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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3일 화요일. 맑음 오후 비.
작지만 강하고 잘 사는 나라 슬로베니아를 떠난다. 보고 싶었던 호수와 감기 걸리도록 추웠던 동굴이 기억나는 예쁜 나라다. 아침 7시에 숙소에서 제공해주는 아침을 먹고 짐을 챙겨서 가벼운 마음으로 역으로 걸어간다. 여에서 오늘의 목적지 크로아티아의 수도 자그레브를 가기위해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행 열차를 탔다. 기차는 파란색으로 깨끗하다. 루마니아에서 베오그라드를 가는 기차는 낡았는데, 이 기차는 고급스럽다. 8시15분 출발이다. 기차표에는 시간이 기록되어있지 않은 오픈티켓이다. 오늘 언제든지 타면 된단다. 기차는 강을 따라 달리기 시작한다. 이 강 이름도 사바 강이다. 강이 엄청 긴 것 같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너무 평화롭다. 숲이 강을 따라 이어지다가 예쁜 집들이 나타난다. 옥수수 밭과 채소밭이 이어지더니 교회가 있는 마을이 또 이어진다. 정리가 잘된 경작지와 관리가 잘 되어있는 언덕과 정원이 보이고 언덕위에 예쁜 교회가 있는 마을이 또 나온다. 다리도 보이고 작은 승용차는 경주하듯 기차와 달린다. DOBOVA라는 역에 선다. 출국 도장을 찍어준다. 하늘색으로 칠한 예쁘고 소박한 역이다. 9시 50분이다.
이제는 크로아티아로 들어간다. 국경에는 EU 국기가 함께 걸려 있다. 경치는 똑같다. 여기도 사바 강을 따라 간다. 사바 강은 정말 길다. 세르비아에서 만났던 사바 강은 세르비아에서도 만나고 이곳 크로아티아에서도 만나는구나. 나중에 방문할 보스니아 헤르체코비나에서도 만난다. 이 강은 줄리언 알프스 산맥의 트리글라바 산맥에서 발원하여 라도브리키가지는 사바 보히니카 강과 사바 돌린카 강으로 갈라져 흐른다. 이 강은 주로 동남방향으로 약 940km를 흘러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에서 도나우 강으로 유입한다. 이 강의 범람원들은 중요한 농업지역으로 농작물 재배 및 가축사육이 행해진다. 지류들도 많고 강유역의 주요도시들도 많다. 우리가 방문하려는 자그레브도 그 중 하나다.
10시30분에 자그레브에 도착했다. 동유럽의 느낌이다. 벽에 낙서 같은 그림이 많다. 소박한 역이다. 빌딩 서 너 개가 눈에 들어온다. 기차에서 내릴려니 사람들이 더 서둘러 내린다.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좀 급한 것 같다. 역내에 있는 ⓘ에 들러서 숙소와 관광안내를 소개받았다. 역을 나서니 새로운 나라 크로아티아가 반겨준다. 크로아티아는 축구를 좋아하는 나라라는 것 외에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몇 해 전 요르단의 붉은 사막에서 만난 아주머니 나라가 크로아티아라고 했다. 이들은 자기나라를 흐르바츠카(Hrvatska)라고 부른다. 현대판 넥타이의 기원으로, 또 만년필을 만든 나라로 아려져 있다. 넥타이는 17세기 프랑스 용병으로 크로아티아 인들이 활동하기 시작하면서 아군식별을 위해 또는 멋을 부리기 위해 넥타이를 만들었단다. 태양왕 루이 14세에게 호평을 받고 유럽에 퍼졌단다. 만년필은 작지만매우 중요한 필기구로 자그레브에서 태어났다. 20세기 초에 Penkala(1871-1922)는 잉크병이 필요 없는 만년필을 개발했다. 새로운 사실을 알고 나니 더욱 흥미가 생긴다.
크로아티아가 유고슬라비아의 일부였던 1991년 이전에는 새로운 코스타 델 솔(태양의 해변이라는 뜻의 지중해 연안 휴양지)로 발전하고 있었다. 해마다 1000만 명의 서 유럽인들이 비행기를 타고 태양, 경제적 여행, 중세의 고풍스러운 정취, 아마도 나체주의의 장소 등을 찾아서 아드리아 해로 왔었다. 하지만 유고슬라비아와의 격렬한 분리 독립과정에서 크로아티아는‘그 주간의 은신처’에서 ‘전쟁으로 찢겨진 악명 높은 곳’으로 대중적인 별명이 바뀌었다. 최근에 겪은 비극과 공포에도 불구하고 크로아티아의 매력은 거의 그대로이다. 이나라는 1867년부터 1918년까지는 헝가리의 지배를 받았고, 1918년부터 1990년까지는 유고슬라비아의 지배를 받았다. 1991년 6월 25일에 독립했다. 영화 101마리의 달마시안 얼룩 점박이의 고향 크로아티아를 걸어보니 기대가 된다.
