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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년 다해 4월28일 목요일[(백) 부활 제5주간 목요일]
[수도회] 기쁨이 넘치는 사랑의 집으로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제1독서 사도 15,7-21
† 복음 요한 15,9-11
◈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먼저 이웃에게 생활로써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상대방에게 관심을 두고 그를 인정해 주는 자세가 먼저 필요하지 않습니까?
상대방이 나보다 더 훌륭해서도 아니고, 더욱이 그를 사귐으로써 어떠한
이익이 있어서도 아니지요. 우리 모두를 참된 생명으로 이끌어 주시는
예수님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상대방의 약점과 결점을 그 사람만의 약점이나
결점으로 보지 않아야 합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그의 약점을 나의 약점으로
받아들이는 넓은 포용력이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런 가운데, 상대방을
이해하며, 부족한 점은 서로 보완해 나가야만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사랑의 계명을 실천할 수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남을 인정하고 섬기는, 그러한 사랑이 없는 곳에는 미움과 무관심만
있게 마련이지요. 무관심과 미움은 우리를 서로 갈라놓고, 끝내 영적으로
눈멀게 합니다.
그러므로 한번쯤, 나의 가정과 직장, 이웃을 살펴보고, 그들에게 어떠한
관심과 사랑을 베풀고 있는지 돌이켜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들과 사랑을 적극적으로 나누지 않을 때, 하느님의 사랑도
우리와 함께할 수 없게 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 매일 미사 -
◈ [인천] 주님께 길들여져서 주님 사랑에 머무는 우리가
2016년 다해 4월28일 부활 제5주간 목요일
제1독서
"내 판단으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서 하느님께 돌아선 이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말아야 합니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15,7-21
복음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5,9-11
며칠 전 밤에 성지의 쉼터에서 혼자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성전에 앉아
기도하는 것도 좋지만, 자연 속에서 바치는 기도도 좋기 때문입니다. 특히
그날의 밤은 정말로 운치가 있었습니다. 반짝이는 밝게 빛나는 별들과 환한
둥근 달이 너무나 예뻤고, 밤의 정막을 조용히 깨뜨리는 조그마한 벌레 소리
역시 아름다운 오케스트라의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이런 밤에 제가 키우는 강아지와 함께 밖으로 나간 것입니다. 그리고 벤치에
앉아서 성무일도를 바치고 있었는데 문제가 하나 생겼습니다. 글쎄 테이블
위에 잠시 놓아 둔 저의 안경을 몰래 물고 가서, 다시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든
것입니다. 렌지에는 심한 흠집을 남겨놓아서 도저히 재사용이
불가능했습니다. 안경테 역시 심하게 휘어져 있었고 이곳저곳에 이빨
자국이 가득합니다.
다음 날 안경점에 갔습니다. 전에는 코의 눌림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값이 조금 더 나가더라도 가벼운 안경테를 찾았는데 이번에는 굳이 가벼운
안경테가 필요할까 싶어서 저렴한 안경테를 찾았습니다. 만 원짜리부터
찾다가 2만 원짜리 안경테를 선택했습니다. 이제 안경렌즈를 선택할
차례입니다. 전에 갔던 안경점에서는 이런 렌즈가 좋다고 하면서 주로 수입
렌즈를 추천하곤 했었지요. 하지만 이곳에서는 아예 비싼 수입 렌즈를
꺼내보이지도 않고 그냥 국산렌즈가 만 원, 이만 원, 삼만 원으로 있는데 이
중에서 하나 선택하라고 합니다.
고가의 안경테를 선택하면 무조건 고가의 안경 렌즈를 추천받았는데,
저가의 안경테를 선택하니 고가의 안경 렌즈는 아예 말씀도 하시지
않더군요. 그러면서 전에 괜히 비싼 안경을 썼던 것이 아닐까 싶더군요.
저렴한 안경으로도 충분했는데 안경점 직원의 호객행위(?)에 넘어가서
이제까지 제 분에 넘치는 안경을 썼던 것 같습니다.
