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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안중근 무덤 보도한 진짜 일본 신문 찾았다?
안중근 의사 유해, 뤼순감옥 묘지 지하 2.1미터 아래 잠들어 있다
ㅡ 여순 감옥은 중공 다련이 아님? ㅡ
이승현
2026.3.26
1910년 9월 10일 [오사카 마이니치신문]의 '안중근 의사 묘' 관련 기사
[사진-이규수 교수 제공]
이규수 전 일본 히토츠바시대학 교수, 매장지 특정할 미공개 사료 최초 공개 (전문)
《일본어 원문 번각》(전문)
○ 安重根の墓
○ 於旅順
○ 方外生
○ 《大阪每日新聞》 1910年 9月 10日
毒彈一射、我伊藤公の生命を哈爾賓に奪ひて一時天下の視聴を其一身に集めたる狂漢安重根は
、爾来月を閲する滿五の本年三月二十六日を以て刑に就き、茲に關東州未曾有の大裁判も局を結び、
世人の記憶漸く將に弱からんとする今日、忽ち韓國併合條約成立して故公の遺業殆んど完きを告げんとす、
予は一種の感に打たれつゝ、大連より旅順に來り、故公を弔する心を以て重根の墓を探り兼ねて、
當時の共犯三囚の現狀を見るべく旅順監獄を訪へり。
重根の遺骸は處刑の當時、其骨肉數名旅順に來り、故郷に葬らんことを哀訴愁願する所あり。
我官憲は陽に之を諒として陰に之を拒みたるも、
彼等は尙之を覺らず最後に斷然其哀訴を排斥せらるゝや安の二弟は忽ち獄門に怒號憤泣して誓つて日本に報ひんと揚言せり。
然るに後に到りて說の耳より耳に傅へらるゝものあり曰く重根の遺骸實は監獄墓地に埋められず否一たび埋められたるも今や無しと、予輩心窃に其必無を斷ずべからざるを思ひ其眞相を知らんと期したり。
而も顧みて假令其眞相を探究するとも輕々しく之を發表すべきにあらざるを思ひ其儘打過ぎしが、
今や此探究に適當なる時機とはなれり。
當時の主任者にして現に尙其職に在る栗原典獄は終に口を開きて曰く「實は當時餘りに安の兄弟が遺骸を欲しがりたると邦人の激昂甚しかりしに慮る所ありて他囚の如く其墓標と言つてもホンの簡單なる木標で高さ地上一尺餘幅四寸許の板に表は姓名、裏は死亡年月日を記したるを立てず埋めて土を着せ、其上を雑草の生ひ茂るに任せて、故らに埋葬地點を明にせず、全く形跡を糊塗し去りたるより、種々の臆說行はれ、現に依然臆說を信ずる者少からざる由なれど、其實當時貴紙報道の如く、特に取寄せたる白木厚板の良松材を以て、破格の日本式寢棺を作り、且萬一發掘せらるゝが如きことなきやう、一般囚は地中四尺以下に埋むる例なるを以て、特に七尺以下となしたり。其場所は勿論當監獄附属の囚人墓地内なり」と。
予輩の愚かなる疑念は此一言にて容易に氷解したり。乃ち予は典獄が特に附し吳れたる案内者に從ひ、監獄より約十町なる墓地に向ひ、兩山相逼つて道將に盡きんとする所、案内者歩を停めて「此處です」と告ぐ。
墓地は細視して後始めて其れと知られたり柵なく墻なき山腹菁々たる雜草の間に、規律正く二列となりて五六十基立てり。山高からず一町程手前迄馬車を通じ得べく谷深からず屈強の男ならば下りて又上るべし。
仰げば正面對崗の頂上に清治時代の騎兵營の残墟略ぼ土墻を完うし。伏せば右方馬營浦と稱する小部落市街の一端となりて約一町の南なる山脚に迫り、眼前直下には私人の火薬庫と其番小屋の空家各一棟溪に臨みて立つ。
稱して監獄の共同墓地となすも其實下等支那人の廢墳と殆んど相觸るゝばかりに接近し、其數は二三十個に過ぎざるも二三個甚だしく古からぬものあり。地名山名共に詳ならず、假に名くれば馬營浦の上手とも稱すべきか。三方塞がり唯南方のみ馬營浦を越えて遙に黄金山と老虎尾とに對し、其間より港外の海水を望み、少しく西に偏して白玉山頭の表忠塔屹として天空に聳立するを見る。
立て列ねたる墓標の主は、何れ關東州內外、我行政圈を騷がせたる馬賊、強盗、殺人犯の類ならぬは無きが中に李、呉、袁、劉、邢など一時に刑せられたる馬賊の並べる其列の眞下卽ち前列にして二三年前大連に於て支那人の兩替商人を誘き出し二千圓を奪ひて之れを絞殺したる本山謙市、山村精一等を始め纔に此程刑せられたる許りの支那人殺し本田音松、日本人殺し袁廣高兩強盗の土未だ乾かざる新墓と隣接せる地點に雜莠の下、正に寢棺大と認めらるゝ形を覺束なげながら地上に現はし、一片の木標も立てず、一塊の石卵も置かざる所、卽ち是れ當年天下を聳動したる狂漢安重根の刑餘の身体が永く横はる所なり
秋漸く深くして蟲晝鳴く、知らず唧々たる聲亦大韓獨立を叫ぶや否や。(번각 : 이규수, 감수 : 최세경)
* 쉼표와 마침표 등은 번각자가 편의상 삽입한 것입니다.
