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서히 우리 차례가 다가오고 있다.
지금은 결승 4번째 팀이 등반 중이다. 벽을 차면서 들려오는 '쿵..쿵..' 하는 울림소리와 관객들의
환호와 아쉬움의 함성들이 오가면서 서서히 우리차례가 돌아오고 있는것이다.
아침부터 오락가락 하는 빗방울은 금새라도 소나기를 쏟아 부을듣 하지만 그래도 잘 참아 주고 있고
스산한 날씨는 우리를 더욱 긴장되게 만들고 있다.
28일(토) 치뤄진 예선 경기에서 유사하게 설계된 A,B 두 루트의 상위 3팀씩 6팀이 결승에 진출 했다.
종성이 형과 난 결선 6팀중 유일하게 등반과 회수를 28분여만에 완료 하면서 완등을 했고 예선의
역순으로 5번째 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결승 6번째 팀은 B루트에서 예선 1위를 한 팀이다.
28일 예선 루트는 하단부에서 두개의 훅 동작을 취하고 3호
정도의 너트를 걸면서 시작된다.
인공벽에서의 너트 사용경험이 전무한 나로서는 쉽게 믿겨지지 않는다. 너트를 홀드에 삽입
하고
힘껏 아래로 치면서 확인 작업을 한 후에야 비로소 몸을 실을 수 있다. 이어지는 나무로 만든 캠을
설치할 수 있는 홀드와 몇개의 너트를 걸면서 첫번째 크럭스 구간에 도달 하게 된다.
너트를 걸고 딛고 선 자세에서 우측으로는 손홀드로 사용하기 좋은 홀드와 그 좌측으로 60~70Cm
떨어진 곳에 가로 크랙 모양의 나무 홀드가 있다. 이 구간에서 앞서 등반한 많은 팀들이 추락을
하며 애를 먹었던것 같았다. 난 손홀드로 사용하는 홀드에 타이오프 슬링을 걸고 몸을 의지한채
나무 홀드에 설치할 장비를 찾았다. 내가 가지고간 한 Set의 에일리언과 트랑고 캠 중 틈새의
크기와 맞을만한 싸이즈의 캠을 여러번 꺼내 보지만 너무 크거나 아니면 너무 작아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 몇차례 켐을 이용하려는 시도를 한 후 " 캠은 아니다!!" 라는 순간적인 판단이 서고 이어
로우볼을 꺼내 설치해 보려 했지만 역시 어의치 않다. 그렇다면.... 내 눈이 스카이 훅으로 향한다.
나무의 상태를 보니 스카이 훅을 걸면 나무가 터져 나갈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이 느껴진다.
하지만 이미 난 여기서 너무 오래 지체했고 다른 방법을 찾기위해 더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이순간 불안한 마음을 억지로 떨쳐 낼 수 밖에 없다.
기어랙에서 스카이 훅을
꺼내고 레더에 걸어 나무 홀드에 집어 넣었다. 체중을 서서히 싣는 순간
머릿속으로 ' 여기선 절대로 터지지 않는다' 는 확신이 선다. 약해 보이던 나무는 나의 체중을
버텨 주기에 충분했고 오히려 나무 속으로 훅이 파고 들면서 더욱 안정적인 상태가
된것이다.
일단 믿음이 간 상태라면 머뭇거릴 필요가 없었다. 이어지는 홀드에 훅을 걸고 일어섰다.
첫번째 크럭스를 통과하자 관중들과 운영진들 사이에는 첫 완등을 기대하는 응원의 목소리가 커져갔고
등반에 몰입한 상태에서 큰 힘이 되고 있었다.
하지만 또하나의 문제의 구간이 기다리고 있다. 아주 작은 싸이즈의 스틸너트만이 먹을 수 있을만큼
좁고 깊지 않은 모양의 홀드다. 앞에 등반했던 팀들과 우리팀 이후에 등반한 팀들도 이 구간에서
여러번의 추락을 경험한 후에야 넘어선 구간이었다. 홀드의 모양을 살펴본 순간 너트를 사용하는것에
거부감이 느껴진다. 그때 눈이 간 장비는 한번도 사용해보지 않았던 캠 훅이었다.