역을 나서니 길 건너에 커다란 동상이 서있다. 지도를 보니 기차역 앞은 Lawer Town 으로 바둑판 같이 도로를 만들어 놓았다. 길 건너가 King Tomislav 광장이다. 헝가리로부터 크로아티아 땅을 지켜냈고, 처음 크로아티아를 통일한, 크로아티아의 기틀을 마련한 왕이다. 9세기 말 이후 비잔틴과 로마의 세력 각축장으로 변했을 때 924년 닌 의 족장이었던 토미슬라브는 이런 세력 갈등을 이용하여 독립된 왕국을 건설했다. 그는 성공적으로 교황의 인정을 받고 925년 왕관을 받았으나 3년 후에 죽고 말았다. 이동상은 붉은 대리석을 기초로 하여 역동적인 말 등에 당당히 홀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힘이 느껴지는 인상적인 동상이다. 첫 왕을 바라보는 우리도 처음이곳을 왔으니 뭔가 통할 것 같은데, 그냥 느낌이 좋다. 사진을 직고 우리가 나온 역을 바라보니 역 건물도 멋지다. 조각상들이 예쁘게 세워지고, 또 새겨져 장식된 정면과 붉은 색 지붕이 인상적이다. 기차는 1826년에 자그레브에 들어왔고, 비엔나와 부다페스트의 경제적, 문화적 중간 지점으로 성장했단다. 1892년 헝가리 건축가의 설계로 만들어졌단다. 르네상스 양식과 네오크라식 요소가 가미된 멋진 건물이다. 이 역을 나오는 여행자들은 자그레브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경들과 마주치게 된다. 동상과 멋진 건물들이 정면과 좌우에 위치해 있다. 정면이 The Art Pavilion이고, 왼쪽 흰색 예쁜 거물이 1925년에 세워진 Hotel Esplanade 이다. 왕의 동상에서 광장까지는 스트로마이어, 즈린스키 등 예닐곱 개의 공원이 몇 블록에 걸쳐서 있다. 이들 공원이 들어선 모습이 말발굽 같다 해서 ‘레누치의 말발굽’ 이라고 부른다. 레누치는 18세기에 자그레브를 설계한 도시 설계가다. 우리는 숙소를 찾아서 센트랄 호텔 골목으로 간다. 숙소는 ⓘ에서 일러준 Omladinski Hostel 이다. 찾기 쉽다. 6층 건물에 흰색이다. 가격이 산 곳은 아니다. 2층 305실에 더블룸 밖에 없단다. 7만원이다. 그냥 하루 묵는 것이기에 짐을 풀기로 했다. 샤워를 하고 빨래를 해 놓고 시내 투어를 시작했다. 목적지를 Upper Town을로 정했다.
자그레브는 자그레바치카 산의 경사면과 사바 강의 범람원에 걸쳐있다. 경사면 지역을 Upper Town, 강변 평야 지역을 Lower Town 이라고 한다. 구릉위의 구 시가지는 2개의 중세 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치(아랫마을)는 민간 마을로 13세기 투르크 인 들을 막기 위해 성벽으로 마을을 둘러싸면서 그라테츠(요새)로 개칭되었으며, 카프톨(윗마을)은 성직자 마을로16세기에 요새화 되었다. 이 두 마을은 서로 경쟁했으나, 19세기에 새 건물들이 많이 세워져 이두 마을이 이어지고, 남쪽으로 광장과 공공건물들로 된 직선형의 신도시가 생기는 등 시가지가 사바 강 주변까지 확장 되면서 경쟁관계가 끝났다. 자그레브는 탁 트인 광장과 공원이 많다. 크로아티아의 문화 중심지이며 과학 예술 아카데미와 대학교가 있다. 여러 미술관에는 옛날과 근대 작품들이 모두 소장되어 있으며 다 양한 미술관, 극장, 음악당과 박물관이 많다. 중세 시대의 건물들이 많이 남아 있다. 1860년~1914년에 급속히 성장하면서, 이 도시는 서부, 중부 유럽에서 아드리아 해와 발칸반도로 이어지는 도로와 철도망의 주요 연계지이며 지역 산 석유와 천연가스를 기반으로 대규모 화학공업이 발달하여 공업의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다. 처음 발걸음을 멈춘 곳은 노천 레스토랑과 펍이 즐비한 거리에 홀로 서 있는 뚱뚱한 동상이다. 가슴을 긁는 듯 한 오른손과 뒷짐 진 왼손으로 서 있는 동상은 스테판 라디치 이다. 크로아티아 정치사에서 가장 존경받는 인물로 탁월한 연설가였단다. 농민당을 조직하여 세르비아와 크로아티아의 동등 권리를 주장하는 등의 이유로 몇 번이나 투옥된 투사로 결국 벨그라드 의회 개최 기간 중에 총탄에 맞아 사망했다. 탁월한 정치가로 화폐 200 쿠르나에 얼굴이 인쇄되어 있다.