《기사 한국어 번역》(전문)
○ 안중근의 묘(安重根の墓)
○ 장소 : 뤼순(旅順)에서
○ 필자 : 방외생(方外生, 기자 고마쓰 모토고의 필명)
○ 출전 : 《오사카 마이니치신문 大阪每日新聞》 1910년 9월 10일
흉탄 한 발로 하얼빈에서 우리 이토 공(公)의 생명을 앗아가,
한때 천하의 이목을 그 한 몸에 집중시킨 광한(狂漢) 안중근은
그 후 해를 넘겨 만 5개월이 되는 올해 3월 26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에 관동주(關東州) 미증유의 대재판도 종결되고
세인의 기억이 점차 희미해지려 하는 작금,
홀연 한국 병합조약이 성립되어
고(故) 이토 공의 유업이 거의 완성을 고하려 한다.
나는 감회에 젖어 다롄(大連)에서 뤼순(旅順)으로 와
고인을 애도(이토 히로부미를 의미함-이규수)하는 마음으로 안중근의 묘를 찾고,
동시에 당시 공범이었던 세 수인(囚人, 우덕순, 조도선, 유동하–이규수)의 현황을 살피고자 뤼순감옥을 방문하였다.
안중근의 유해는 처형 당시
그 혈육 몇 명이 뤼순에 찾아와 고향에 안장하기를 애소하고 애원했는데,
우리 관헌은 겉으로는 이를 승낙하는 체하면서도 내심으로는 이를 거부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이를 깨닫지 못했고 결국 그 애소가 단호히 거절당하자,
안중근의 두 동생(안정근, 안공근–이규수)은 돌연 감옥 문 앞에서 분노하여 울부짖고 통곡하며
맹세코 일본에 보복하겠노라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훗날 귀에서 귀로 전해지는 소문에 따르면,
안중근의 유해는 실은 감옥 묘지에 매장되지 않았다거나,
일단 매장되었으나 지금은 그곳에 없다고 한다.
나는 내심 정말로 없다고 단정할 수 없어 그 진상을 알고자 하였다.
게다가 돌이켜보건대,
가령 그 진상을 탐구한다 해도 경솔하게 이를 발표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여
그대로 지나쳐 왔으나, 이제야말로 탐구하기에 적당한 시기가 되었다.
당시 감옥의 주임으로서
현재까지도 여전히 그 직에 있는 구리하라(栗原) 전옥(典獄, 교도소장)은
마침내 입을 열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실은 당시 안중근의 형제가 너무나 유해를 원했던 점과
우리 일본인들의 격앙이 심했던 탓에 신중하게 고려했다.
다른 죄수들처럼 그 묘표(墓標, 무덤 표시)라고 하기에는
정말 간단한 나무 표식으로,
높이는 지상 1척(약 30cm) 남짓, 폭 4촌(약 12cm) 가량의 널빤지 겉에는 성명을,
뒤에는 사망 연월일을 기록한 것을 묘표로 세우지 않고, (관과 함께) 묻어서 흙을 덮고,
그 위를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도록 내버려두어,
일부러 매장 지점의 형태와 흔적을 완전히 감추어 버렸다.
이 때문에 유해에 관한 갖가지 억측이 나돌았고, 지금도 그 억측을 믿는 자가 적지 않다.
그러나 그 실상은 당시 오사카 마이니치신문 보도와 같이
특별히 들여온 백목(白木, 원목을 제재하여 표면을 가공하지 않은 목재) 두꺼운 판자의 좋은 재목으로써
파격적인 일본식 침관(寝棺, 시신을 눕히는 관)을 만들었고,
또한 만에 하나 발굴되는 일이 없도록
일반 죄수와 같은 지하 4척(약 1.2m) 이내에 묻지 않고,
특별히 7척(약 2.1m) 아래로 깊이 묻었으며,
매장한 장소는 물론 이 감옥 부속 수인 묘지 안이다”라고 말하였다.
나의 어리석은 의구심은 이 한마디로 눈 녹듯 쉽게 풀렸다.
이에 나는 전옥이 특별히 붙여준 안내자를 따라
감옥에서 약 10정(약 1km) 떨어진 묘지로 향했다.
안내자는 두 산이 서로 근접해 길이 막 끝나려 하는 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이곳이라고 알려 주었다.
묘지는 자세히 살펴본 뒤에야 비로소 그곳임을 알 수 있었다.
