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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의 신비로운 도성 2권
- 아그레다의 예수의 마리아 수녀
30장 마리아의 성덕 일반
덕이란 영혼이 항구히 머무를 수 있는 굳건한 습성을 의미합니다. 덕은 영혼이 소유한 모든 능력들을 고양시켜 언제나 선을 향하게끔 질서를 잡아 줍니다. 행위(actus)가 한 번 성취되고 사라지는 것과는 달리 영혼의 습관(habitus)은 항상 남아 있습니다.
습관이란 특정한 행위를 하게 되는 습관으로서 어떤 행동이 실행에 옮겨지는 것을 용이하게 하는 영혼의 상태입니다. 하지만 습관은 행위가 선하든 악하든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기에 그 스스로가 자기가 관계하는 행위의 궁극적이거나 유일한 원인인 것은 아닙니다.
마리아는 생의 첫 순간에 이미 모든 덕을 탁월하게 갖추고 있었습니다. 끊임없는 덕행의 실천으로 마리아는 하느님께 받은 온갖 성덕과 은총을 하나도 잃지 않고 지켜냈을 뿐 아니라 더욱 완전하게 성장시켰습니다.
우리와 같은 아담의 자손들은 영혼의 능력이 불완전하고 죄에 사로잡혀 있어 올바로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화와 극복의 과정이 필요한 것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마리아의 영혼은 완벽하게 질서 잡혀 있어 그 능력이 발휘되는 데에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았습니다. 마리아의 영혼에는 죄의 상흔이 없기에 죄악으로 끌리거나 선을 밀어내는 힘이 전혀 작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만 마리아의 영혼의 능력들이 아무리 완전하다 하여도 어떻게 보면 모든 선을 처음부터 거저 소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고, 행동으로 끊임없이 능력을 현실화함으로써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반복적으로 덕행을 실천하여 덕행 그 자체와 덕의 수준을 끌어올리면 최고선과 거룩함을 추구하는 영혼의 경향도 따라서 증가됩니다.
한편 하늘 나라의 공주는 고통을 겪고 수난당할 수 있는 육신을 가진 피조물이기도 했습니다.
영혼의 능력이 완전하다는 것은 민감하다는 뜻이기에 본성상 마리아는 죄성을 가진 여타의 피조물들은 느끼지 못하는 고통 그리고 사물의 변화를 전부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동일한 고통이어도 마리아가 겪는 아픔의 크기가 상대적으로 훨씬 더 컸고, 사실상 늘 고통 중에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기에 그 누구보다도 휴식의 욕구가 컸습니다. 특히 초과의무의 경우에는 일을 그만두고 쉬고 싶은 마음이 더욱 간절했습니다.
의무이든지 초과의무이든지 일을 중단하고 휴식을 취한다 한들 하늘 임금님의 딸에게는 어차피 아무런 죄가 되지 않았지만 마리아는 육신의 그 정당한 요구를 매번 덕행으로 일축하곤 하였습니다. 마리아는 자연스런 욕구일 뿐 아니라 죄가 되지 않는 육신의 욕구조차도 모조리 거부함으로써 실로 완벽하게 육신을 지배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늘 나라의 공주는 외양으로는 작고 연약한 여자아이였을지 몰라도 그 내면에는 이처럼 용맹한 무사의 모습을 감추고 있었던 것입니다.
빛으로 충만한 마리아의 거룩한 영혼은 모든 덕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움을 한껏 발하면서, 만물의 목적이며 가장 높은 선이신 분을 향하여 흔들림 없이 서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덕을 실천하는 데에 언제나 준비되어 있었기에 덕행은 마리아에게 기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만약 마리아의 거룩한 영혼을 한번 들여다볼 수 있다면 우리는 거기서 모든 피조물을 능가하는 어떤 아름다움의 극치를,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하느님 외에는 없는 그런 지고한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세상 모든 피조물의 온전한 아름다움은 전부 마리아 안에 집약되어 있는 듯합니다. 마리아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덕과 거룩함의 완성이기에, 마리아에게는 이런 것이 빠져 있다든지 또는 저런 것이 부족하다든지 하는 말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에게서 흘러나온 성덕과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 얻어낼 수 있는 성덕 전부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덕을 쌓는다는 것은 곧 덕행을 쌓는다는 뜻이기에, 반복적으로 또 지속적으로 실천할 경우에만 영혼 안에 덕이 굳건히 자리 잡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영혼들에 대해서는 선행이나 덕행이 반복되지 않는 이상 한 번의 일시적인 행위를 덕행이라고 부르는 경우는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행함이 지극히 완전한 까닭에 마리아의 행위들 전부가 하나같이 덕행으로 간주될 수 있을 정도로 그 효력이 어마어마합니다. 마리아의 성덕이 다른 모든 영혼들의 누적된 덕행들이나 성덕의 효력을 다 합친 것보다도 이토록 크고 위대할진대, 덕의 실현을 완벽하게 그리고 끊임없이 지속하기 위해 마리아가 한 인간으로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였을지 과연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마리아의 덕행의 근원과 지향은 오직 높으신 주 하느님 한 분뿐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것만이 마리아의 행위의 유일한 동기였기에 하느님께 기쁨도 영광도 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행하지 않았습니다.