이 정도로도 충분한 것을 더 많은 것, 더 좋은 것을 선호했던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만족의 삶이 아니라, 차고 넘치는 풍족한 삶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차고 넘치는 것들을 모두 누리며 사는 것은
불가능 합니다. 그런데도 왜 더 많은 것과 더 좋은 것들만을 원하며 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세상의 것들에 길들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께서는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계명을 지켜야 한다고 하시지요. 주님의
계명은 차고 넘치는 이 세상의 풍족함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비워야만 실천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계명을
지키면 주님의 말씀처럼 기쁨이 우리 안에 가득하게 됩니다.
세상의 풍족함만을 쫓아서는 안 됩니다. 그 풍족함에 길들여져서 점점 더
많은 것들을 더 원하게 될 것이고, 그 욕심과 이기심으로 인해 주님의 사랑과
정반대편에 서게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것들이 아니라, 주님께 길들여져서 주님 사랑에 머무는 우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행복은 매 순간 사랑과 은총과 감사를 경험하는 것이다(데니스 웨이틀리).
개인피정자들을 위해 새롭게 만든 성체조배실입니다.
주님 말씀에 맛들입시다.
예전에 가족들과 함께 태국에 갈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과일의
여왕이라고 하는 ‘두리안’을 꼭 먹어봐야 한다는 말을 해 주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맛있기에 그럴까?’라는 생각이 들어서 여행 가이드에게 두리안을
살 수 있도록 해달라고 청했습니다. 그리고 두리안을 받아든 저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과일에서 나오는 고약한 냄새는 ‘과일의
여왕’이라는 말을 믿을 수 없도록 했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먹어보고 싶지 않은 냄새였지만, 하도 사람들이 이 맛은 반드시
봐야 한다는 말에 기대감 반, 거부감 반의 마음으로 두리안을 썰어 입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신기한 체험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신기하게도
입 안에 들어가니 냄새가 전혀 나지 않고, 맛이 너무 좋은 것입니다. 이렇게
두리안의 맛을 기억하고 있는 저는 이제 열대 지역에 가게 되면 ‘두리안’을
반드시 찾을 정도로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주님의 말씀도 한 번만
맛들이면 헤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명까지도 기쁘게
내어놓는 순교자들이 있는 것 아닙니까? 그런데 그 말씀을 맛보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습니다. 어렵고 힘들어 보인다고, 또한 바보같이 미련한
모습이라면서 계속해서 거부하고 있습니다. 대신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필요한 것처럼 보이는 물질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에만 익숙해지려고만
노력하는 우리는 아니었을까요?
오늘이면 십자가의 길도 모두 끝날 것 같습니다.
이러했던 길이 어떻게 변했을까요?
- 인천교구 갑곶 성지 조명연 마태오 신부 -
◈ [수도회] 기쁨이 넘치는 사랑의 집으로 - 기 프란치스코 신부
2016년 다해 4월28일 부활 제5주간 목요일 요한 15,9-11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요한 15,9.11)
기쁨이 넘치는 사랑의 집으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기쁨이 우리 안에 있고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도록 당신의 사랑 안에 머물라고 하십니다(15,9.11). 이는 영원한
기쁨으로 우리를 초대하시는 말씀입니다. 아울러 그분께서는 계명을
지킴으로써 충만한 기쁨 속에서 살 수 있음을 가르쳐주십니다(15,10).
행복을 추구하는 사람은 누구나 기쁨이 충만한 삶을 희망합니다. 그러나
고통과 환난 속에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우리는 그런 기쁨과 동떨어진
모습으로 살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스스로 번민과 갈등, 영혼의 어둠을
자초하기도 하지요. 참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연약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근본적으로는 우리가 머물러야 할 집인 '예수님의
사랑'이 아닌 현세에 중심을 두고, 소유와 집착의 집에 갇혀 살아가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편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문다는 것은 그분께서 우리에게 대하여 지니신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고, 그분의 계명, 곧 사랑의 삶을 살아 그분의
뜻을 실천하는 것을 뜻합니다.
