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명_신종족 ●지은이_이동순 ●펴낸곳_시와에세이 ●펴낸날_2021. 5. 11
●전체페이지_176쪽 ●ISBN 979-11-86111-94-9 03810/신국판변형(127×206)
●문의_044-863-7652/010-5355-7565 ●값_ 12,000원
현대를 살아가는 신인류 종족들이 던지는 자기 고백서
이동순 시인의 신작시집 『신종족』이 ‘詩와에세이’에서 출간되었다. 이번 시집엔 고립과 단절을 되풀이하는 삶을 영위하는 ‘혼족’이 주제어로 등장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신인류 62개 종족들이 철저히 개인화되어가는 현대와 문명 비판적인 해학을 담고 세상을 향하여 날카로운 칼날을 던진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먹는 밥이 좋아요
이따금 폰도 보고
이런저런 생각도 하고
홀가분하게 즐기는
나만의 혼밥 얼마나 아름다워요
남에게 불필요한 신경 따윈
안 써도 되지요
공연히 나에게 그런 눈길 주지 마세요
이게 타인과의 관계 단절은
결코 아니거든요
난 지금 나만의 고요
나만의 평화를 한껏 누리고 있어요
혼자 사부작사부작
나만의 짜릿한 시간 즐기다가
그것도 지루해지면
슬그머니 코인 노래방 찾아가서
코인 넣고 소리 지르는
혼코노 즐기지요
갑갑하던 속이 시원해져요
아무리 혼밥이라도 화장실 밥은 싫어요
그릇도 분위기도
제법 우아하게 갖춰서 먹지요
아름다운 혼밥
당신도 한번 즐겨보세요
―「혼밥족」 전문
지금 이 시대는 ‘혼밥’ ‘혼술’ 등의 말이 전혀 낯설지 않다. “혼자 설 명절 보내는 혼설족/혼자 캠핑하는 혼캠족/혼자 여행 다니는 혼여족/혼자 공연 보러 가는 혼공족” 등 ‘혼자’가 익숙하다. “세상은 점점/고립이고 단절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누구나 혼자 아닌 적이 없다. “어버니 뱃속에서도 홀로였고/살다가 죽을 때도 혼자다”.(「혼족」) 그러니 “만국의 혼족들이여/단결하라”고 한다. 일찍이 칼 야스퍼스가 지적한 ‘불안’에 떨며 공포감이 강박적으로 특정 대상에 결부되어 행동에 지장을 받는 포비아족, 아이 대신 애완동물을 기르며 사는 맞벌이 부부 딩펫족, 낮에는 자고 밤에 출근하여 일하는 박쥐족, 프리(Free)와 아르바이트(Arbeit)가 결합하여 새로 생겨난 말 프리터족, 악플족, 엄지족 등 지금 여기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는 어쩌면 이동순 시인이 호명하는 ‘신종족’일 것이다.
워낙/취업이 어려우니/먹고 살려고 다니지요/하루종일 알바에서 알바로/뛰어다니며 해가 집니다/생계형 알바/대학 졸업하고 10년째/정규직 일자리 못 구했습니다/부모님과 친구들 보기가/면구스러워요/새벽 5시부터 팔려 가는/막노동 많이 다녀보았지요/정확히 말하면 건축 현장 일용직/날 궂거나 몸 아프면/그냥 쉽니다/주유소 세차장 대형마트/음식점 편의점 패스트푸드점/대리운전 목욕탕 청소/상품 포장이나 행사 예식 도우미/컴퓨터 출장 수리/프린터 토너 바꿔주기/이런 곳에서도/청년층 중장년층 은근히/세대 간 경쟁 갈등 치열하더군요/그냥 이렇게 나날이/줄타기하듯 살아갑니다/나를 측은히 보는 그런 눈길/너무 싫어요
―「프리터족」 전문
소통과 대화를 나눌 수 없는 삶은 불행하다. 코로나19로 엄중한 시기를 건너는 시절, 스마트폰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 사회도 엄청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대가족에서 핵가족, 핵가족에서 ‘혼족’으로 가족 형태 혹은 사회변동이 가속화되고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소용돌이 문화 속에서 그의 ‘풍자시’는 독자로 하여금 배꼽을 쥐게 하거나 눈물이 핑 돌게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집의 맨 마지막에 실린 시 한 편은 세상의 모든 ‘혼족’이 외롭지 않고 “당당하게 함께 사는” 세상이 오기를 기대하는 고요하고도 간절한 기도문으로 읽힌다.