울타리도 담도없는 산 중턱, 무성한 잡초 사이에 규칙적으로 두 줄을 이루어 50~60기의 무덤이 서 있었다.
산은 높지 않아, 약 1정(약 109m) 앞까지는 마차도 다닐 수 있고,
골짜기는 깊지 않아 건장한 남자라면 오르내릴 수 있다.
고개를 들어 보면 정면 마주 보이는 산등성이 정상에 청나라 통치 시대의 기병영(騎兵營, 기병대 병영) 터가
거의 흙담이 완전한 형태로 있고,
고개를 숙이면 오른편으로 마잉푸(馬營浦)라 불리는 작은 부락 거리의 한쪽 끝으로
약 1정(약 109m) 남쪽 산기슭과 가깝고,
눈앞 바로 아래에는 개인 소유의 화약고와 그 파수막 등 빈집이 각각 한 채씩 계곡에 임하여 서 있다.
칭하기를 감옥의 공동묘지라 하나,
그 실상은 하등(下等) 중국인의 버려진 무덤(廢墳)과 거의 맞닿을 만큼 근접해 있고
, 그 수는 20~30기에 불과하다.
그중에는 아주 오래되지 않은 것도 1~2기가 있다.
지명과 산의 이름은 미상이나,
이름을 붙이자면 ‘마잉푸(馬營浦)의 위쪽’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까.
3면이 산으로 막혀 있고, 오직 남쪽만이 마잉푸 마을을 넘어서
멀리 황금산(黄金山)과 라오후웨이(老虎尾)를 마주하고 있어,
그 사이로 항구 밖의 바닷물(海水)을 바라보고,
조금 서쪽으로 치우쳐 백옥산(白玉山) 꼭대기의 표충탑(表忠塔)이 우뚝하니
하늘에 솟아 있는 것을 본다.
줄지어 선 묘표의 주인은,
모두 관동주 안팎에서 우리 행정권을 어지럽힌 마적,
강도, 살인범의 부류가 아닌 자가 없는 와중에 이(李), 오(呉), 원(袁), 유(劉), 형(邢) 등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처형된 마적들이 나란히 있는 그 열 바로 아래,
즉 앞 열에는 2~3년 전 다롄에서 중국인 환전상을 꾀어내어 2천 엔을 강탈하고
그를 교살한 모토야마 겐이치(本山謙市), 야마무라 세이이치(山村精一) 등을 비롯해
, 불과 얼마 전 처형된 중국인 살해범 혼다 오토마쓰(本田音松),
일본인 살해범 위안광가오(袁廣高) 등 두 강도의 흙이 마르지 않은 새 무덤과 인접한 지점에,
잡초 아래 침관(浸棺) 크기라고 인정할 만할 형태를 희미하게나마 지상에 드러내고 있으나,
한 조각의 나무 표식도 세우지 않고, 한 덩어리 돌멩이(石卵)도 놓지 않은 곳,
바로 이곳이 그해 천하를 뒤흔들었던 광한(狂漢) 안중근의 형여(刑餘, 처형된 몸)가 영원히 누워 있는 곳이다.
가을이 점차 깊어져 벌레 울음소리가 들리는데, 알지 못하겠구나,
찌르르 우는 소리 또한 대한독립을 외치는 것일까 아닐까.
(번역 : 이규수, 감수 : 최세경)
사료를 발굴한 이규수 교수는
뤼순감옥 '옛터'(舊址, 구지)를 기점으로
반경 약 1km 지점에 대해 위성지도 및 고지도와 대조해
청나라 기병영 터와 마잉푸 부락의 위치를 확인해
산 중턱 골짜기의 실제 매장지를 확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발굴범위를 획기적으로 좁혀주는 좌표이기 때문이다.
또 안 의사 주변에 묻힌 것으로 명시된 모토야마 겐이치, 야마무라 세이이치,
혼다 오토마츠, 위안광가오의 판결문과 사형집행 및 매장보고서는
일본 법무성이나 외무성에 남아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이들의 묘지번호(매장 위치) 등을 확인하면
안 의사의 묘는 바로 그 옆으로 특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하 2~3m 심도를 탐색하는 고성능 GPR(Ground Penetrating Radar, 지표투과레이더) 탐사를 통해
두꺼운 소나무관 등의 이질적인 신호(Anomaly)를 탐지하면
안 의사의 유해를 찾을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며,
중국측에 탐사 협조를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고마츠 모토고 기자 [사진-이규수 교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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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이토암살’ 105년 전 LA헤럴드 1면 톱…최초 보도는 AP
2014.10.25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안중근의사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저격이 26일로
105주년을 맞는 가운데 당시 미국의 유력 신문이
저격 당일 1면 톱으로 보도한 사실이 확인됐다.
(미국과 만주는 1만 km 이상 떨어져있는데 1909년 어떻게 당일 보도 할수있나?)
