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기소침해진 그대를 위하여
김 상 립
악성질환으로 2년에 걸쳐 체중이 거의 30%가까이 줄었다. 그렇다고 쉽게 회복될 기미도 없다. 저 체중에 수반된 여러 문제가 있지만 다 제쳐두고라도 내 목에 관한 얘기만은 남겨두려 한다. 현재 겉보기로도 내 목이 가장 약점인 동시에 나만의 불편함도 크다. 예하면 내가 암만 신경 써서 옷을 차려 입고 나서봐도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게 목이다. 목 사이즈가 유별나게 줄어 평소 셔스 사이즈는 105호를 입었었는데 이젠 90이 꼭 맞다. 그러나 소매기장이 짧아 별수없이 95를 입어야 하니 목이 좀 헐렁하다. 제 몸에 맞는 옷 하나 골라 입을 수 없는 내 신세다.
지금 내 목은 목줄기만 살아 남았다. 마치 지상에 돌출된 고목 뿌리를 보는듯하여 가슴 아프다. 또 목둘레가 확 줄고 나니 목이 더 길어 보이고, 설사 긴 티를 입어도 잘 가려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어느 가수처럼 계절을 가리지 않고 흰 목수건을 두르고 다니거나 옷을 주문 제작하여 입을 처지는 아니다. 더러는 여러 동인들과 단체 사진이라도 찍어놓으면 유달리 내 목에 눈이 간다. 행사가 끝나고 해당 카페에 올라오는 사진을 보면 회원들에게 민망함이 앞선다. 체격도 왜소해 보이지만 목이 길고 가는 데다 머리는 허연 영감 하나가 아름다운 문인들 사이에 양복 입은 허수아비 되어 끼여 있으니 영 볼품이 없다. 나는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 사진 찍을 땐 슬쩍 빠지려고 요령껏 숨지만, 꼭 누군가가 나를 찾아내어 억지로라도 카메라 앞에 불러 세운다. 나는 하나도 즐겁지 않은 데 모두가‘김치’하며 밝게 웃는다. 살다 보면 상대방을 봐준다는 게 당사자에게 되려 불편함을 줄 때도 있는데, 일상에서는 이런 게 오히려 배려하는 행위로 통하는 것 같다.
뿐이랴? 이제는 목 안의 호흡관련 근육마저 약해져 버렸는지 호흡이 많이 짧아져 불편함이 말이 아니다. 호흡은 바로 생명과 직결되지 않는가? 우선 체력을 유지하는 최소한의 운동을 하려 해도 지장이 생기니 매사 서두르지 않고 조심조심하며 살아야 한다. 비탈진 산길대신 동내 골목길을 천천히 걷고, 단풍을 보러 다니는 대신 길 가에 쌓인 낙엽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여기에 더하여 삼키는 힘마저 줄었는지 무엇이던 목에 넘기기에 애로가 있다. 의사는 나보고 씹는 것을 50회 이상 100회를 목표로 하면, 밥에서 단맛이 나서 입맛을 돋우고 소화에도 도움을 준다고 권유한다. 그러나 씹는 회수를 늘린다는 게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치아나 입 주변의 근육상태도 함께 따라주어야 가능한 일이다. 어쩌지 못해 천천히 오래 씹다 보니 자연 식사 시간이 길어진다. 동석 자들은 벌써 식사를 끝냈는데, 나는 아직 반도 못 먹었으니 미안한 마음뿐이다.
먹는 약도 여러 종류인데 캡슐로 만들어진 것이나 굵은 알약은 잘 넘어가지 않는다. 물을 한 컵씩 들여 마셔도 목에 걸려있는 경우가 허다하니 약 먹기가 겁나다. 거기다 목안이 쉬이 아프기도 하고, 목이 잠기는 일도 잦고, 자주 목도 마르다. 또 자고 일어나면 말이 잘 나오지 않고, 워밍업을 해야 말문이 열린다. 지인들과 대화만 길어져도 곧장 갈라진 소리가 나오니, 즐겁게 담소를 나누던 지난 날들이 그립고 아쉽다. 또 나는 젊었을 때부터 노래를 좋아하던 터라 나이 들어 혹여 노래할 목소리를 잃을까 봐, 퇴직하고 난 후 시니어합창단에 입회하여 열심히 다녔다. 코로나가 한창 난리를 쳐 합창단이 해체될 때까지 꼭 10년을 다녔다. 노래를 하지 못하니 그간에 쌓였던 악보나 가사 집, 노래 해설자료 등 합창관련자료를 정리하여 따로 치워 버렸지만, 허전한 마음 가눌 수가 없다.
