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죽전 촬영
몇 해 전에 국민은행이 상호를 KB로 일제히 바꿨다.
자식이 매달 보내주는 용돈을 은행에서 찾아 쓰던 할머니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진 국민은행
을 찾느라 몇 시간을 헤맸다는 일화는 언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이
다.
SH, LH, NH······ 이런 공기업 영어 명칭에 대해 국민 71%는 이 기관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최근 들어서는 농협이 NH로 바꾸었다
영문자로 표시해야 기업의 가치가 높아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카센터, 영양센터, 이삿짐센터, 클린센터, 서비스센터, 고객센터, 문화센터, 자활센터, 등 센
터라는 말이 이렇게 널리 쓰이니까 동사무소라는 이름을 버리고
주민센터로 바꾸어 행정기관 이름에까지 낯선 외래어·외국어가 자리를 잡았다.
행정기관에서 이러하니 노숙인이나 부랑인을 홈리스라는 말로 바꾸어 써도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동네 아파트 주차장은 Parking으로 표시되어 있고 출입구에는 IN과 OUT이 버젓이 새겨져 있
다.
아파트의 재활용품을 분리 배출하는 곳에는 Recycle center라고 표시되어 있다.
그렇게 하면 집값이 올라간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아파트 이름을 어렵고 낯선 외국어로 짓는 까닭이 시어머니가 찾아오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우스개가 있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기업이나 공공기관 이름을 영문자 약자로 앞다투어 고치는 곳이 점점
늘고 있다.
외국인도 알아볼 수 없고 우리 국민도 무슨 뜻인지 모르는 표기를 자꾸만 쓰는 까닭은 우리
스스로 서양식 이름을 은근히 선호하면서 우리말의 가치를 낮게 매기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잔치-연회-파티
아내-처-와이프
소젖-우유-밀크
알몸-나체-누드 등의 단어에 우리가 어떤 가치를 매기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우리 주변에 퍼진 서양말투성이 이름을 두고 누구를 탓하기에 앞서 우리 스스로 이런 이름을
선호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