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그린 화가들>
군인을 꿈꾸던 화가, 전쟁 실상을 알리다
폴 내시 ‘메닌거리’·‘목표 지점-베를린 상공의 휘틀리 폭격기’·존 내시 ‘정상을 넘어’
여러분은 어린 시절 장래 희망이 무엇이었나요? 저는 철이 들 무렵부터 화가를 꿈꿨답니다. 잠시 어린 시절을 떠올려보면 제 또래 남자아이들 10명 가운데 2~3명은 꿈이 ‘장군’이었어요. 남자아이들에게 군인이 주는 이미지는 상당히 강렬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네요.
오늘은 군인을 꿈꾸던 화가에 대한 얘기입니다. 영국 모더니즘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한 작가 폴 내시(Paul Nash·1889~1946)가 그 주인공입니다. 내시는 제1·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전쟁에 대한 그림을 많이 남겼죠. 이제 내시가 왜 군인이 되고 싶어했으며 전쟁화를 그리게 됐는지 알아보려 합니다.
폴 내시, 메닌거리, 1919, 유화, 182x317㎝ |
해군의 꿈을 키워왔던 폴 내시
내시는 전쟁 발발 직후 망설임 없이 전장에 나섰습니다. 이는 그의 성장 배경이 큰 역할을 했죠. 내시의 꿈은 원래 화가가 아니었다고 해요. 어린 시절 내시는 그의 외할아버지처럼 대양을 누비는 해군이 되고 싶어 했죠. 하지만 시험에 낙방하면서 해군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오랫동안 해군이라는 꿈을 키워왔던 그에게 다른 가능성을 열어준 것은 바로 그림이었습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풍경화죠. 내시가 풍경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그의 어머니의 병환이 깊어져 이사를 가게 되면서 전원생활을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한적한 전원 풍경에 매료된 내시는 이를 화폭에 담는 화가라는 꿈을 다시 꾸게 되죠.
1910년 내시는 런던의 슬레이드 예술대학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하게 됐습니다. 그의 동기들 중에는 훗날 훌륭한 예술가가 된 이들이 특히 많았는데요. 추상화된 풍경화로 유명한 벤 니컬슨(Ben Nicholson)과 런던에서 보티시즘 운동(기계문명을 수용하고 내재된 힘과 문화적 역동성을 찬미한 그룹)을 한 크리스토퍼 네빈슨(Christopher R. W. Nevinson), 윌리엄 로버츠(William Roberts), 에드워드 워즈워스(Edward Wadsworth) 등이 있습니다.
1차 대전 발발하자 ‘예술가 부대’ 입대
군인이 꿈이었던 내시는 1914년 1차 대전이 발발하자 곧바로 군에 입대합니다. 그가 선택한 부대는 예비군 연대 가운데 하나였던 ‘예술가 부대(Artists Rifles)’입니다. 내시는 군인으로서 많은 전쟁화를 그리게 됩니다. 1917년 봄 내시는 최초의 독가스전(戰)으로 기록된 벨기에의 이프로(Ypres)전투에서 부상하고 본국으로 송환됩니다. 30만 명의 전사자를 낸 이 전투에서 내시는 가까스로 살아남게 됐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극에 달했을 법한데 그는 몸이 회복되자마자 같은 해 전쟁미술가로 공식 임명돼 다시 전선에 섭니다. 그는 전장에서 그린 드로잉을 기초로 완성한 작품들을 1917년과 1918년 전시합니다. 이 작품들은 전장의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전달하며 호평을 받습니다.