길을 건너 광장이 엘라치차 광장이다. 엘라치차는 크로아티아의 장군이며 정치 지도자다. 그는 농노제도를 폐지하고 첫 의회를 개최했다. 그는 1848년 오스트리아-헝가리로부터 크로아티아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 지금 그의 초상화는 20 쿠나 지폐에 올려 져 있다. 동상은 처음에 이 광장에 세워져 있었는데, 공사정권에 의해 다른 곳으로 옮겨졌다가 1990년에 국가적인 요청으로 그의 생일 인 10월 16일에 다시 세워졌다. 원래 동상의 얼굴 방향이 헝가리와 오스트리아를 대항해서 크로아티아의 주권을 지키려는 상징으로 북쪽을 향했단다. 지금은 광장의 모습과 조화를 이루기 위해 남쪽을 향하게 되었단다. 이 광장은 자그레브 번화가의 중심이다. 광장에는 자동차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트램 만 바삐 오가고 사람들로 가득하다. 자유를 염원하던 크로아티아 인들의 정신이 담긴 엘라치차 장군 동상의 얼굴은 비엔나를 연상시키는 주택가와 번화한 쇼핑거리와 오피스가 밀집한 곳을 향하고 있다. 뒤로는 나지막한 언덕이 시작되며 Upper 타운과 Lower 타운을 자연스럽게 구분하고 있다. 자그레브는 1641년 이래 상업적인 도시의 중심부로 자리 잡아 왔다. 광장 주변의 빌딩들은 비더마이어 양식(판에 박힌 듯한)에서부터 아르누보양식(곡선, 비대칭)까지 그리고 포스트 모더니즘(부정) 등 아주 다양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광장은 자그레브의 주요 시장이었다. 그러나 1848년에 공식적으로 엘라치차 광장으로 되었고, 세계 2차 대전 이후에는 공화국 광장이라고 바뀌었지만 명목상 이름이 되고 말았다. 이 광장은 자그레브 사람들의 삶에서 중앙에 위치한 곳이다. 가장 유명한 만남의 장소로도 유명하다. 광장 중앙에 있는 말탄 동상을 언급해서 말꼬리, 또는 광장 서쪽에 있는 시계 아래를 언급한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 세계 유명 회사들의 홍보판이 옥상에 줄지어 있다. 예쁜 꼬마 미니 열차도 돌아다닌다. 하늘색 트램이 복잡하게 돈다. 지도에 표시된 분홍색 선(60분짜리 어퍼타운 산책 루트)을 따라 걷기로 했다. 분수가 있다. 이 분수는 자연적인 샘물위에 세워졌다. 19세기 말 까지 자그레브 사람들의 식수로 사용되었던 샘물이다. 궁정의 기록에 의하면 마녀들의 주요 만남의 장소로 이 분수를 말하고 있다. 늙은 크로아티아의 전쟁 지도자가 화창한 날 전쟁터에서 돌아왔다. 목이 마르고 피곤해 아름다운 소년 Manda에게 이 샘에서 물을 한 바가지 줄 것을 요청했다. 크로아티아 말로 한 바가지 물은 Zagrabiti 란다. 그래서 이 샘물의 이름은 소녀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고, 이 도시의 이름도 한 바가지 물이라는 말에서 자그레브라고 했단다. 이 얘기에 마녀는 왜 등장할까? 그러나 자그레브의 뜻은 Za(후방, 뒤쪽), Greb(구릉, 언덕)이다. 우리가 걷고 있는 거리에 잠시 멈추어보니 유럽스타일의 건물이 모두 붙어있고, 아래층은 상가로 이어진다. 지붕에 만들어진 다락 창문들이 특이하게 눈에 들어온다. 이 거리는 자그레브 광장으로부터 상업적이고 업무적인 사무실이 동쪽 길을 따라 줄지어있는 중요 도로이다. 우체국 건물이 대표적이다. 헝가리안 아르누보 스타일의 건물인데, 1904년에 세워져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단다. 동쪽 끝, 분수가 솟고 있는 대 크로아티아 광장에는 증권거래소 건물이 있다. 1922년에 만들어 졌는데, 고전적이지만 단순한 모습이 인상적인 빌딩이다. 다시 걸어서 블라츠카(Vlaska) 거리로 향했다. 이 거리는 전통적인 수공업이 이루어지고 동화처럼 잘 보존된 독특한 거리다. 카피톨 지역의 벽을 따라 만들어 졌는데, 원래 이탈리아 무역업자들이 정착했던 거리란다. 오래된 크로아티아 말로 이탈리아 사람을 Vlasi 라고해서 거리의 이름이 블라츠가로 불리게 되었단다. 유명한 소설가이자 시인이고 극작가인 어거스트 세노아 가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그를 기념하기위해 광고탑 기둥에 기대어 서있는 동상이 만들어 세워졌다. 광고탑 기둥에는 그가 사랑했던 자그레브,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도시를 예찬하는 그의 시가 세겨져 있다. 우리는 뜨거운 태양아래 더위를 무릅쓰고 함께 서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했다.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이지만 우리 추억의 한 장면을 제공해 주는 시인이다.