하느님에게서 은혜로이 받을 수 있는 성덕들, 그리고 인간이 자의와 노력으로 습득할 수 있는 성덕들은 모두 보편적이며 자연적인 또 하나의 덕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영혼 안에 덕이 존재하게 하는, 우리가 양심(synderesis)이라고 부르는 이것은 덕을 알고 덕을 추구하도록 하는 빛과 지식과 함께 존재합니다. 이를테면 우리에게 은혜를 베푼 이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그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나 우리 자신이 원하지 않는 것은 다른 이에게도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들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또 양심은 누구나 다 가지고 있는 최소한의 덕 또는 그것을 원하는 최소한의 선한 경향을 말하는데, 이 최소한의 선한 습성은 각자의 자유의지에 녹아 있어 우리의 지성을 항상 흔들어 깨웁니다. 성모님은 이러한 양심을 완전한 모습으로 간직하고 계셨기에 자연덕도 완전하게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선행과 덕행이 일으킬 영향을 모조리 내다보고 있어 아주 멀리 떨어진 곳이나 아득히 먼 훗날에 발생할 모든 선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영혼 안에 내재된 행위의 근본원칙은 완전무결하여 판단에는 한 치의 어긋남도 흔들림도 없었고 행동은 언제나 생기에 넘쳤습니다. 마리아는 하느님께 받은 초자연적인 지식의 도움으로 자신의 행위가 피조물과 관계하는 모든 상황들을 고려하여 언제나 가장 선하고 완전한 행위만을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하느님께 받은 지식이란 특별히 해와 달과 별과 항성과 천구들의 움직임, 원소와 원자들에 관한 지식을 말하는데, 이러한 자연과 세계 존재의 원리에 관한 앎을 가지고서 언제나 그 보편적인 질서를 따르는 행위만을 선택하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무엇을 하든지 자기 행위의 참된 의미를 알기 위해 세상 창조 때부터 세상 마지막 날까지의 모든 일들을 하나하나씩 또 전체적으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지어내시고 붙드시는 세계의 처음부터 끝까지의 역사 안에서 자신의 행위가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파악하는 이 작업은, 그 행위를 통해 피조물과 더불어 하느님께 무한한 영광을 드리는 활동이기도 했습니다.
동시에 마리아는, 인류가 근원이며 주인이신 창조주 하느님을 알아보고 경배할 수 있도록 힘껏 돕고 일깨워 주라는 명령을 모든 피조물에게 내립니다.
오직 하느님에게서만 발원하는 성덕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향주덕인 대신덕으로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이고, 다른 하나는 윤리덕인 사추덕으로서 현명함과 정의와 용기와 절제입니다. 하느님에게서만 받을 수 있는 대신덕이 관계하는 직접적인 대상은 바로 하느님 자신인 반면, 사추덕의 대상은 하느님께 도달하기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서의 선善입니다. 사추덕으로 얻어지는 선을 통해서 영혼은 자신의 최종 목표인 하느님께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사추덕을 윤리덕이라고도 부르는 이유는 그것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드러나고 또 사람들 가운데에서 행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윤리덕은 그 종류도 다양하고 수도 많지만, 전부 위에 말씀드린 네 가지의 덕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이 일곱 개의 덕은 이어지는 장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지금은 일단, 마리아는 향주덕과 사추덕을 지극히 완전한 형태로 소유하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성령의 은사와 열매, 그리고 진복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만 말씀드립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마리아가 잉태된 순간에 다 주셨습니다. 지성과 의지와 영혼의 다른 능력들도 이미 완성된 형태로 만들어 주셨고, 인간 영혼이 이보다 더 이상 아름답고 완벽할 수 없을 정도로 마리아의 영혼을 은총으로 채워 주셨습니다. 이런저런 설명을 많이 하느니 차라리,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소유한 모든 선을 마리아에게 남김없이 다 내어 주셨다는 한마디만 하는 편이 더 낫겠습니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거룩한 말씀의 어머니인 까닭에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마리아도 우리처럼 그저 하느님께서 지어내신 한낱 피조물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됩니다. 게다가 이미 완전하게 주어진 성덕들은 마리아의 삶에서 날이 갈수록 더욱 커졌습니다. 마리아는 습득된 여러 가지 자연덕을 실천하는 끊임없는 노력으로, 은혜로 받은 성덕 위에 더 많은 탈렌트를 벌어들였기 때문입니다.