캠훅을 걸고 몸의 체중을 싣고 선 순간 홀드가 힘없이 돌아가면서 순간적으로 아찔한 쾨감이 밀려온다
다행히 캠훅은 가로로 걸려 있는 형태로 내 몸을 지탱해 주고 있었다. 이 불안한 상태를 빨리 벗어나기
위해 서둘러 위의 홀드를 잡고 마지막 클립을 했다. 이어 종성이형이 회수를 시작 했고 5분의 시간안에
모든 장비를 회수하면서 우리는 27분여만에 등반을 마쳤다.
하지만 상단에서 캠훅을 떨어트려 감점 1분이 더해 지면서 공식 기록은 28분 여로 기록 된다.
어제 치뤄진 예선은 직등에 가까운 등반선을 보였고 그다지 장비 선택이 까다롭지는 않았다. 하지만
오늘 치뤄질 결승은 이미 루트는 출제되어 있었고 홀드 모양을 공개하지 않기 위해 테이로 가려놓은
홀드들의
배열을 보면서 등반선을 추측해 보지만 어떤 동작들이 필요할 지 짐작하기란 쉬운일이 아니다.
다만 하단부에서 큰 펨듈럼이 있을것이라는 예상과 홀드 간격이 먼 곳들에서 나올 수 있는 상황들에
대해서만 생각해 볼 뿐이다. 29일 아침부터 시작된 스피드 경기가 끝나고 공식 행사가 진행 된 후
비로소 우리는 격리구역에 격리되었고 드디어 결승루트가 공개 되었다. 우리 앞에 경기를 치르는
네팀의 경기내용에따라 관객들의 환호와 안타까운 탄성이 반복 되면서 분위기는 고조되어갔고
격리구역에서 바라본 관중들이 일제히 숨죽이며 한 지점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에 이미 등반자 뿐만
아니라 관중들 까지도 움직임 하나하나에 몰입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각 팀들의 등반이 진행되어지고 네번째 팀의 등반 종료시간이 가까워지면서 어깨를 누르고 있는
장비의 묵직한 느낌에서 오는 등반에 대한 기대감과, 격리 구역을 벗어나는 순간 대처해야 할 수
많은 상황들이 머릿속에서 반복적으로 맴돌고 있다. 가지고 가야할 장비와 두고가도 될 장비를
생각해보고 큰 싸이즈의 캐머롯과 주마를 두고, 대신 긴 슬링 몇개와 조금전 슬링 끝에 피피를
걸어 만든 고리가 달린 슬링, 그리고 대회 주최측에서 제공하는 대여 장비를 기어랙에 걸어 두었다.
출전 직전의 이 짧은
선택이 등반중 엄청난 변수로 작용 했다. 출발 직전 두고간 장비 때문에
곤란한 상황이 되기도 했고 반대로 마지막 순간 가지고 간 장비 때문에 등반을 이어갈 수 도
있었으니 사소한 장비 하나하나가 엄청난 중요성을 가지고 있음을 새삼 생각하게 한다.
앞 팀의 경기가 끝나고 드디어 우리 차례다. 관중들에게 인사를 하고 벽에 설치된 루트를 살펴
보았다. 하단부 많은 팀들을 힘들게 했던 트레버스구간이 있고 그 위쪽으로 이어진 심한 오버행에
설치되어 있는 홀드들이 보인다.
결승 첫번째 홀드에 훅을
걸고 서면서 결승 루트 등반을 시작 하였다. 너트와 캠훅을 걸고 펜듈럼을
위해 설치된 잠금 비너에 줄을 걸었다. 그리고는 종성이형이 줄을 놓아주는 만큼 내려와 텐션
트레버스를 해야 한다. 하단의 텐션트레버스 구간은 거리가 멀긴 하지만 잡을 홀드가 좋아 보인다.
순간 요세미티 등반을 위해 훈련 하면서 유심히 보았던 등반 비디오의 한 장면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줄에 매달린채 레더에 스카이 훅을 걸었다. 그리고 좌,우로 반동을 주기 시작하면서 홀드를 낚아채기위해
달려나갔다. 하지만 그리 쉽지만은 않다. 두번째 시도도 실패하고 다시 세번째 시도를 위해
반대방향으로 최대한 물러난 후 힘껏 벽을 구르며 홀드를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스카이훅을 홀드를
향해 던져 넣었다. 아주 짧은 시간이 지난 후 반대방향으로 튕겨 나가던 내 몸이 데이지 체인을 통해
멈추며 걸리는 통쾌한 느낌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드디어 성공이다. 관중들의 환겅이 등뒤로 들려 온다.
