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치의 꿈 / 김희숙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없다. 온 세계가 흑단색이다. 집어등 빛이 검정색 비단에 수를 놓듯 물위에 떠 일렁인다. 그 빛이 적군을 항구 밖으로 유인하듯 바다 생물들을 꾀어낸다. 먹이를 쫒는 풀치의 몸짓이 예리한 칼날처럼 날카로운 선을 그리며 물을 가른다. 뼈대를 꼿꼿이 세운 풀치 떼가 밤배의 불빛 따라 육지로 나갈 다리를 얻고 싶은 꿈을 꾸는 것 같다. 그 꿈은 천상의 별처럼 멀고 아득하다. 대열에서 떨어진 풀치의 유영은 세상을 배회하는 낙오자들을 생각나게 한다.
바다 속으로 낚시 줄을 내린다. 밤바다는 거대한 비밀을 감추고 숨을 죽인다. 가끔 초릿대가 흔들린다. 줄을 잡으면 꿈을 이룰 수 있을지 망설이는 것처럼 먹이만 똑똑 떼어가며 신경전을 벌인다. 갑자기 야광찌가 바다로 쑥 끌려 들어간다. 먹이의 강한 유혹을 떨치지 못한 걸까, 덜컥 바늘을 물었다. 미역 잎 사이로 숨고 바위 틈으로 바장거리던 풀치들이 줄을 타고 하나 둘 올라온다. 지느러미가 깃발 펄럭이듯 허공에서 너울댄다. 굽이치는 풀치의 모습이 은빛살의 부채춤이라도 추는 것 같다. 화르륵, 하늘을 나는가 싶더니 이내 자신의 목을 조이는 뜨거운 손을 느끼고서야 이빨을 세워 전투 자세로 반항해 보지만 녀석은 이미 독 안에 든 쥐다. 후회와 원망 가득한 풀치 눈동자에 붉은 기가 차오른다. 순간, 한 사람의 눈빛이 겹쳐진다.
동네에서 한량이라 불리던 김씨가 있었다. 그는 오랫동안 낚시를 낙으로 삼았다. 날씨 좋은 날이면 논밭 일이며 집안 살림은 처에게 맡겨 두고 낡은 자전거를 타고 나갔다. 자전거 뒷자리에 민물 낚싯대 두 개를 싣고 가까운 저수지를 찾아다녔다. 그러나 물고기를 잡아온 날이 별로 없었다. 겨우 서너 마리 붕어를 내어놓거나 그마저도 아예 없는 날이 더 많았다. 그는 빈 낚싯대를 드리우고 물가에 앉아 무엇을 생각했을까.
김씨는 영민하다는 소리를 듣고 자랐다. 상급학교 교육은 받지 못했지만 서당을 다니며 한학까지 익혔다. 책장에는 무정, 상록수, 삼국지 등 세로글로 인쇄된 소설류들도 있었다. 그의 딸은 책들을 몰래 읽으며 가끔 아버지에게도 어떤 포부나 꿈이라는 것이 있지 않을까 어렴풋이 떠올렸을 뿐이다. 스피커 볼륨을 한껏 키워 동네를 들썩이게 하던 날에는 김씨의 기분이 제법 맑고 명랑해 보였다. 그런 날에는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책임감 강한 남자처럼 행동했고 꿈꾸는 소년처럼 앞날에 대한 기대를 내비치기도 했다.
김씨가 자랄 때, 교육은 맏이에게 집중되었다. 장남이 잘 되어야 집안이 일어난다는 그의 아버지 의중이었다. 또 형제 중 누군가는 부모를 모시며 농사를 지어야 했기에 막내인 김씨에게 그 짐이 지워졌다. 공부할 기회를 놓치고 대처로 나갈 수조차 없게 되자 절망하였고 삶에 뜻을 두지 않은 채 이방인처럼 겉돌았다. 술에 취하지 않은 날이 드물었다. 가슴에 맺힌 응어리는 결혼 후 애꿎은 아내와 자식들에게 쏟아졌다. 부모를 향해 맹렬히 끓어오르던 화를 가정폭력으로 풀었다. 집안에서 식솔이 자신을 막고 있는 벽이라도 되는 양 무자비하게 주먹을 휘둘렀다. 젊은 아내는 시들어갔고 어린 자식들은 멍들었으나 주위 사람들은 무심했다.
그의 딸은 아버지에 대한 미움과 증오심으로 진저리가 나서 한 인간으로서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조차 아예 못했다. 십 년 동안 갈고리 없는 낚시를 하던 강태공처럼 김씨도 때가 오기를 기다렸는지, 혹은 깊은 물속에 잠겨있는 물고기처럼 앞이 보이지 않는 희망을 저수지에 풀어놓고 있었는지 아버지의 심사에는 관심을 가질 겨를이 없었다.
풀치 눈동자와 마주한다. 김씨도 한때는 꿈을 품었으나 현실에 막혀 모든 것을 체념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의 피해자이진 않았을까. 풀치가 육지에 닿는 꿈을 꾸듯이 김씨도 낚싯대를 드리우고 수렁 같은 현실을 박차고 나오는 꿈을 꾸고 있진 않았는지. 아이스박스 안으로 내던져진 풀치가 마지막 생존의 몸부림을 치다 포기하듯이 그의 삶 또한 현실을 부정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 채 사그라져간 것은 아닌지 애잔한 마음이 밀려든다.
풀치의 짧은 꿈처럼 김씨에게도 꿈꾸는 시간조차 길게 허락되지 않았다. 언젠가부터 붉은 독기 가득했던 눈동자가 온순한 검은 빛으로 변해갔다. 참담한 현실을 맞서기보다 회피를 선택했는지 낚시마저도 넓은 바다로 나가지 않은 채 좁은 저수지만 맴돌았다. 그러던 그가 키워야할 어린 자식들을 남겨 두고 너무나 이른 생을 마감했다. 병든 마음의 치료도 거부한 채 생명의 불씨를 스스로 소진시켰다. 가족들은 입관하지 않은 채 누워있는 싸늘한 몸을 흔들며 원망의 말만 목이 아프도록 퍼부었다. 땅위로 오르고 싶던 풀치의 꿈이 물거품으로 사라졌듯이 세상 밖으로 떠나고자 바라던 김씨의 꿈도 영원한 미생으로 주저앉았다.
훌쩍 많은 시간이 지나서야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책을 읽는다고 내용을 다 이해하지 못하며 사람을 만난다고 그 사람을 제대로 알지 못할 때가 많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 어머니로 불리우던 이들의 꿈과 생을 자식 입장에서 어찌 감히 헤아려볼 생각조차 하겠는가. 그러다 그들의 삶이 가슴으로 파고드는 순간이 있다. 풀치의 붉은 눈동자에서 김씨의 좌절된 삶을 가늠했듯이 살다보면 문득 어떤 것들이 이해되는 계기가 오기도 한다. 알았더라도 어쩔 수 없는 상황들이긴 해도.
풀치가 지상으로 오르는 꿈이 아닌 대양을 누비는 꿈을 꾸었더라면 건실한 갈치로 성장했을까. 그의 딸은 여전히 아버지라는 한 인간의 생을 온전히 헤아리진 못한다. 그녀 역시 삶의 파도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겨우 버텨내는 중이다. 그녀는 김씨가 다른 세상에서는 미완의 꿈을 꾸던 풀치를 넘어 단단한 다리로 일어섰으리라 믿어본다. 김씨의 역사는 멈추었으나 그의 딸은 스스로 걷는 꿈을 향해 오늘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