동화 같은 거리를 올라 성당을 향했다. 무척 태양 빛이 강하고 뜨겁다. 성 스테판 성당에 도착했다. 13세기 주고 스테판 2세는 타타르의 공격으로부터 지그레브를 지켜낸 기념으로 성당 옆에 교회를 세웠다. 그는 자기의 이름이자 초기 기독교 순교자 중 하나인 스테판의 이름을 따서 교회를 세웠다. 건설작업은 계속 진행하면서 예배를 드렸다. 18세기에 교회가 주교 궁전에 통합되었다. 교회에 잘 보존된 14세기 벽화는 크로아티아의 고딕 예술의 독특한 면을 보여 준다. 하늘로 치솟은 2개의 첨탑이 있는 이 성당은 자그레브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19세기 후반부터 현재의 모습을 갖게 된 네오고딕양식 구조이지만 그 건물의 기원은 훨씬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초기 고딕양식의 성소는 13세기 말에 추가되었고, 교회내부의 한가운데 중심공간은 14~15세기에 만들어졌다. 오스만 제국의 확장으로 자그레브는 적의 공습 범위 안에 들게 되었고, 적의 공격에 대비하여 포탑이 있는 외벽을 만들었다. 종탑은 침략의 위협이 사라진 후 17세기에 만들어 졌고 그 당시에 유행하던 바로크 풍의 화려하게 장식된 제단이 만들어 졌다. 1880년에 큰 지진이 성당에 엄청난 손상을 주었고, 그 당시 유럽 전 지역에 인기가 많았던 네오 고딕 양식의 라인을 따라 재건축되었다. 성당은 자그레브의 스카이 라인을 압도하는 105m 높이의 타워로 웅장한 현재의 모습을 자랑하고 있다. 편안한 광장이다. 성당 주변을 둘러본다. 아내는 덥다고 그늘아래서 나올 생각을 안 한다. 성당 앞에는 예쁜 분수가 있고 금빛 성모 마리아상이 내려다보는 기둥아래 4개의 천사상이 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과 소망, 순결과 겸손을 나타낸다고 한다. 성당도 멋지지만 성당을 둘러선 성채의 모습이 더 운치가 있다. 붉은 지붕에 견고한 돌 벽이 든든해 보인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니 유럽의 성당들과 비슷하다. 성당입구로 들어서면 무려 1천 년 전, 성당을 지을 다시의 상황을 기록해 둔 크로아티아의 고대 언어가 아직 선명하게 새겨져 있어 성당의 긴 역사를 말해준다. 내부의 스테인드그라스도 예쁘고 3개의 십자가가 만들어진 골고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 1500년경에 만들어 졌단다. 제단 앞바닥에는 대주교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다. 2차 세계 대전 당시 비 카톨릭교도들에 대한 지독한 박해를 가하면서 세계적으로 시끄러웠지만 그의 사후, 크로아티아 인들에게는 정신적 지주로 남은 인물이다.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대주교의 머리를 쓰다듬는 예수의 모습을 대리석 조각이 있다. 대충 둘러보고 밖으로 나오니 눈이 부시다. 첨탑은 아직도 공사 중이다. 캅톨 지역의 얼마 남지 않은 유산 중에 하나인 이 성당은 자그레브 사람들의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성지란다.
성당 건너편에 있는 작은 공간으로 들어서니 시장이 나온다. 자그레브에서 가장 매력적이고 생동감이 넘치는 넓은 공터다. 아침이면 싱싱한 활기로 가득 찬다고 한다. 오후, 태양이 뜨거워 질 때는 붉은 색 파라솔이 수없이 펼쳐져 있어 그래도 볼 만 하다. 이 시장의 이름은 Dolac Market 이다. 집에서 직접 만들어 파는 신선한 치즈에서부터 지중해의 햇살과 아드리아 해의 바람을 맞으며 통통하게 과육이 차오른 청포도, 토마토, 오렌지, 사과, 복숭아와 갖가지 야채를 팔고 있다. 아름다운 각양각색의 꽃들도 팔고 기념품가게도 있다. 시장에 오니 아내는 기운이 나는 것 같다. 뜨거운 태양에 질려서 그늘에 앉아 쉬다가 시장에 들어서니 발목에 힘이 들어가고 얼굴이 펴지더니 눈에서 빛이 난다. 드디어 사과, 포도, 복숭아를 샀다. 정말 즐거운 장소다. 구경만 해도 좋다. 엘라치차 광장과 이어지는 계단 시작점에는 머리에 무거운 바구니를 인, 강해 보이는 여인의 동상이 있다. 머리에 보자기를 쓰고 앞치마를 두르고, 서 있는 모습이 무척 단단해 보이고 억척스러워 보인다. 재미있고 즐거운 시장이지만 물건을 하나 둘 사다보니 배낭에 짐이 가득해서 자꾸 어깨가 무겁다. 날씨도 덥고, 점심시간이 되어서 일단 숙소로 들어가기로 했다. 가는 길에 피자를 샀다. 오래된 프라타나스 가로수가 줄지어 있고, 첫 분수라고 이름 지어진 분수를 만난다. 초록공원 광장이다. 이 광장을 품고 있는 건물이 예술과학 아카데미 건물이다. 주변에는 이 나라의 유명인들의 흉상이 많이 있다. 서둘러 숙소에 와서 피자와 복숭아로 점심을 먹었다. 가이드북을 훑어보며 오후 계획을 세웠다. 가이드북의 번호를 따라 하나씩 찾아가기로 했다. 오후는 Dolac Market에서 시작한다. 시장과 붙어 있는 성 마리 교회를 찾아가서 오래된 문과 바로크 풍의 모습을 확인했다. 그 다음 찾아간 곳이 오래된 거리 한편에 우산 들고 서 있는 중후한 여성 동상이 있는 곳 Tkalciceva 거리다. 의심의 여지없이 자그레브에서 가장 화려한 다운타운이 바로 이 거리다. 일반적으로 Tkalca 라고도 한다. 이 길은 작은 강 방향을 따라 만들어진 Kaptol과 Gradec 의 정착민 사이의 전통적인 경계다. 서쪽은 세속적인 Gradec 에 속한다면 작은 강의 동쪽은 성스러운 교회의 영지인 캅톨 지역이다.
