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혼인(婚姻)과 결혼(結婚)
○ 축하합니다.
산이 그냥 산이 아니고 바람이 그냥 바람이 아니듯 가슴에서 가슴으로 몸과 마음이 함께하는 약속이 되고 소망이 되어 아름다운 사랑으로 맺은 고운 인연을 축하합니다.
신랑 신부의 가슴에서 늘 설레임의 울림이 있고 아름다운 정열로 고운 사랑을 맘껏 담는 축복의 첫 걸음을 기원합니다.
시리도록 파란 가을 하늘 아래서 사랑의 약속이 소망의 열매가 되고 가슴엔 잔잔한 사랑의 메아리가 집안 가득히 피어오르는 변치않는 인연으로 맞으시기를 기도합니다.
○ 과거에는
주로 봄과 가을에 혼인을 많이 하였으나 요즘은 그렇지않다. 8월의 주말도 이번주말도 친구들이나 지인들의 자녀들 결혼식이 있다. 소중한 인연의 만남 행복한 삶을 기원하며 아이도 둘은 낳아 애국했으면 하는 바램이다.
○ 결혼식은
청춘남여가 쌍을이루고 가정을 이루는 축복의 날로 오늘날 선남(善男) 선녀(善女)가 만나 연애를 하고 또는 가족이나 친지 그리고 지인을 통해 맞선을 보고 그러다 마음이 동(同)하여 백년가약(百年佳約)인 혼인(婚姻)을 하게 된다.
여기서 혼인(婚姻)이라 함은
혼인할혼, 장가들 혼(婚)자에 혼인인, 사위집 인(姻)자를 써서 혼인(婚姻)이라 하는데
혼(婚)자는 신부을 말함이며, 인(姻)자는 신랑을 말한다. 따라서 두사람의 가약을 맺는것을 혼인이라 한다.
먼 옛날 우리의 풍습에는 남자가 혼인(婚姻)을 하면 여자의 집으로 들어가 일을 해주고 살았으며 첫 아이를 낳으면 비로소 독립을 하였다고 한다.
때로는 어린 신부와 가약을 맺어 신부가 클때까지 신부집에 살면서 일을 해주는 데릴사위 제도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신혼부부가 혼인하여 신혼여행을 갔다가 돌아오면 먼저 신부 집에서 하루를 자고 다음날 신랑 집으로 가는데 이 또한 옛날 풍습의 영향이라 아니할수 없다.
그리고 남자가 혼인(婚姻)을 하면 새로이 장인(丈人) 장모(丈母)가 생기게 되고 장인장모집을 일컬어 장가(丈家)라고 하였다.
그래서 남자가 혼인 하는것을 “장가(丈家)간다 또는 장가든다”고 하였고, 여자가 혼인을 하면 새로운 시부모(媤父母)가 생기게 되고
그집을 시댁(媤宅)이라 하여 "시집(媤家)온다 또는 시집간다”고 하였다. 그래서 "장가간다와 시집온다"는 말이 생겨 났다.
그러던것이 조선시대 말기때만 해도 혼인할때 신랑이 혼(婚) 즉 신부집으로 먼저 가서 혼례(婚禮) 올리고 초야(初夜)를 치룬후 사흘뒤에 신부를 데리고 인(姻) 즉 신랑집으로 데리고 왔다. 그래서 두사람의 평생가약을 맺는것을 가르켜 혼인(婚姻)이라 하였다.
그런데 언제 부터인가 이 백년가약 맺는것을 결혼이라 부르고 있다.
○ 결혼(結婚)은
맺을 결(結)에 혼인 혼(婚)을 써서 양가가 혼인을 결정하였다는 뜻으로 즉 홍길동家와 임꺽정家가 혼인 하기로 결정하였다는 넓은 의미로 사용 되는것이며 양가(兩家)의 어른(사돈)들의 결정을 "결혼"이라 말하였던 것이다.
그러니까 결혼은 법률행위로서 일종의 계약으로 혼인에 합의한 당사자가 혼인신고를 하면서 법률혼은 시작되는 것이다.
따라서 결혼(結婚)과 혼인(婚姻)은 엄격히 구분되는 것이다. 물론 결혼식(結婚式)이나 혼례식(婚禮式)에 부여되는 의미는 큰 차이는 없지만 우리 조상은 인륜지대사를 땅이나 사고파는 계약의 차원을 넘어 양가가 사돈(査頓)이되는 인척(姻戚)의 의미로 혼인이란 말을 사용하였다.