그러나 만약 내 목 부위가 건강한 사람에게 가서 붙었다면 이런 수모를 당하지 않아도 되었을 터인데, 생각하면 몹시 짠하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하얀셔스에 붉은 색 넥타이를 매고 당당하게 나다녔던 기억을 떠올리면 그도 심난할 터인데. 자신을 밖으로 노출시키지 않으려고 애쓰는 내 심보를 알고는 꽤나 의기소침해진 것 같다. 때로는 제 멋대로 목을 숙이지를 않나, 외로 꼬고 딴청을 부리는 저항도 한다. 내 몸의 못난 부분일수록 더 아끼고 더 사랑해야 하는 것을 내가 큰 실수를 범했다. 그렇다면 이대로 좌시할 수는 없다. 나는 거울 앞에서 측은해 보이는 그를 이리저리 비춰가며 한참을 응시한다. 그를 위해 무엇을 해줄까?
그래서 시작한 게 목운동이다. 틈만 나면 장소를 가리지 않고 요령껏 열심히 한다. 그런다고 목이 굵어질 일이야 생기겠냐 만, 남아있는 목 힘이라도 잃지 말자는 뜻이다. 내 몸에서 제일 무거운 부위인 머리를 평생 받치고 다니느라 무진 힘 들었을 텐데, 힘까지 빠지고 나면 어쩌란 말이냐? 또 그의 컨디션을 위해 내가 미지근한 물을 작심하고 마시기 시작했다. 아침 눈뜨면 부엌으로 달려가 물을 끓여 식혀서 마신다. 밥 먹고 1시간쯤 후에도 마시고 조금 움직이고 난 후에도 마신다. 항상 목이 마르지 않고 젖어 있도록 하려는 계산이다. 그리고 소리내기 연습도 하고 있다. 하루 온 종일 혼자 있는 시간은 많고,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머무르니 대화할 기회가 없다. 그렇다고 대 놓고 아는 사람에게 전화 걸어 횡설수설하려 해도 내 군번에서는 취할 태도가 아니다. 그래서 책을 읽거나 원고를 추고하면서 분명한 발음으로 작게 소리 내어 읽는다. 누가 문 밖에서 듣는다면 저 양반한테 치매가 찾아왔나 할지 모르겠지만, 혼자 열심히 웅얼거린다.
나는 그를 좀 더 따뜻하게 끌어안고 더 많이 사랑하기로 했다. 잠 잘 때도 춥지 않게 긴 옷이나 적당한 목도리를 사용하고, 외출 시에도, 동네 골목길을 걸어도 목에는 꼭 등산용 목 수건이라도 감고 다닌다. 머리맡에 간단한 난방기구를 가져다 놓고, 새벽기운이 차게 느껴지면 잠시라도 그를 위한 난방을 따로 한다. 세수를 하면서도 새삼 그를 자주 어루만진다. 크림도 바르고 마사지도 해준다. 거울에서 마주치기만 하면 사랑의 눈빛도 거침없이 쏜다. 이런 내 성의를 봐서라도 그가 힘을 좀 내주었으면 좋겠다. 부디 당당하고 꿋꿋하게 서다오. 사랑한다 그대를! (2024년 11월)
첫댓글 남평 선생님 글 꼭~~꼭~~ 잘 읽었습니다.
제 기억속에는 남평 선생님 모습은 이렇습니다.
2009년도 수필가협회 입회해서 12월 총회 때 본 모습이 처음입니다.
어느 곳 하나도 빠지지 않은 멋있고 품위 있으신 분이었지요.
고급진 반코트에 베래모 그리고 붉은 목도리를 하신 건강한 분이셨습니다.
저는 그 모습에 반했지요.
사업 하면서 우리나라 곳곳을 다니면서도 선생님 처럼 멋있는 분 만나지 못했거든요.^*^
남평 선생님 힘 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