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되돌릴 수는 없지만, 구소련 붕괴 직후인 1994년 12월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체결된 '부다페스트 양해각서'가 3년차에 접어든 우크라이나 전쟁의 먼 원인 중 하나라는 분석이 오래 전에 나왔다. 우크라이나가 이 양해각서를 근거로 카자흐스탄, 벨라루스와 함께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고 핵무기를 포기하는 대신, 미국과 영국, 러시아 등으로부터 주권과 안보, 영토적 통합성을 보장받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 양해각서가 없었다면, 우크라이나가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면, 러시아의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은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는 점에서다.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의 체결을 주도한 이는 빌 클린턴 당시 미국 대통령(재임:1993년 1월 20일~2001년 1월 20일)이다. 그는 지난해 4월 4일 아일랜드 공영방송 RTE와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가 핵무기 포기에 동의하도록 설득했기 때문에, (이번 전쟁에) 개인적인 책임을 느낀다”며 “우크라이나가 계속 핵무기를 보유했더라면, 러시아가 이처럼 어리석고 위험한 일을 벌이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000년 러시아 국가두마(하원) 연단에 오른 클린턴 대통령/사진출처:위키피디아
그는 또 “우크라이나는 핵을 포기하는 걸 두려워했다"며 "그것이 러시아의 팽창주의로부터 자신들을 지킬 유일한 방편이었기 때문”이라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푸틴 대통령(체결 당시는 대통령도 아니고,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청에 적을 두고 있었다. 두 정상의 임기가 겹치는 기간은 2000년 1월~2001년 1월/편집자)이 이 협정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었다"며 "우크라이나는 중요한 나라이기 때문에 나는 이에 대해 괴로움을 느낀다”고 자책했다.
'부다페스트 양해각서'의 체결을 추진하던 당시, 미국과 러시아, 미국과 우크라이나 관계를 보여주는 미국의 외교 문건이 이제사 공개됐다. 미국 국립문서보관소에 보관된 1994년의 클린턴 미국-옐친 러시아 대통령, 클린턴 미국-크라프추크 우크라이나 대통령간의 대화 문서가 기밀 해제된 것이다. 1994년 1월 미-러, 미-우크라 정상들 간의 대화인 만큼, 클린턴 대통령이 양국에 '부다페스트 양해 각서' 체결을 설득하던 시절로 추측된다.
기밀 해제된 문서를 보면 클린턴 대통령은 1994년 1월 12일 키예프(키이우)에서 레오니드 크라프추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을 만난 뒤 이튿날(13일) 모스크바에서 옐친 대통령과 자리를 함께 했다.
클린턴 미 대통령과 크라프추크 우크라이나 대통령/사진출처:스트라나.ua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는 26일 기밀 해제된 문건을 인용, 크라프추크 대통령은 1994년 1월 12일 키예프 보리스필 공항에서 클린턴 대통령을 만나 "핵군축에 반대하는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들을 비난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핵무기 문제로 대통령을 반대하는 민족주의자들도 있다"며 "그들에게 세를 넓힐 기회를 주어서는 안된다. 그들은 경솔하게 행동할 준비가 되어 있고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공항에서 빵과 소금으로 클린턴 대통령을 맞이한 우크라이나 소녀들을 소개하면서 "빵과 소금, 어린 소녀로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 우리의 전통"이라며 "우크라이나 여성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고도 했다.
이튿날 클린턴 대통령을 만난 옐친 대통령은 러시아의 나토(NATO) 가입을 촉구했지만, 미국은 이를 지지하지 않았다고 스트라나.ua는 전했다.
클린턴 미 대통령과 옐친 러시아 대통령/사진출처:스트라나.ua
해제된 기밀 문서에 따르면 두 정상은 1994년 1월 13일(혹은 14일, 모스크바와 워싱턴 시차/편집자) 모스크바 외곽 노보-오가료보 다차(현재는 대통령 관저라고 부름)에서 만찬 회동했다. 이 자리에서 옐친 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에게 “러시아가 나토에 가입하는 (바르샤바조약 기구 회원국 중) 첫 번째 국가가 되어야 하고, 동유럽과 중부 유럽의 국가들이 그 뒤를 따라야 한다"고 제안했다.
옐친 대통령은 또 '세계 안보를 보장하고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미국과 러시아, 유럽 간에 일종의 '카르텔'(국가연합)을 제안했으나, 클린턴 대통령의 반응은 '매우 조심스러웠다'고 문서는 전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러시아인의 위대함을 치켜세웠을 뿐, (옐친이 제안한) 안보 카르텔이나 러시아의 나토 회원 자격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양국 관계가 의도된 방향으로 계속 나아가면, '유럽에 100년 이상의 평화를 보장할 수 있다'"며 "양국에게는 특별한 기회가 열렸다"고 말했다. 옐친 대통령에게 양국간 '신뢰 관계'를 강조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문건에는 또 클린턴 대통령이 만찬 전날 체코가 '만약이 아닌, 언제 동맹에 가입할 것'이라는 한 '프라하 발언'에 옐친 대통령이 충격을 받았다고 쓴 러시아 외무장관의 편지 내용도 들어 있다. 나토 확장은 옐친 대통령의 바람과 달리 그해(1994년) 폴란드와 체코, 헝가리가 나토에 가입하면서 현실화했다.
러시아 국영 리아노보스티 통신에 따르면 모스크바는 그동안 유럽에서 군사 블록(나토)의 군대가 증강되는 것에 대해 반복적으로 우려를 표명했으며, 러시아는 누구에게도 위협을 가하지 않지만 자국의 이익을 위협하는 잠재적인 활동을 무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2022년 4월 더 아틀랙틱(The Atlantic)에 쓴 칼럼에서 "옐친 대통령과 그의 후임자인 푸틴 대통령에게 러시아가 나토에 가입할 것을 제안했다"며 "우리는 그동안 러시아의 가입을 위해 나토의 문을 열어 두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