가장 비싼 편의점 도시락을/캔 맥주랑 먹으며 즐기는 시간/아이 둘 낳고/그 두 녀석 잠든 모습 보는 시간/달달한 주전부리 먹으며/내 좋아하는 드라마 시청하는 시간/고요한 오전의 커피 한잔/직장의 바쁜 시간/믹스커피 한잔 뽑아 들고/탕비실에 숨어 홀짝거리는 시간/회사의 프린터로/내 필요한 거 뽑아내는 시간/회사에서 내 노트북과 스마트폰을/완충하는 시간/가까운 산길을 맨발로 걷는 시간/말랑말랑한 아기의 발 만지며/냄새를 맡아보는 시간/개와 고양이의 등을 쓰다듬는 시간/시장 골목에 서서/그토록 먹고 싶었던 닭발을/원 없이 먹는 시간/몹시 추운 날/따뜻하게 데워진 비데에/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는 멍한 시간/클래식 음악 잔잔히 틀어놓고/일하는 시간/내 아코디언 연주가/실수 없이 마무리 앞두고 있는 시간/이 소소하고도 확실한/행복의 시간
―「소확행」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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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례
시인의 말·04
제1부
혼족·13
혼밥족·15
혼술족·17
혼족 스타일·19
포비아족·21
솔로족·23
박쥐족·25
빨대족·27
니트족·29
코쿤족·31
캥거루족·34
제2부
싱크족·39
딩펫족·41
골드앤트족·43
뷰니멀족·45
딩크족·47
웰빈족·49
거품족·51
키덜트족·53
홈루덴스족·55
히키코모리족·57
오팔족·59
미스터리족·61
프리터족·63
제3부
갓수족·67
반디족·69
김포족·71
베짱이족·73
메뚜기족·75
유턴족·78
노노족·80
점오배족·82
둥지족·84
면창족·86
새벽닭족·88
제4부
눈팅족·93
몰카족·95
파라치족·97
악플족·99
철퍼덕족·101
된장녀족·103
고스족·105
폭주족·107
좀비족·109
오렌지족·111
댓글족·113
먹튀족·115
압구정 풍경·117
스킨헤드족·119
스몸비족·121
제5부
쉼포족·125
통크족·127
프리터족·129
에스컬레이터족·131
엄지족·133
퀴터족·135
펌킨족·137
귀차니스트족·139
줌마렐라족·141
한류족·143
이불 밖은 위험해·145
소확행·146
시인의 산문·149
■ 시집 속의 시 한 편
오늘 한잔하세
딱히 연락할 곳도 없고
그냥 심심해서
술병과 잔 갖고 와 앉았네
한 손에 술병 들고
빈 잔 바라보네
텅 빈 내 속이 저 잔과 닮았구나
채우면 줄곧 비워지니
나는 이날까지 비우려고 살아왔구나
빈 잔에 그득히 술 따르네
내가 흘린 눈물이
모두 잔 속에 찰랑찰랑 고였네
혼자 달밤의 꽃밭에서
그림자랑 권커니 잣거니 마셨다는
옛 시인 생각하네
그의 가슴속엔
풍류보다 슬픔으로 가득했으리
냉큼 잔 들어
내 눈물 얼른 마셔버리네
잔 속에 슬픔이 담긴 걸
허용할 수가 없네
천천히 취기가 오르네
또 빈 잔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는 다시 넘치도록
술 따르네
―「혼술족」 전문
■ 시인의 말
여러 해 전 어느 TV 프로그램의 취재와 녹화를 다니던 시절의 일이다. 경북 청송의 어느 산골마을에 갔더니 불과 세 사람만 살고 있었다. 60대, 70대, 80대 할머니 주민 모두 셋만 달랑 살아가는 그곳 지명은 ‘너구마을’이었다. 셋 중에 가장 젊은 60대 여성이 마을 이장이라고 했다. 너무 외롭고 쓸쓸해서 점심 한 끼는 같이 모여 식사를 한다고 했다. 식사를 마치고 각각 자기 집으로 돌아가면 마을은 괴괴하기 그지없다. 전혀 인적이 느껴지지 않는다. 예전엔 제법 수십 가구가 살았다고 하는데 점점 퇴락해져서 이젠 세 사람만 남아 있는 마을이 되고 말았다. 하지만 이것도 몇 해 남지 않았다. 세 할머니들이 차례로 세상을 떠나게 되면 ‘너구마을’의 미래는 장차 어찌 될 것인가? 나는 그 마을에서 아주 상징적 실감으로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마치 감전된 듯 오싹해졌다. 왜냐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터전과 환경이란 것도 이 ‘너구마을’의 경로를 그대로 뒤따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사람의 마을에 사람이 없는 것이다. 사람의 마을에 사람 냄새 나는 사람이 없거나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겉모습은 사람과 같은데 생각과 행동이 전혀 다른 낯선 사람들이 사람의 마을에 들어와 살고 있다. 그들 사이로 들어가 일부러 어울려보지만 나는 곧 외계인이 되고 만다. 소통과 대화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낯설기 그지없는 군상들이 마을과 거리를 가득 채우고 있다. 나는 그들을 ‘신종족’이라고 부른다. 사람의 마을에 예전엔 못 보던 ‘신종족’이 산다. 가까이에서 오래도록 응시하며 나는 그들의 풍경을 시의 밑그림으로 담아본다.
