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로 은하단 / 박승민
촛불은 깜짝 놀랐다
저 꺼지지 않는 색색의 빛들을 보고
촛불은 깜짝 놀랐다
아침이면 딸의 방으로 빛이 들어가
꼬리를 감고 잠드는 걸 보고
잠이 안 와 이불 속에서는 왜 죄를 뒤집어쓴 기분일까 파란빛들이 창
을 넘어 내 전원에 자꾸 신호를 넣는 밤 빛이 수많은 파동으로 번져 거리
에 쏟아져내리는 장면에서 나는 문을 나선다
눈밭이어도 여기가 편해 금방 한자리가 따뜻해졌어 은박지에 쌓이는
눈을 망토처럼 두르고 머리 위에는 초록빛을 켜둘 거야 나는 나를 응원
하러 온 사람 그러나 "수치도 양심도 모르는 당신들을 대신하여/당신들의
몫까지 부끄러움과 죄스러움을 느껴온 TK의 딸들이 말한다"* 라는 말을
듣는 순간 아! 저게 내 마음이었구나. 엄마처럼 웅크려 참는 모욕을 문틈
으로 볼 때마다 어린 피가 솟구쳤어
지하철로 버스로 빛들의 대이동이 시작됐고 파동은 파장을 일으키며
순간순간 새로운 빛들이 태어났어 빛은 색들의 조합, 입을 합친 화음, 손
들의 율동이었어 순식간에 눈발을 가르며 거대한 은하계가 머리 위로 솟
은 거야 빛을 따라 부르는 하얀 입들 파랗게 언 입들 붉은 입들 작은 입
보다 더 작은 입들이 쇄빙선처럼 영하의 밤하늘을 뚫고 별들을 밀어올린
거야
무릎에 한가득 눈을 받는 아침, 추운데 꼼짝할 수 없는데 이렇게 뜨거
워도 되나 출근길 차들이 꼬리를 흔들며 울리는 경적
밤이면 다시 별들이 이 차도를 점령할 거야 당분간 모든 것을 멈춰 세
울 거야 당신이 내게 준 모욕을 바로잡기 위해, '다시 만날 세계'**를 응
원하기 위해
* 12.3 내란 후 윤석열 탄핵 찬성 대구 집회에 등장한 대자보에서 옮겨옴.
** 소녀시대의 노래 <다시 만난 세계>에서 변용함.
—계간 《문학동네》 2025 봄호
--------------------------
박승민 / 경북 영주 출생. 2007년 《내일을 여는 작가》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
시집 『지붕의 등뼈』 『슬픔을 말리다』 『끝은 끝으로 이어진』 『해는 요즘도 아침에
뜨겠죠』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