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8일 오후,손주 유치원 하원을 봐주기 서울에 가는 길에, 경희대학과 천장산을 찾아보기로 했다.
이곳을 찾게된 동기는 3주 전 청량리 천장사 탐방길에 경희대와 천장산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떠올랐던 때문이었고,이곳을 가는길에 얼마전 천안 구룡사를 갔을때,법화종 본산인 법화정사가 있다는 사실을 전해들었기 때문이다.
처음 생각은 경희대에서 부터 출발코자 했다가, 생각이 바뀌어 법화정사를 먼저 가보기로 순서가 바꾸어졌고...
그 덕분에 법화정사에서 점심공양 대접을 받기도 했지만,그렇게 출발한게 여러 곳을 돌아볼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법화정사는 지하철 1호선 제기역 1번출구로 나가면, 곧장 사찰과 마추치게 된다.
천안 구룡사를 가서도 그 규모에 놀랍다고 생각했는데,이곳 법화정사 역시 대단한 규모라는데 놀랍다는 생각을 떨쳐버릴수 없었다..
사찰 내부를 두루 돌아보고,바로 인근에 있다는 선릉단을 찾아가 보았다.
그런후, 지하철을 타고 회기역으로 달려 경희대를 본후 천장산을 가려는데,도대체 길을 찾지 못하고 엄청 고생을 해야만 했다.
나중에야 안 일이었지만,산행할 수 있는 길을, 곳곳을 막아 놓아 길이 완전 차단되어 있었던 때문이다.
헤매이며 천장산을 찾아다니다가,전혀 알지 못했던 의릉과 종합 예술학교도 만나보았고,삼태기 숲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반면 돌곶이라는 지명이며,내일 찾아보기로 마음먹은 진각종이란 거대한 사찰이 있다는 사실도 새삼스레 알았던 값진여행이었다.
법화정사
본관 지하 2층,지상 9층에 달하는 거대한 건물이 대단하게 느껴왔다.
건물 대리석 벽면에는 온통 금색의 볍화경 7만자가 새겨져 있기도 하고.....
우측에는 천안 구룡사 사진이 걸려있기도.....
극락보전
대웅보전
머릿동에 2014.8.22 사용승인일이라 기록되어 있는 걸로 보아 극히 최근에 세워진 건물이었다.
선농단
선농단은 왕이 농사의 소중함을 백성들에게 알리고,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중국 고대 전설에서 농사를 관장했던 ‘신농씨’와 ‘후직씨’에게 제사(선농제)를 지냈던 곳이다. 해마다 경칩이 지난 후에 제사를 올렸는데, 제사가 끝나면 왕이 백성들에게 농사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친히 소를 끌고 나가 밭을 가는 시범을 보였다고 한다.
왕은 농사를 지어본 경험이 없기에, 농민들 중에서 나이가 많고 복이 많은 사람을 뽑아 왕을 돕게 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대한민국 최대의 향나무로 수령 600년이란다.
경희대학교 정문
본관 건물과 평화의 전당(후면건물)
천장산으로 연결되는 숲길
멋진 구름다리가 있기도.....
구름다리 이름은 화성교였다.
평화의 전당
경희대 후문
이곳을 빠져나와 천장산을 찾아 가는데 알려주는 사람도 제대로 몰라 언덕길을 왕복하기도 했고,먼길을 헤매기도 하는고생을 치뤘다.
그러다가 만난 것이 의릉이였다.
의릉 / 경종과 선의왕후의 능
의릉은 제20대 경종(1688~1724)과 계비 선의왕후(1705~1730) 어 씨의 능으로 서울시 성북구 석관동에 있다. 경종의 아버지는 숙종이며 어머니는 한국 역사에 큰 파란을 일으킨 희빈 장 씨다.
경종을 비운의 왕이라 부르는데 생애가 어릴 적부터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경종은 폐비 장희빈의 소생인 데다 정치적으로는 남인계에 속하기 때문에 정치적 실세였던 서인들의 극렬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러나 숙종은 신하들의 벌떼 같은 항의에도 경종을 세자에 책봉했다. 이 때문에 송시열은 사사되었고 서인은 실각했다.
희빈 장 씨가 숙종에게 총애받던 시절 경종은 총명함이 뛰어난 세자로 칭송받았고 숙종의 극진한 배려 속에서 성장했다. 숙종은 학문에 힘쓰는 것을 중히 여겨 세자는 4세 때 『천자문』을 익혔고 8세 때 성균관 입학례를 치렀다. 실록은 "세자가 입학례를 행하는데 글을 읽는 음성이 크고 맑아서 대신들이 서로 축하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라고 전한다. 그런데 그가 14세 되던 해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난다
의릉을 돌아보는 중에 돌곶이역에서 올라왔다는 동갑내기를 만나 동행하여 천장산을 오르게 되었는데.....
돌곶이란 오늘날 석관동 동명이 되었으며, 석관동은 돌곶이를 음역하여 한자명으로 표기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하며, 현재도 옛 이름 돌곶이를 그대로 사용하기도 한다고 한다.
우이천이 이곳을 흐르면서 지형이 곶이 되어 물이 돌아 흐르면서 돌곶이라는 땅이름이 생겼다. 또 다른 얘기로는 마을 동쪽에 있는 천장산의 한 줄기가 검정돌을 꽂아 놓은, 즉 수수팥떡이나 경단을 꼬지에 꿰어 놓은 것 같이 형성되었기 때문에 돌곶이마을이 되었다는 얘기도 있는데, 이는 돌곶이를 석관동이라고 한자명으로 쓰고 나서 한자의 뜻을 해석한 데서 생긴 얘기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