로스앤젤레스 헤럴드는
1909년 10월26일 ‘이토 백작 암살’이라는 통단제목의 장문기사를
이토의 사진과 함께 프런트면에 실었다
지금까지 ‘이토 암살’ 뉴스는 미국 신문 중 뉴욕타임스가 가장 빨랐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LA헤럴드 역시 같은 날 1면에 대서특필해 눈길을 끌고 있다.
LA헤럴드는 당시 16면이 발행된 대형 매체로 한 부당 2센트에 판매됐다.
<사진=CDNC DB> robin@newsis.com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안중근의사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저격이 26일로
105주년을 맞는 가운데
당시 미국의 유력 신문이 저격 당일 1면 톱으로 보도한 사실이 확인됐다
. 로스앤젤레스 헤럴드는
1909년 10월26일 ‘이토 백작 암살’이라는 제목의 장문기사를
이토의 사진과 함께 프런트면에 실었다.
지금까지 ‘이토 암살’ 뉴스는
미국 신문 중 뉴욕타임스가 가장 빨랐던 것으로 알려졌으나
LA헤럴드 역시 같은 날 속보가 나간 것은 물론,
1면에 대서특필해 눈길을 끌고 있다.
<뉴시스 2014년 3월5일 송고기사 참조>
특히 이 기사는 송고시점이 10월25일이어서 궁금증을 자아낸다.
안중근의사가 이토를 처단한 것은 10월26일 오전 9시께였기 때문이다.
사건이 벌어지기도 전에 결과가 보도되는 ‘예언 특종’이 돼버린 셈이다.
(기자는 조선 본토가 미국인지 모름 ?)
LA헤럴드는 당시 16면이 발행된 대형 매체로 한 부당 2센트에 판매됐다.
이 기사는 본래 AP통신이 작성한 것으로
당시 AP의 일본주재기자는 (쿠바에 있던 일본)
이토 암살 소식을 오후 3시께 송고했다고 밝혔다.
이 시간이 LA 기준으로는 전날 밤 11시경이었기 때문에
송고시점이 10월25일로 표기됐고
10월26일 발행된 것이다.
기사는 충격적인 죽음을 당한 이토가
국제적으로 어떤 위상을 차지하고 있는지 상세하게 전하고 있다.
영어권매체 사료연구가인 워싱턴의 문기성씨는
“하얼빈(哈爾濱) 발로 긴급 송고한 뉴욕타임스 기사가
저격 순간과 이토의 최후 등 현장의 생생함을 전했다면
LA헤럴드는 이토가 만주에 간 이유와
한반도 지배, (우리가 사는 한반도를 말하는게 아니고 플로리다주?)
그로 인한 암살 촉발 등 해설기사 형식을 띄고 있다”고 분석했다.
(만주 하얼빈은 멕시코 아래 지역이라 LA 헤럴드가 당일 보도한것?
뉴욕 맨하탄이 상해.)
당시만 해도
안중근의사가 ‘대한의군 참모중장(大韓義軍 參謨中將)’ 자격으로
이토를 처단한 사실을 전혀 몰랐기 때문에
‘이토백작, 한국인 광신자에 희생’이라는 작은 제목을 달기도 했다.
또 다른 제목으로 ‘일본의 가장 위대한 정치지도자의 피살로
도쿄, 큰 슬픔과 충격에 빠져’라고 소개한 것을 볼 때
미국을 비롯한 서구국가들이 이토에 대해 호의적인 입장을 취한 것을 알 수 있다.
LA헤럴드는
“일본의 유명정치인 이토 백작이
하얼빈에서 한국인에 의해 암살당했다는 뉴스가 전해졌다.
이같은 흉보는 도쿄 (쿠바에 일본이 있었음)시간으로 오후 3시에 전해졌다.
소식은 이토 백작이 암살됐다는 간단한 내용뿐이다.
도쿄는 큰 슬픔과 충격에 빠졌다”고 기사를 시작했다.
이어 “이토 히로부미 백작은 아마도 신일본의 가장 위대한 정치인이다.
서구인들에게 그는제국주의 헌법을 제정해
일본을 현대적인 문명국으로 가장 먼저 이끈 주인공으로 각인됐다”면서
“황제의 고문이자 헌법에 기초한 국가의 중개자로서
그는 일본을 현재의 위치에 있도록 만들었다”고 평가했다.
로스앤젤레스 헤럴드는
1909년 10월26일
‘이토 백작 암살’이라는 제목의 장문기사를
이토의 사진과 함께 프런트면에 실었다.
LA헤럴드는 “68세로 숨진 이토 백작은
일본이 자국민의 외국행을 사형에 처하던 1863년 영국에 유학을 떠난 선구자적 인물이다.
(1863년 가짜일본에서 배를타고 부산에 와서,말타고 압록강을 지나,
중국 러시아 중동 유럽대륙을 거쳐 섬나라 영국까지 말타고 갈려면 몇달걸릴까?)
(1860년대 열도 왜노에서 유럽에 영국이 있는지 알수가 있나?)
