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렐(Hillel, Hillel the Elder, BC 60-AD 20)

1.
힐렐은 바벨로니아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초등 및 중등 교육을 받았으며, 40세에 성서를 배우기 위하여 예루살렘으로 이주하였다. 그는
팔레스타인에서 성서 및 구전율법의 주요 교사들 문하에서 진보적인 학문을 공부하였으며, 당대 최고의 법률 해석가인 쉐마이어(Shemaiah)와
아브탈리온(Abtalyon) 문하에서 이스라엘 율법을 연구하였다.
2.
예수님 당시, 바리새파 내에서도 율법해석에 따라 바벨로니아 출신 힐렐 학파와 예루살렘의 샴마이(Shamai) 학파, 두 학파가
존재하였다.
3.
에스라-느헤미야 시대로부터 구약성서에 관한 재해석이 실시되었는데, 점차 깊이있는 연구를 위하여 ‘해설’이라는 의미의 미드라쉬
성서학이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미드라쉬 해석학은 BC 200년경에 이르러
‘반복’이라는 의미의 미쉬나
성서학으로 발달하게 되었고, BC 35년경에는 유대에 힐렐 학파와 샴마이 학파라는 두 개의 미쉬나
학파가 형성되었다.
4.
힐렐은 보다 개방적, 진취적, 대중적이었으며, 이에 반하여 샴마이는 엄격하고 급하고 엘리트 의식이 강했다.
5.
샴마이는 재산권에 역점을 두고 법적인 해석에 집착했던 반면에 힐렐은 인권에 역점을 두면서 광범위하고 융통성 있는 해석을 가하였다. 샴마이의
해석이 보수적, 편협했다면, 힐렐은 진보적, 보편적이었다고 평가를 받는다.
6.
샴마이의 입장이 부유한 지방과 사제들의 심성을 반영하는데 비해서, 힐렐의 율법 해석은 율법 준수를 제의의 영역으로부터 분리하고 그것을 일상생활
속으로 옮겨 놓았다.
7.
힐렐은 디아스포라 출신 유대인으로 성전 제의 없이도, 실질적으로 존재 가능한 새로운 유대교 종교 운동을 바리새파 안에서 일으켜
세웠다(바리새 유대교).
8.
AD 70년 성전이 파괴된 이후에 모든 유대교 종파는 멸절되고, 바리새파 중에 오직 힐렐 학파만 살아남아서 오늘날까지 전해 내려오는
것이다.
9.
AD 70년 이후에는 바리새파와 서기관이라는 용어가 일반적인 용례에서 사라지고 랍비라는 이름으로 대체되었으며(랍비
유대교), 유대교는 당파나 종파를 덜 강조하게 되었다.
10. 힐렐 학파는 율법에 대한 자유롭고 폭넓은 해석을 하였고, 유대인과
이방인들에 대한 종교적, 정치적 논쟁에 있어서 관대하고 화해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11. 시므온(아기 예수를 성전에서 안았던 사람)의 아버지인 힐렐은 BC4-6년
사이에 산헤드린 공회의 의장인 나시(Nasi)직에 있었다.
12. 힐렐은 탈무드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율사(율법사, 율법교사)이며, 예수님
보다 먼저 황금율에 대해 이야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3. 힐렐은 제 2 성전시대(BC 516-AD 70)의 가장 위대한 현자로 알려
져 있다.
미쉬나와 탈무드 형성에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바리새파에 속한 힐렐 학파의
창시자이다.
14. 랍비 힐렐은 평화를 사랑했고, 너그러운 지혜를 가지고 있었으며, 인자하며,
인내심이 강하고 겸손했으며, 자비를 베푸는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다.
15. 그는 최고의 미덕을 지닌 본보기의 인물이었으며, 참을성 있는 사람의
전형이었고, 그는 항상 침착함과 공손함을 잃지 않았다.
16. 힐렐은 모든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 근면한 연구원, 설득력 있고 준비가
잘된 교사, 하나님을 철저히, 기쁜 마음으로 믿는 사람이었다. 축약해서 재언하면 그는 이상적인 유대교 현자(Sage)의 전형으로 묘사된다.
17. 힐렐은 탈무드 유대교에서 최초의 눈에 띄는 인물이었고, 탈무드 유대교는
구전율법에 대한 해설서인 ‘탈무드’를 만들어낸 유대교 사상과 전승을 지닌 분파이었다.
18. 그는 성서의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는데 필요한 성서 주석 원칙을 세웠으며,
‘힐렐의 7원칙’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것은 그리스 방법론의 용어를 히브리어로 옮겨 삼단논리, 추론, 연장, 비유, 은유, 평행, 모순 등
‘미드라쉬’의 일곱 가지 기본 해석 방법론을 정리하였다.