어떤 사람과 사물에 대해 집착하고, 많은 것을 소유하려 하며, 남보다
우월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히면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 없게
됩니다. 그 결과 기쁨이신 주님께서 내 안으로 들어오실 수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참 기쁨을 충만히 누리려면 세상 것에 대한 소유와 애착, 탐욕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보지 못한 채 자기가 원하는 것을 성취함으로써 기쁨을
누릴 수 있다는 망상에서 벗어나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나아가 참 기쁨을 누리려면 우리가 머물러야 할 그분의 사랑이 죽음까지
받아들이는 십자가의 사랑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해 수난
당하신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며(15,10) 세상 안에서
공동선을 위해 투신하고 기꺼이 자신을 나눌 때 참 기쁨을 누릴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조건도 한계도 없이 남김없이 전부를 내어주는
그런 사랑을 추구해야 참 기쁨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 참 기쁨의 사람이 되기 위해 다른 그 무엇이 아닌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도록” 합시다. 예수님의 사랑이 아닌 미움에, 구원의 기쁨 대신에
재물이나 세상 즐거움에 마음을 빼앗긴 채 허송세월하지 않도록
깨어있어야겠습니다. 우리가 머물러야 할 ‘사랑의 집’을 벗어나 내가 원하는
곳을 찾아 헤맬 때 우리는 “영혼의 집시‘가 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머물러야 할 사랑의 집인 예수님 안에 머물 때, 우리는 그분의
자녀로써 서로 일치를 이루고, 그리스도 신비체의 지체로서 같은 영광을
누릴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묾으로써 누리는 기쁨을
나누어야 할 소명도 있습니다. 곧, 세상 모든 사람들 안에 주님께서 주시는
기쁨이 충만하도록 차별 없이 사랑하고, 사회 정의를 위해 투신하며
공동선을 추구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목숨마저 기꺼이 그리고 거저 내어주신 예수님의 그 사랑을 받아들여
실행함으로써, 세상 모든 사람이 주님께서 주시는 참 기쁨을 맛보는 거룩한
날이 되길 희망합니다. 나는 어디에 머물고 있을까요?
- 기경호 프란치스코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6년 다해 4월28일 부활 제5주간 목요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요한 15,9)
내리 사랑이라고 하지요.
또 사랑받아 본 사람이 사랑할 줄 안다고 하였지요.
예수님은 사랑이신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을
듬뿍 받으셨기에 당신도 우리를 듬뿍 사랑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면 예수님께서 나를 엄청 사랑하신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고 우리가 사랑이 적은 사람이라면
그건 예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참으로 사랑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기만 하면 됩니다.
다른 사랑도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좋지만 예수님의 사랑은
사랑 자체이신 하느님 사랑에서 직접 나오는 것이기에
순도가 아주높은 사랑이기에 그 사랑 안에 머물기만 하면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답니다.
여러분은 사랑을 많이 받으셨나요?
부모님의 사랑은 얼마나 받으셨나요?
배우자의 사랑, 친구들의 사랑은 얼마나 받으셨나요?
사랑을 별로 못받아 봐서 애정결핍이 있나요?
그래서 사랑을 구걸하고 싶나요?
집착해서라도 사랑을 쟁취하고 싶나요?
그럴 필요 없답니다.
너무 애쓸 필요 없답니다.
그냥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기만 하면 된답니다.
오늘 애정결핍으로 허허한 마음을 집착으로 채우려 하지 말고
그냥 그분 사랑 안에 조용히 머물러 보십시오.
그 어떤 사랑보다도 훨씬 큰 기쁨과 평화의 결실을
가져다주고 무엇보다 내가 더 사랑할 수 있도록 만들어 줄 겁니다.
사랑을 갈구하기보다 사랑 안에 고요히 머무르는 종이
참으로 복된 하느님의 종입니다.
바로 여러분이 그런 종이시길 빕니다.