자그레브의 물레방아는 대부분 작은 강 주변에 모여 있던 18세기에, 이 거리는 옷감, 비누, 종이와 술을 제작하는 수공업지역이었다. 19세기 말에 작은 강은 포장되었고, 신속하게 상업 활동 및 해가 진후에 시간을 즐기는 활동적인 거리로 바뀌었다. 오늘날에는 모든 연령층이 작은 부티끄, 전통상점, 레스토랑, 카페를 찾아서 이곳으로 모인다. 여기에 서있는 여성동상은 Zagorka 이다. 그녀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1873~1957)작가다. 크로아티아의 첫 여성 전문기자였고, 평등한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운동가로 활동했다. 그 당시 여인들에 비해 많은 일을 했다. Zagorka라는 필명으로 글을 썼는데, 그녀는 광범위한 독자층을 갖고 있었으며 소설도 썼다. 그의 소설은 역사적 사건들 속에 드러난 인간의 삶을 보여주는 글이다. 그녀의 유명한 작품 중의 하나는 “Gric 의 마녀”다. 18세기 마녀 사냥을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그녀의 동상은 1991년에 세워졌다. 동상 뒤에 있는 낡은 벽에는 아직도 정확한 해시계가 2시 20분을 가리키고 있다. 그 다음 도착한 곳이 레디치(Radic) 광장이다. 별로 크지 않은 광장이지만 1928년 베오그라드 의회에서 논의 중에 암살된 정치가 레디치의 이름을 따서 지어진 곳이다. Jurisiceva 거리에 그의 동상이 있다. 이 광장은 어퍼 타운으로 연결이 부드럽게 이어지는 경사진 곳이다. 긴 거리인데, 전에는 목조건물 들이 많았단다. 화제로 손상을 입었다. 19세기 와서 도시의 주요 비즈니스 센터가 되었다. 1880년에 만들어진 크로아티아 저축은행의 첫 지점이 여기 30번가에 세워지면서 발전하게 되었다. 중앙광장에는 성 죠지의 말탄 동상이 서 있다. 용을 죽이는 성 죠지의 테마는 이교도에 대한 기독교의 승리를 상징한다. 중세 이후에 인기 있는 모티브가 되었고, 여러 형태가 있다. 유럽을 여행하다보면 심심치 않게 본다.
이 광장에서 다시 틀어 올라가면 바로 Ston Gate가 나온다. 유일하게 남아 있는 문이다. 옛 마을로 통하는 스톤 게이트를 통해 사람들은 어퍼 타운으로 들어간다. 이 문은 중세 시대에 지어진 문이다. 게이트 웨이의 아치 아래에는 성모마리아의 전용 예배당이다. 그것은 놀랍게도 1731년에 치명적인 화제로부터 보존된 성모의 그림을 보유하고 있어 이후에 신도들의 순례의 장소가 되었다. 성모 마리아는 자그레브의 수호성자다. 5월31일이 그녀의 축제일 이고, 또 휴일로 지정하여 쉰다. 여기를 석굴교회라고도 하는데, 예배에 사용된 촛불들로 인해 천장이 검게 그을려 있다. 벽에는 여러개의 돌판이 붙어있는데 HVALA(감사합니다)라는 글씨가 제일 많이 보인다. 여기에도 피자배달이 있나보다. 오토바이로 붉은 가방에 피자를 배달하는 총각이 보인다. 성당 내부 같은 스톤 게이트를 지나 사자상이 있는 곳에 섰다. 사자상 앞에는 HMS(영국 여왕의 배라는 뜻) 빅토리아 호의 체인이 있다. 현재의 위치에 있는 체인은 유명한 영국 군함에 있던 체인이다. 빅토리아호는 1805년 트라팔카 전투에서 넬슨제독이 나폴레옹 함대를 굴복시킨 가장 중요한 전함이다. 넬슨 제독은 전투의 막바지에 불행하게도 자신의 함선에서 죽었다. 그런데, 왜 이 체인이 이곳에 있을까? 알 수 없는 일이다.
