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생님!
우리들이 다니던
학교가 있는
백산은 교통의 요충지였죠
언젠가 말한
정읍 신태인 김제 익산을 잇고
남쪽 금만경 평야에서
생산되는 농산물들은
일본군의 전쟁물자를
용이하게 수송하는
전략적 요충지였지요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병참이지요
병참은
1종 2종 3종 4종으로
분류되는데
금만경 평야는
1종 식량의 병참기지였지요
군대의 將卒(장졸)들은
먹지 않고는
전쟁을 수행할수 없지요
아무리 막강한 군사력과
첨단 무기를 갖췄어도....
그래서 백산은
일본제국 군대에겐
없어선 안되는
중요한 땅이었지요
우리 학교는
완벽하게 구획된
동서로 뻗은 직사각형 토지
울타리는 탱자나무와
측백나무로 조성 되었고
그 안에는
중앙에 벼를 쌓아놓은
크고 긴
2개동의 창고가 있었지요
남쪽 공터 그러니까
그후 우리들 운동장이 된 곳은
벼를 말릴수있는 넓다란 마당이었고
뒷쪽으로는
감과 밤나무등이 심어져있었고
여러가지 채소와 작물을 심어
정미소(매가니깐)의 노동자들과
관리인들이 먹을수 있는
채마밭이 조성되어 있었지요
서쪽 창고 뒷편에
사택이 있었는데
일본인 농장 소유주
약손이라는 사람이
살았던 곳이었데요
해방이 되고 학교로 인가되어
후에 경종이네가 살았고
박 기철 중학교 국어 샌님도
그곳에 살았던 기억도 나네요
남쪽으로 300평 정도
연못이 있었고
연못 끝에 김 백철이네 집이 었었지요
더운 여름
백철이네 집에 놀러가면
연못을 스치며 불어오는 바람이
북쪽으로 난 들창문을 통하여 지나가면
얼마나 시원했던지....
연못을 만들면서 파놓은 흙더미들은
동켠 학교쪽으로
남북으로 길게 누워 둔덕이 되어
우리들 흙장난 놀이터가 되었지요
연못 가장자리엔 빙 둘러
능수버드나무가 심어져 있었죠
연못에 용도는
화재와 가뭄에 대비하고
비상용수로 쓰기 위함이었겠지요
동쪽 코너에 우물이 있었는데요
길 건너 맞은편 집이
주 영숙이네 집이었지요
학교 정문은 신작로가 나 있는
남쪽 정 중앙에 있었지요
정문으로 부터 20m 정도
안으로 들어가면
약간 서편으로 치우쳐져
지은 건물이 있었는데요
교실 한칸 넓이의 프랑스식
서양풍 건출물이 있었지요
동 남 북으로 길고 확트인
여러개의 窓(창)이 나 있고
서쪽켠 벽에
뻬치카가 설치되어 있었고
독립된 식당에
조리대 싱크대 식탁
천정에 상드리에도 달았던
흔적이 있었지요
남쪽에 정미소
동 서로 뻗은 창고를
언제든 살필수있는
미셜 푸코의
감시와 처벌이라는 책에 등장하는
제레미 벤덤이 설계한
원형감옥 (페놉티콘)과
흡사한 구조였지요
그러니까 이 건물은
전망대와 조망대
사무실로 쓰여진 다목적 건물이었죠
조선인 노동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독립건물
다른 건물과는 다르게
건물 주위를
3층 계단식 화단을 만들어
가스가이 동백 사철나무
가문비나무등이 키순대로
우리 때까지 심어져 있었지요
우리들 4학년 때
배정받은 교실이
바로 이 건물이었지요
운동장 보다
2m 이상 되는 높이에
계단과 출입문이
동쪽과 남쪽으로 나 있었는데요
우리들은 남쪽 출입문을
선생님은
동쪽 출입문을 사용하였지요
동쪽 문을 열면 바로
교단과 교탁이 나오고
칠판이 걸려있었지요
시작과 마침을 알리는
앙증맞은 靑銅鐘(청동종)이
북동쪽 코너 창문틀에 매달려 있었구요
담임 선생님은
백 영숙 선생님
청순한 소녀티를 막 벗어난 듯한
곱고 아름다운 선생님이셨지요
朱紅色(주홍색) 바탕에
검은 물방울 무늬의
뉴똥 저고리에 안에
새하얀 와이셔츠
검은 담비털을 닮은 비로오드 치마
발등을 반쯤 덮은
검정 가죽신발
머리에 꼿은
나비문양 머리핀
선생님의 첫모습 첫인상이었지요
그냥 그대로
선녀의 모습이었지요
늘 웃는 얼굴로
우리들을 대해 주셨던
선생님
수업이 시작되고 끝날 때마다
종을 치는 고운 손결을
나는 아무도 몰래 훔쳐도 보았지요
지금의 블랙핑크보다
그때 선생님은