- 작은 형제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요한 15, 11)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6년 다해 4월28일 부활 제5주간 목요일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15, 11)
기쁨의 힘을 믿습니다.
머무름안에 기쁨이 있기 때문입니다.
머무름은 결코 서두르지 않습니다.
이끄심의 본질이 머무름이기 때문입니다.
머무름은 이와같이 가장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게 됩니다.
머무름은 헛된 추상이 아니라 가장 구체적인 충실함입니다.
가장 겸손한 자세는 언제나 주님 안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가장 좋으신 주님 안에 머무르는 기쁨이 가장 큰 기쁨입니다.
주님께서 가장 좋은 당신의 기쁨을 우리들에게 주십니다.
부질없는 것에 사로잡혀 있는 우리들에게 참기쁨을 일깨워 주십니다.
머무름없이 충만해 질 수 없는 까닭입니다.
머무름의 계명에 충실한 하루되시길 기도드립니다.
먼저 예수님의 말씀에 기쁘게 머무릅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방식은 머무름이기 때문입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청주]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낸다 |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6년 다해 4월28일 부활 제5주간 목요일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 요한 15,9-11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낸다.
무슨 일을 하든 억지로 마지못해 의무감으로 하면 기쁨을 갖지 못합니다.
그러나 똑 같은 일을 하면서도 자발적으로 하면 보람과 기쁨이 큽니다.
마찬가지로 사랑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명령이나 의무에 의해 한다면
진정한 사랑을 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기쁨이 없습니다. 그러나
계명을 내리는 분의 뜻을 알기 위해 또 그분과 하나가 되기 위해 지킨다면
그 의미가 풍요로워집니다. 사실 진정한 사랑을 한다는 것은 그만한 사랑을
받은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은 것을 인식하는 사람이
많이 사랑할 수 있고, 하느님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실제적으로도 이웃의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은 자기를 먼저 생각하는
부족한 사랑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미 받은 사랑에 감사하고 또
많이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무조건 ‘머물러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그들을 위한 당신의 사랑이 선행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아버지께서
당신을 사랑하신 것과 같은 사랑으로 제자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목숨을 내놓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아버지께
받은 사랑은 제자들을 위한 사랑의 기초입니다. 아버지의 사랑을 아들
예수님께서 받으셨고 예수님의 사랑을 제자들이 받았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제자들 서로 간에 사랑을 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이웃 사람에게로 사랑의
손길을 펴게 되었습니다. 그리해서 그것을 보고 사람들이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습니다(요한13,35).
우리 옛 속담에 “부모가 온 효자가 되어야 자식이 반 효자”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식은 부모가 하는 것을 보고 따라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하느님과 예수님, 그리고 제자들은 내리사랑 안에 머물렀습니다. 우리도
같은 사랑을 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의 품 안에는 아홉 자식이 있을 곳이
있지만, 아홉 자식의 어느 집에도 아버지가 있을 곳은 없다.”는 격언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그만큼 사랑하기가 어렵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면 할수록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랑은 충만한 기쁨입니다.
어떤 역경과 고난, 박해도 굴복시키지 못할 기쁨이며 목숨을 내놓을 만큼 큰
기쁨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 안에 머물라고 당부하는 것은 ‘당신의 기쁨을 제자들에게
전해 주고 그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 기쁨은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만이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충만한 기쁨을
주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에서 얻게 될 것입니다. 혹 계명을 억지로 지키는
사람은 헛고생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으로 계명을 지키십시오. “마음 속 깊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느님도 그를 아십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을 채비가 갖추어져
있는 만큼 그는 하느님을 사랑합니다”(디아도쿠스주교).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하면
사랑할수록 더 사랑 받는 존재가 됩니다”(작은 거인들에서). 망설이지 말고
사랑을 위한 사랑을 함으로써 주님의 계명을 기쁘게 지키시기 바랍니다.