자그마한 여자 동상이 있다. 마리아 동상인줄 알았는데, 도라 라는 처녀의 동상이란다. 도라는 어거스트 세노아의 소설 “ 금세공업자 골드”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의 이름이다. 1871년 발행된 이 책은 크로아티아 최초의 사실에 근거한 역사소설로 간주된다고 한다. 줄거리는 귀족과 도라 라는 마을 소녀가 등장하는 16세기 사랑이야기란다. 금 세공하는 아버지의 친절하고 아름다운 딸, 도라 가 안타깝게도 사악한 동네 이발사에게 그의 청혼을 거절하자 격분하여 독살되고 끝난다. 1929년에 그의 소설을 기념하여 동상을 만들었단다. 도 이 스톤 거리에는 자그레브에서 가장 오래된 약국이 있다. 1355년에 설립된 약국이 지금도 계속 대를 이어 문을 열고 있단다. 드디어 성 마가 광장에 섰다. 이 광장은 이전에 Gradec의 평민들이 주로 활동하던 시장으로 어퍼 타운의 심장부였다. 여기에 멋진 성 마가 교회가 있다. 화려하게 장식된 스테판 교회가 캅톨을 대표한다면, 그라텍 마을에는 멀찍이서도 지붕의 알록달록한 타일이 눈에 들어오는 성 마가 교회가 있다. 13세기에 지어진 후 지금까지 개보수를 계속 반복하여 스테판 교회만큼이나 오랜 역사를 담고 있는 교회다. 종교적으로나 그 위치로나 그라텍 과 캅톨의 대비를 보여준다. 지붕에 그려진 휘장은 각각 크로아티아가 달마티아 슬라보니아, 크로아티아의 세 지역으로 나뉘었던 시절 삼국 일체 왕국의 문양과 자그레브 시를 상징하는 문양으로 19세기에 교회를 보수하면서 색색의 화려한 타일로 그 문양을 만들었다. 복잡한 주변국과의 관계 속에서 크로아티아라는 이름으로 뭉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
이 교회는 광장의 주인으로 아직도 원형그대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복도 3개의 로마네스크 양식이다. 남쪽 정문위에 만들어진 15개의 동상이 인상적이다. 고딕 아치형 천장과 성소가 14세기 후반에 추가되었다. 동상의 일부는 1420년 프라하에 있는 기술자들이 만들었단다. 교회는 실질적으로 19세기 말에 네오 고딕 양식으로 재건되었다. 지붕의 타일 모양이 정말 인상적인 교회다. 프랑스는 파리의 에펠탑이, 미국은 뉴욕의 자유여신상이 그 나라를 상징하듯이, 크로아티아를 상징하는 건축물은 이 교회가 될 것 같다. 광장을 중심으로 교회 오른쪽에 있는 건물이 총독의 궁전으로 지금은 크로아티아 국무총리의 집무실이란다. 이 궁전은 19세기 초반에 만들어 졌는데, 전설적인 왕 옐라치차가 여기서 살다가 죽었단다. 마주보는 건물이 의회 건물이다. 크로아티아 의회는 1737년 이후 이 자리에서 계속 열린다. 1918년에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으로부터, 1991년 유고연방으로부터의 정치적 독립을 상징하는 건물이다.
성 마가 교회에서 마주하는 골목이 시작되는 건물 왼편 모서리에 재미있는 인물조각이 있다. 이 사람은 Matija Gubec 이다. 그는 1573년, 인근 지역의 지주인데, 농민들에 의해 추대된 크로아티아 농민군대의 지도자다. 패배한 농민들과 함께 재판을 받기위해 자그레브로 끌려왔다. 그는 같은 해 2월 15일에 이 광장에서 처형되었다. 알려진 바에 의하면 Gubec 은 둥근모양의 달궈진 인두를 머리에 쓰고 죽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왕관이 ‘농민의 왕’으로 등극하는 것이 되었단다. 건물 모서리의 얼굴이 무척 무게 있어 보인다. 아내는 뜨겁다고 Gubec 밑에 만들어진 작은 그늘아래 앉아서 일어설줄 모른다. 마가교회에서 보이는 골목길 한쪽에는 미술관이 있다. 크로아티아에서 살아가던 평범한 농부와 어부 등이 그린 그림이 많다. 유독 겨울이 배경인 작품이 많은 것도 일 년 내내 바쁘게 일하다가 일손이 줄어드는 겨울에 접어들어서야 비로소 그림을 그릴 시간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란다.
골목에 줄지어 세워진 건물 벽에는 테슬라의 흉상이 만들어져 있다. 테슬라의 동상은 그의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여 시내 거리에도 만들어져 있다.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났고 유럽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미국에서 그의 미래를 찾았다. 테슬라 덕분에 우리가 인터넷과 핸드폰을 사용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특별한 인물이다. 2009년 미국 횡단여행 을 할 때,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그의 동상을 처음 만났다. 폭포와 무슨 관계가 있는 인물인가 궁금해서 자료를 찾아보았다. 폭포와는 관계없는 세계적인 물리학자이자 기계공학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국으로 건너와 에디슨 공장에서 함께 일한 인물이다. 여기서 만나다니 감격스럽다. 그의 고향, 조국 크로아티아에서 또 만나다니,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난 기분이다.