※ 힐렐과 예수님의 유사한 언급들
?
힐렐은 예수님보다 먼저 태어나서 활동했고 먼저 말을 했으며, 예수님께서도 키가
자라가며 지혜가 자라갔다고 하였다. 예수님도 힐렐의 고상한 인품과 높은 학식을 알고 있었을 것이며, 좋은 말을 인용하셨을
것이다.
①
예수님: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7:12).
황금율.
힐렐: “자네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하지 말아라. 바로 이 한마디에 모든
율법이 요약되어 있네. 그 밖의 것들은 그저 여기에 대한 부연에 지나지 않네.“
②
예수님: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5:3).
힐렐: 사람이 교만하면 낮아지게 되겠고, 마음이 겸손하면 영예를 얻으리라
(잠29:23)을 해석한 기록: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주의 영광을 저희가 받을
것이요.”
③
예수님: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
(마6:1)
힐렐: 남들이 있는 곳에서만 자선을 베풀고 남이 보이지 않는다고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다.
④
힐렐: 지금이 아니면 언제냐?
예수님이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실 때: 그들이 곧(즉시, immediately)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마4:22)
※ 힐렐에 관한 일화
일화 1.
그의
일화 가운데 유명한 한 가지는 이렇다:
그가
성서학교에서 공부할 시절, 그는 하루 번 돈의 절반을 수업료로 냈다고 한다. 당시는 이처럼 많은 돈을 내면서 성서학교에서 공부했다. 어느 겨울
안식일 전날, 힐렐이 수업료를 내지 못하자, 학교 청지기는 그를 들여보내지 않았다. 그러자 힐렐은 지붕으로 올라가 창 밖에서 그들의 수업 내용을
경청했다. 눈이 내리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강론에 심취한 나머지, 힐렐은 눈 속에 파묻히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지붕 창문이 좀 어두워진 것을
안 랍비 쉐마이어와 아브탈리욘이 밖에 나가 보니 힐렐이 꽁꽁 얼어 있었다. 엄격한 율법주의자였던 쉐마이어였지만, 그는 사다리를 놓고 지붕으로
올라가 힐렐을 내려오도록 하여, 몸을 따스하게 씻어 주고, 화롯가에 불을 피워 몸을 녹여 주었다. 안식일에 사다리를 놓고 일하는 것과 불을
피우는 것은 명백한 안식일법 위반이었다. 그러나 쉐마이어도 어쩔 수 없이 “이런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안식일을 어겨도 된다”고 하였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 당시에 널리 알려져 있던 일화로서, 마가복음 3:4 “안식일에 선한 일을 하는 것이 허용되는가, 악한 일을 하는
것이 허용되는가? 생명을 구하는 것인가, 죽이는 것인가?” 하신 말씀의 토대가 되었다.
일화 2.
힐렐을 화나게 하는 질문:
어느
날, 청년들이 모여 짓궂은 내기를 벌였다. 어떻게 힐렐을 화내게 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청년
하나가 총대를 메기로 하였다. 마침 힐렐이 안식일 예배를 위하여 몸을 깨끗이 하려고 목욕탕에 가 있을 때였다.
한
청년이 불쑥 들어오더니, 멍청한 질문을 던진다.
"인간의 머리는 어째서 둥글까요?" 그러자 힐렐이 이러 저러하게 대답하였다.
그리고 나서 힐렐이 막 물 속에 들어가려 하자 그 청년이 다시 나타나서는, "검둥이는 어째서 검을까요?"하는 것이 아닌가!
힐렐이 검둥이가 검은 이유를 애써 설명하고 다시 목욕물에 들어가자, 청년이 또
나타났는데, 이렇게 하기를 다섯 번이나 되풀이 하였다. 맨 마지막에 청년은 힐렐을 향하여, "당신 따위의 인간이 없었으면 좋았을걸. 나는 당신
때문에 내기에서 큰 손해를 본단 말이오."
그러자 힐렐이 천연스레 말했다.
"내가 참을성을 잃느니 당신이 돈을 몇 푼 잃는 편이 더
낫겠오.“
일화 3.
탈무드의 페싸임 66a에 이런 내용을 언급한다:
베시리아의 아들들이 연합하여 산헤드린의 나시로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힐렐의
고상한 지식과 인격에 압도되어 그들은 힐렐을 추대하여 지도자로 모셨고, 스스로 산헤드린의 의장의 자리를 즐거움으로 떠났다고 한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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