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지송
박두진
북망(北邙)이래도 금잔디 기름진 데 동그란 무덤들 외롭지 않으이.
무덤 속 어둠에 하이얀 촉루(촉루)가 빛나리, 향기로운 주검의 내도 풍기리.
살아서 설던 죽음 죽었으매 이내 안 서럽고, 언제 무덤 속 화안히 비춰 줄
그런 태양만이 그리우리.
금잔디 사이 할미꽃도 피었고 삐이 삐이 배, 뱃종! 뱃종! 멧새들도 우는데,
봄볕 포근한 무덤에 주검들이 누웠네.
-<문장>(1939) -
해 설
[개관정리]
◆ 성격 : 의지적, 감각적, 기독교적, 찬미적, 역설적
◆ 표현 : ㉠ 시각, 청각에 의한 입체적 감각으로 죽음을 미화시키는 기법
㉡ 각운(않으이, 풍기리, 그리우리)과 활음조에 의한 음악적 효과
㉢ 역설적 표현으로, 죽음이 재생으로 연결됨.
◆ 중요 시어 및 시구
* 북망 → 북망산. 사람이 죽어서 가는 곳. 무덤
* 금잔디 기름진데 → 삶의 풍성함. "북망"과는 역설적 상황
* 무덤 → 자연과 동화되어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되는 역설적 공간
* 하이얀 촉루 → 하얀 해골(시각적 심상). 부패하고 악취나는 시체의 잔재를 하얗게 빛난다고 미화함
* 향기로운 주검의 내 → 주검의 냄새를 '향기롭다'고 미화함.
* 태양 → 부활의 빛으로 절대적 구원의 존재
* 무덤 속 비춰 줄 태양만이 그리우리
→ 죽음은 종말이 아니라, '안식이자 부활의 대기 상태'라는 인식이 밑바탕됨.
* 멧새 → 산새의 예스런 표현
◆ 주제 ⇒ 죽음의 극복과 영원한 생명에의 소망
[시상의 흐름(짜임)]
◆ 1연 : 무덤과 자연의 동화(무덤의 외부)
◆ 2연 : 주검(시체)의 찬미 (무덤의 내부)
◆ 3연 : 영원한 생명에의 소망 (무덤의 내부)
◆ 4연 : 영원한 안식의 세계 (무덤의 외부)
[이해와 감상의 길잡이]
<묘지송>은 <향현(香峴)>과 더불어 정지용에게 초회 추천된 작품으로 당시 문단에서는 경이로움과 충격으로 받아들였다고 한다. '묘지'에서 느낄 수 있는 일반적 통념을 뒤엎었을 뿐 아니라, '죽음'을 '부활'의 높은 차원으로까지 승화시킨 박두진의 탁월한 시작 능력이 발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죽음'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은 대개 비애감·공포감·허무감 등을 주조로 하게 되는데, 이 작품에서는 정반대의 시각으로 시인의 종교적 신념을 통해 부활의 이미지로서 형상화되어 있다.
1연은, 주검이 들어 있는 묘지일지라도 금잔디가 아름답게 깔려 있는 무덤들은 외롭지 않다는 의미이다. 묘지는 주검이 묻혀 있는 곳으로 한 생명의 파멸과 종식을 의미한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 곳은 영원한 안식처이기도 하다. 따라서 '금잔디가 기름진' 곳에 있는 무덤은 이미 자연에 동화되어 새로운 생명을 얻은 장소라고 할 수 있다. 즉, 이 역설은 죽음이 종말이 아니라, 재생(再生)의 출발점임을 암시하고 있다.
2연에서, '하이얀 촉루'는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마치 자연의 일부처럼 느껴지고 무덤 속의 어둠을 밝혀주는 존재이기도 하다. 주검도 자연과 동화됨으로써 향기로운 냄새를 풍긴다. 이는 인간과 자연의 순환을 통해 영원한 생명이 지속된다는 박두진 특유의 생사관이 반영된 표현이다.
3연에서는 1,2연의 역설이 여기서는 죽음이 안식과 부활을 뜻하는 것으로 전환되고 있다. 여기서 '태양'은 기독교적인 메시아를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4연은 이 시의 주제가 되는 연이다. 금잔디 사이에 할미꽃이 피었고 멧새도 우는, 봄볕이 포근한 무덤이 더 없이 따뜻하고 정겹게 그려져 있다. 거기 누워 있는 주검들은 차라리 행복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의성어의 효과적인 활용은 주검에 생명감과 활기를 불어넣어 준다.