(당시 가짜 일본에서 유럽까지 10.000km를 석탄때는 증기선으로 운항 못함? )
이것으로 열도 일본은 가짜일본 증명?
(이토 히로부미는 1863년 쿠바에 있던 일본에서 남미에 있던 영길리에 유학한것)
이것으로 열도 일본은 가짜일본 증명?
프에트리코,도미니카 = 필리핀(한자로 여송)...
그는 애국심에 고취돼
서구의 패권에 대한 비밀을 알고자하는 열망을 보였고
결국 그의 영국행은 훗날 일본에게 이로운 결과로 입증됐다”고 말했다.
LA헤럴드는
일본 추밀원 의장이었던 이토의 요청으로
만주에서 러시아 재무장관 코콥초프와의 회담이 마련됐으며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고 분석해 눈길을 끌었다
. 다음은 관련기사.
“일본추밀원 의장이었던 이토는 10월16일 만주여행을 떠났다.(멕시코 밑에 만주?)
그는 화요일(26일) 만주 하얼빈에 도착했다,
그는 러시아재무장관 코콥초프와 만나기로 돼 있었다.
코콥초프와의 회담은,
일본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으며,
회담을 제안한 정확한 동기는 알려지지 않았다.
코콥초프는
정치적 문제는 논의하지 않는 조건으로 회담에 임했지만
이토는 정치적 목적이 있었다.
일본과 중국과의 합의에 따라
만주철도에 대한
러시아의 지배권에 대항하는 분쟁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중국은
이토 백작과 대화하기 위해
고위 임원을 하얼빈에 파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토는 일요일(24일) 선양을 통과했다.
이곳은 쉬량 총독과 회담을 한 곳이었다.”
LA헤럴드는
이토가 1870년 금융과 은행시스템을 조사하기 위해
커미셔너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했으며
일본에 돌아올 때 공공대신에 임명됐다는 사실도 전했다.
LA헤럴드는
이토가 1880년 청나라의 리훙장(李鴻章)과 조선문제를 놓고 협상을 벌였고
이 조약은 1894년
일본이 청나라와의 (미국에 있던 조선 군부)전쟁을 합리화하는데 이용됐다고 지적했다.
(청,고려 국왕이 대원군..고종은 대조선 황제) = 조선은 전세계를 부르는 이름
(구한말 북미 남미에 있던 조선 제후국은 영어 한자 겸용.. 나라국은 조선 제후국을 의미)
이어 “나중에 청나라와 평화조약을 맺은 그는 후작에 임명됐고
러일전쟁후엔 조선 통감이 됐다. (러일저쟁은 멕시코 근처 요동반도에서 일어남)
조선인들이 원한을 갖게 된 이유다”고 지적했다.
중공은 눈이 안오는 나라인가?
연려실기술 책 내용
신라가 전부 통일..고종까지 전세계를 다스림.
훈민정음 해례본에
강남은 중국이다.
중국은 천자국 조선황제가 계신곳 이라고 기록.
세종 부친 태종(영락제)가 계신곳이 위 지도의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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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15가지 이유’ 안중근의거 105년전 신문 찾았다
2014.03.26
스트레이츠 타임스는
“최근 사망한 이토 백작의 저격자에 대해
11월 16일 예비심문을 한 결과 중죄를 범한 것으로 결론내리고
비공개 재판에 회부키로 했다”고 전했다.
10월 26일 이토 사살후 3주만의 일이었다.
이토 저격 15가지 이유 중 기존과 동일한 내용은
‘첫째, 명성황후를 시해한 죄’ 등 9개 항목이며
일부는 순서가 다르다.
눈에 띄는 것은 ‘5조약과 7조약을 강제로 맺은 죄’가 두 개로 분리된 것이다
. 5조약은 1905년 을사늑약을,
7조약은 1907년 정미7조약을 말한다.
새로운 내용은
‘일곱째, 한국인의 권리를 박탈한 죄’
,‘아홉째, 한국인들을 신문에 기여하지 못하게 한 죄’,
‘열한번째, 한국이 300만파운드의 빚을 지게 한 죄’,
‘열다섯번째, 일본과 세계를 속인 죄’ 등이다.
( 일본을 속였다고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 ㅡ 이상하자나?)
기존의 내용에서 빠진 것은
‘5. 정권을 강제로 빼앗은 죄’,
‘6. 철도, 광산, 산림, 천택을 강제로 빼앗은 죄’,
‘9. 교육을 방해한 죄,
‘10. 한국인들의 외국유학을 금지시킨 죄’,
‘13.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에 경쟁이 쉬지 않고
살육이 끊이지 않는데 태평무사한 것처럼 위로
천황을 속인죄’ 등이다.(이토가 천황을 속였다고 안중근이 암살??)