걸어내려 오다가 골목에 있는 성 캐서린 교회를 만났다. 캐서린 광장에 있는 자그레브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의 교회다. 17세기 전반에 예수회에 의해 지어졌다. 이 교회는 단일 통로와 6개의 측면 예배 처소를 갖고 있다. 17세기 후반까지는 5개의 바로크 풍의 나무 제단이 있었는데, 1729년에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제단이 하나 추가되었고, 외관은 1880년 지진 후에 다시 지어졌다. 교회를 둘러본 후에 우리는 고목들이 줄지어 서 있는 언덕 Strossmayer 산책로에 들어섰다. Gradec 언덕의 남쪽 가장자리를 따라 이어지는 산책로는 시민들이 기부한 돈으로 19세기에 만들어졌다. 크로아티아의 문예부흥과 19세기 사회와 정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인물 Strossmayer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산책길이다. 인근에는 크로아티아의 기상청이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소설가 o씨가 만난 마토스라는 시인의 동상이 있다. 이동상을 찾고서 우리는 참 기뻐했다. 보물찾기에서 보물이 적힌 쪽지를 찾고 기뻐하는 기분이었다. 동상은 벤치에 앉아 시인 마토스(1873~1914)가 자그레브 시내를 내려다보는 모습이다. 생전에 그는 이 자리를 가장 좋아 했단다. 자그레브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이 도시를 가장 사랑한 사람 중에 하나였다. 마토스는 혼란한 시기에 크로아티아 인들에게 용기를 주는 글을 많이 써서 국민들의 사랑을 받은 인물이다. 솔직하고 희망을 주는 문체로 신문 칼럼을 쓰고, 크로아티아 언어로 시를 써서 대중으로부터 가장 사랑을 받는 시인이 되었다. 우리나리 서정주 같은........ 이 동상은 1978년에 이곳에 만들어 졌다. 그의 시 “밤이 오면”이라는 글이다.
하늘에서 평온함과 고요함이 내리고 까만 탑에서 우리는 졸리는 듯한 시계소리를 듣고 저 높은 곳의 빛은 서서히 사라져 간다.
아내와 함께 옆자리에 앉아서 사진을 찍고 반가워했다. 같은 폼을 잡고....... 다음 목적지로 가는데 케이블카가 올라온다. 이 케이블카는 어퍼타운과 다운 타운을 연결하는 66m 길이로, 세계에서 가장 짧은 것이다. 위쪽과 아래쪽 사이의 높이 차이는 30.5m 다. 올라가는데 55초 걸리고, 28명의 어른들이 한 번에 탈수 있고 매 10분에 올라간다. 처음에는 말을 이용해서 물건을 실어 올리는 용도로 사용되었으나, 1890년 승객을 위해 증기로 움직이도록 바꾸었다. 자그레브에서 사용된 첫 공공 이용 수단이었단다. 귀엽다. 케이블카를 쳐다보다가 뒤편에 있는 Lotrscak 타워에 올라가 보기로 했다. 낡은 철문을 들어가서 타워에 오르는데, 나무계단을 한참 올라가서야 입장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돌아내려가기도 민망스러워 입장료를 내고 올라갔다. 입장료가 있는 줄 알았으면 올라가지 않았을 것이다. 이 타워는 Kula 타워라고도 한다. 이것은 성채에 있는 요새로 중간에 대포가 있다. 꼭대기에는 작은 전망대가 있다. 유일하게 잘 보존된 18세기에 만들어지고 19세기에 수정된 중세 탑이다. 주민들은 이 타워에서 해가 질 때 울리는 벨소리를 듣고 마을로 돌아갔다. 그리고 성채의 문들은 닫힌다. 요즈음에는 이 탑에서 정오에 매일 터지는 대포 때문에 더 유명해 졌다.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이 대포 쏘는 것에 대해 전해진다. 이 대포를 쏘는 전통은 1877년 설날부터 시작되었다. 하나의 이야기는 대포를 매일 쏜다는 조건으로 Tatars 족의 약탈을 보상하고 또 보호하는 의미로 헝가리 왕 벨라 4세가 주민들을 위해 설치해 주었다고 한다. 또는 터키에 대한 승리의 기쁨이라고 한다. 주민들은 곳곳에서 들을 수 있는 이 대포소리를 시계 삼아 살고 있다. 전망대에서 보니 자그레브 시내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주황색 지붕이 일색이다. 첨탑이 있는 스테판 교회도 보인다. 지붕타일이 인상적인 성 마가교회도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시내를 둘러보며 놀다가 계단을 내려오는데, 입장권을 팔던 젊은이가 대포는 내일 오후 3시에 쏜다고 꼭 오란다. 내일이면 우리는 이곳에 없다. 웃음으로 대답하고 내려왔다.
Strossmayer 산책로를 북쪽으로 걸어가니 그림을 파는 노천 가게들이 있다. 화가들이 그림을 그리고 전시하며 판매도 한다. 음악도 부드럽게 흘러나와 쉬기 좋다. 잠시 벤치에 앉아서 시원한 그늘의 혜택을 누렸다. 우리는 Mesnicka 도로로 나왔다. 이 도로는 어퍼 타운과 Ilica 도로를 연결하는 도로다. 아직도 화강암 돌로 포장된 오래된 경사진 길이다. 중세부터 이 길에는 정육점이 있었기 때문에 길 이름도 정육점이라는 뜻을 갖고 있단다. 걸어 내려오니 삼거리가 나오는데, 삼거리 중앙에 Andrija Kacic Miosic(1704~1760) 이라는 시인이자 교육자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드디어 Ilica 라는 거리에 들어섰다. 자그레브에 있는 모든 거리에서 이 도로가 가장 사랑받는 곳이란다. 최근에 긴 도로들이 생겼지만, 이 길이 6km로 오랫동안 가장 긴 도로였단다. 극장들과 신흥 시장들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이동하고 있지만 이 도로는 높은 상가와 관공서를 갖고 있는, 도시의 상징적인 주요 동맥으로 남아 있다.