아마도 다른팀에비해 빠르게 잡아챘기 때문일꺼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완등에대한 기대도 서서히
그 가능성이 느껴지고 있었다. 조심스럽게 체중을 넘겨 퀵도르를 잡고 다음 동작을 준비 했다.
나무에 철재 너트가 삽입되있는 홀드는 첫눈에 코퍼 헤드나 작은 스틸 너트를 넣고 일어서야
한다는것을 알 수 있었다. 등반 시작전 마지막 순간에 챙긴 코퍼헤드가 이곳에서 쓰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가지고 갈것인가 말것인가를 고민했던 장비였는데 너무나도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것이다.
이 구간부터는 벽의 각도가 무척 세지기 시작한다. 레더를 밟는 두발은 허공에 있어야 했고 상체를
고추세우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코퍼 헤드에 걸린 몸히 크게 흔들리면 장비가 빠질 염려가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신중하게 체중을 넘기며 진행을 하였다. 다음 홀드는 캠을 사용하기에 아주 좋은
홀드다. 하지만 장비 랙을 뒤져 보니 눈에 들어오는 싸이즈가 없다. 두세번 번갈아 장비를 찾다가
결국 약간 작아보이는 캐머롯을 설치 하였다. 캠의 끝부분만 살짝 걸린 상황에서 체중을 싣고
일어섰다. 아직은 불안 하지만 장비가 터지지는 않았다. 퀵도르에 자일을 통과시키고 다음 리벳을
향해 봄을 움직이는 순간 몸이 아래로 꺼지며 추락을 하고 말았다. 어이없는 실수다. 캠 싸이즈를
잘 못 선택한 결과였다.
이 추락은 날 무척 곤란한 상태에 빠트렸다. 심한 오버행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에 내 몸은 벽에서 떨어져 있었고 다시 등반을 위해서는 주마를 사용하여 올라가야만 한다.
하지만 난 출발 직전 주마와 그리그리를 두고 등반을 시작한 상태였다. 줄을 손으로 잡아당겨
튕겨보려 했지만 자일이 미끄러운데다 장비의 무게때문에 도저히 위로 올라갈 수 없었다.
시간은 흐르고 어찌해야 할 지 막연한 상태가 되버린 것이다. 벽으로 붙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다. 몸을 좌우로 흔들어 보기도 하고 레더를 아래로 내려
잡아달라고도 해보았지만 모두 불가능한 상태다. 시간은 계속 흐르고 있었고 난 서서히 불길한
마음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이때 종성이 형이 출발전에 피피와 슬링으로 만들어 놓은 걸개를 사용하라고 소리쳐 준다.
얼른 정신을 차리고 기어랙에 묶어둔 슬링을 풀어 자일쪽으로 던졌다. 자일에 피피가 걸렸다.
숨죽이며 지켜보던 관중들이 일제히 박수를 치며 격려를 해준다. 이렇게 등반은 다시 시작할
수 있었고 추락했던 홀드에 조금 더 큰 싸이즈의 캠을 설치하여 다음 동작으로 이어
나갔다.
리벳과 퀵도르를 사용하고 다시 스카이 훅 동작을 지나 큰 홀드에 슬링을 연결하고 딛고 섰다.
이곳이 앞선팀들이 고전하던 위치였다. 나무로 만든 홀드는 아래방항으로 넓어지면서 캠 장비들이
먹지 않는다. 불안한 상태를 감안해 두개의 프랜드를 이퀄라이징 했지만 결국 하나는 터지고 작은
싸이즈의 캐머롯이 무게를 지탱해 주고 있다. 작은 캠이 깊숙히 잘 밖혔는지 안정감이 느껴지고
이제 한숨 돌릴 수 있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레더를 밟고 끝단에 서서도 도저히 손이 닿지 않는 위치에 큼직한
홀드가 붙어 있다. '슬링이나 자일을 던져야 한다' 는 판단이 선다. 자일을 던지면 다음 동작이
어려울것 잩아 가지고간 슬링을 던지기로 했다. 두 슬링을 연결해 머리위로 들어올려 힘껏 던졌다.
앞서 등반한 팀들이 모두 여기서 더이상 진행하지 못한듯 하다. 관중들은 이곳에서 어떤 방법으로
넘어설지에 대해 무척이나 궁금했다고 한다. 내가 슬링을 연결해 위의 홀드에 던지는 동작을 시작하자
모두들 환호성과 박수로 격려를 해주었다.
