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도넛 먹는 방법은 굉장히 특이했다. 쟁반을 집어들어 대여섯개의 도넛을 골라 쟁반위에 얹어놓고, 가장 싼 아메리카노 커피를 주문한다. 그리고선 창가에 앉아 골라온 도넛을 한입씩 베어물고선 커피를 마신다. 한개의 도넛을 끝까지 다 먹고 다른 도넛을 먹는 일은 드물다. 언제나 크림도넛 한입, 비스마르크 한입, 머핀 한입. 그리고 커피 한 모금... 그런식이었다. 나는 도넛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기때문에, 그 옆에 앉아 멍하니 커피를 마시며 창 밖을 바라봤다. 도넛을 먹을때 만큼의 그녀는 지독히도 말이 없었다. 굉장히 진지한 표정으로 묵묵히 도넛을 먹고 커피를 마셨다. 심지어는 전화 조차 받지 않았다. 그 어떤 촌각을 다투는 화제라도 그녀는 눈 앞에 놓여있는 도넛을 모두 먹어치운 뒤에야 관심을 가졌다.
" 왜 그렇게 먹지? "
" 뭘? "
" 도넛 말이야. 대 부분의 사람들은 하나를 완전히 다 먹고 나서야 다음 도넛을 먹지 않아? "
" 이상해? "
" 특이해. "
그녀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 뭐가 됐든 질리는건 싫어. 그래서 그래. "
그녀가 우유를 먹을때도 딸기우유 한 모금 흰우유 한 모금 초코우유 한 모금 커피우유 한 모금. 이런 식으로 먹을지 궁금해졌지만, 어쩐지 바보 같아져서 그만두고서 그녀가 도넛을 다 먹고 난 쟁반을 정리대에 올려놓고 밖으로 나왔다.
뭐가 됐든 질리는건 싫다. 라는 말은 그녀에게 있어서 생활방식 그대로였다. 요일별로 다른 옷을 입을수 있을만큼 그녀의 옷장은 다양한 옷들로 풍성했고, 휴대전화도 두달을 넘기지 못했다. 구두도 신발장이 좁을 정도로 쌓여있었고, 당연하게도 - 당연한건지 어쩐건지 - 남자친구도 굉장히 많았다. 아마 일주일 동안 일곱남자를 만난다고 해도, 이상하게 여겨지진 않을것이다.
내 사고 방식이 괴상한건지, 생각보다 그녀를 많이 좋아하지는 않는건지. 나와 데이트한 다음다음날 다른 남자와 팔짱을 끼고 거리를 걷는 그녀와 마주쳤을때도, 화가 나거나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다. 그냥 그녀의 방식이니 내가 이해를 하자. 뭐 이런 포용도 아니었던 것 같다. 너무나 그 광경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내 자신에게도 놀랐지만, 별 내색없이 내게 눈 인사를 하는 그녀를 보고는 더욱 놀랐다. 그리고 느꼈다. 그녀에게 이런 상황은 일상이구나. 그 날 이후 그녀를 만났어도 위화감은 느끼지 못했다. 평소처럼 차를 마시고 식사를 하고 영화를 보고, 집에 바래다 주고.
그 조우가 있고서 세번째 만나던 날. 그녀가 내게 물어왔다.
" 그 날일. 어째서 아무것도 묻지 않아? "
" 응? "
" 왜, 전에 한번 길에서 마주쳤었잖아. "
" 아아... "
나는 짐짓 기억이 난 체 했다.
" 뭐랄까... 알아도 어쩔수가 없으니까? "
" 어쩔수가 없다? "
" 응. 그 사람이 누구고, 너랑 무엇을 했고... 그런걸 들어봐야 달라지는 것도 없고 내가 할수 있는일은
아무것도 없다는 거지. 속 끓여봐야 내 손해 잖아. "
" 난 네가 물어볼줄 알았어. "
그녀는 찻잔을 만지작 거리며 나지막히 말했다.
" 내게 관심이 있다면 물어볼줄 알았는데, 그렇잖아? 적어도 우린 서로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
" 좋아하는거랑은 별개의 문제잖아... 네 생활까지 간섭할 수는 없는거니까. "
" 왜 간섭할 수 없는데? "
" 무례한 일이니까. 그런건. "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그런 그녀의 시선을 피해 차를 마시며 창 밖을 보려애썼다.
" 그거 알아? 내가 도넛을 먹을때 너는 나를 한번도 쳐다보지 않았어.
바보처럼 멍하니 창 밖만 바라봤지. 지금처럼 말야. 내가 도넛을 먹을때
어째서 한입씩만 먹느냐고 물었었지? 용케도 그건 봤네? 이 바보야.
내가 고른건 한입씩 먹었어도, 네가 골라준건 처음부터 끝까지 다 먹었단 말야.
네가 고른 도넛을 한번에 다 먹고 났을때 네가, ' 어라, 어떻게된거야? 한번에 다 먹었잖아?' 라고
말해주길 바랬는데, 너는 무신경하게 창밖으로 지나가는 사람들만 봤잖아.
무신경해. 너 정말 무신경해. "
나는 그녀의 말을 멍하니 듣고 있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서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 도넛 먹으러 가자. "
- by Steed
-"서진"의 '한페이지 단편소설 ( http://www.1pagestory.com )"中 추천작 Best "도넛"
첫댓글 ^^ 참 와닿았어요. 짧지만 짧아서 더 강렬하다고 해야 할까요?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