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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소보 갈등 재점화, 배경과 현황
현지 시간으로 2022년 12월 10일, 코소보(Kosovo) 북부 미트로비차(Mitrovica)에서 전직 세르비아계 경찰관인 데얀 판티치(Dejan Pantić)가 이 지역을 순찰 중이던 코소보 알바니아계 경찰을 향해 총을 쏘았고, 이에 대해 코소보 법원은 판티치에게 가택연금을 명령했다. 이 조치는 그동안 코소보 정부의 일방적 민족 정책에 불만을 품어오던 세르비아계의 감정을 폭발시킨 도화선이 되었으며, 이웃한 세르비아 정부와의 군사적 긴장 관계마저 조성되면서 국제사회에 고민을 안겨주었다.
1999년 6월, 코소보 전쟁 종결 이후 국제사회에서 의결한 코소보 독립 문제는 오랫동안 이 지역 민족 갈등의 뇌관이 되어왔다. 2008년 2월, 알바니아계가 이끄는 코소보 정부는 세르비아로부터의 일방적 독립 선언을 단행하였고, 이때 이후로 코소보 주민족인 알바니아계와 소수 민족으로 전락하게 된 세르비아계 사이엔 수시로 높은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어 왔다. 6~7세기 발칸반도로 이주한 세르비아 민족에게 코소보는 중세 왕국의 발원지이자, 독립 정교회의 총 본산지인 페치(Peć) 대교구가 자리한 곳이다. 즉, 민족 정체성의 핵심지역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코소보 알바니아계는 자신들이 세르비아 민족의 이주 이전인 고대부터 정착해 살던 ‘일리리아(Illyria)’부족의 후손이라 주장하며, 코소보 종주권을 분명히 하고 있다.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 기간 초기 약 75%였던 코소보내 알바니아계 인구는 출산율 증대와 이웃 알바니아로부터의 이주에 힘입어 2009년엔 약 88%, 그리고 2021년에는 약 180만 인구 중 약 92%에 달할 정도로 늘어났다. 반면, 사회주의 설립 초기 약 15%에 달했던 세르비아계는 경제적 어려움과 알바니아계 박해를 피해 세르비아 본토로 이주함에 따라 2009년엔 약 7%, 그리고 2021년엔 약 4%까지 인구수가 감소한 상황이다.
코소보내 세르비아계가 주로 거주하는 미트로비차 시의 이바르(Ibar)강 북쪽은 코소보 정부 치안권과 행정력이 거의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이번 가택연금 사건은 이 지역에서 더 분명한 주권 행사 및 행정력을 확보하려는 코소보 정부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코소보 정부는 코소보 내 모든 세르비아계 주민들에게 기존 세르비아 정부가 발급한 자동차 번호판을 폐기하고, 코소보 정부에서 발급한 새 번호판으로 교체할 것을 요구해 왔다. 하지만, 세르비아 정부와 코소보 내 세르비아계는 UN 등 국제사회가 아직 코소보를 정식 독립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상황임을 내세워 번호판 교체를 거부하는 등 코소보 정부의 주권 행위에 저항해 왔다. 이에 대해 코소보 정부는 국경 검문소 등을 중심으로 세르비아 정부 발행 번호판 소지자에게 무거운 벌금 부과라는 행정 명령을 내렸고, 이를 두고 세르비아계와의 갈등이 지속되던 중이었다.