새롭게 확인된 것은
일본이 한국인의 기본권을 박탈하고,
언론의 활동을 사실상 봉쇄했으며,
대한제국에 강제 채무를 지게 하는 등
사실상의 식물국가로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이와 함께 ‘동양의 평화를*(동양은 어디일까?)깨뜨린 죄’와
‘일본의 보호정책을 호도한 죄’,
‘일본천황의 아버지인 고메이 천황을 죽인 죄’,
(이또가 일본천황 부친을 죽였다고 안중근이 암살했다?)
‘일본과 세계를 속인 죄’ 등을 거명함으로써
이토 히로부미가
일본인과 세계인의 이름으로도 처단해야 할 중죄인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1860년대 미국 페리제독이 쿠바에 있던 진짜일본을 점령.
이후 메이지 천황은(조선인) 허수아비로 추락.
그렇지만 한반도(플로리다주)를 독립시켜야 한다고 발언.
그래서 안중근이 메이지 천황을 존경했다고 함.
그래서 위에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가,
메이지 천황 부친을 죽인것도 이토 암살 원인중의 하나라고 밝힘?))
쿠바 = 일본
바하마 섬=한자로 대판= 대마도=오사카
아리조나에 백두산이 있고,
콜로라도강이 압록강.
콜롬비아강이 압록수.
서부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한자로 속금산) 쪽이 황해도..온천지역..
바다해의 한자는 바다만 애기하는것이 아니고 넓은 지역을 말한다.
황해도 문화원에 아사달이 있고,
경복궁은 메릴랜드의 BOWIE에 있었다고 함?
북미에서 일어난 임진란때 불탄 경복궁을 1868년 대원군이 7200칸으로 중건.
김해 = 보스톤(가야가 있던곳)
이토 히로부미 암살을 LA헤럴드가 1909년 당일 보도 가능한가?
만주는 어디??
한편, 이 글을 쓴 고마츠 모토고 기자는
1875년 일본 고치현 우사기다(兎田) 태생으로
24살부터(1899년) 28살까지 미국에서 생활하다,
1904년 러일전쟁 이후 중국으로 건너가
다롄의 요동신보(遼東新報)에 입사했으며,
이때 오사카 마이니치신문의 특파원으로
안중근 의사 재판을 방청하고 법정 스케치를 남긴 인물이다.
(1899년 당시는 돛을달고 석탄때는 증기선 시대라서 가짜일본에서 미국까지 갈수도 없고
가는배도 없는데 어떻게 미국으로 갔나? ㅡ 진짜일본 쿠바에서 미국으로 간것)
고마츠 기자는
당시 일본의 국익을 대변하는 취재진의 일원으로
안 의사를 '광한'(狂漢, 미친 사내) 등으로 표현하기도 했지만
사형이 예견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안 의사가 보여준 당당한 기개와 논리 정연한 '동양평화론',
그리고 적국 일본의 천황이나 민중을 증오하기보다
동양의 진정한 평화를 역설하는 태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기사뿐만 아니라
당시 법정의 모습을 정밀하게 묘사한 삽화를 남기며
안 의사의 마지막 투쟁을 충실히 기록했다.
사형집행을 앞둔 1910년 3월, 고마츠 기자는
안 의사를 면회해 평소 품었던 경의를 표시하며 글씨를 청했고,
안 의사가 그에게 써 준 유목과 가족사진첩은
그의 외손자인 고마츠 료지가 2016년 11월 안중근의사기념관에 기증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안중근 이토암살’ 105년 전 LA헤럴드 1면 톱…최초 보도는 AP
2014.10.25
【뉴욕=뉴시스】노창현 특파원 =
안중근의사의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저격이 26일로
105주년을 맞는 가운데 당시 미국의 유력 신문이
저격 당일 1면 톱으로 보도한 사실이 확인됐다.
(미국과 만주는 1만 km 이상 떨어져있는데 1909년 어떻게 당일 보도 할수있나?)
1880년대 선박.
디젤엔진 여객선이 운항하던 1930년대 처음으로 미국에서 일본. 인천까지 올수가 있었다고 봄?
위의 고마츠기자는 1875년 출생하여 24살때 1899년 미국으로 가서 4년간 생활하다,
1904년 러일전쟁이후 만주 다련으로 가서 요동신보에 입사했다고 나옴?
청일전쟁 당시는 위처럼 석탄을 수천톤 배에 싣고 불을때며 운항하던 증기선 시대라서
가짜 일본에서 미국까지 갈수도없고 가는배도 없었음?
고로 열도는 일본이 아니라는거 증명?
정조때 지도 천하전여총도에 한반도 중공은 고려.
열도는 왜노.
최소 1910년대 까지 국호가 왜노 ㅡ 우리 신하국이라서 색상이 같음.
나라국 國 자가 있음.
1886년 대청국속 고려국기
미국에 있던 대조선 군부 청국에 속하는 고려라는 의미.
나라국은 조선 제후국을 의미..대원군이 청고려 국왕.
고종은 황제..황제는 세계에서 1명.
다음해 에디슨 회사가,
세계최초로 미국 경복궁 건천궁에 전구설치
백악관은 1895년 전구설치.
