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리 다운즈와 춘카 무이가 쓴 킬러애플리케이션이란 책에서 설명한 것처럼 킬러애플리케이션이란 최초로 시장에 나와 완전히 새로운 카테고리를 형성함으로써 처음에 투자한 비용을 수십배로 회수하는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말한다. 하지만 킬러애플리케이션은 단순히 경제적인 효과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사회적, 정치적 환경에까지 커다란 변화를 야기하는 상품이나 서비스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17세기 존 해리스가 개발한 조그마한 경도(longitude) 측정기가 유럽 열강들의 바다 탐험 시대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것처럼 우리가 사는 이 시대 역시 다양한 킬러애플리케이션들에 의해 총체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필자는 인터넷 비즈니스에 있어서 자유 게시판을 개인 표현의 자유를 촉발하는 킬러 애플리케이션으로 꼽는다. 게시판은 초기 인터넷 뉴스그룹(Newsgroup)의 웹버전으로 익명성이 최대한으로 보장되는 가운데에서 아무나 자신의 의견을 올릴 수 있는 말 그대로 “표현의 자유가 최대한으로 보장되는 공간”을 창조하였다.
이러한 자유 게시판은 상위하달식의 제한된 사회 구조에서 새로운 감시역할의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 가장 보수적이라는 군대나 학교에서 조차 사병들과 학생들의 게시판에 의한 고발이나 의견 개진이 그 동안의 어떠한 제도나 행정 절차보다 강력한 감시 제도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것은 비공식적인 통제가 공공연하게 이루어져왔던 기존 조직 사회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완벽히 자유로운 커뮤니케이션 창구 역할을 제공하게 된 것이다.
기업이나 정부가 웹사이트를 구축하면서 웹사이트 운영자가 가장 고민하는 것 중의 하나가 게시판의 공개여부라고 할 수 있다. 게시판의 특성상관리자가 관리를 소홀하게 하는 경우 가장 쉽게 들어나는 것이 게시판이기 때문에 웹사이트 운영자는 매우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더욱이 경쟁이 심한 시장에서의 기업 사이트 담당자는 소비자의 불만이나 경쟁사와의 비교 질문과 같은 첨예한 문제들이 게시판을 통해 외부에 노출되는 것을 매우 꺼리게 된다. 또한 많은 브랜드를 제공하는 기업의 경우 소비자의 질문에 즉각적인 대응을 효과적으로 하기위해서는 부서간의 협조가 매우 중요하지만 이들의 실질적인 협조를 끌어내는 것이 사실 인터넷 담당자의 입장에서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많은 기업의 열린 CEO들의 경우 기업 사이트 게시판 기능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모 기업의 웹사이트를 구축하면서 인터넷 담당자의 우려 섞인 게시판 개발 요구에 필자가 제안한 방법은 게시판 운영의 객관적인 평가였다. 각 부서별 게시판을 구축하고 소비자의 질문이 들어오면 즉시 담당자에게 메일이 발송되고 담당자가 소비자의 질문에 대한 대답을 올리면 그 과정을 실시간으로 등록하여 인사 담당자가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다. 4시간이내 응답을 기본으로 하고 24시간 이상 아무런 대응을 하지않았다면 관련 브랜드 담당자는 인사적인 불이익을 당하고 즉각적인 대응이 뛰어난 부서의 경우 인센티브를 부여하도록 하였다. 특히 이 결과는 월별로 CEO급까지 보고되어 실질적인 효과가 나타날 수 있도록 하였다.
최근 고객 게시판의 효과적인 관리가 사회적인 이슈로 등장하기도 했던 해충방제 전문기업 세스코(www.cesco.co.kr)사의 경우 1년간의 기발한 고객 게시판 관리를 통해서 지난 10년간 회사 홍보에 기울인 노력보다도 더 큰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하루 10만명이 찾고 있는 이 회사의 게시판 관리의 지침은 매우 단순하다. ‘장난도 관심의 표현이다. 어떠한 질문에도 일관적인 자세로 친절하게 대응한다’는 것이다.
많은 기업들이 CRM과 고객경영을 부르짖지만 고객들은 크로스 셀링이나 업 셀링, 마이 페이지 같은 많은 비용이 들인 자동화된 개인화 툴보다도 고객 한사람 한사람을 정성스럽게 대하고 있는 게시판에 더욱 열광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필자의 이전 클라이언트였던 외국계 한 기업 사이트의 경우도 독특한 게시판 운영 방법을 적용하였는데 게시판에 올라오는 소비자들의 질문을 같은 소비자들이 직접 대답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게시판 운영 정책은 소비자들 중에서 회사 직원들 보다도 제품에 대한 지식과 정보를 더 많이 알고 있는 매니아들이 많다는 사실에서 착안된 것이다. 이는 기존의 직원들의 답변보다 훨씬 높은 신뢰감을 제공하였는데 예를 들어 주부의 질문에 대해서 같은 문제를 해결해본 경험이 있는 주부 매니아 고객이 직접 대답해주는 식이다. 이러한 게시판의 관리와 운영의 융통성있는 접근은 인터넷 사용자들의 프로슈머적 특성을 효과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보수적인 사회 구조의 변혁과 기업과 소비자간의 관계 재설정에 기여하고 있는 게시판이지만 문제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사실과 다른 특정인 험담 및 불만, 욕설로 도배하는 도배맨들이나 의도적으로 특정 기업이나 웹사이트를 음해 내용 유포하는 음해 공작단, 피라미드 판매를 부추기는 사이버 피라미드 판매원들 때문에 게시판 관리에 큰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명확한 주제를 제시하는 토론식 게시판 관리나 실명의 소비자 의견 및 평가를 유도하는 로그인 기능, 게시판과 함께 메일이나 채팅, 전화와 같은 다양한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제공하는 보조 대응 방식, 특정 단어나 키워드가 포함된 의견을 제한하는 필터링 방식 등을 게시판의 특성에 맞게 적용한다면 그러한 문제점들을 줄여 나갈 수 있다.
독자 서평 게시판을 서적 구입에 가장 중요한 영향을 끼치는 주요 컨텐츠로 활용하는 세계적인 인터넷 서점 아마존(www.amazon.com)의 경우도, 독자 서평 게시판 운영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들을 같은 독자들에 의한 서평 평가 등의 자율적인 정화기능을 통해서 서평의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도록 운영하고 있다.
IT업계 종사자 어느 분이 웹은 게시판과 이메일의 복합체라는 말씀을 하셨다. 다소 과장된 표현이지만 그만큼 인터넷에 있어서 게시판의 기능과 역할이 매우 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 것이다. 인터넷의 상업화가 본격화되는 지금 기업과 소비자, 정부와 국민, 사용자와 사용자를 묶는 게시판 본연의 운영 능력이 폭발적인 사용자의 증가와 기술적인 진보에 쫓아가지 못하는 것이 매우 유감스럽다. 수십억을 들여 개발한 CRM 솔루션도 결국 고객이 원하는 운영자의 인간적인 반응을 흉내내는 자동화 툴일 뿐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