양측 간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나온 이번 총격 사건과 코소보 법원 명령은 그동안 억눌려 지내왔던 코소보 내 세르비아계를 크게 자극하였다. 이들은 코소보 수도인 프리쉬티나(Priština)에서 미트로비차로 이어지는 주도로에 있는 루다레(Rudare) 지역에 바리케이드를 설치하고, 버스와 트럭들을 동원해 길목을 폐쇄해버렸다. 코소보 내 갈등이 본격화되자 세르비아의 알렉산다르 부치치(Aleksandar Vučić) 대통령 또한 “우리 국민을 보호하고 세르비아 정체성 보존을 위한 모든 조치를 다 할 것”이라는 말과 함께, 메르다레(Merdare) 등 코소보 국경의 도로 폐쇄와 함께 세르비아군에게 최고 수준의 전투준비태세를 갖출 것을 지시하였다. 세르비아 우방국인 러시아 또한 세르비아의 입장을 지지하면서 “코소보 정부가 근거 없는 차별 규정을 만들어 세르비아계를 탄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코소보 정부는 세르비아가 주도 중인 이번 코소보 갈등 재점화 뒤에 러시아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그 주장의 근거에는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미국이 우크라이나를 대리전에 끌어들인 것처럼, 러시아가 EU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겨냥해 세르비아를 대리전에 끌어들이려 한다는 의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코소보를 둘러싼 긴장감이 고조되자 1999년 6월 코소보 전쟁을 종결시킨 UN 결의안 ‘UNSCR 1244(UN Security Council Resolution 1244)’ 체결 이후 발칸에서의 전쟁 재발 가능성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가 확대되어 갔다. 양측 간 전쟁 위기가 최고조에 달하자, ‘유럽연합 파견 법치 임무단(EULEX)’을 통해 이 지역의 실질적인 행정을 담당 중인 EU와 ‘코소보 평화유지군(KFOR)’을 통한 치안을 담당하는 NATO는 모두 강력한 개입을 시사하였다. 실제, 주제프 보렐(Josep Borrell) EU 외교안보정책 고위 대표는 “양측 간 갈등 재점화는 발칸 유럽 내 심각한 위기를 불러올 것이며, 이것은 곧 유럽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다”며, EU의 개입과 의지를 표명하였고, 오아나 렁게스쿠(Oana Lungescu) NATO 대변인 또한 “갈등의 주요 당사자 간 평화 정착 합의와 약속 이행을 요청하고, NATO는 이를 위한 모든 수단을 취할 것이다”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뒤이은 KFOR 병력 증강에도 불구하고 양측 간 총격과 긴장이 계속되었고, 이에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가 다른 유럽으로 이어져 신냉전 전선이 확대될 것을 우려한 미국은 2022년 12월 28일, EU와 함께 보다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양측에 전달하게 된다. 베단트 파텔(Vedant Patel) 미 국무부 수석부대변인과 나빌라 마스랄리(Nabila Massrali) EU 외교안보정책 담당 대변인은 이날 공동 성명에서 “우리는 코소보 북부 지역의 계속되는 긴장 상황을 우려하며, 법치 존중과 함께 어떤 형태의 폭력도 용납, 용인하지 않을 것이다”며 코소보 정부의 손을 들어줌과 동시에, “평화 시위로 인해 체포, 기소 중인 코소보 내 세르비아계 인권 존중을 위한 조사와 후속 절차를 지원할 것이며, (세르비아 민족 등) 코소보 내 소수 민족 보호, 평등한 대우와 공정한 재판 보장을 약속한다”는 말로 세르비아계를 달래는 등 양동 전략을 구사하였다. 뒤이어 EU와 NATO의 중재 속에 지난 12월 29일 알렉산다르 부치치 세르비아 대통령과 알빈 쿠르티(Albin Kurti) 코소보 총리 간 합의가 이루어졌다. 여기서 코소보 정부가 벌금 부과 등 기존 행정 명령 철회, 그리고 세르비아는 폐쇄했던 국경 재개방과 함께 바리케이트 철거를 약속하면서 갈등은 다소 잠잠해졌다고 할 수 있다.
