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밥상머리는 언제나 아내의 잔소리가 시작되는 강의실이다.
오늘은 무슨 잔소리가 나올까?
홈쇼핑을 보고 있는데, 밥을 먹으라고 부르신다.
나는 여자들 속옷 광고는 꼭 본다.
여름철이라 망사 팬티나 망사 브래지어를 보면 야릇한 상상을 할 수 있어 좋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때 밥을 먹으라고 할까!
청국장찌개, 파프리카와 쌈장, 구은 고등어 한쪽, 열무김치 ㅡ
그리고 보리가 섞인 공기밥 한 그릇 ㅡ
간단하다.
아침은 고기는 별로 없는 우리집 식단 ㅡ
나는 뜨거운 게 싫어 겨울에도 내 밥 만큼은 밥통에 넣지 말라고 한다.
청국장 찌개도 많이 끓여 냉장고에 넣어 조금씩 덜어 찬 채 그냥 먹는다.
찬 음식을 먹을 때마다 오랜 기억 때문에 마음 아프다.
아내가 한 말이 수십 년 지났어도 어제만 같다.
결혼한 지 5~6년 됐을 때이던가?
이런 내 식성을 본 아내는 한 마디로 말한 것이 아직 내 가슴에 응어리져 있다.
"평생 빌어먹을 팔자군!"
"거지들이나 김 안 나는 음식 먹지, 어찌 집에서 먹는 음식을 차게 먹어?"
아! 어찌 아내의 입에서 저런 말이......!!
아내는 신혼 초에는 말 한 마디 못했다.
그러던 아내의 말문이 터진 것이다.
첫째로 딸을 낳고, 이듬해 연년생으로 아들을 낳았다.
그때부터 아내의 태도가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봉건적 성향이 강했던 우리집 ㅡ
옛날엔 딸만 낳아도 시집에서 쫓겨나곤 했다.
그런데, 아들을 낳자마자 이제는 쫓겨날 염려가 없어졌기에 뺑덕어미로 변한 것이다.
지위가 확고해진 아내는 거침없이 어머니에게 곳간 열쇠까지 물려받자 폭군으로 돌변했다.
셋째 며느리로서 부모님까지 모시자 집안 어른이 되어 제사라든지, 집안 애경사를 진두지휘 했다.
"형님은 이것 좀 하세요! 서울 형님은 배추 좀 절여 전 부치세요!"
아내의 엄명을 거스리는 윗동서는 없었다.
자기들끼리 살다 1년에 한두 번 찾아와 용돈 몇 푼 드리며 점수를 몽땅 따는 동서들이 좋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내 아내는 씀씀이는 크다.
명절이나 제사를 치르고 남은 음식을 모두 골고루 싸 보냈다.
'빌어먹을 팔자'란 아내의 말이 정말 맞아떨어진 것이다.
냉장고도 있건만, 음식을 두고 먹으면 어디 덫나느냐 말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음식을 냉장고에 두고 조금씩 덜어먹으면 지금처럼 빌어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들처럼 여름휴가도 갈 수 있고, 그 흔한 중국여행 한 번 못 가며 쪼들리고 살지는 않았을 텐데....!!
절약정신이 없는 내 아내 ㅡ
고추 70kg도 거의 말라간다.
저것을 빻아 우리 몫이 얼마나 될지 누구도 모른다.
아들네 조금 주는 건 아깝지 않다.
시집 간 딸내미는 조금 아깝다.
시골 계시는 형수에게는 줄 리 없겠지만, 아직 직장을 다니는 아랫동서에게 주는 것은 많이 아깝다.
평생 남편 등골을 빼먹으며 퍼주기만 했던 아내가 밉다.
이제 어디로 갈 고추가 다 말라간다.
엊그제, 나도 한 마디 했다.
"남편 등골 그만 빼먹어! 여자가 고추 나르며 말리면 안 돼?"
아침으로 옥상으로 올리고, 저녁으로 다시 방으로 들이니 무더위에 짜증나서 한 마디 외쳤다.
샤워를 하고 나오니 주안상이 펼쳐 있다.
삶은 돼지고기, 옥상에서 따온 오이와 파프리카 ㅡ
상추와 깻잎으로 싸서 소주 한 잔 목넘김이 짜릿한 즐거움으로 가슴을 울린다.
아내가 한 마디 한다.
"내가 왜 고추 말리러 옥상가지 않는지 모르지?"
"힘들어 그러겠지!"
"아냐! 내가 고추를 널면 고추가 시들지 않고 서서 그래!"
"뭐? 어? 푸하하~~~~~!!"
여름밤이 깊어가고 있었다.
그날 밤은 어떤 고추는 말린 고추 옆에서 행복했다.
어떻게 행복했냐고?
등골이 빠졌지, 행복하긴 뭐가 행복했을까!!
첫댓글 마음만 도둑님
안녕하세요?.
무더운 여름이 길어도 너무 깁니다~ㅎ..
닉명만 봐도 오늘은 어떤 잼나는 글이
있을까하는 기대에 변함없이 솔찍한 표현으로
글에 애잔함도 있지만 그래도 웃음짖게 만드는
여운에 기분이 좋군요~ㅎ.
수고 많으신 사모님과 행복하고
기분좋은일로 내려주신 글만큼 시들지
않는 사랑많이 나누시길 바랍니다~~^^
잘보고 갑니다 ~ 고추에 대한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
감솨 하고요~ 이후도 ~ 행복한 시간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