. 1975년에는 미국 시장에서 처음으로 전자레인지 판매 대수가 가스레인지를 넘었고, 이제는 세계 모든 가정의 필수품이 되었다. 한 사람의 엔지니어에 의해 인류의 생활이 바뀐 가장 좋은 예가 전자레인지인 것으로 믿어진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자레인지를 생산하고 있는 나라는 대한민국이다. 그 밖의 다른 가전기기는 대부분 중국이 일등인데, 중국은 2003년에 5,000만대의 에어콘, 6,500만대의 T.V. 그리고 2,300만대의 냉장고를 생산한 나라다. 중국은 그 이름처럼 다시 세계의 중심(中心) 국가가 될 모양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