Ilica 라는 이름은 15세기부터 불려오는 아주 드문 이름이란다. 이 도로는 동서 방향으로 나있기 때문에 늦은 오후에 걷는 사람은 얼굴에 햇빛이 비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거리는 오래된 건물이 즐비하다. 안내책자의 18번인데, 사진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ZAGREB라고 금빛 글씨아래 건물을 떠받치는 듯 한 모습의 조각상을 찾고서 우리는 반가워했다. 의미를 부여하며 즐겁게 확인하고 걷고 있는데, 한국 사람을 만났다. 처음 보는 동양인인데, 그것도 한국사람, 가족을 만나니 더욱 반가웠다. 헝가리 주재원가족인데, 차를 몰고 플리트비체에서 올라오는 중이란다. 초등, 중등 생 아들 둘과 아내와 함께 잠시 이곳에 들렀는데, 무엇을 봐야할지 모르겠단다. 아이들은 지겹다고 빨리 떠나자고 아우성이란다. 우리 책자를 주며, 몇 군데 찾아보면 재미있다고 소개해 주고 헤어졌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17번 Petar Preradovic 광장으로 갔다. Preradovic 는 애국 시 와 사라의 시를 많이 쓴 육군 장군이다. 그의 이름을 따서 광장의 이름이 불려 진단다. 그의 동상이 광장 중앙에 있어 인기 있는 만남의 장소다. 14세기 이후에 이 광장에서 유명했던 꽃마차로 인해 ‘꽃의 광장’으로도 불려진다. 광장 북쪽에는 오래된 교회가 있고 주변에는 포장 카페가 많다. 자그레브의 야외 라운지의 진정한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주민들이 이곳에서 비즈니스 모임이나 친구들과의 만남은 이곳에서 많이 이용한단다. 구수한 커피는 이상적인 동반자가 되는 곳이다.
구석에는 크로아티아 시인인 Tin Ujevic 동상이 있다. 그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꽃의 광장에 세워졌다. 이 시인은 생전에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보헤미안적인 자유분방한 위인이었단다. 그는 가능한 모든 사건을 주제로 시를 썼는데, 크로아티아 사람들은 거의 다 그의 시를 한 두 절쯤은 외우고 있단다. 그의 커다란 낡은 외투와 모자가 인상적인 동상이다. 그는 도시의 방랑자로 카페에서는 늘 손에 와인을 들고 있었단다. 우리는 광장에서 뒤로 돌아 서쪽으로 향했다. The Grounded Sun 이라는 둥근 청동 조각을 만났다. 자그레브에서 현대조각가로 유명한 이반 Kozaric의 작품이다. 파라솔과 카페 테이블 숲 중간에 있다. 단순하지만 특이한 작품으로 예술가들에게 9개의 행성을 찾고 싶어 하는 영감을 주었단다. 맞은편에는 The Oktogon 이라는 오래된 빌딩이 있는데,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옥상에 톱니바퀴 모양을 갖고 있는 밝은 파랑색 건물을 만났다. 1936년에 문화협회가 세운 건물로 비즈니스 공간과 아파트 숙소가 있단다. 7층 건물로 위쪽부분 주위를 돌면서 톱니바퀴 모티브가 특징이다.
ⓘ에서 준 책자를 참고로 찾아다니다보니 다리도 아프고 해도 기울어간다. 이제 자그레브의 보물찾기는 끝내야 할 것 같다. 갑자기 돌풍이 불더니, 빗방울이 떨어진다. 배낭 속에 우산이 있으니 걱정은 없지만 워낙 바람이 거칠어 이름 모를 건물로 들어가 쉰다.
숙소에 잠시 들렀다가 플리트비체를 가는 버스표를 예매하기위해 버스터미널로 향했다. 오후 6시 30분이다. 숙소에서 15분 정도 걸어가니 버스 터미널이다. 가는 길에 철길을따라 길게 세워진 벽에는 벽화들이 줄지어 그려져 있어 지겹지 않다. 현대화부터 만화, 낙서 같은 문양 등 다양하다. 거의 1km가 넘게 그려져 있는 것 같다. 천지창조 그림도 보이고, 흑백도, 칼라그림도 예쁘고 추하고......... 재미있다. 버스터미널에서 86크로네(두당)주고 표를 끊었다. 내일 아침 7시 30분 출발이다. 표를 끊어놓으니 맘이 편하다. 돌아오는 길에 피자 한 조각을 사가지고 와서 포도와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컴퓨터를 이용해 숙소정보를 알아보려고 1층 홀에 내려가 보니 사람들이 많이 들어온다. 날은 어둡고 비까지 주룩주룩 내린다. 홀에서 한국 아가씨 3명을 만났다. 여행일정을 얘기해보니 내일 플리트비체에 간단다. 아침에 만나기로 하고 숙소로 올라왔다. 피곤한 하루다. 창문을 열고 밖을 보니 비가내리는 어둠속에서 젊은이들의 소리가 들린다. 여행은 젊은 영혼들의 특권 같다. 나이는 들어가는데 마음은 아직도 청춘인가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