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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골산 칼럼 제1373호


우리가족 여름 휴가 보내기
2010년 여름휴가는 우리가족에게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시작되었습니다. 결혼하고 20여년만의 제대로 된 휴가를 맞이한 건 처음입니다. 장사를 한다는 핑계로 한상에 둘러 앉아 밥 한 끼 제대로 먹어 보지 못했지만 몇 년 전부터 구멍가게 일을 접고 우리부부 각자 직장을 다니게 되었습니다. 제가 다니는 직장은 일괄적으로 휴가 일수가 1주일이 주어졌고 남편은 주일을 끼고 3일을 휴가기간으로 잡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이틀이 휴가일 이었지만 올해는 주일을 제외한 3일을 휴가를 낼 수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 둘 다 계약직이라 보너스는 한 푼도 없지만 그래도 감사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있는 큰아들을 제외한) 알차게 휴가 계획을 잡고 수요 예배 후 시댁이 있는 경북 영주로 출발하였습니다. 시댁은 영주에서 조금 더 들어가야만 하는 시골입니다. 저녁 10시경에 출발하여 시댁에 도착하니 새벽 한 시가 조금 넘었습니다. 이미 깊은 잠을 주무시던 시 어르신들이 깜짝 놀라 일어 나셔서 우리들을 맞이해 주셨습니다.
사실 그동안에는 시댁에 가는 것이 반갑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처럼 피서지를 찾아 바다로 계곡으로 다녀 보고 싶었지만 고집이 있는 남편(3남1녀 중 막내아들임)이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아 늘 시댁 가는 것이 불편하였습니다. 남편 덕분에 우리 가족은 한 번도 가족 여행을 가보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동안은 시 어르신들에게 가야하는 것이 당연 하다 고 큰소리를 치는 사람이었습니다.

남편이야 기쁜 마음이 될 수 있겠지만 저는 마음이 편치 못하여 늘 시댁에 다녀오면 부부 싸움을 하기 일쑤였습니다. 천방지축 남편이야 부모님을 만나니 좋겠지만 저는 막내며느리라는 이유로 명절이면 늘 설거지로 저의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음식 만들어 여러 사람이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을 좋아하는 저이지만 시댁만 가면 너무나 작은 자입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 듣기는 들어도 말로서 표현을 못하고 산 저의 시집살이(?)는 20년이 흘렀습니다.
남편은 막내로 자랐지만 저는 맏딸로 일찌감치 동생들의 학비를 벌기 위해 10대에 사회생활을 했던 사람인데... 두 살 터울로 있는 형님들은 주로 명령을 하고 저는 그 뜻대로 수행하여야만 하는 위치였습니다. 늘 뒷설거지가 저의 담당이었고 명절은 비교당하며 보내는 시간이었습니다. 막내인 남편으로 인해 저와 두 아들도 덩달아 나이로는 형이지만 함께 작은 자가 되었습니다. 시댁에 다녀오는 길에는 늘 큰소리로 다투고 서러움에 눈물을 훔치기 일쑤였습니다.
그런저런 이유로 시댁 가는 것은 정말 솔직히 싫었습니다. 저 자신도 장모는 되지 못하고 시어머니만 되겠지만 ...기도하며 늘 마음으로 달래고 위로 받고 또 새 힘을 얻고 반복되는 일상이었지만 40살이 넘으니 모든 것이 이해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의 뜻을 따라 다른 형제들은 가족과 함께 피서지를 향하지만 우리 가족은 시댁 가는 것이 연례행사가 되었습니다. 작년에는 시부모님과 우리 가족이 먹을 양식을 미리 준비해서 끼니 때 마다 메뉴를 다르게 하여 5끼의 식사를 하고 왔는데 올해는 조금 더 욕심을 내었습니다.
시댁 근처에 사시는 시 큰어머님과 시고모님을 모시고 함께 식사할 준비를 해 갔습니다. 시댁 근처에 야산이 있어 어르신들을 모시고 미리 준비해 간 삼겹살 파티를 시작하였습니다. 솔솔 나는 냄새로 이웃 어르신도 동참 하셨고 영주 시내에 사시는 시누이부부도 함께 동참하여 즐거운 하루를 보내게 되었습니다. 삼겹살도 구워 먹고 감자전도 부쳐 먹으며 행복한 여름휴가는 함께한 이들의 마음이 시원케 하는 역사도 일어났습니다.
남편이 설거지를 도맡아 하기 시작했습니다. 흙먼지와 물때가 낀 그릇이며 도마며 창틀까지도 남편은 씻고 소독하고 하더군요. 땀을 뻘뻘 흘리며... 처음에는 시어머니가 달갑지 않게 여기시더니 나중에는 아들을 떠밀며 설거지 하라고 명령하시더군요. 시댁에서 이틀 밤을 자고 오는데 쌀이며 감자, 참기름과 들기름, 고춧가루 등등을 차에 싣고 시 큰어머님이 주신 옥수수 까지 얻어 친정이 있는 천안에 들러 하룻밤을 자고 우리 가족이 사는 광명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에 돌아와 시 어르신들께 전화를 드렸더니 너무나 흐뭇해하시며 칭찬해 주셨습니다.
이웃들에게 자랑도 하시며 큰어머님과 고모님, 시누이 부부 까지 챙겨 주어 기특하다고 하셨습니다. 사실 당연한 것인데... 그 전에는 막내는 항상 뒷설거지 담당이라는 인식이 심어져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이 찍혔고 모든 대소사의 일은 막내와 상관없이 진행되고 그저 따라만 가면 되는 그런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씩 변화가 있고 남편의 고집이 결국은 저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요리를 잘 하지는 못하지만 즐겨하여 손님 접대하는 것을 기쁨으로 하는 편입니다.

시댁어르신들에게는 무조건 순종해야만 하는 나의 어줍잖은 틀을 깨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았습니다. 그냥 맛있게 먹어본 음식은 꼭 집에서 해보는 편인데 그대로 사람들에게 대접하니 즐거워하십니다. 시부모님에게도 그대로 하니 음식솜씨 있다고 칭찬도 해 주십니다. 이제야 제 자신이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시댁만 가면 남이 되어 마음속으로 삭히며 어두운 얼굴로 있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차안에서의 천둥번개로 인하여 아이들까지도 친가를 멀리하게끔 했는데...참 묘합니다. 그저 한꺼번에 변화되어 멋진 인생이 되고픈 데 늘 부족함으로 아웅다웅 살면서 조금씩 깨닫고 서서히 변화되어가니... 최고가 되기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딸이고 며느리이고 싶습니다.
짙은 장미향은 못 내더라도 서서히 은은함으로 풍기는 들꽃처럼 자녀들에게나 삶에서 그렇게 엄마로서 아내로서 이웃으로서 김집사로서 모가 난 부분 두리뭉실 다듬으면서 살아가렵니다. 내년 여름휴가에도 시 어르신들과 함께 보내렵니다. 점점 노쇠해져 가는 시 어르신들의 건강함을 위해 기도하렵니다. 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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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가족과 함께 하는 모습이 넘 좋아보입니다.
마음이 따뜻해져오는 잔잔한 감동이 있습니다.
시댁이 아니라 시집(시가)이라 해야 맞습니다. 시댁은 바른말이 아닙니다.
시댁이라는 말은 시처(施妻)로 됩니다. 시씨(施氏)의 아내가 된다는 말입니다.
지나가는 나그네 심히 외람되지만 괜히 한 말씀 올렸습니다.
너그럽게 받아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아 그리고 시어르신이 아니고 시어른이라 해야 맞습니다.
고모님은 형님이라 해야 맞지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