한반도는 조선본토가 아닌것을 증명하는 결정적 증거는 아래
연합뉴스 보도
1893년 고종이 시카코 박람회 개최
대조선이 중앙에 그려져있고,
양쪽에 태극기 성조기 계양.
묵셔가 =멕시코
한반도가 조선이라면 브라질 인구를 알수가 있나?
1920년 5월 19일
조선대학 운동장에서
조선대학 야구단과 시카코 대학 야구단이 경기를 했다?
1871년 대원군이 동부 13개주를 인정하여 미국이 탄생.
국제적인 경기라는 말은 미국의 조선과 신생국 미국의 경기라는 의미 같음.
1922년 미국 프로야구단이 남대문 도착열차로 경성에 와서 야구경기를 했다?
1871년 대원군이 동부 13개주를 인정하여 주식회사 미국이 탄생.
이후 조선왕조실록에 미국이 등장?
이 기사는 대원군이 미국으로 인정해준 동부 13개주의 대표인지,
아님 13개주 중에 1개 주 프로야구단이 열차를 타고,
경성인 시카코 남대문역에 도착했다는 기사같음.
지금은 미국에서 기차타고 남대문역에 올수있나요?
1933년 어린이 잡지 동광에 총을 판다고 광고?
1930년대 오사카에
돈을 보내면 총을 보내준다고 광고하는 일본과 조선은 어디인가?
중공은 눈이 안오는 나라인가?
연려실기술 책 내용
신라가 전부 통일..고종까지 북미에서 남미까지 다스림.
1909년 안중근이 만주에서 이토 히로부미 암살한것을,
LA헤럴드가 당일 보도했다는것은 중공은 중국이 아니라는 증거?
그럼 여순감옥도 가짜 요동반도 중공 다련이 아니라는것을 짐작 가능?
진짜 요동반도 여순감옥은 아래
1910년 미국에서 중공가는 여객선도 없고 갈수도 없음?
고로 위 요동신보 고마츠 기자의 당시 글은,
미국의 중국(조선) 여순감옥 근처 안중근 무덤을 보고 기사를 쓴것?
이것을 중공으로 지명아동하여 역사세탁?
안중근 유해는 딥스가 역사조작위해 중공의 요동 다련으로 이장했는지는 모름?
만약 중공 다련에서 유해를 발견했다면 유전자 조사를 해보면 알수있겠지만,
결론은 미국의 텍사스주 포트아서 여순감옥 근처에 매장한 안중근 유해를
역사조작 위해 가짜 중국의 요동인 다련으로 이장했다고 봄?
홍범도 장군이 1927년 소련공산당 가입목적을 고려독립이라고 기재.
또 1932년 윤봉길 의사가 상해에서 포탄 던지기 전에
중국을 침략한 적의 장교를 도륙하기로 맹세 하나이다 선서문을 김구선생한테 보냄 ㅡ 보물.
이 2가지만해도 중공은 중국을 이어받은 나라가 아니고 한반도는 조선이 아니라는것을 증명?
1910년대 하얼삔역ㅡ 미국 의회 도서관 소장.
건물형태가 왜 서양식
모스크바가 18곳
안중근이 순국한 여순항은 위의 텍사스주 포토아서 지역
북미 요동반도 여순감옥에서 순국.
현재 미국이 진짜 일본(한자로 잡혼= 앵글로색슨=유대)
여기서 안중근이 순국한것?
안중근 유해는 텍사스주 포트아서 여순 감옥에서 순국?
러시아는 어디라고?
일본은 어디라고??
만주는 어디?
여순감옥은 어디라고??
안중근 무덤은 어디있다고?
역사조작 위해 안중근 유해를 가짜 중국으로 이장 안했다면,
위 지도의 여순감옥 근처에 가서 안중근 무덤을 찾아야 함.
첫댓글 1885년 영국군이 진짜 여수 거문도를 점령했을까?
ㅡ1863년 열도 왜노에서 이토 히로부미가 영국에 유학했다?ㅡ가능한가?
https://blog.naver.com/bmss4050/223686753858
1776년 대조선 미국에서 정조가 즉위, 같은해 7월 4일 일루미나티가 미국에 정착했다?
ㅡ 이후 1894년 청일전쟁과 구한말 대조선 미국 역사는?
https://blog.naver.com/bmss4050/224183671209
최소 환웅시대부터 미국은 우리땅 증거는 아래
https://youtu.be/KzYpCzgiMXE
세상에 은폐 되었던 진실..5.18 암호명 체로키?
인디언이 어떻게 환웅시대 임금 치우천황을 알까??
미국이(진짜일본=앵글로색슨=유대) 박정희 살해후,
군인을 시민으로 위장투입하여 5.18 폭동일으키고,
북한군이 개입했다고 가짜뉴스를 퍼트린후
전두환을 시켜 광주시민 학살...cia 요원 김용장이 증언.
5.18때는 평시.전시 작전권이 미군한테 있어,
미군 허락없이 군을 투입할수 없음.