폴 내시, 목표 지점-베를린 상공의 휘틀리 폭격기, 1940, 수채 및 초크, 59x80㎝ |
웅장하고 거대하게 그린 작품 ‘메닌거리’
1918년 4월 내시는 영국전쟁기념위원회로부터 전쟁의 기록을 전시할 ‘기억의 전당’을 위한 작품을 의뢰받고 ‘메닌거리’란 그림을 그립니다. 가로 182㎝, 세로 317㎝에 달하는 거대한 이 작품은 14세기 파올로 우첼로(Paolo Uccello)가 그린 유명한 전쟁화 ‘산 로마노 전투’와 같은 크기로 그려집니다. 이는 ‘산 로마노 전투’가 전쟁을 웅장하게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크기라고 판단한 위원회의 요청 때문이라고 하네요. ‘메닌거리’는 영웅주의와 희생이라는 영국의 이상을 표현하겠다는 목표로 그려졌지만 ‘기억의 전당’ 건설이 흐지부지되면서 지금은 대영제국전쟁박물관에 걸려 있습니다.
‘메닌거리’는 내시가 치명적인 부상을 당했던 이프로 전투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폐허가 된 배경만 봐도 당시 전투가 얼마나 참혹했는지 알 수 있죠. 홍수가 난 참호와 탄흔, 여기저기 널브러진 콘크리트 잔해, 잎 하나 남지 않은 그루터기만이 하늘로 솟아있는 모습은 여기가 거리였는지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합니다. 왼쪽에서 내리쬐는 광선을 보면 분명 시점은 낮이지만 하늘은 온통 회색빛 뿌연 연기와 구름으로 뒤덮여 있습니다. 그리고 중앙에는 참혹한 전장에 남겨진 두 명의 군인이 길을 잃은 듯 서성이고 있습니다.
존 내시, 정상을 넘어,1918, 유화, 80x108㎝
|
2차 대전 때도 전쟁미술가로 활동
내시는 제2차 세계대전 때도 전쟁미술가로 활동했습니다. 이때 그는 ‘공중전을 가장 잘 그리는 화가’로 이름을 날립니다. 2차 대전을 통해 등장한 공중전은 화가들에게 큰 충격을 줍니다. 몇 주 전 이야기했던 로이 리히텐슈타인은 물론 많은 화가들이 2차 대전의 이미지를 공중전으로 표현하고 있죠. 그림을 볼까요? 내시는 독일 베를린 상공을 날아가는 영국의 휘틀리(Whitley) 폭격기를 그리고 있습니다. 폭격기 주변의 작은 연기들은 공격 받은 독일군 전투기의 화재를 묘사한 것입니다.
동생에게도 영향…전쟁의 참혹한 순간 담아
내시는 동생 존에게 큰 영향을 줍니다. 형처럼 ‘예술가 부대’에 입대한 존 내시(John Nash·1893~1977)는 형의 추천으로 공식 전쟁미술가로 활동합니다.
대표작 ‘정상을 넘어’는 그가 ‘예술가 부대’에 처음 입대해 겪었던 전투이자 가장 치열한 전투로 기억된 ‘웨일스 산맥 전투’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1917년 11월 30일 벌어진 이 전투에서 영국군 80명 가운데 68명이 순식간에 전사했는데요. 존은 이 전투에서 살아남은 몇 안 되는 생존자입니다. 그는 눈앞에서 벌어진 참극의 순간을 3개월 뒤인 1918년 3월 강렬하게 묘사해 평단의 주목을 받습니다.
내시 형제에 대한 이야기를 쓰던 중 요즘 최고의 인기를 얻고 있는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한 장면이 생각났습니다. 드라마에서 특전사 대위로 나오는 송중기에게 의사인 송혜교가 이런 질문을 하죠. “왜 군인이 됐나요?” 힘들고 위험한 군인을 선택한 이유, 저도 참 궁금했습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일”이란 송중기의 대답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어렵고 힘든 일이지만 누군가는 해야 하기에 군인의 길을 택했다는 이 말이 저는 참 멋있었습니다. 저는 내시 형제도 그런 이유로 전쟁을 그렸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전장에 선 그들이 가장 잘할 수 있는 방식으로 말이죠.
<김윤애 문화역서울 284 주임연구원>
<클래식> 그 날 그 시간이 그리우면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