2021년 봄
이동순
■ 표4(약평)
지금은 인류문명의 대전환기다. 코로나19와 자본주의, 스마트폰이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사회도 엄청난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대가족에서 핵가족, 핵가족에서 ‘혼족’으로 가족 형태 혹은 사회변동이 가속화되고 있다. 상상을 초월하는 소용돌이 문화 속에서 이동순 시인의 시집은 주목을 요한다. 그의 ‘풍자시’는 독자로 하여금 배꼽을 쥐게 하거나 눈물이 핑 돌게 한다.
고립과 단절을 되풀이하는 삶을 영위하는 ‘혼족’은 사실상 이번 시집의 키워드로 등장한다. “모두가 혼자 아닌 척/잠시 모여 있을 뿐/뿔뿔이 흩어져 혼자가 된다”는 ‘혼족’을 가리켜 “혼자 살면서도/외로움 타지 않고/씩씩하게 당당하게 살아”간다고 시인 특유의 ‘부드러운 패러독스’를 발휘하여 “만국의 혼족들이여/단결하라”고 격려 아닌 격려(?)의 미학으로 펀치를 날린다. 혼자 밥을 먹는 혼밥족, 일찍이 칼 야스퍼스가 지적한 ‘불안’에 떨기만 하는 포비아족, 낮에는 자고 밤에 출근하여 일하는 박쥐족, 자녀를 낳지 않고 애완동물하고 사는 딩크족 부부,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락하여 알바 인생이 된 프리터족, “이불 밖은 위험해”라고 말하며 사는 ‘방콕족’ 등이 이동순 시인이 노래하는 ‘신종족’이다. 그의 ‘혼족’이 외롭지 않고 ‘당당하게 함께 사는’ 세상이 오기를 기대한다._김준태(시인)
이동순 시인의 색소폰 연주가 가요사를 섭렵하며 길 위에 선다. 길 위에는 사람들이 있다. 그의 시에는 사람 냄새가 난다. 그가 어디에 서 있든 민초들의 삶과 생각들이 얽혀진다. 등단 이후 줄곧 그랬다. 늘 낮은 이웃들 곁에 선 모습이다. 시선이 줄곧 낮은 곳을 향해 있음으로 가능한 일이다. 이동순 시인은 인간을 탐색한다. 이 시집에서도 사회인류학적 관점으로 나름대로 신인류를 분류한다. 신인류는 62개 종족들이 산다. 시편들은 철저히 개인화되어가는 현대 신인류 종족들이 던지는 자기 고백서다. 문명 비판적인 해학을 담고 세상을 향하여 날카로운 칼날을 던진다. 나는 어느 종족에 속하는지 궁금하다. 나는 오리무중 종족이다. 그대는?
이동순 시인은 그의 활동 영역 어디에다 초점을 맞추어도 깊고 해박한 전문 식견은 그의 집착을 돋보이게 한다. 그의 아코디언 선율을 따라 흐르는 시인의 노래가 듣고 싶은 봄밤이다._강영환(시인)
■ 이동순
경북 김천에서 태어나 경북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1973년 동아일보신춘문예로 시, 1989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개밥풀』, 『물의 노래』, 『지금 그리운 사람은』, 『좀비에 관한 연구』, 『강제이주열차』, 『독도의 푸른 밤』 등과 평론집 『민족시의 정신사』, 『시정신을 찾아서』, 『한국인의 세대별 문학의식』을 비롯해 한국가요사를 다룬 『번지 없는 주막』, 『마음의 자유천지』, 민족서사시 『홍범도』(전 5부작 10권)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또한 분단시대 매몰시인들의 작품을 수집 정리하여 『백석 시전집』, 『조벽암 시전집』, 『박세영 시전집』 등을 엮었다. 신동엽문학상, 김삿갓문학상, 시와시학상, 정지용문학상 등을 수상했으며 현재 영남대 명예교수 및 계명문화대 특임교수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