천상 여왕이신 성모님의 가르침
“내 딸아, 하느님께서는 차별을 두지 않으시고 모든 인간에게 자연덕의 빛을 똑같이 내려 주신다. 자연덕과 은총으로 제 영혼을 준비시키는 이에게 하느님께서는 그를 의롭게 하실 때에 대신덕을 함께 선물로 주신다. 자연의 근원도 하느님이시고 은총의 근원도 하느님이시다. 하느님께서는 대신덕의 은총을 어떤 때는 많이 어떤 때는 적게 주시기도 하지만, 많든 적든 언제나 당신께 큰 기쁨이 되고 영혼에게는 큰 선이 되는 것을 주신다.
영혼은 세례를 받을 때에 하느님에게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덕에 덧붙여 몇 가지 다른 덕도 받는데 그 덕을 잃어버리지 않고 잘 간직할 수 있으려면 교회 안의 여러 성사를 통해 주어지는 은총들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지속적이며 거룩한 성사생활은 세례 때에 받은 덕을 보존할 뿐 아니라 이를 활용하여 선행공로를 쌓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 더 나아가 하느님의 일에 동참할 수 있게도 한다.
하느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에 맞갖게 살고자 노력하는 이, 그분께서 선사하신 덕에서 영적 유익을 끌어내는 이는 참으로 복되다. 하느님께서는 특별히 향주덕을 통해서 영혼이 당신을 더 사랑하고픈 마음이 생기도록 하시고 그 자유의지가 선으로 더 기울도록 추동하시니, 향주덕은 그 자체로 이미 굉장히 복된 선물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은 스스로를 이런 축복받은 상태에 합당하게 되고자 애쓰지도 않고 얻은 것마저도 저 스스로 포기하는 까닭에 많은 이들이 불행 속에 살고 있다. 영혼이 이토록 고귀한 선물을 눈앞에 두고서 하느님을 불신하고 주저할 때에 사탄은 그에게서 첫 번째의 승리를 거둔다. 그 패배는 그 후의 영혼의 신앙생활에 치명타가 된다.
너, 내 사랑하는 영혼아, 나는 네가 쉬지 않고 열심히 자연덕과 향주덕을 닦기를 바란다. 하느님의 선물인 세 가지 은혜로운 덕은 자연덕과 함께 영혼을 화사하게 꾸미는 장신구가 된다. 덕으로 단장한 아름다움이야말로 인간의 진정한 아름다움이며, 하느님께서는 덕으로 치장한 영혼들을 흡족하게 여기신다. 내 딸아, 보아라, 전능하신 주님께서 얼마나 많은 은총으로 너를 부요하게 하셨고 또 축복하여 주셨는지를! 네가 이러고도 하느님께 감사할 줄 모른다면, 내가 감히 말하건대, 너의 죄는 여러 세대에 걸친 사람들이 지은 죄들을 다 모아 놓은 것보다 더 크다. 그러니 네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큰지 이로써 잘 깨닫도록 하여라.
덕은 매우 고결한 것임을 잊지 마라. 영혼의 존재 그 자체에서나 영혼이 저 자신을 바라볼 때에나 덕은 영혼에게 매우 필요한 것이다. 덕은 영혼의 어두움을 비추는 빛이며, 추악한 영혼의 모습을 아름다움으로 변모시키는 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덕이 설혹 이 외에 다른 목적도 없고 아무런 작용도 일으키지 않는다 하더라도 덕이 영혼에게 안겨 주는 선과 유익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은혜로운 덕의 작용은 그 이상이니 덕이 목표로 하는 것은 최종적으로는 하느님이기 때문이다. 덕을 덕이게끔 하는 것은 진리와 완전함이기에, 정도가 달라도 이를 간직한 모든 이는 하느님을 향하여 나아가게 된다. 그리고 부단히 덕을 닦으면 가장 탁월한 보상을 받는데, 그 영혼은 하느님 안에서 편히 쉴 수 있으며 덕으로 인해 누리는 행복이란 바로 이와 같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