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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연의 시작과 끝, 섭리대로 정해져있어…모든 만남이 귀중한 이유
- 떠나도 흔적은 남고, 그 흔적은 또다른 인연의 씨앗 돼
시절인연(時節因緣)은 중국 명말 선사 운서주굉(雲棲株宏)이 조사의 법어를 모아 편찬한 선관책진(禪關策進) 경산대혜고선사답문(徑山大慧杲禪師答文)편에서 유래한 말로 인연의 시작과 끝이 자연의 섭리대로 그 시기와 장소가 정해져 있다는 뜻이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날 인연은 반드시 만나게 되고 피하려 해도 만나게 되는 것이다. (사진=인터넷 캡쳐)
불가에 시절인연(時節因緣)이란 말이 있다. 업설(業說)과 인과응보설에 의한 것으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사물은 인과의 법칙에 의해 특정한 시간과 공간의 환경이 조성돼야 일어난다는 말이다. 우리가 우연의 일치라고 보는 모든 일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지만, 그 원인이 있고 그것이 결과로 나타났을 뿐이라는 것이다.
중국 명말 선사 운서주굉(雲棲株宏, 1535~1615)이 조사의 법어를 모아 편찬한 선관책진(禪關策進) 경산대혜고선사답문(徑山大慧杲禪師答文)편의 ‘時節因緣到來 自然觸著磕著 噴地醒去(시절인연도래 자연촉저개저 분지성거, 시절인연이 도래하면 저절로 부딪혀 깨쳐서 소리가 나듯 척척 들어맞으며 바로 깨어나 나가게 된다)’라는 구절에서 유래한다.
시절인연에는 때와 장소가 맞아야 한다. 인연의 시작과 끝도 모든 자연의 섭리대로 그 시기와 장소가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굳이 애쓰지 않아도 만날 인연은 반드시 만나게 되고 피하려해도 만나게 된다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업을 지어 과보를 받는 시간적 차이를 세가지로 나눠 삼시업(三時業)이라 한다. 첫째 순현업(順現業)은 현생에 짓고 현생에 받는 것이고, 둘째 순생업(順生業)은 전생에 짓고 금생에 받거나 금생에 짓고 내생에 받는 것이며, 셋째 순후업(順後業)은 여러 생에 걸쳐서 받는
것이다.
예를들어 봄에 씨를 뿌려 가을에 코스모스꽃을 보는 것은 현생에 업을 짓고 그 업을 받는 것이기에 순현업에 해당되고, 전생의 인연으로 금생에 부부•부모형제•친구가 되거나 금생의 연분으로 내생에 그렇게 되는 것은 순생업, 지은 선업이나 죄업이 커서 여러 생에 걸쳐 공덕이나 죄업을 받거나 몇 생을 건너서 받는 것을 순후업이라 한다.
會者定離(회자정리)는 '만남에는 반드시 헤어짐이 있다'는 뜻이고, 去者必返(거자필반)은 떠남이 있으면 반드시 돌아옴이 있다는 뜻이다. 모든 만남은 맺고 흩어지지만 떠나도 흔적은 남고, 그 흔적은 또 다른 인연의 씨앗이 된다. (사진=인터넷 캡쳐)
석가가 열반에 들려하니 다문제일(多聞第一) 제자인 아난다가 슬퍼하자 석가는 오히려 그를 위로했다. "인연으로 맺어진 이 세상 모든 것은 덧없음(無常)으로 귀결되니, 은혜와 애정으로 모인 것이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헤어지기 마련이다. 이 세상 모든 것이 그렇거늘 어찌 슬퍼하고 근심만 하랴."
아난다는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하고 "하늘이나 땅에서 가장 거룩하신 스승님께서 곧 열반에 드신다니, 어찌 슬퍼하고 근심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이 세상의 눈을 잃고, 중생은 자비하신 어버이를 잃나이다."
석가는 다시 아난다의 슬픔을 달랬다. "아난다여, 슬퍼하지 마라. 내가 비록 한 겁을 머문다 해도 결국은 없어지리니, 인연으로 된 모든 것들의 본바탕(性相)이 그러하니라."
석가모니의 열반을 중심으로 편찬한 대반열반경(大般涅槃經)에 실려있는 얘기다. 여기에서 '생자필멸(生者必滅)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이란 말이 유래한다.
회자정리는 '만남에는 반드시 헤어짐이 있다'는 뜻으로 불교의 윤회설과 선이 닿는다. 떠남이 있으면 반드시 돌아옴이 있다는 거자필반과 대구로 많이 쓰인다. 태어난 존재는 반드시 소멸한다는 생자필멸도 회자정리와 함의는 같다.
사람은 말할나위 없고 어떤 사물도 그냥 우연히 만나는 것이 아니다. 시간적 공간적인 인연이 닿아야 만나게 되는 것으로 큰 틀에서 보면 이들 세가지 성어와 연관이 있다고 할 수 있다.
모든 만남은 귀중하다. 내 안의 나와 마주침이기 때문이다. 그 만남에 담긴 의미를 올바로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저 스쳐지나는 인연일 뿐이지만, 그 메시지를 읽을 수 있고 소중히 받아들이는 이에게는 삶의 성숙과 진화를 가져온다.
모든 만남은 내 안의 나를 찾는 깨달음의 과정이기도 하다. 겉껍데기에 눈이 멀어 귀중한 만남의 뜻을 온전히 찾지 못할지라도 그저 소중히 받아들일 수만 있어도 충분하다. 모든 만남은 맺고 흩어지지만 떠나도 흔적은 남는다. 그 흔적은 또 다른 인연의 씨앗이 된다.
늦봄 비바람에 흩어지는 꽃잎을 보며 덧없음을 느낀다면, 만해 한용운의 '님의 침묵' 마지막 구절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를 읊조려 볼만하다. 가수 이찬원의 '시절인연'을 조용히 따라 불러도 괜찮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