첫번째 시도는 실패하고
다시 레더 끝단을 딛고 선 후 다시한번 힘껏 던져 넣었다. 슬링이 홀드를
넘어갔고 정확히 걸려 주었다. 크럭스를 넘어선 후 세번의 훅동작을 이어간 후에야 완등지점에
다다를 수 있었다. 클립을 하고 서둘러 하강을 한 후 종성이 형의 회수를 위해 자일을 고정 했다.
이때까지의 소요 시간이 48분 정도 되었던것 같다. 등반중 두개의 장비를 떨어트려 2분의 감점을
감안하면 남은 시간은 10분. 이 시간 동안 모든 장비를 회수해 마지막 지점에 자기 확보를 하는것이
후등 완료가 되고 선등과 회수가 모두 완료 되어야 완등이다.
종성이 형의 회수가 시작 되었고 주마 펜듈럼 구간을 시간 절약을 위해 과감히 날라 좌 우로 심하게
몸이 흔들렸다. 하지만 개의치 않고 회수를 계속하였고 몸이 밖으로 튕겨져 나오는 상황에서 힘들게
회수를 해 나가고 있었다. 순조롭게 회수가 되고 마지막 순간 자기 확보줄을 걸기위해 동작을 취하는
순간 등반 종료가 되면서 결국 결승루트 완등은 기록하지 못하였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등반팀중 가장 좋은 결과를 얻었다.
여유있게 서로 격려하고 등반 후에 맛보는 기쁨에 젖어 있을때 쯤 마지막 등반조가 등반을 시작 했고
우리는 조금은 여유있는 마음으로 다음 팀의 등반을 지켜 보았다. 예선 B루트 1위답게 등반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었고 모든 구간에서 순조롭게 진행을 하였다. 2~3곳의 크럭스도 무리 없이 넘어서고
결국 38분만에 선등이 완료 되었다. 이렇게 되면 다음 회수하는 사람에 따라 등반 순위가 결정 되게
된다. 회수자가 회수를 완료하게 되면 우리는 2위가 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우리가 1위가 되는
상황인 것이다. 회수자에게 주어진 시간은 12분이었고 우리보다 2분의 여유가 더 있었다.
12분의 시간은 더디게만 흘러 갔다. 매 순간순간 손에는 땀이 나고 회수자의 몸짓 하나하나를 진지하게
바라보게 된다. 이왕이면 1등을 해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그 결과가 우리보다는 마지막팀의
회수자의 손에 달려 있으니... 손에 땀을 쥐고 회수자를 바라 보았다. 회수자가 주마 펜듈럼
구간에서 자일을 제거하지 않아 2분의 감점이 발생 했고 이어 각도가 심한 오버행구간을 순조롭게
회수해 나갔지만 아래방향으로 설치한 프랜드가 잘 회수 되지 않아 고전하는 사이 마지막 팀의
등반 시간이 끝이 났다. 우리팀의 우승이 결정되는 순간이다. 첫 우승의 기쁨을 느끼며 주위
사람드로부터 축하를 받으며 1회 익스트림 라이더배 인공등반 대회가 마무리 지어졌다.
첫댓글 유선배님이 좋은 자료를 찾아주셨네요. 예전 ER홈피에는 올라와있던 자료인데 다시 봐도 좋은 내용입니다.
1회 대회를 비롯한 초창기 대회 때는 2인1조 경기였습니다.
첫 대회 때 집행부나 세팅팀 전부 긴장을 많이 했지요. 경험이 없었으니까요. 당시 결승전에서는 이상우,박준규 조와 민준영, 박종성 조가 우승을 다툴 정도로 용호상박이었습니다.
최종우승팀은 민/박 조였지만 선등자 기록으로만 보면 이상우가 더 빨랐었지요.
그 뒤 대회 때마다 이상우와 민준영이 우승을 양분했었습니다. 뒤에 준영이는 대회참가를 중단하고(충분한 경험과 우승을 했다고 생각)세팅팀에 합류해서 도움을 주었었죠.
참고로 민준영 박종성 , 준영와이프 미영, 김팔봉 등이 ER 9기 였었네요.
졸업당시 1등이 김팔봉, 2등이 민준영 으로 기억납니다.
6기~9기에서 걸출한 클라이머들이 많이 배출되었던걸로 기억됩니다.
남인우 전용학 민준영 김팔봉 등등
추가 설명 고마워요. 역시 상섭씨는 ER의 살아 있는 기록이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