학살도 마찬가지.
이떄 미국이 5.18 암호를 체로키라고 정함.
이후 한민족 체로키족 학살하듯이 광주시민 학살후
전두환을 바지사장 대통에 임명?.
체로키는 한민족인 미국 인디언.
한민족을 학살하고,
1776년 7월 4일 일루미나티가 정착후
세력을 키워,
1871년 독립시켜 달라고 미시시피강 줄기 강화도로 쳐들어와서
대원군이 동부 13개주를 인정하여
주식회사 미국이 탄생한것.
지금도 미국은 국가가 아니고 주식회사.
남한은 미국 계열사?
1900년대 까지 한민족 2억명 이상 학살.
(1776년 7월 4일은 독립기념일이 아닌 일루미나티가 미국에 정착한날)
PLAY
1893년 세계황제 고종이 시카코 박람회 개최
그래서 중앙에 대조선이 그려져있고
양쪽에 태극기 성조기 계양
이때 북미 남미에 있던 미영프 독일등 대조선 신하국 47개국이 참가
고종 생일이 겹쳐 47개국 대표 100여명을
최고급 오디터리엄 호텔에 초대하여 성대한 부페를 대접.
1902년 6월 14일 뉴욕 타임즈 사설에
차이니스 황제는(조선) 월가의 대주주 큰손이다 보도?
이때 금이 147만톤이 있었다는 말이 있음.
이후 북미 남미에 있던 대조선 신하국 지금의 g7이 합작으로 대조선을 멸망시킴?
멸망당시 지식인들에게 금을 나눠주며
각국 대기업과 정부에 침투하여 살아남아 대조선을 찾으라고 유훈
금 147만톤은 어디있을까?
17년부터 트럼프가 왜 정은이와 친밀하다고 아부할까?
19년 서울와서 정은아 제발 판문점에 나와 달라고 애원했을까?
120년 원수 진짜일본 미국과 싸워 이긴나라는 북조선이 유일?
최소 1930년대 한민족 2억명 이상 학살.
따라와서 38선으로 분단시키고 6.25일으켜 630만명 이상 학살
30년대 초 악의축 미국은 2개 이상으로 쪼개져 2류국가로 추락 확신
한민족 1억 7000만명 학살한 가짜중국도 4개이상으로 쪼개져 후진국추락
조선의 중앙이 중국.
훈민정음 해례본에
강남은 중국이다. 중국은 천자국 조선황제가 계신곳 기록.
세종 부친 태종(영락제)가 계신곳이 중국.
세종말기인 1440년대 형님나라 중국을 괴롭혀 합작으로 태평양에서 몽골족 오이라트를 물리침.
단종도 사약받고 죽은게 아니고,
1462년 성인이 되어 직접 정치하며
진짜일본과 위의 태종나라 중국과 합작으로,
인도양 태평양에서 스페인 프랑스 영국을 물리침...세계대전 승리.
1550년대 유럽에서 돛단배를 타고 열도 가짜일본에 와서 천주교를 전파할있나요?
진짜일본은 열도가 아니라서 가능.
이때는 남미에 있던 스페인이 일본..그래서 쿠바에 있던 진짜일본한테 천주교를 전파후
1592년 임진란때 돛단배에 십자가를 달고 북미 대조선으로 쳐들어 온것.
병자호란은 어디서 일어났을까?
임진, 병자전쟁을 왜 난으로 기록했을까?
청고려 국왕은 대원군?
고종은 세계황제.
https://cafe.daum.net/dobongbak/Mhu3/15048?svc=cafeapi
진짜 명성황후 무덤은 어디있을까?
한반도 삼국시대 고려 조선왕릉은 전부 짝퉁?
경복궁 덕수궁등 궁궐은 언제 건축햇을까
유엔은 왜 설립햇을까?
70년대 초 설립한 유네스코는 ,
조선문화유산을 각국 문화유산으로 조작할려고 설립한것?
지배층 1% 50만명중에 90%는 가짜 일본놈이거나 골수 친일파들?
이들이 미중을 등에업고,
가짜역사를 퍼트리고 가짜뉴스를 퍼트려
국민을 갈라치기히며 뒤로는 매년 정부 지자체 공기업 예산 1000조중에 500조 이상을
미국회사 재벌과 언론등 1%가 나눠먹어며 룰루랄라한 세월이 80년?
이승만부터 윤까지 전부 미국이 임명?
재명은 중공이 임명??
이대로 가면 4년후 외노자 1000만명 영구체류시켜 잡종국가 완성후
가짜 중국인이 남조선을 다스리는 중공 식민지 완성?
중국 비판하면 징역 5년 대통령실 ㅡ 다음 검색
https://youtu.be/9JLKaUKpXJU
청와대 뚫려! 경찰 이렇게 난리난건 처음! 광장의 기적!
열광하는 시민! 청년들 돌격!
문재앙 윤건희 재명 현지 전부 감옥에 보내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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