학교 안에서
많은 인기를 누렸지요
그런데 어느날 아침
아직
시작종도 울리지 않했는데
절대 어울리지 않은 소문이
교실내에 쫙 퍼져
우리들은 삼삼오오 짝을 이뤄
이 소문에 대한 진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진짜냐 가짜냐로
의심을 보태갔는데요
시작종이 울린지도 모르고
우리들은
서로의 얼굴을 마주보며
책상과 의자에 걸터앉아
쑥덕거리고 있는데
동쪽 출입문이 열리고
선생님이 들어오자
교실안은 이내
찬물을 끼얹은듯
쥐죽은듯 조용해졌지요
영문을 모르는 선생님은
무슨 이야기를 하다
내가 들어오니 모두
꿀먹은 벙어리가 되었니? 하며
우리들 하나 하나를 쳐다보며
빙그레 웃었지요
상대는 5학년 담임
제 기철 선생님이셨지요
선생님은 진즉에 결혼 하였고
50을 바라보는 나이
작은 키에 깡마른 체격
우리 선생님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상대였지요
시간이 흐르자
소문은 소문으로 잦아들었고
우리들도 까맣게 잊어갔지요
선생님은 그 시대
퍼스트 모더니즘을 구현하는
신여성의 모델이었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선생님을 짝사랑 한
어느 청년이 선생님을 모함하여
창피를 주려고 벌인 사건 같아요
선생님은
우리들이 졸업하기 전
학교를 떠났지요
학문에 정진하러
서울로 떠났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뿐....
신화가 전설이 되고
전설이 이야기가 되어
우리들 뇌리에 각인이 되고
지금까지 우리들 마음에
아름다운 詩로 남아있지요
아마!
지금 살아계시겠지요?
우리가 4학년 쯤이면 대략 11살
거기에 12지를 더하면 84세
아니지 3년을 더 한데도
여성의 평균연령 88세
분명 살아계실거야
건강하게....
지금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평생을 침팬치와
동거동락하며 살았다는
제인 구달 선생님의
모습일까?
너무나 궁금하다
백 영숙 샌님이....
.................................................
오늘이 해방된 날이네
땅콩처럼 두쪽 난 경축일 행사
우리들은 배웠지
안 중근 백 범 무궁화 삼천리강산
봐봐! 이분들이 살아계신다면
직일 넘들...
참!
참 부드러운 햇볕(光順)
찰흙같은 친구 철규
重力을 한손에 쥐고
우리를 궤도밖으로 이탈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갱종이
그리고 영원히 잊을수없는
나에 좋은 친구들
더운데 힘이들지?
나두 그래.
그리고
울 오매는 긴 수명을
옥황상제에게 하사받고 태어나셨나바
삼복 더위에
텃밭 고추따다 쓰러졌어도
눈에 띠게 회복 속도가 좋아보여
염라대왕께서 파견한
저승사자를 불러들였나바
좁은 소견에 불필요한 소식을 전한
나의 불민함을 꾸짖어주게나
알았나?
사랑하는 우리 병아리들...
건강해!
그래야 이곳에서
오랫동안 볼수있응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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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생님!
새암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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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8.09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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