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농노를 외면한 수도원의 잉여 농산물
BC7,000년경부터 인구가 늘어나자 수렵과 채집만으로는 배를 채우기가 힘들어졌다. 이때 기름진 땅인 티그리스강과 유프라테스강 사이(메소포타미아)에서 농업혁명이 일어났다. 인구 폭증과 유입으로 도시가 세워졌고, 도시가 세워지자 도시 간의 교역이 일어났다. 교역의 주인공은 바로 “잉여 농산물”이었다.
중세 수도원은 왕실로부터 “숲”을 증여받았고, 수도원은 그 숲을 농지로 만들었다. 농지가 늘어나자 수도원 주변으로 농노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10세기 말에는 수백만 헥타르의 황무지와 숲과 늪지대가 농경지로 바뀌었다. 수도원은 왕으로부터 製粉 독점권까지 받아냈다. 이때부터 수도원에는 잉여 곡물이 넘쳐나기 시작했다.
예수님은 산상수훈(마6:33)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義를 구하라”
예수님께서 “그의 義를 구하라”고 하셨을 때 군중들은 “그의 義”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들었다. “그의 義”는 체다카(צְדָקָה 義)였다. 유대인들이 중요시하는 것 두 가지가 있는네, 첫째는 쉐마(신6:4~9)이고 둘째는 체다카(신26:12~15)다.
오늘날 미국인들은 평균 3%의 기부금을 내지만 유대인들은 10%의 기부금을 국가에 낸다. 이 기부금을 “체다카”라고 하는데 “네 주변에 배고파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라”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왔다.
이스라엘에서는 체다카를 안 내면 범법자로 처벌을 받는다. 그래서 극빈자도 내어야 한다. 그 대신 국가에서 거둬들인 체다카에서 극빈자들의 생활비를 지원해준다. 수술비가 없는 자들에게는 수술비를, 학비가 없는 학생에게는 학비를 대준다. 체다카로 즉 10%의 기부금으로 義로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수도원은 잉여 농산물을 배고픈 농노들에게 논아주지 않았다. 그 대신 잉여 농산물로 술을 만들었다. 즉 맥주를 만들었다. 그런데 맥주는 쉽게 상했기 때문에 상하지 않도록 살균제를 찾았는데 그게 뽕나뭇과의 넝쿨인 호프(hop)였다.
이렇게 생산된 맥주는 오크통에 넣어 서늘한 동굴 속에 보관하였고, 수도사들은 배가 출출할 때마다 영양 간식으로 맥주를 마셨다.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로 자신을 단련해야 할 수도사들이 배고픈 농노들을 외면하고 맥주를 즐겼으니 어찌 교회를 정화시킬 수 있었겠는가?
1,500년대에 들어서자 유럽 곳곳에서 종교개혁의 소리가 터져 나왔고 그 결과로 프랑스 혁명까지 일어났다. 곪아 터진 것이다.
세상의 “잉여 농산물”은 도시문화를 발전시켰지만, 수도원의 “잉여 농산물”은 종교개혁과 혁명을 불러왔다.
p.s.
지금도 독일의 유명 맥주는 수도원에서 생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