‘말로나 혀가 아니라 행동으로 진심으로 사랑합시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으며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미루지 않는 사랑을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청주교구 청주성모병원 행정부원장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서울] 부활 제5주간 목요일
2016년 다해 4월28일 부활 제5주간 목요일
<너희 기쁨이 충만하도록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 요한 15,9-11
성소주일은 성소국에서 하는 커다란 행사입니다. 자비의 해를 맞이하면서
청소년국 중고등부 사목부에서 성소주일 행사를 함께 하면 좋겠다는 제안을
하였습니다. 성소국에서 단독으로 행사를 준비할 때보다는 복잡하고 어려운
일들이 많았습니다. 성소국은 자리만 마련해 주고, 결국은 청소년국의
행사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함께 하였고, 결과는
풍성한 결실로 드러났습니다. 성소주일 행사 중에 가장 많은 인원이
참석하였습니다. 생기 있고, 발랄한 학생들을 보는 것은 큰 기쁨이었습니다.
매년 함께 하기는 어렵겠지만 4년에 한번은 함께 하기로 약속하였습니다.
건강한 세포들은 자신들의 영양분을 이웃의 세포들에게 나누어 준다고
합니다. 하지만 병든 세포들은 자신들의 영양분을 나누어 주지 않고, 이웃
세포들의 영양분을 받아들이기만 한다고 합니다. 비대해진 세포는 결국
슬픈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의 몸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든 지체들은 다른 지체들을
위해서 아낌없이 내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연대와 나눔은 건강한 몸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위대한 제국이 망하는 과정은 외부의 침략 때문이 아니라고 합니다. 문을
열고, 다른 문화와 다른 민족들을 수용하고, 받아드릴 때는 더욱 발전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문을 닫고, 외부의 문화를 거부하고, 다른 민족을 탄압할
때는 고인 물이 상하듯이 서서히 붕괴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동생 수녀님은 참 여러 곳에서 소임을 하였습니다. 서울교구, 춘천교구,
인천교구, 부산교구, 수원교구에 있었고 지금은 마산교구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문득 사제들도 그렇게 인사이동을 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어떤
교구는 사제가 많아서 인사적체가 심각하고, 어떤 교구는 사제가 적어서
사목하기가 어렵다고 합니다. ‘적재적소(適材適所)’에 인사이동을 할 수
있다면 한국교회는 더욱 풍요로워질 것 같습니다.
오늘의 성서 말씀은 우리에게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이렇게 결정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하신 것처럼 그들에게도 성령을 주시어 그들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정화하시어,
우리와 그들 사이에 아무런 차별도 두지 않으셨습니다. 지금 여러분은 왜
우리 조상들도, 우리도 다 감당할 수 없던 멍에를 형제들의 목에 씌워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입니까?”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갈등과 분열을 치유하는 방법을 말해 주십니다.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다. 너희는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고 또 너희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신앙 안에서 우리들의 사명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권고나 부탁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명령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셨으니 겸손하게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성소국장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서울] 예수님이 재현하신 사랑 안에 머무는 것
2016년 다해 4월28일 부활 제5주간 목요일
예수님이 재현하신 사랑 안에 머무는 것
사랑 안에 머무는 곳, 만물은 물론 사람도 이런 곳이 절대 필요해요.
예를 들면 ‘모태속의 태아’라 생각하면서 저는 얼굴에 생기를 느껴요.
더 이상 맞는 곳을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네요. 포근한 포옹보다도.
한 순간에 삶의 에너지가 폭발해도 더 터질 여유를 느끼는 행복이지요.
영원으로부터 느껴온 이런 행복의 종착역이 모태였다고 감탄해 봅니다.
영원으로부터 받은 그 느낌을 예수님은 신앙인들에게 재현시키시네요.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분의 사랑 안에 머무르는 것처럼,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요한 15,10)”
대자연 품을 어머니의 모태처럼 하느님 큰 믿음우리에서 새 사랑 폅시다.
대자연의 품을 인간의 소유물처럼 욕심껏 독점하면 세상지옥 돼버립니다.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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