○ 일본은
혼인(婚姻)이라는 말을 쓰지 않고 결혼(結婚)이라는 말만 사용하고 있다. 옛날 일본의 결혼풍습은 사돈이라는 상호동등(相互同等)이라는 의미는 없고 완전한 남존여비(男尊女卑)로 신부를 사고파는 의미가 강하여 결혼이라 했으며 그래서 결혼식을 하고 나면 신부의 성(姓)은 없어지고 신랑의 성(姓)을 따라야 했다.
이것이 일제강점기때 결혼이란 용어가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도입되었고 그들의 입맛대로 '혼례식을 결혼식'이라 하였으며 전통혼례 방식밖에 없던 우리나라가 서구문화를 일찍 받아들인 일본식 예식문화로 변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 여파로 1934년 김영환이 세운 "만화당 예식부(萬花堂 禮式部)"가 만들어 지기도 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예식장 이다.
그리고 결혼(結婚)의 반대말은 이혼(離婚)이지만 혼인(婚姻)의 반대말은 없다. 그래서 혼인을 백년가약(百年佳約)이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처럼 혼례식이 아닌 결혼식을 올리면서도 가장 중요한 백년을 함께하고자 서약을 할때는 지금도 ‘결혼서약(結婚誓約)’이 아닌 ‘혼인서약(婚姻誓約)’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자랑스러운 우리 민족은 어딘가 모르게 그 뿌리는 늘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 Honeymoon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결혼식을 하면 신혼여행을 가니 이를 '허니문(honeymoon)이라 하는데, 허니문은 어원상으로 볼때 허니(honey)는 '벌꿀, 귀여운 여자, 여보' 라는 뜻이고 문(moon)은 달(한달)을 말한다.
즉 허니문(honeymoon)은 감미롭고 행복한 신혼기를 보름달에 비유하여 '꿈같은 한달간의 달콤한 신혼기'를 의미 한다.
그 유래는 바빌론 시대로 올라가 그 당시의 결혼 풍습중에 신부의 아버지가 꿀에 물을 섞어 발효시켜 만든 스테미너에 좋은 '벌꿀 술인 미드(mead)'를 자신의 사위에게 주었다고 한다.
갓 결혼한 신랑은 이 술을 한달간 마시면서 왕성한 스테미너로 신부를 사랑했다고 하는데 이런 연유로 갓 결혼한 신혼부부가 떠나는 여행을 "밀월(꿀 蜜, 달月)여행"이라 했으며 영어로는 허니문(honeymoon)이라고 부른다.
허니문의 또 다른 유래는 고대 노르웨이에서 찾아볼수 있는데, 당시에는 혼기가 찬 남성들이 사랑하는 처녀나 과부를 납치해가서 자신의 신부로 삼았는데 신부의 가족들이 그녀를 찾는것을 포기할때까지 은신처에 숨겨두었다가 데리고 온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 기간이 한 두달 이었는데 한 두달이 지나 신부가 임신을 하게 되면 그때서야 나타나 어쩔수없는 현실에 결혼을 승낙 받았다는 것이다.
어찌보면 허니문은 눈맞은 남여들의 도피행각 이었으며 아니면 강제납치였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요즘은 모든이들의 축복받는 결혼식에서 허니문은 빠져서는 안되는 당연한 코스로 자리매김 되었으며 두사람이 함께하는 첫단추요 생의 가장 소중한 추억을 만드는 일이 되었다.
7~80년도만 해도 신혼여행지로 가장 각광받던곳이 온양온천 해운대 였는데 간혹 잘사는 집은 제주도를 가기도 했다.
요즘은 무조건 해외로 나가야하고 해외에서도 이름난 바닷가나 세계적인 명승지를 찾는다. 이 모두가 잘사는 나라 세계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우뚝선 나라 덕분이 아닐까?
옛말에 음수사원(飮水思源)이란 말이 있다. 이는 "목이 말라 물을 마시면 갈증을 해소하는 것에 만족하지 말고 근본인 우물을 누가 팠는지를 생각하라"는 말이다.
60년대만 해도 GNP 70불에 지나지 않던 못사는 나라 헐벗은 나라를 과연 누가 어떻게 이렇듯 잘사는 나라로 만들었는지 결혼 적령기에 있는 젊은 세대들은 반드시 알았으면 좋겠다.
아무튼 결혼은 인륜지대사(人倫之大事)중 가장 큰 대사로 신혼이란 말은 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말함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말로 ‘신혼’이란 한쪽은 ‘신’나고 한쪽은 ‘혼’나는 것이라고도 하는데, 과연 어느쪽이 신나고 어느쪽이 혼이 날까? 둘다 신나는 행복한 신혼이길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