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고린도전서 15:1~12,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찬송가 162장(부활하신 구세주)
사도 바울이 써 보낸 고린도전서 15장은 부활장이라고 합니다. 그는 이 고린도전서 15장에서 그리스도의 부활의 역사적 사실을 그의 부활을 직접적으로 목격한 여러 증인들을 소환하면서 이 사실을 적극적으로 소명합니다. 본인 자신도 다메섹 도상에서 교회를 핍박하려고 가다가 부활의 주님을 직접적으로 만났던 것 역시 빼놓지 않습니다. 그러면서 자기가 다른 사도들보다 더 많이 이 부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에 헌신했으나 이렇게 수고한 것조차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라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러면서 본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사실과 성도들의 부활의 연관성을 논하기도 하면서 성도의 부활의 몸이 어떠한 영광을 입게 되는 것인지에 대하여서도 자세히 말씀하고, 장차 성도들이 부활의 몸을 입게 되는 시기에 대하여도 설명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사도 바울이 그의 편지에서 한 가지 부활의 주제로 자세하고 길게 설명하는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바로 우리가 읽은 12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고린도전서 15:12)
놀랍게도 그 당시 고린도교회 안에서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파하고 떠났는데, 그 후에 그 교회 안에 사도가 전파했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근본적인 진리를 믿지 않는 자들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그 교회 안에 신앙의 핵심인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는 무리들이 일어났기 때문에 사도는 이 근본적인 진리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설득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길게 부활에 대한 가르침을 전파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은 사도 바울의 사역의 말기쯤에 에베소교회 안에서도 동일한 시험과 부패의 위험이 있었습니다. 디모데후서 2:17,18 말씀에서도 이르기를
“그들의 말은 악성 종양이 퍼져나감과 같은데 그 중에 후메내오와 빌레도가 있느니라 진리에 관하여는 그들이 그릇되었도다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 함으로 어떤 사람의 믿음을 무너뜨리느니라”
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디모데는 감옥에 갇힌 사도 바울의 권면에 따라 소아시아 지역의 어머니 교회와 같은 큰 교회인 에베소교회에서 사도 바울을 대신하여 목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에 지도자급에 해당하는 사람들 중에 누룩과 같이 부패하고 악한 교리를 전파하면서 사람들을 흔드는 자들이 있었으니 대표적인 사람이 후메내오와 빌레도라는 사람이었습니다. 디모데전서 1:20 말씀에서는 후메내오와 알렉산더라는 사람이 믿음도 파선하고 양심을 버린 패륜자들이라고 사도가 디모데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고린도교회에서나 에베소교회에서 몇몇 지도자급 사람들이 교회를 어지럽힌 근본적인 이유는 그들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고 성도의 부활을 믿지 않았기 때문에, 교회에 큰 해를 깨치고 많은 사람들의 믿음을 무너뜨리는 악한 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신앙은 기독교의 기초석과 같아서, 만일 이 확실한 진리를 믿지 못하면 기독교는 무너지는 것입니다. 이 부활 신앙을 증거하지 않고 믿지 않는 교회는 더 이상 참 교회가 아닙니다. 우리들의 신앙의 모든 아름다운 믿음과 성도의 복스러운 덕행들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믿음에 걸려 있습니다. 부활 신앙은 헛간에 있는 잘 박힌 대못과 같아서 여기에 수많은 소쿠리나 농기구나 그릇들이 걸리게 되어 있습니다. 이 부활 신앙의 대못이 녹슬고 약해져서 부러지면 여기에 걸어놓을 수 없기에 기독교는 무너지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 부활 신앙에 굳건하게 서 있어야 합니다.
만약 부활 신앙을 부인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요? 사도는 그의 서신 고린도전서 15장에서와 디모데후서 2장 이하에서 그 점을 공통점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육신적인 삶에 골몰합니다. 고린도전서 15:32 말씀에 이 점을 말해줍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 하리라”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게 되니. 그들은 이 세상의 삶을 무가치하게 함부로 살아갑니다. 향락과 육신의 즐거움으로 세월을 낭비합니다.
또한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교만합니다.
또한 원한을 풀지 않고 무정하고 남을 모함하고 사납습니다.
디모데후서 3:2~3까지의 말씀이 부활을 믿지 않는 자들의 모습입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또한 신앙의 껍데기는 유지하지만 내면의 진실함을 가지고 하나님을 닮으려 하지 않습니다.
디모데후서 3:5 말씀에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
고 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사도는 당시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다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지금 정명석과 같은 유의 사람들이 벌인 흉한 모습들이 초대 교회 시대에도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경건의 모양만 흉내낼 뿐 진심으로 그리스도의 부활과 장차 주님의 재림과 심판과 천국과 지옥의 실재를 믿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와 성도가 그리스도의 부활의 진리를 믿지 않으면 그것은 더 이상 교회와 성도가 아닙니다. 온갖 부패와 거짓과 추문과 타락과 돈을 사랑함과 악함의 소굴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부활의 이 확실한 사실을 알고 그것을 확고하게 믿는 교회와 성도는 주님의 재림이 분명히 있을 것과 죽은 뒤에 주님의 공정한 심판이 있으며 이 땅에서도 하나님께서 반드시 행한 대로 갚아주신다는 사실을 믿기에 경거망동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세월을 아껴 주님의 이름을 위하여 복음을 위하여 힘써 수고하게 됩니다. 핍박과 모욕을 받더라도 기뻐하며 믿음을 가지고 인내합니다. 온유하며 겸손하며 거룩하며 절제합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의 온전함을 자기 인격에 새기기를 위하여 몸부림칩니다. 또한 생애의 귀한 목표를 이 부활의 진리를 전파하여 한 사람의 영혼이라도 더 구원의 길로 인도하고자 함이 됩니다.
그래서 부활의 진리야말로 참 교회와 성도의 핵심적인 신앙의 내용입니다. 우리 모두 사도가 오늘 제시한 바 그대로를 믿읍시다. 우리 구주 그리스도의 부활의 진실을 목격한 저 수많은 증인들의 한결같은 증언을 그대로 받읍시다. 그 믿음의 선배들이 순교의 피로써 증언한 이 부활의 진리의 깃발을 우리 마음 중심에 깊게 세웁시다. 그리하여 이 세상을 이깁시다. 이 세상의 온갖 부패와 타락의 물결과 맞서서 거룩한 삶으로 역주행을 합시다. 우리의 말과 삶으로써 이 부활의 진리의 깃발이 이 시대에도 모든 사람의 가슴마다 힘차게 펄럭일 수 있도록 부활의 담대한 증인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