그 숨겨진 의도, 세르비아의 코소보 EU 가입 저지
이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코소보 갈등 재점화가 표면상 보이듯 단순히 번호판 교체 문제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지난 1999년 전쟁을 통해서 확인되었듯 코소보에서의 갈등은 단순히 지역적 문제가 아닌 신냉전(New Cold War) 서막을 알린 중요한 글로벌 문제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오늘날 코소보 독립 승인을 중심으로 국가 간 신냉전 구도가 정확히 나뉘어져 있으며, 1999년 코소보 전쟁에서 미국을 통해 인용된 코소보 알바니아계 거주민들의 자유의사와 독립 투표 등 주권 획득 논리는 21세기 신냉전 확대 속에 러시아의 2014년 크림반도,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밝혔던 돈바스 등 병합 명분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세르비아가 이번 코소보 갈등 재점화에 강력히 대응한 배경에는 자국의 EU 가입 지연에 대한 불만 표출, 그리고 무엇보다도 코소보의 EU 가입 진행 저지를 향한 세르비아의 강력한 메시지가 자리한다. 총격 사건이 일어난 직후인 2022년 12월 14일 코소보의 비오사 오스마니(Vjosa Osmani) 대통령, 알빈 쿠르티 총리 등 코소보 알바니아계 지도자들은 EU 가입 신청서에 공식 서명하였고, 이를 다음 날인 12월 1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EU 정상회의 순회 의장국인 체코에 전달하였다. 코소보 정부는 EU 가입을 통해 코소보의 미래와 진정한 주권 국가 수립을 향한 새로운 장을 열 것과 함께, 민주주의와 경제 개혁 속도를 통해 EU 가입을 앞당길 것이라 호언장담하였다.
코소보는 미국과 서구의 강력한 지지 속에 2008년 2월 독립을 선언했지만, 2020년 9월 이스라엘의 코소보 독립 승인을 포함하더라도 현재 코소보를 독립 국가로 인정하는 국가들은 193개 UN 회원국 중 101개 회원국(52.3%)에 불과하다. 자국내 분리 독립 위험이 남아있는 일부 국가들을 제외한 유럽 상당 국가들과 북미, 오세아니아, 서부 아프리카, 한국과 일본 등 주로 친(親)미 친(親)서방국가들이 코소보의 독립을 지지 중이며, 반대로 아프리카 상당 국가와 중남미 지역을 포함 정서적으로 친(親)중, 친(親)러시아 성향이 강한 국가들의 경우 독립을 승인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UN에서 정식 독립 국가로 승인되지 않는 코소보에 대해 세르비아는 여전히 자국 영토의 일부라 주장 중이다. 이것은 현재 세르비아 현지에서 제기 중인 두 가지 문장, 즉 코소보와 세르비아의 운명을 동일시한다는 ‘코소보는 세르비아다(Kosovo je Srbija)’와 코소보 용어보다는 자국의 자치주 당시 사용된 ‘코소보-메토히야(Kosovo-Metohija)’혹은 이를 합성한 ‘코스메트(Kosmet)’란 용어를 정부 기관과 언론에서 공공연히 사용하는 데서도 세르비아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코소보 갈등 재점화 초기, 그리 큰 반응을 보이지 않던 세르비아 정부는 코소보 정부가 12월 15일 EU 가입을 정식 신청하자 곧바로 강력 반발과 함께 최고 수준의 군사 대응 발동, 군사적 긴장감을 확대해 나갔다. 코소보를 자국 영토로 간주 중인 세르비아는 코소보의 EU 가입을 부정하고 코소보 전면 침공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한 것이다. 그 배경에는 EU와 NATO를 향한 무언의 경고와 메시지가 자리한다. 즉, 세르비아로서는 코소보의 EU 가입만큼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으며, 만약 EU와 미국이 코소보의 EU 가입 절차에 동의한다면 1999년 코소보 전쟁 때와 같은 심각한 상황이 재현될 수 있음을 알리고자 하는 고육책에서 비롯된 것이라 할 것이다.
