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안동에 내려 온지 한 달이 다 되어 가나 일요일엔 집에 가느라 인근 지방을 돌아 볼 기회가 없었는데, 지난주 주중 휴일(삼일절)을 맞아 가까운 곳을 여행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청량산이나 주왕산엘 가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복장과 신발이 준비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곳은 워낙 유명하니 장래 언젠가 기회가 있을 것도 같고 (또 좋은 곳은 아껴두고 싶어...) 평소에 가보기 어려운 경북 북부 지방을 여행하기로 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영주를 거쳐 봉화와 울진(덕구온천과 백암온천 포함)을 돌아본 다음 영덕을 거쳐 안동으로 돌아 올 작정을 하고 9:30쯤 숙소를 나왔다.
영주로 가는 국도로 들어서기 전 안동시 서후면에 있는 봉정사(鳳停寺)부터 들렸다. 절로 들어가는 진입로는 소나무 터널이 길게 형성되어 있었는데 마침 어제 밤에 내린 눈이 나뭇가지에 내려 앉아 설화(雪花)를 만들어 참 아름다웠다. 절 입구 일주문에는 ‘천등산봉정사(天燈山鳳停寺)’란 현판이 높게 걸려 있었다. 안내문에 의하면 이 절은 신라 문무왕 12년(672년) 의상(義湘)스님의 제자인 능인(能人)스님이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 ‘봉정사’란 이름을 갖게 된 것은 의상스님이 영주에 있는 부석사에서 종이로 봉(鳳)을 접어 던졌더니 이곳에 떨어져 정지(停止)하므로 봉정사라 정했다 한다.
이 절은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목조 건물인 극락전(極樂殿 ; 국보 제 15호)을 비롯하여 대웅전, 화엄강당, 고금당 등 보물3점 외에도 귀중한 문화재를 많이 보유한 유서 깊은 절이고 건물도 아주 아름답고 배치도 짜임새가 있었다. 그리고 몇 년 전에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방한했을 때 하회마을과 함께 이 절을 방문하여 더욱 유명해 졌다.
1시간 정도 절에서 시간을 보낸 후 영주를 향해 출발 했다. 5번 국도를 따라 북상하는데 저 멀리 소백산 연봉(連峰)들이 머리에 흰 눈을 이고 늠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소백산엔 여러 번 갔었지만 눈 덮인 산봉우리들을 쳐다보며 달려가니 아름답기 그지없고, 그곳에 올랐을 때의 정경이 새삼스럽게 떠올랐다. 영주(榮州)는 제법 큰 도시인데 철도 중앙선과 영동선, 경북선이 교차하는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영주는 과거 한 두 번 와본 적이 있어 시내에 들리지 않고 핸들을 동쪽으로 꺾어 외곽 도로를 이용해 곧바로 봉화(奉化)로 향했다. 북위 37도선을 거의 평행으로 울진까지 이어지는 36번 도로를 따라 가기만 하면 된다.
조금 달려 영주시내를 막 벗어나니 봉화 11 km , 태백85 km , 울진 90km 의 이정표가 보인다. 영주에서 봉화 가는 길은 의외로 꾀 넓은 들판이 펼쳐져 있었다. 우리가 흔히 봉화를 산간벽지로 생각하기 쉬우나 고원(高原)이라 부르는 게 차라리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나 교통편을 생각해 볼 때에는 오지(奧地)임이 틀림없다. 영주로 해서 가던, 울진이나 삼척을 경유해서 가던 거리나 시간이 만만하지 않다. 봉화는 군의 캐치프레이즈를 “자연이 살아 숨쉬는 고장”으로 정하고 오염되지 않은 청정지역임을 알리려 하는 듯 했다.
봉화에서 춘양 넘어가는 대로변에 “축, 00마을 000씨 자 00양 서울대 식품영양학과 합격”이란 이색 플래카드가 걸려있는 것이 눈길을 끈다. 허기야 이런 오지에서 서울의 명문대에 합격 했으니 동네의 경사라 할 만 하겠다.
춘양이란 곳은 36번 국도에서 벗어나 영월로 넘어가는 갈림길 어귀에 있는데 ‘춘양목’으로 유명한 목재 집산지이다. 어쩐지 지명(地名)이 마음에 들어 한번 들려 봤더니 정말 조그마한 도시(마을 이라는 게 맞겠다)였다.
그래도 버스 터미널에 가 봤더니 ‘서울 다방’ 도 있고 ‘고속식당’도 있었다.
마침 점심때라 요기나 할까하고 고속식당에 들어가서 평소에 접하기 쉽지 않은 메뉴인 ‘묵밥’을 시켰다. 묵을 가늘게 채치고 잘게 쓴 묵은 김치와 함께 냉면그릇 같은데 담아 나오는데 참기름을 쳤는지 고소하고 메밀묵 특유의 담백한 맛이 괜찮았다. 반찬으로 나온 달래무침과 파 겉절이도 신선했다.
공기가 맑고 전답이 깨끗하니 거기에서 나는 곡식, 채소도 깨끗하겠지.
다시 36번 도로로 나와 동진(東進)하기 시작했다. 얼마안가 소천이란 조그마한 마을이 나오고 여기서 좌회전해서 북으로 올라가면 태백, 삼척, 동해로 가는 35번 국도고 그대로 직진하면 울진으로 가게 된다. 조금 더 가니 현동이란 곳이 나오는데 이곳에서부터 영동선 철로가 북상하여 철암을 거쳐 강릉으로 올라간다. 지금부터 태백산맥의 영향을 받는지 길이 꾸불거리면서 가팔라진다. 해발 477m의 회고개재에 오르니 북쪽 저 멀리 연산준봉(連山峻峰)이 파노라마처럼 동서로 길게 널어 섰는데 (지도로 확인해보니, 아마도 ) 그곳은 문수산(1206m), 비룡산(1129m), 청옥산(1276m) 그리고 좀 뒤편에 우리가 너무나 좋아하는 태백산(1567m)이 보이나 보다. 공기가 정말 맑다. 아침엔 눈발이 약간 날렸으나 지금은 햇볕이 화사하고 하늘은 티끌 하나 없이 깨끗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