[작가소개]
박두진 : 시인
출생 : 1916. 3. 10. 경기도 안성
사망 : 1998. 9. 16.
데뷔 : 1939년 문장 등단
수상 : 1993년 제15회 외솔상, 1989년 제1회 정지용문학상, 1988년 인촌상
작품 : 도서 60건
호는 혜산(兮山). 1916년 경기도 안성 출생. 1939년 정지용의 추천으로 『문장』에 시 「향현(香峴)」, 「묘지송(墓地頌)」 등을 발표하였다.
이화여대, 연세대 교수를 역임하였고, 1998년 타계하였다. 『청록집[공저]』(1946), 『오도(午禱)』(1953), 『거미와 성좌』(1962), 『인간 밀림』(1963), 『하얀 날개』(1967), 『고산식물』(1973), 『사도행전』(1973), 『수석열전』(1973), 『야생대』(1981), 『포옹무한』(1981) 등의 시집을 발간하였고, 1984년에는 범조사에서 『박두진 전집』을 간행하였다. 이외에도 수상집으로 『생각하는 갈대』(1970), 『언덕에 이는 바람』(1973), 『그래도 해는 뜬다』(1986)와 시론서 『한국현대시론』(1970), 『현대시의 이해와 체험』(1976) 등이 있다.
아시아자유문학상(1956), 서울시문화상(1962), 3‧1문화상(1970), 예술원상(1976) 등을 수상하였다. 박목월‧조지훈과의 공저인 『청록집』은 일제 말기 한국인의 겨레 인식과 저항적 자세를 주로 자연을 제재로 하여 시화하고 있다. 「향현」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침묵 속에 지내온 산에서 힘차게 치솟아 오를 저항과 창조의 불길을 예기하는 시상을 드러내어 일제 치하의 암울함을 의기(意氣)로써 이겨내는 분노의 서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미의식은 일제에 의해 민족주체성이 훼손되었다는 인식과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저항 의식에 기반한 것이다. 「묘지송」에서도 죽음의 의식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삶을 예견하는 햇빛을 노래하여 조국의 미래를 소생케 하는 늠연한 기상을 종교적 의미까지 함축하면서 드러내었다. 또 「푸른 하늘 아래」에서는 부정적 힘에 대한 정면 대결의 시상을 펼쳐보여 제국주의를 비판하고, 평화 공존을 형상화한다.
박두진의 초기시는 이처럼 전통적인 여성적 정한(情恨)에서 벗어나 남성적인 기개(氣槪)를 시화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또한 작품에 수용된 자연은 근원적으로는 순응과 화합의 지혜를 추구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창조적 결단성이나 생성의 의미를 내장하고 있다. 해방 후에 쓰여진 「해」는 신생 한국의 창조적 의지를 형상화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이후 『하얀 날개』에 이르기까지 박두진은 시대의 부정적 가치를 비판하는 내용을 다루면서, 이념적으로는 절대적 가치의 추구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러한 가치 추구의 정신을 바탕으로 그의 후기 시편들에서는 세속적 삶을 순화하며 혁신하는 자세가 더욱 심화되어 갔다. 즉 『고산식물』, 『사도행전』, 『수석열전』, 『야생대』, 『포옹 무한』 등에 걸쳐 시대의 부조리에 맞서 싸우며 그것을 희생적으로 극복해 가는 시적 자아의 의기와 함께 구도적 정신의 높은 표적을 향한 시심의 심화를 보게 된다.
<경력사항>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연세대학교 교수
<수상내역> 1956년 아시아 자유문학상, 1962년 서울시문화상, 1970년 3‧1문화상,
1976년 예술원상
<작품목록>
청록집, 해, 현대시집 Ⅲ, 오도, 박두진시선, 시와 사랑-자작시 해설, 거미와 성좌
인간밀림, 한국현대시론, 고산식물, 사도행전, 수석열전, 속‧수석열전, 현대시의 이해와 체험
야생대, 예레미야의 노래, 포옹 무한, 해, 박두진전집, 해, 박두진 시집,
박두진-한국현대시문학대계 20, 박두진 전집, 그래도 해는 뜬다, 별들의 여름, 돌과의 사랑
돌의 노래, 불사조의 노래, 성고독, 일어서는 바다, 가시면류관, 들의 노래, , 서한체
빙벽을 깬다, 폭양에 무릎 꿇고, 고향에 다시 갔더니, 숲에는 새 소리가,
시적 번뇌와 시적 목마름, 한국 현대시 감상, 낙엽송, 도봉, 청산도, 향현, 묘지송, 비
[네이버 지식백과] 박두진 [朴斗鎭]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