현재 EU 가입을 강력히 희망 중인 유럽내 미가입국인 ‘서부 발칸 국가(Western Balkns)’ 중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와 더불어 코소보는 잠재적 EU 후보국 지위(Potential Candidate Status)에 해당한다. 따라서 코소보가 EU에 정식 가입하기까지는 이번 신청 이후에도 후보국 지위(Candidate Status) 획득과 정식 가입을 위한 협상 진행 그리고 그 진행 결과에 따른 승인 절차 등 앞으로도 10~20년이 훨씬 넘는 길고 험난한 단계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세르비아는 코소보가 실질적인 EU 가입보다는 EU 후보국 지위 획득을 노리고 있다고 판단 중이다. 세르비아가 가장 우려하는 점은 만약 코소보가 EU로부터 EU 후보국 지위를 획득할 경우, 이것이 곧 국제사회에서 독립적인 주권 국가로 인정받을 수 있는 중요한 단계로의 진입을 가능하게 할 것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세르비아 당국자들은 코소보의 EU 가입을 저지하기 위해 코소보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 EU 5개국(그리스, 스페인, 루마니아, 슬로바키아, 사이프러스)과 자국과 비슷한 외교적 입장을 견지 중인 헝가리에 협조를 요청하기도 했다. 코소보 갈등 재점화를 계기로 세르비아는 코소보의 EU 가입 진행 이후 확대될 국제사회의 코소보 독립 국가 승인 여론을 사전에 막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전개해 갈 것이며, 이러한 자신의 의지를 EU와 미국에 전달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코소보 갈등이 이후에도 언제든지 재발될 수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시사점과 전망
서부 발칸 6개국(후보국-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북마케도니아, 알바니아/ 잠재 후보국-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코소보)은 오래전부터 EU 가입 의사를 밝히며 그 진행 절차를 밟아왔다. 하지만, 2013년 7월 크로아티아의 EU 가입과 함께 독일의 영향력이 계속 확대되자 이후 2014년 EU 집행위원회에서 향후 5년간 협상 중단을 선언하게 된다. 2019년 이후로는 코로나19 위기로 인해 서부 발칸 국가들의 EU 가입에 대한 국제 여건과 여론이 크게 악화한 상황에 이르렀다. 그러나 미온적이던 EU의 태도는 2022년 2월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인해 발칸반도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다시 주목받으면서 크게 달라지기 시작했다. 2022년 12월 6일 알바니아 수도 티라나(Tirana)에서 열린‘EU-서부 발칸 정상회의’ 자리에서 서부 발칸 6개국의 신속한 EU 가입 보장과 협력 강화가 논의되는 등 세르비아의 EU 가입을 향한 국제상황이 긍정적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세르비아는 코소보 정부가 자국의 EU 가입을 방해하기 위해 이번 코소보에서의 긴장감을 유도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특히, 코소보 긴장이 고조되는 시기에 맞추어 코소보 정부가 EU 가입을 공식 신청하는 등 세르비아 자국을 자극한 배경에 강한 의구심을 품고 있다. 현재 EU 후보국으로 가입 진행 절차가 상당 부분 진행된 세르비아로서는 EU의 가입 전제 조건인 ‘코소보 독립 인정’과 ‘발칸지역 평화 확립’ 사안에 대해 상당한 신경을 써야 하는 처지다. 세르비아는 코소보가 이 지역 긴장 상태를 고조시켜 세르비아를 국제사회의 문제아로 다시 부각시킴으로써 자국의 EU 가입을 저지하려 한다고 의심한다. 실제, 코소보 정부 또한 이번 코소보 갈등과 긴장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듯 보인다. 세르비아가 최고 수준의 군사적 대응 단계를 발효하는 등 군사적 긴장감이 확대되자, 코소보는 이 지역 안정과 질서를 위해 NATO의 적극 개입과 도움이 필요하다는 점과 함께, 자국의 EU 가입이 세르비아로부터 완전한 평화와 안보를 보존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 선전하고 있다. 더불어, (세르비아와 달리) 코소보는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라는 점을 강조하는 등 세르비아 EU 가입을 저지하려는 여러 움직임을 시도 중인 것으로 보인다.
<표 1> 세르비아/ 코소보, EU 가입 주요 장애물과 현황(2023년 1월 기준)
* 자료: 저자 정리
국제사회의 개입 의지와 신속한 중재 결과, 코소보 갈등 재점화는 현재 수면 아래 잠시 가라앉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국제관계사 속 코소보 갈등의 상징성에 비춰볼 때 이 문제는 언제든 다시 재현될 수 있으며, 신냉전 가속화에 따른 그 파급력 또한 보다 세지고 거칠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특히, 코소보의 EU 가입 절차 진행 여부에 따라 세르비아와 코소보 간 긴장 관계는 더 크게 확대될 것이고, 이것은 신냉전 폭발의 교두보를 마련하게 될 것이라는 점에서 국제사회의 관심이 더욱 절실하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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